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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7화
“왜 그렇게 긴장하지? 다른 교수님도 아니고 가르시아 교수님이잖나·”
페르세는 후배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물론 에인로가드 교수들의 호출이 학생 입장에서 썩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교수들의 이야기였고 가르시아 교수는 좀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화를 내거나 혼을 내거나 내일까지 자기 작업에 쓸 아티팩트 173개를 만들어오라고 할 교수가 아닌 것이다·
“···그렇긴 하죠···”
이한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격구 경기 끝나면 바로 다른 클럽으로 움직여야겠다·’
주방 클럽이나 석공 클럽 일정을 핑계를 대면 만나는 걸 피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페르세 선배는 가르시아 교수를 두려워하는 후배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원래 법칙에는 예외가 있는 법·
이한은 현재 가르시아 교수가 분노했는지 분노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목을 걸고 싶지 않았다·
‘···설령 교수님이 분노했다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가라앉으실 거다· 아마···’
교수 생각에 골똘히 몰두하고 있는 이한 옆에서 선배들은 오늘 경기 이야기를 나눴다·
“들었어? 그랑덴 시 격구 클럽에서 다 자란 히포그리프를 갖고 왔다는데?! 하다각 놈이 타고 나온다나봐·”
“지독하군 정말· 우리 상대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을 텐데·”
클럽 선배들은 치를 떨었다·
물론 약팀 상대로 방심하지 않는 게 진정한 격구 선수였지만 자신들 상대로는 방심해주길 바라는 게 또 사람 마음이었다·
“하다각이면 후배가 직접 상대해야 하는 위치인데··· 걱정이 많겠어·”
“아니· 저길 봐·”
선배는 이한을 가리켰다·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침칙하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선배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반성했다·
후배는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정작 자신들은 쓸데없이 호들갑만 떨고 있다니·
“···워다나즈· 걱정하지 마라· 네 뒤에는 우리들이 있으니까·”
“클럽에서 연습했던 것만 해· 그 이상은 안 해도 된다·”
“예? 어··· 감사합니다·”
가르시아 교수가 화났을까 안 화났을까 점쳐보려던 이한은 갑작스러운 응원에 당황했다·
* * *
“놀 놀랍군· 그랑덴 시 격구 클럽이 이 정도였다니·”
“원래 강한 선수들 아니었나?”
“그건 그렇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거든·”
앙라고는 살코가 들고 있는 튀밥 그릇에 손을 뻗으며 말했다· 살코는 불쾌한 듯 그 손을 쳐냈다·
그랑덴 시 경기장에는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삼삼오오 떠들고 있었다·
그 인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푯값도 비쌌고 비교적 과소비를 즐기는 앙라고는 간식을 살 돈을 아껴야 했다·
“···그래도 이렇게 같이 왔는데 좀 줄 수 있지 않냐?”
살코는 튀밥을 한 줌 집어서 삼킨 뒤 말했다·
“그러게 쓸데없이 그만 좀 사라고 했을 텐데· 망토는 또 왜 산 거냐?”
“새 새 망토가 필요했다고· 이게 원래 망토보다 훨씬 더 은신하기 좋아서 격구할 때···”
“그 투구는?”
“새 격구용 투구가 필요했다고· 원래 투구보다 더 충격 흡수가···”
살코는 점점 더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물었다·
“격구채는 왜 또 산 건데? 격구채가 몇 개는 되지 않나?”
“이··· 이건 워다나즈 줄 거야·”
“???”
“워다나즈도 격구 클럽이잖아· 좋은 격구채를 받으면 격구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겠지·”
앙라고는 뛰어난 자질을 가진 친구가 늘 격구에는 시큰둥한 게 안타까웠다·
지젤도 그렇고 이한도 그렇고 왜 둘 다 격구를 좋아하지 않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살코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갖다 팔 거 같은데?’
“그리고 겸사겸사 감사도 표하고···”
“!”
살코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앙라고는 툴툴대며 물었다·
“뭔데?”
“네가 양심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닥쳐·”
“참고로 내 생각에 워다나즈는 그런 격구채보다 네가 무단외출 안 하는 걸 기뻐할 것 같군·”
“너도 무단외출해놓고 누굴 비난하는 거냐!”
앙라고가 울컥하자 살코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다시 튀밥에 손을 돌렸다·
‘생각해보니 워다나즈 녀석한테 보답의 뜻으로 선물 하나 사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살코는 은원이 확실한 학생이었다·
받은 게 그렇게 많은데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마 생각도 못할 테니(앙라고는 정말 의외였다) 살코가 대신 감사를 표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살코는 자신 말고도 수십 명이 넘는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히포그리프다!
-와아아아아아!
규모가 큰 격구 경기는 그냥 시작하지 않았다·
경기 전에 몇몇 행사들이 추가로 있는 것이다·
경기에 참가하는 동물들의 묘기나 몬스터와 사람의 목숨을 건 싸움(이건 폐지됐다) 몇몇 길드나 상단의 홍보 등등·
지금은 그랑덴 시 격구 클럽 선수들이 나와서 각종 묘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다 자란 히포그리프를 타고 나온 선수도 보일 정도였다·
“아니· 원래 격구 경기는 다 자란 히포그리프가 흔하게 보이나?”
“그럴 리가 있나· 히포그리프가 얼마나 사나운 놈인데· 그리폰보다 멍청하다지만 길들이는 게 쉽지 않아· 저렇게 다 큰 놈은 더더욱 그렇고·”
설명하던 살코는 불공평하다고 투덜댔다·
그랑덴 시 격구 클럽은 여러 가문과 단체의 후원을 받고 제국 전역에서 희귀한 탈것을 구할 수 있지만 에인로가드 격구 클럽은 외출도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히포그리프를 들고 와? 진짜 비겁하군·”
“알파· 경기에 너무 몰두한 것 같은데· 딱히 비겁한 것 같지는···”
“네가 격구를 몰라서 그런 거다!”
“쯧쯧· 왜 저렇게 감정적인지 모르겠군·”
살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경기를 직접 보고 격구 경기장이 어때야 하는지 파악하러 온 살코에게 일희일비하는 앙라고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크윽· 데리고 온 몬스터들도 그렇고 선수들 솜씨도 그렇고 왜 이렇게 강해진 거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보지· 누구한테 졌다거나··· 원래 패배는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잖냐·”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라· 그 논리면 우리 격구 클럽은 지금보다 백 배는 더 강해졌어야 하거든·”
* * *
그랑덴 시 격구 클럽의 주장을 맡고 있는 도시귀족 불파드는 결연한 표정으로 선수들과 탈것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의심했었습니다만 경의 의견이 맞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 에인로가드의 한 학생에게 당한 충격적인 패배는 그랑덴 시 격구 클럽 선수들에게 커다란 폭풍을 몰고 왔다·
비록 주전 선수들이 아니었다지만 경기의 내용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잘 훈련된 탈것들이 겁을 먹고 우왕좌왕 비켜서거나 도망치다니!
충격적인 패배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자 불파드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
나중에 결정적인 순간이 되어서 깨닫는 것보다 지금 깨닫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는가·
그 후 불파드는 선수들과 함께 피나는 노력을 했다·
탈것들이 어떤 두려움도 견딜 수 있도록·
위협이나 공포를 뿜어내는 몬스터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서 훈련했고 가끔 한 지역에 마력이 과잉되어 이상현상이 일어나면 망설이지 않고 찾아가서 훈련 했다·
그리고 피나는 훈련은 결국 그 결실을 맺었다·
두려움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선수들과 탈것들 각자의 역량이 크게 상승한 것이다·
-그리폰이다!!!!
-세상에 그리폰을 보게 될 줄이야! 오늘 경기는 정말 대단하군!
“!”
선수들은 놀란 듯 시선을 돌렸다·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들이 제국 최고의 인재들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만큼 바쁘기도 한 이들 아닌가·
그런데 그리폰을 길들여서 데리고 나오다니?
하지만 불파드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에인로가드 학생 중에는 그리폰을 길들인 학생도 있습니다·”
“····”
‘그럼 그걸 먼저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선수들은 주장의 독단에 황당해했지만 불파드에게도 이유가 있었다·
“스스로의 실력을 믿는다면 상대로 드래곤이 나온다 하더라도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드래곤은 좀···”
“그리고 그리폰을 대비한 훈련도 철저히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긴 합니다·”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랑덴 시 격구 클럽은 정말 다양한 상황을 대비해 훈련했다·
키 작고 비쩍 마른 그리폰을 제한이 걸린 경기에 데리고 나오는 상황부터 시작해서 다 자란 그리폰을 데리고 나오는 상황까지·
클럽 내에서 명성 높은 수비수 하다각이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나한테 맡겨만 주십시오· 그리폰을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만들 테니·”
“오오!”
“든든하군!”
하다각은 근거 없이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그리폰은 분명 히포그리프보다 영리하고 강력한 몬스터였지만 그만큼 단점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지혜로운 몬스터는 사람이 멋대로 다루기 쉽지 않은 것이다·
지금 같은 격구 경기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리폰처럼 영리한 몬스터는 지금 일어나는 게 목숨을 건 싸움이 아닌 그냥 사람들이 정해놓은 장난이라는 걸 곧장 알아차렸다·
‘덩치를 보니 성체 같군· 그렇다면 멋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더 높다·’
다 자란 그리폰은 훨씬 더 영리한 만큼 장난을 알아차리는 속도도 빨랐다·
하다각이 잘 버티기만 한다면 금세 싫증을 내고 딴청을 피울 터·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만큼 쓸데없는 장난에 자신의 긍지를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 게 그리폰이었다·
-그리폰이 묘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명예로운 그랑덴 시 여러분들에게 바치는 묘기입니다!
-와아아아아아!
“묘기까지? 저런 안일한 짓을 하다니··· 역시 아직 학생들인가·”
하다각은 상대에게 동정을 보냈다·
경기 전까지 쉬게 해줘도 모자랄 판에 저렇게 묘기를 부리고 있다니·
저러면 그리폰이 더더욱 빨리 싫증낼 텐데!
* * *
“워다나즈· 그리폰은 쉬게 해도 돼·”
“예? 어째서입니까?”
“그리폰은 똑똑해서 한 번에 성가신 일들을 너무 많이 시키면 못 들은 척 하잖냐·”
“···그랬습니까!?”
이한은 깜짝 놀라서 폰리그를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등에 탄 주인 때문에 잔뜩 신났던 폰리그는 황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부리를 딱딱대며 학생들을 노려보았다·
어디서 이간질을!
“봐봐· 벌써 화났잖냐·”
“어··· 그런데 폰리그는 저한테 화를 내거나 말을 안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만·”
주인이 편을 들어주자 폰리그가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아직까지는 괜찮았지만 누구에게나 한계가 있는 법이지· 워다나즈· 다른 동물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알면서 그리폰에 대해서는 조금 실수가 있구나·”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직접 돌보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책을 안 보게 되더군요·”
이한은 반성했다·
그리폰하고 친해져서 알 만큼 알았다고 방심한 탓에 실수한 것이다·
대화를 듣고 있던 폰리그는 당장에라도 난동을 부리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폰리그의 높은 지성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난동을 부리는 순간 저 사악하고 비열하고 치졸한 마법사들이 ‘봐라! 그리폰은 저런다니까!’라고 할 걸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폰리그가 할 수 있는 건 저 야비한 모욕을 참고 인내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르르르르륵···
부리 속에서 살벌한 소리가 그르렁대며 흘러나오자 이한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폰리그· 혹시 나가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말해도 돼· 미친 선배의 욕심 때문에 네가 억지로 뛸 필요는 없어· 바실이도 있고·”
-네?!?!
그러나 폰리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어서 경기를 진행해달라는 듯 바닥을 세게 두드렸다·
···고귀한 피에 맹세코 앞을 막는 모든 걸 부숴버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