970화
“방금 하신 말씀이 무슨 뜻···”
질문하려던 이한은 주변이 흐릿해지는 걸 깨닫고 놀랐다·
이번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다음에 보도록 하지· 오수의 제자·
“잠깐! 그러면 소세계···”
마지막까지 마법에 대한 탐구심을 놓지 않는 마법사의 모습에 야차왕은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이한은 그걸 물어보려고 한 게 아니었다· 멀어지는 차원을 보며 이한은 속으로 외쳤다·
‘···입문은 역시 아무 상관 없었던 거 아닙니까?!’
그냥 가만히 있었어도 시간 되면 알아서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은데···!
* * *
“헉!”
“무슨 일이지?”
침낭 위에 누워서 잠깐 눈을 붙인 후배가 외침과 함께 일어나자 선배들은 깜짝 놀랐다·
이런 지하 지역을 탐사할 때는 악몽도 주의해야 했다·
평범한 꿈이 아니라 사악한 몬스터나 현상의 전조 증상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꿈속에서 마법에 몰두하다보니···”
“····”
시군팅과 안파곤은 속으로 감탄했다·
부여 마법 학파 학생들은 자신들이 에인로가드의 여러 학파 중에서도 가장 마법에 몰두한다는 자각이 있었다·
이건 근거 없는 자부심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마법사가 버두스 교수 밑에서 마법을 배우겠는가·
버두스 교수 밑에서 마법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가장 마법에 몰두한다고 할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꿈속에서까지 마법에 몰두하다니·
‘역시 보통 녀석이 아니다·’
‘꿈속에서까지 마법 수련에 몰두하면 정신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텐데· 대단하군·’
그러는 사이 유크벨티레가 조용히 이한 뒤로 다가왔다· 상대가 걱정하는 것 같자 이한은 손을 내저었다·
“저 괜찮습니다· 선배님·”
“잘됐군· 안 그래도 꿈속에서 마법을 수련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 중이었는데 자세한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저리 가십시오· 선배님·”
이한은 빠르게 부여 마법 학파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선배가 말을 걸면 일단 날카롭고 퉁명스럽게 대꾸하게 되는 것이다·
-헛걸음만 했군·
-그러게 말이야·
“!?”
절벽 위쪽에서 들려오는 다른 학생들의 목소리에 일행은 깜짝 놀랐다·
“미행당한 건가?”
“아니! 저쪽은 우리가 있는 걸 모르는 것 같다· 다른 방법으로 강철구두를 찾은 것 같은데···”
-누구냐!
이윽고 위에서도 인기척을 알아차렸는지 날카롭게 외쳤다·
안파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대답했다·
“부여 마법 학파다· 그쪽은?”
“미치광이들이었나? 우린 변환 마법 학파ㄷ··· 아니! 워다나즈! 넌 왜 거기 있냐?!”
깜짝 놀란 변환 마법 학파 선배들은 이윽고 깨달았다·
“아· 워다나즈는 부여 마법도 들었었지·”
“예··· 그보다 선배님들· 이 위치는 어떻게 찾으신 겁니까?”
절벽 위쪽에 있던 변환 마법 학파 학생들은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부여 마법 학파 학생들만 있다면 ‘내가 왜 대답해줘야 하지? 이 작은 버두스들아?’하고 무시했겠지만 이한이 있었던 것이다·
“자룬 선배가 우리 시약을 빌리고 안 갚은 적이 많아서 몰래 추적 마법을 걸어놨었거든·”
“····”
이한을 포함한 부여 마법 학파 학생들은 모두 속으로 경악했다·
그들만 마법을 건 게 아니었다니!
“우리 중에 알리칸토로 변신할 줄 아는 녀석이 있어서 쉽게 돌파할 수 있었지· 그보다 너희들은 용케 이렇게 빨리 왔군?”
변환 마법 학파 선배들은 의아해했다·
그들은 운 좋게 이 지역의 새로 변신할 줄 아는 학생이 있어서 빠르게 왔다지만 부여 마법 학파는 그게 아닐 터였다·
“설마 위쪽 골렘 동굴을 힘으로 뚫고 내려온 건 아닐 테고···”
“····”
상대의 설명에 이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늘 또 하나의 교훈을 얻은 것이다·
선배의 솔깃한 제안이라고 무작정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젠장· 그냥 변환 마법 쪽에 한 번만 확인했어도 훨씬 편하게 왔을 텐데·’
설마 유크벨티레 말고도 추적 마법을 걸어놓은 사람들이 더 있을 줄이야·
에인로가드 선배들을 얕본 이한의 실수였다·
“저희는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선배님· 자룬 선배님을 찾으신 겁니까? 왜 안 보이시죠?”
“찾긴 했는데 의미가 없어·”
“??”
“궁금하면 올라와봐라· 잠깐· 워다나즈 너만 올라와·”
변환 마법 학파 학생들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경고했다·
이한이면 모를까 부여 마법 학파 학생들은 믿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멀뚱멀뚱 서있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쳐도 이상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저만 올라가겠습니다·”
이한은 염동력 마법으로 손쉽게 절벽 위를 향했다·
그리고는 저 먼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
커다란 녹색 수정 광맥 속에 낯익은 드워프 선배가 갇혀 있었던 것이다· 굳은 얼굴은 충격과 경악으로 가득했다·
“선배님들이 가두신 겁니까?!”
“뭐? 아냐!”
변환 마법 선배들은 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기분은 좋군· 우리가 가둔 걸로 할까?”
“워다나즈· 우리가 왔을 때 자룬 선배는 이미 저기 갇혀 있었다· 주변을 다 확인해봤는데 광맥은 없었어·”
변환 마법 학파 학생들은 자룬이 갇힌 수정을 발견한 뒤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혹시라도 오리하르콘 광맥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이 주변에는 오리하르콘은 물론이고 다른 광맥의 흔적도 개발하거나 탐사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고민 끝에 학생들은 결론을 내렸다·
-자룬 선배가 지원을 받으려고 있지도 않은 광맥을 발견했다고 사기를 치셨군·
“···아 아니· 아무리 자룬 선배님이라 하더라도 그런 거짓말을 치시겠습니까?”
“이미 예전에도 몇 번 치셨는데? 그 때는 다른 종류긴 했지만···”
“····”
이한은 다시 한 번 에인로가드 선배들을 얕봤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한테 필요한 장비나 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에인로가드 고학년들이었다·
이런 일들에 익숙한 학생들은 별로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한은 마지막으로 변호해보았다·
“그래도 오리하르콘 광맥은 좀 규모가 다른 거짓말 아닙니까? 지금 다른 선배들부터 교수님들까지 관심 가지고 있는데 설마···”
“워다나즈· 미친 사람을 네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돼·”
‘그건 맞는 말이야·’
이한의 변호는 즉시 격추됐다·
에인로가드에서는 ‘설마 이런 짓을 한다고?’로 규정하는 게 의미가 없었다·
“오리하르콘 광맥이란 게 그렇게 쉽게 발견될 리 없지· 다른 광맥이라도 찾으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것도 없다니·”
“꼴을 보아하니 강철구두 선배가 나중에 자기 작업에 쓰려고 미리 신청해둔 거야· 안 그러면 주변에 탐사 흔적이나 채굴 흔적이 없을 리가 없거든· 찾을 만큼 찾아봤으니 우린 돌아간다· 워다나즈· 너도 같이 돌아갈래?”
“어··· 자룬 선배님 안 데리고 가십니까?”
이한의 질문에 변환 마법 학파 학생들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후배를 쳐다보았다·
“워다나즈· 강철구두 선배는 우리가 인사해도 무시했고 서신도 답장해주지 않았어· 혼자 자기 공방에 들어가서 내내 황금만 캐셨지· 우리도 썩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도란 게 있다고· 부여 마법 학파 미치광이들도 저러진 않을 걸·”
‘아뇨··· 비슷합니다···’
이한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선배를 위해 어떻게 해제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수정 광맥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죽진 않을 테니까 내버려두면 죽음의 기사들이 수거하거나 교수님이 주워가시겠지·”
변환 마법 학파의 분위기는 부여 마법 학파처럼 차갑지는 않았지만 몇몇 이들한테는 냉혹했다·
특히 자룬 같은 경우가 그랬다· 평소 쌓은 업보 때문인지 아무도 도와주려고 나서지 않았다·
“같이 돌아갈래?”
“···저는 같이 온 분들이 있어서 힘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경 쓰이는 것도 있고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오리하르콘 광맥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애초에 보기 힘든 광맥이야·”
“아니 자룬 선배를 걱정한 건데요·”
“아· 그래? 그럼 더더욱 집착할 필요 없어· 그냥 저렇게 생긴 광석이라고 생각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변환 마법 학파 학생들은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한 명이 알리칸토로 변신하자 다른 학생들은 그 위로 올라가 빠르게 날아가 버렸다·
-워다나즈· 올라가도 되나?
“예· 오셔도 될 거 같습니다·”
부여 마법 학파 학생들이 차례대로 올라오자 이한은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그러자 세 선배들은 냉정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사기일 확률이 높군·”
“···혹시 오해의 가능성은 없을까요?”
“그렇기에는 근처에 아무런 흔적도 없잖나·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면 채굴 흔적이 있었을 텐데· 아마 중요한 장비나 지원금은 자기 공방에 숨겨놓고 피신하려고 내려온 거겠지·”
시군팅은 안파곤의 추측을 거들었다·
“저 안에 들어간 이유도 짐작이 가· 아마 추적자들이 자길 죽이지 못하게 들어간 거겠지·”
참신하고 과감한 추측에 이한은 경악했지만 다른 선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유크벨티레까지 그랬다·
“복장을 보니 도주하던 게 맞군·”
“혹시 오리하르콘 광맥을 찾으신 다음에 피치 못할 이유로 이동하신 걸 수도 있습니다·”
유크벨티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정말 오리하르콘을 찾았다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지역을 떠나지 않았을 거야·”
“맞는 말이야·”
자리를 비웠다가 사라지거나 누군가한테 뺏긴다면 그 괴로움은 평생 가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자룬 같은 마법사라면 무조건 광맥 근처에 머물렀을 터·
여기서 별다른 흔적 없이 발견되었다는 것 광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자룬 선배를 꺼내서 물어봅시다·”
“뭐?”
“왜 그런 짓을?”
“디레트를 닮아서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낭비하는 나쁜 버릇이 있군·”
세 명의 선배는 학년 순서대로 한 마디씩 구박했다·
이한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전 여기까지 온 이상 억울해서라도 꺼내서 물어봐야겠습니다·”
만에 하나 다른 이유로 갇힌 거라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선배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건 시간 낭비···”
“안 도와주시면 사방으로 마법 난사해서 몬스터들 부르겠습니다·”
“····”
“···알겠다· 도와주지·”
평소 성실하던 후배가 고집을 부리면 무서운 법·
이제까지 군소리 없이 헌신해왔던 후배가 고집을 피우자 선배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협박이 무서워서는 절대 아니었다·
* * *
다행히 유크벨티레는 자룬을 가둔 광맥의 성질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아주 독특한 금속이군· 자연적으로 형성된 합금 같은데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야·”
“어떻게 꺼내죠?”
“외부의 힘에는 아주 견고해· 그렇다고 억지로 두드렸다가는 강철구두 가문의 자룬도 같이 부서져나가겠지·”
“그래서 어떻게?”
“아마 흑자석도 조금 섞인 것 같아· 마력이 기묘하게 순환하는 걸 보니 흡수의 성질이 어딘가에···”
“선배님·”
“응?”
“어떻게 꺼내는지 본론만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마력이 담긴 열로 융해시키는 게 최선일 것 같은데·”
유크벨티레는 땅바닥에 아티팩트의 설계도를 즉석으로 그렸다·
주변의 마력을 포집한 뒤 열기로 전환시키고 그 열이 주변으로 새어나가거나 다른 피해를 주지 않게 통제하며 결과적으로 광석을 꾸준히 녹일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복잡한 설계도와 거기에 들어가는 더 복잡한 재료 목록을 보며 이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냥 제 마력으로 녹여보겠습니다·”
“····”
유크벨티레의 무표정한 얼굴에 아주 살짝 흔들린 기색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한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저걸 언제 다 구해서 갖고 내려온 뒤 다시 설치를 한단 말인가·
즉석에서 해결을 봐야 했다·
다행히 원리를 들어보니 이한이 몸으로 때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력을 화염 속성으로 전환한 뒤 방사한다·’
유크벨티레의 아티팩트보다는 훨씬 더 무식하고 낭비 심한 방법이었지만 시간만 주면 결과는 똑같이 나올 터였다·
뒤에서 보던 유크벨티레가 말을 걸었다·
“워다나즈 가문의 후배·”
“방해하지 마십시오·”
“방해하는 게 아니라···”
“선배님 아티팩트 설치하는 건 너무 오래 걸린다니까요·”
“그걸 말하는 게 아닌···”
“쉿· 그러면 조용히 좀 해주십시오·”
“····”
유크벨티레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정말로 아티팩트 때문에 말을 건 게 아니었다·
아까부터 이한의 머리 위로 흐릿한 왕관의 환영이 일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저 마법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