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0화
다행히 가르시아 교수는 제자들을 무력으로 제압하지 않았다·
주변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가르시아 교수 본인이 폭력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드득!
“····”
앙라고는 가르시아 교수가 관중석에 설치된 금속 난간을 손으로 잡아서 으깨버리는 걸 보고 경악했다·
물론 가르시아 교수님은 폭력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아니겠는가·
만약 오늘이 가르시아 교수가 처음으로 폭력을 휘두르겠다고 결심한 날이라면?
“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교수님!”
“잘못한 건 아나보네요· 빨리 살코 학생 데리고 오세요·”
“네! 네!”
앙라고는 허겁지겁 달려가 관중들을 밀어버리고 그 사이에서 지휘 중인 살코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 너 그랑덴 시 격구 클럽 놈이냐!
-밟아버려!
옆의 사람들에게 몇 대 얻어 맞으면서 앙라고는 외쳤다·
“컥 컥! 투탄타 멍청한 놈아! 교수님이 오셨다고! 가르시아 교수님이 오셨어!”
“···!!!”
진흙탄을 난사하던 살코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을 차렸다·
“거 거짓말하지 마라·”
“뒤에 보라고!”
“····”
낯익은 교수님과 눈이 마주친 살코는 바로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다들 멈춰라! 싸움을 멈춰!”
“뭐하는 거야! 저 그랑덴 시 격구 클럽 놈들을 밟아버려야지!”
“안 돼! 멈춰! 멈추란 말이다!”
술 취한 관중들은 살코의 진심 어린 호소에도 멈추지 않았다·
쿵!
가르시아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지팡이를 바닥으로 찍었다·
그러자 관중석 위 허공에서 수십 갈래의 그림자 촉수가 내려오더니 날뛰는 관중들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컥!”
“크억!”
아무리 말려도 날뛰던 관중들이 축 늘어져서 쓰러져버렸다· 놀라울 만큼 세련된 마법이었다·
“여러분·”
가르시아 교수는 엄격한 얼굴로 둘에게 말했다· 둘은 침을 꿀꺽 삼켰다·
“뛰어요!”
“?!”
교수는 혼내는 대신 앞장서서 계단 아래로 도망쳤다·
에인로가드 마법사로서 가장 중요한 건 자리에 남아 명성을 떨치는 것도 제자를 혼내는 것도 아니었다·
사고를 친 다음 빠르게 이탈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같 같이 가요 교수님!!”
* * *
세 마법사는 간신히 자리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었다·
-아까 그 마법사는 대체 누구지?
-그 정도 마법이면 에인로가드 출신 아닐까?
-하긴· 그럼 아까 그 마법들도 에인로가드 출신이려나·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 성문에서 있었던 난투도 에인로가드 마법사들이 한 걸지도 모르겠네·
‘마지막은 아닌데!’
가르시아 교수는 울컥했다·
물론 확률적으로 에인로가드 마법사들이 사고 많이 치는 건 맞았지만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듣는 건 여전히 억울한 일이었다·
제국 사람들은 왜 이해하기 어려운 마법적 일들이 일어나면 모두 다 에인로가드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
“자· 두 학생·”
“···네···”
“···죄송합니다· 교수님· 학생의 본분을 잊고 흥분했습니다·”
둘은 깊게 반성했다· 꼭 가르시아 교수의 손아귀가 어깨 위로 올라와있어서는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렇게 난동을 피운 게 부끄러웠던 것이다·
“정말 반성했으면 됐어요· 앞으로 안 하면 되죠·”
가르시아 교수는 아까보다 한결 누그러진 태도로 말했다·
사실 다른 선배들이 저지른 사고에 비하면 오늘 이 둘이 한 일은 별 것도 아니었다·
탈주에 경기장 난동 정도면 뭐···
“이한 학생이나 찾으러 가죠·”
“워다나즈는 어째서요?”
앙라고는 의아해했다·
둘과 달리 이한은 아직 합법적으로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당장 격구 클럽 소속으로 경기를 뛰고 있지 않은가·
“이한 학생이 그랑덴 시 궁전에서 악신숭배자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기 때문이죠·”
가르시아 교수는 둘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둘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처··· 처음 들었습니다·”
“저 저도···”
“····”
연극 클럽 소속으로 나온 학생들이 궁전에서 있었던 일을 모른다고 우기는 뻔뻔함에도 가르시아 교수는 화내지 않았다·
학생일 때는 누구나 사고를 치는 법 아니겠는가·
···물론 이한 학생은 좀 그 사고의 규모가 많이 크긴 한데···
“그래 그런 걸로 하죠· 이한 학생은 어디 안 다쳤죠?”
“하하· 워다나즈 녀석이 얼마나 강한지 아시잖습니까· 외계의 존재와 정면으로 맞붙었는데도 하루 쉬니까 쌩쌩해지던데요·”
“····”
“····”
앙라고는 경악해서 ‘너 미쳤냐’하는 눈빛으로 살코를 쳐다보았다·
사실 궁전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 워다나즈는 그냥 보조적 역할만 한 거다 라고 우겨도 모자랄 판에 무슨 소리를?
싸늘해진 분위기에 살코도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차···! 내가 이런 실수를···!’
격구 경기의 흥분이 아직 남아 있는 게 분명했다·
“···안 다쳤다니 다행이군요·”
“예···”
“····”
그 뒤로 세 마법사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통로를 걸어갔다·
경기장 반대 쪽에 위치한 에인로가드 격구 클럽 구역에는 벌써 흥분한 관중들이 몰려와있었다·
-에인로가드 만세! 은화 만세!
-선수들을 보게 해줘! 선수들을 보게 해줘!
“저기· 지나가겠습니다·”
-꺼져!
“····”
허공에서 수십 갈래의 그림자 촉수가 다시 내려왔다·
그걸 본 격구 클럽 학생이 깜짝 놀라 외쳤다·
“가르시아 교수님?!”
마법만 봐도 바로 알아차리는 상대의 모습에 가르시아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변명했다·
“마법으로 알아본 게 아니라 관중들이 다 쓰러져서 알아본 걸 거예요·”
“마법 보고 알았습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혹시 누가 사고를···”
말을 하던 학생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다른 교수면 모를까 가르시아 교수가 여기 찾아올 정도의 사고라면 대체 얼마나 큰···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지나가다가 소식을 듣고 들려본 거죠· 참· 승리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클럽 학생들은 벌써 승리의 기쁨에 푹 취해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거둔 승리였기에 그 기쁨은 더더욱 값졌다· 곳곳에 축하 선물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이한 학생은 어디 있나요?”
“아· 워다나즈는 약속이 있다고 잠깐 밖으로 나갔습니다· 교수님· 워다나즈가 정말 크게 활약했는데 이 정도 외출은 너그럽게 봐주시면···”
말을 하던 선배는 멈칫했다·
가르시아 교수의 주먹 근처에서 공간이 왜곡되고 있었던 것이다·
“···안 되겠죠?? 교칙은 엄격한 법이니까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아니에요· 이렇게 이겼는데 잠깐 외출할 수도 있죠·”
벌써 사라진 제자의 모습에 가르시아 교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자가 너무 똑똑하면 이럴 때 참 고생이었다·
* * *
“폰리그· 정말 잘했다·”
-푸흐흥!
말로 다시 변신한 폰리그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인로가드 격구 클럽에 돈을 건 사람들은 이번 경기에 가장 기뻐하는 건 자신들이라고 확신했지만 사실 그건 틀렸다·
이번 경기로 가장 기뻐하는 건 바로 이 그리폰이었다·
체감상 몇십년 묵은 한을 푼 기분이었다·
‘그렇게 격구를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이한은 속으로 생각하며 폰리그의 갈기를 정리해줬다·
폰리그의 취향과 별개로 덕분에 이한도 이길 수 있었다· 선배들의 눈물은 덤이었다·
“자· 이거 더 먹어라·”
우걱우걱 간식을 먹는 폰리그의 모습에 새끼 바실리스크는 소매 속에서 부러워했다·
격구 경기에 나가면 저렇게 예쁨을 받을 수 있구나!
“그나저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군·”
이한은 잠깐 고민에 빠졌다·
원래 머무르던 상단 창고 숙소는 조금 위험했다· 가르시아 교수가 추적해 올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경기장에 돌아가서 격구 클럽 회원들과 같이 머무르는 건 ‘저를 잡아가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
고민하던 이한은 골목길 앞 대로를 걸어가는 의외의 얼굴에 깜짝 놀랐다·
주방 클럽의 선배 팔크리우스 사제가 양 어깨에 거대한 포대 자루를 올린 채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선배님!”
“···누구냐?”
“앗· 저 워다나즈입니다·”
“???”
팔크리우스는 변장한 이한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에인로가드 마법사가 변장하고 다니는 건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라 별로 놀랄 것도 없었다·
“푸흐· 왜 이렇게 일찍 나왔나 했더니· 하긴 너는 클럽도 여러 곳 소속이니까 먼저 나왔겠구나?”
“예· 그런데 선배님은 왜···?”
주방 클럽의 외부 활동은 보통 자선이었다·
여러 신전이나 후원가들로부터 크게 지원을 받아 식량을 나눠주고 버려지고 남은 식재료는 굶주린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나눠 먹는다·
하지만 일정까지는 아직 며칠 더 남은 상황·
왜 팔크리우스 혼자 미리 나왔단 말인가?
“우하하· 그야 식재료를 많이 모아야 하니까 그렇지·”
너털웃음과 함께 선배는 설명했다·
여러 신전이나 후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배고픈 사람은 많기 마련·
정해진 지원보다 더 많이 준비해놓으면 그런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식사를 나눠줄 수 있었다·
팔크리우스는 다른 후배들을 괜히 방해하고 싶지 않아 혼자 따로 신청한 뒤 이렇게 먼저 나온 것이다·
“···저한테 말해주시지 그랬습니까· 도와드렸을 텐데·”
“푸흐· 클럽에서 나보다 유일하게 더 바쁜 회원은 너일 텐데· 워다나즈· 그리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야· 다른 후배들까지 나설 필요 없지·”
팔크리우스는 오우거 혼혈로 오해 받는 두둑한 뱃살을 두드리며 웃었다·
“그리고 식재료가 많이 남을수록 우리한테도 좋지 않겠어?”
“맞는 말씀이십니다· 저도 돕··· 잠깐· 선배님· 혹시 가르시아 교수님 만나신 적 있으십니까?”
“없는데? 왜?”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푸흐· 든든하군· 고맙다· 워다나즈·”
팔크리우스는 씩 웃었다·
후배의 재주를 생각해보면 학생 열 명의 지원보다 더 든든하게 느껴졌다·
“잠깐· 워다나즈· 생각해봤는데 변장은 푸는 게 좋지 않겠냐?”
“예? 어째서입니까?”
“그야···”
식량을 더 모으기 위해서는 곳곳을 돌며 설득해야 했다·
여러 곳을 방문하게 될 텐데 그런 곳들 중에는 귀족의 권위나 위엄에 약한 곳도 있었다·
팔크리우스는 누가 봐도 사제 같아 보여서 권위가 있지 않았지만···
“?”
···후배는 누가 봐도 대귀족 출신인 게 느껴지는 이목구비 아닌가·
변장을 풀고 당당하게 방문하는 게 설득에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으음· 근데··· 끄응···”
“왜 그러지?”
“누가 알아볼까봐요·”
“푸흐· 괜찮아· 괜찮아· 워다나즈· 그랑덴 시는 대도시라서 마법사들도 엄청나게 많아· 네가 사고를 쳤더라도 못 알아볼 거야·”
에인로가드 학생들 중 밖에 나갈 때 변장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밖에서 사고를 쳤거나 혹은 사고를 칠 계획이거나·
보통 둘 중 하나는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만··· 여하튼 알겠습니다·”
이한은 변장을 풀었다·
확실히 팔크리우스를 도우려면 변장한 채로는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가시ㅈ···”
“혹시 워다나즈 학생 아닙니까!? 에인로가드 격구 클럽 소속! 맞죠?!”
“뭐!? 그 워다나즈 학생이 여기 있다고!?”
“워다나즈 학생! 제 회중시계에 사인 좀 해주십시오!”
누군가 외치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다들 자신의 망토나 브로치 회중시계에 오늘 경기의 기념으로 사인을 받고 싶어했다·
팔크리우스는 그 모습에 경악했다·
‘이··· 이게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