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6화
“누··· 누구요?”
이한은 잘 모르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유크벨티레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후배 너는 변환 마법 강의도 들을 텐데 왜 모르는 거지?”
‘젠장·’
지적을 받은 이한은 아차 싶었다·
생각해보니 모든 학파 강의를 다 듣다 보니 어지간해서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빠르게 포기한 이한은 결국 포기하고 실토했다·
“제대로 들었나 싶어서 여쭤본 겁니다· 강철구두 가문의 자룬 선배 맞죠?”
“그래·”
“그 분은 왜 물어보신 겁니까?”
“다른 학생들과 파티를 짜서 붙잡을 생각이다· 워다나즈 가문의 후배 너도 같이 움직이면 좋겠군·”
유크벨티레는 보기 드물게 상냥한 태도로 제안했다·
무능한 학생들과 같이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유크벨티레에게 있어서 고작 2학년 학생을 파티에 초대했다는 건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이한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
그렇기에 이런 상냥한 태도의 제안이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녀 기준에서 상냥한 태도였지 학파의 다른 후배들이 보기에는 평소처럼 냉정한 제안을 할 때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한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진짜 싫다·’
이미 아까도 생각했던 것처럼 이한은 유크벨티레와 같이 파티를 짜고 에인로가드 지하 광산을 탐색하고 싶지 않았다·
밝고 넓은 곳에서도 가끔씩 한 대 치고 싶어지는데 어둡고 폐쇄적인 곳에서는 어떻게 될지 상상도 가지 않았던 것이다·
이한은 그냥 핑계를 대고 아예 빠져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괜히 따로 내려갔다가 유크벨티레 파티를 만난다면 오히려 더 귀찮아질 터·
“사실 제가 이번 클럽 외출 주간 때문에 강의에 많이 늦었습니다·”
“?”
옆에 있던 안파곤이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후배를 쳐다보았다·
이미 지팡이를 완성시켜서 기말고사까지 사실상 끝낸 상황인데 무슨?
‘다른 강의 이야기인가?’
“그래서 한동안 강의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 말에 유크벨티레 대신 안파곤이 대답했다·
“워다나즈· 어차피 자룬 선배 때문에 강의는 며칠 더 미뤄질 거다·”
“···?”
이한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룬 선배 때문에 강의가 며칠 더 미뤄질 거라니까·
혹시 자룬 선배한테 강의를 미룰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단 말인가?
‘그런 마법이 있다면 나도 배우고 싶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교수님들도 자룬 선배가 찾은 오리하르콘 광맥을 손에 넣으려고 하실 테니까·”
안파곤은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설명했다·
에인로가드의 강의는 교수의 사정에 따라 유동적으로 연기되거나 지체 혹은 취소될 수 있었다·
교수들이 수도로 잠깐 불려가거나 징벌방에 끌려가거나 산맥에서 실종되는 경우가 있는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러지 않았는데도 연기가 되는 경우가 있었으니 바로 이럴 때였다·
오리하르콘 광맥 정도라면 강의를 잠깐 멈추고 학생들한테 찾으러 가라고 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농담하지 마십시오·”
“농담 아닌데· 난 농담을 좋아하지 않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종이 새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왔다·
<고대 유물과 소환 마법의 비극적 역사>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알립니다·
현재 강철구두 가문의 자룬 학생이 에인로가드 지하에서 오리하르콘 광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광맥 수색 과정을 보고하는 걸로 강의를 대체하겠으니 학생들의 열정적인 참가 바랍니다·
밀레이 교수
“····”
빠르게 소문이 퍼지고 있었는지 다른 종이 새들도 날아 들어왔다· 제각기 다른 교수들이 보내고 있는 종이 새였다·
각자의 편지에는 자기 강의를 미루더라도 제자들에게 오리하르콘을 꼭 쥐어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버두스 교수님도 편지를 썼지· 봐라·”
“예?! 버두스 교수님이요?!”
이한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버두스 교수가 제자들을 위해 강의를 빼고 등을 떠밀어주다니?
‘아· 생각해보니 원래 강의하기 싫어하셨군· 그냥 잘 됐다 싶어서 뺀 거 아닌가?’
<지팡이 재료와 마법 증폭>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강철구두 가문의 자룬 학생이 오리하르콘을 찾았대!
너희들이 빨리 가서 뺏어야 해!
그런 다음 나한테 절반 나눠주는 거 잊지 말고!
버두스 교수
“····”
이한은 경멸 가득한 얼굴로 편지에서 눈을 뗐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쓰레기 같은 이유였다·
안파곤은 후배가 다 읽자 침착하게 편지를 태워버렸다· 이런 건 굳이 보낼 필요도 없는 쓰레기였다·
“그러니 강의 공부는 좀 미뤄도 된다· 오리하르콘 광석을 소량이라도 확보해놓는 게 워다나즈 너한테 훨씬 도움이 될 걸·”
“····”
안파곤까지 저렇게 말하자 이한도 살짝 흔들렸다·
확실히 지금 당장은 쓸 일이 없는 희귀 광석이라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선배부터 교수들까지 일단 손에 넣고 보라고 추천하는 걸 보면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이한은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파곤 선배님은 그··· 괜찮으십니까? 유크벨티레 선배님하고 같이 움직이시는 게?”
“아니· 별로인데·”
역시 부여 마법 학파답게 선배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유크벨티레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파곤은 같이 움직이기 싫다는 의사를 뚜렷하게 밝혔다·
그리고 유크벨티레도 상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크벨티레도 안파곤하고 같이 움직이는 게 별로였던 것이다·
“···아니 그럼 왜 같이 움직이시려는 겁니까?”
“현재 자룬 선배를 찾을 확률이 가장 높은 게 유크벨티레 선배라서 그렇지·”
“??”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같은 석공 클럽도 아닌데 왜 유크벨티레가 자룬을 찾을 확률이 가장 높다는 것일까?
“무슨 특별한 수단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래·”
유크벨티레는 이제야 흥미를 보이는 후배에게 자비심 넘치는 태도로 설명해줬다·
원래 유크벨티레는 뛰어난 부여 마법사가 대개 그러듯 원재료를 채취해오고 생산해오는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강철구두 가문의 자룬 같은 학생도 꾸준히 황금과 광석을 채굴하는 만큼 저런 경우에 들어갔다·
그래서 유크벨티레는 자룬의 아티팩트에 위치를 추적할 수단을 남몰래 집어넣었다·
“예????????”
이한은 기겁해서 외쳤다·
유크벨티레는 후배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왜 그러느냐는 듯이 가볍게 눈썹을 찌푸렸다·
“왜 그러지?”
“아 아니· 남의 아티팩트에 위치 추적 마법을··· 걸어도 됩니까?”
“강철구두 선배도 가끔 우리 아티팩트 훔쳐가니까·”
안파곤은 별 표정 변화 없이 대답했다· 이한은 더더욱 할 말을 잃었다·
이건 정당방위인가?
이한도 에인로가드의 학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나름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새로운 충격이 튀어나왔다·
“그 그렇군요· 그래서 위치 추적 마법을···”
“아니· 그건 그거랑 별개지· 그건 그냥 광물 위치 확인하려고···”
이한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확실히 유크벨티레가 그런 짓을 해놨다면 혼자 돌아다니는 걸 선호하는 안파곤이 같이 가려는 것도 이해가 갔다·
‘정말 저 사람이 가장 가능성이 높단 말인가?’
괴로워하던 이한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오리하르콘 광석을 찾는다면 유크벨티레의 손을 잡는 게 가장 가능성 높은 선택이란 것을·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같이 가죠·”
“그래· 잘 생각했다·”
“드디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군·”
두 선배의 말에 이한은 벌써 피곤해지는 기분이었다·
유크벨티레는 공방 탁자 위에 있던 작은 귀걸이 아티팩트를 내밀었다·
“이거 받도록· 지하로 내려갔을 때 필요할 거야·”
“과연· ···혹시 이거 선배님이 직접 만드셨습니까?”
“그래· 어떻게 알았지?”
“아티팩트가 너무 완벽하고 깔끔하게 잘 만들어져서 혹시나 싶었습니다·”
아부에 관심 없는 유크벨티레였지만 디레트나 이한처럼 비교적 조금 친한 상대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유크벨티레는 희미한 자부심이 담긴 미소를 숨기며 말했다·
“보는 눈이 있군·”
‘수색 끝나자마자 치워버리고 마법 검사해야지·’
이한은 저 귀걸이 아티팩트를 예의주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자룬한테 추적 마법을 걸었다면 이한한테도 충분히 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크벨티레 선배님· 디레트 선배는 같이 안 하십니까?”
“디레트는 참가하지 않을 거야·”
“아· 혹시 바쁘십니까?”
“아니· 디레트가 참가하지 않는 건 비이성적인 판단 때문이지· 나하고 같이 지하로 내려갈 일은 피하고 싶다고 하더군·”
유크벨티레는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저게 무슨 비논리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이유란 말인가·
“····”
이한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젠장· 먼저 물어볼 거 그랬군···!’
* * *
4학년 안파곤·
5학년 유크벨티레·
3학년 시군팅(아래층에서 작업하다가 참가했다)·
2학년 이한·
4명의 부여 마법 학파 학생들은 빠르게 준비를 마친 뒤 가장 가까운 지하 입구로 향했다·
“제가 알기로는 시냇물의 숲이나 어둠숲 쪽 지하 통로를 쓴다고 들었습니다만·”
이한은 그래도 이번 기회에 뭐라도 배우려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셋 모두 ‘다른 놈이 대답해주겠지’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크벨티레 선배님· 제가 알기로는 시냇물의 숲이나 어둠숲 쪽 지하 통로를 쓴다고 들었습니다만·”
“원래는 그쪽이 지하로 내려가기 좋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소문이 퍼졌을 때는 위험해·”
청동 침반(針盤) 아티팩트를 들고서 자룬의 위치를 가늠하던 유크벨티레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원래 평소 들어가기 좋은 통로는 이렇게 사건이 터지면 교활하고 천박한 학생들의 먹잇감이 되기 좋았다·
대기하고 있다가 뒤에 따라붙을 수도 있는 것이다·
조금 들어가기 어렵더라도 이럴 때는 우회해야 했다·
“이쪽으로·”
유크벨티레는 바닥을 두드리더니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흙만 있던 바닥에 석판이 융기하며 아래로 내려가는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 광산 지역까지 깔끔히 뚫어놓은 통로에 이한은 놀라워했다·
“선배님들이 만드신 겁니까?”
“····”
“···안파곤 선배님· 선배님들이 만드신 겁니까?”
“아니· 버두스 교수님이 만든 지하 통로다· 우리가 훔쳐서 옮긴 다음 쓰고 있지·”
이한은 대체 지하 통로를 어떻게 훔치고 옮기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걸 자세히 물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포기한 이한은 얌전히 사다리를 잡고 아래로 향했다·
* * *
에인로가드 지하에는 수많은 소문들이 있었다·
웬 미치광이 마법사가 불가살이를 들여와서 기른다는 소문도 있었고 해골 교장이 가둬놓은 고대의 대마법사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으며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타차원의 괴물이 어슬렁거린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점은 이런 소문들이 생각보다 맞을 때가 많다는 점이었다·
광산 구역은 이제 이런 지하 중에서도 상당히 위험도가 높다고 알려진 곳·
이한도 당연히 긴장ㅎ···
···하지 않았다·
‘···배그렉 교수님 때문에 지하를 너무 일찍부터 방문했어·’
이한 본인도 긴장하지 않는 자기 자신에 대해 놀랄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1학년 때부터 너무 험한 꼴을 많이 봐서 같았다·
“휴식·”
“예·”
아티팩트로 전후좌우의 시야를 밝히고 경계와 방어를 하던 학생들은 일제히 멈추고 각자 바위 위에 앉았다·
이한은 원기도 회복할 겸 육방의 배낭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꺼내려고 했다·
그러나 세 명의 선배는 마치 줄로 묶인 꼭두각시들이 똑같이 행동하듯이 일제히 물약병을 꺼내서 마셨다·
“···뭐 드십니까?”
“····”
“시군팅 선배님!!! 뭐 드십니까!”
“으응? 영양 보충 물약·”
기하학적으로 수염을 땋은 드워프 선배는 빈 병을 흔들며 말했다·
맛은 더럽게 없었지만 쉽고 빠르게 한 끼 정도의 영양을 채울 수 있는 물약이었다·
“그렇지만 잠깐의 시간을 투자하면 훨씬 더 맛있고 따뜻한 걸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뭐하러 그런 시간 낭비를?”
“흠· 그렇군요·”
이한은 선배들 간식거리를 준비하려던 생각을 빠르게 포기했다·
‘그냥 저 사람들은 저렇게 먹게 해야겠다·’
친구들과 달리 여기 선배들은 먹이려다가는 이한의 속이 먼저 터져나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