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6화
앙라고한테 물어봤자 쓸데없는 소리만 돌아올 게 분명한 상황· 지젤은 괜한 시간 낭비를 하는 대신 총책임자에게 물었다·
-워다나즈· 네가 애들 돌보고 있는 거 아니었어? 알파 저 자식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누가 누굴 돌봐?! 그냥 같이 다니는 거지!
앙라고는 발끈했다·
물론 이번 외출에서 워다나즈가 탈출시켜주고 적을 해치워주고 학생들을 찾아서 모아주고 비밀 숙소를 마련해주고 금화까지 벌어서 나눠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같이 돌아다닌 거지 워다나즈가 돌봐준 게 아니었다·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아닌가·
-솔직히 돌봐준 거 맞지· 양심 없는 새끼야·
-제생각에도돌봐준게맞습니다·사람이어떻게저렇게양심이없는소리를할수있는건지어이가없습니다·
-제가 같이 나가지는 않았습니다만 평소 행실을 보면 돌봐준 게 맞지 않나 싶은데요···
파수꾼 클럽과 달리 에인로가드 2학년 학생들은 누가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
이한이나 지젤 같은 사람들은 글씨체를 보고서 누군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지만 앙라고는 그러지 못했다·
-누 누구야? 달카드 자식이 혼자서 필체 바꿔 쓰는 거 아니야?
-아산은 여기 있지도 않아· 앙라고· 그보다 진짜 격구 경기 보려고 탈주한 거냐?
이한의 질문에 앙라고는 대답이 없었다· 지젤은 깊게 탄식했다·
-나간다고 까불 때 허튼짓 못하게 다리를 부러뜨렸어야 했는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워다나즈!?
-난 모라디야· 이 새끼야·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모라디?
-뭘 심해· 너 이번 학기에 <치유의 아뮬렛> 완성한다면서· 징벌방에서 완성할 생각이냐?
-어·
-···워다나즈· 저 자식 다리 좀 부러뜨려줄 수 있나?
-말했듯이 탈주한 상황이라서 힘들어· 내 앞에 없거든·
-아 아니· 난 진심이라니까!!
앙라고는 진지하게 항변했다·
탈주 후 징벌방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거기서 열심히 마법을 연습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한과 지젤은 회의적이었다·
-징벌방이 딱히 마법 학습에 좋은 곳은 아닌데· 특히 앙라고의 경우에는 더더욱·
-탑에 있을 때도 혼자서 안 하는 자식이 뭘 하겠다고?
-제가보기에도저건정말터무니없는생각같습니다···
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한테도 공격받자 앙라고는 결국 포기하고 외쳤다·
-다 필요 없어! 그리고 이미 탈주한 상황이거든· 격구는 보고 들어갈 거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순 없어·
-그러시던가· 네 물건하고 상자에 누가 불 질렀어도 놀라지 말고·
-···아··· 안 통해· 그런 협박은·
-혹시 모라디· 태우는 대신 나 주면 안 되나?
-그럴까·
-워다나즈! 야! 진짜 이러기야?!
-앙라고· 지금이라도 돌아와라· 그리고 격구 경기 별로 재미도 없을 거야· 나오는 선수도 시시하고·
-워다나즈· 아무리 네가 이번에 탈출시켜줬다지만···
-적도 해치워줬지·
-학생들 찾아서 한 곳에 모아주기도 했고·
-숙소도 찾아주고 수입원도 만들어줬잖아·
-···어쨌든 그런 음해는 통하지 않는다! 내 눈으로 에인로가드 격구 클럽의 위용을 보고야 말 테니까! 다들 나중에 보자! 난 이만 간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앙라고는 사라졌다· 정말 아티팩트를 덮은 모양이었다·
-앙라고· 일단 격구 경기에 나가는 게 나다· 격구 클럽 상태가 별로 안 좋아· 굳이 졸전을 보러 올 이유가··· 앙라고? 진짜 갔냐?
-간 것 같은데· 아티팩트를 이미 주머니에 넣었어·
-살코· 너도 격구를 좋아했었나? 앙라고와 같이 탈주할 줄은 몰랐는데·
-경기장을 직접 보고 싶었거든·
-과연· 그런 거라면 납득이 가는군· 징벌방에 갈 만한 가치가 있으면 좋겠다· 나중에 사식이나 넣어줄게·
-고맙다· 워다나즈·
‘워다나즈가 격구 클럽 주전으로 나가는 게 이상한 건 나밖에 없나?’
지젤은 학교 안에서 혼란스러워했다·
밖에서 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길래 다들 넘어간단 말인가?
* * *
그르르릉!
컹커커컹컹!
께에에에엑!
평소에는 듣기 힘든 복잡하고 다양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그 울음소리에 그랑덴 시 시민들은 도망치거나 비명을 지르는 대신 기쁘게 웃었다·
“곧 격구 경기로군!”
“혹시 저 울음소리 그리폰인가?! 설마 그리폰이 나오는 경기가 있나?!”
“그럴 리가 있나· 아마 독수리 계열 몬스터겠지· 그리폰이 무슨 와이번도 아니고·”
규모 있는 격구 경기가 있기 전에는 으레 저렇게 다양한 울음소리가 주변을 꽉 채우는 것이다·
저런 울음소리가 나오지 않고 말 울음소리만 들린다면 오히려 평범하고 시시한 격구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오· 또 시작이군· 저 시끄러운 짐승들이 뭐가 좋다고·”
“아! 제국은 타락했도다· 이들은 빵과 격구 이외에는 어느 것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몇몇 시민들은 격구 경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흐름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격구 경기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사람과 사람이 목숨을 걸고 맞붙는 경기로 시작했지만 좀 더 박진감 있는 싸움을 위해 사람과 몬스터가 목숨을 걸고 맞붙는 경기로 변했고 결국 사람이 몬스터를 타고 맞붙는 지금의 형태로 변하게 된 겁니다·”
“····”
속성으로 계속해서 교육을 받고 있던 이한은 격구의 역사까지 듣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것까지는 외울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격구의 규칙은 지역마다 또 상황마다 다르지요· 가장 거대한 격구 경기는 41년 전에 있었던 동부 대격구였습니다· 도시 대 도시 단위로 붙었던 이 격구는 서로의 도시에 골대를 두고 수백 명 단위로 맞붙었습니다· 백 명 넘게 뼈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깨진 이 경기는 결국 공이 사라져서 무승부로···”
“혹시 즉시 쓸 수 있는 편법 같은 건 없습니까?”
“···그것부터 설명해드릴까요?”
아리언은 설마 싶은 마음으로 물었다·
그래도 워다나즈 가문 출신인데 편법이나 속임수 같은 걸 원하는 건···
“예!”
‘맞구나!’
아리언은 상대의 마음을 지레짐작한 걸 깊이 반성하며 다른 책을 꺼냈다· <99가지 격구 속임수>였다·
“원래 어깨 위로 치거나 마법 마력을 이용한 무기술 같은 건 금지입니다만 심판에게 들키지 않는 방법이···”
“과연· 과연·”
이한은 아까보다 몇 배는 뛰어난 집중력으로 경청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뛰어난 정식 선수들을 순수한 기술만으로 상대하려면 편법밖에 답이 없을 것 같았다·
삐이이이익-
멀리서 날카로운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미리 약속한 에인로가드 격구 클럽의 집합 신호였다·
“앗· 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도련님!”
이한은 둘의 배웅을 받으며 서둘러 움직였다·
사실 이런 소리나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에인로가드 격구 클럽은 찾기 쉬웠다·
에인로가드에서 가장 시끄럽고 요란스러운 일행을 찾으면 됐으니까·
마법 걸린 축소 우리나 거대 우리를 수레 뒤에 빼곡히 채운 뒤 각종 짐승의 털과 깃털을 장식처럼 몸에 단 마법사들은 어디서든 눈에 띄었다·
“에인로가드 격구 선수들이다!”
“힘내라! 난 너희들을 응원한다! 그래도 좀 잘해봐라!”
“킴벨단은 어디 갔어? 그 놈이 그나마 사람 같이 격구하던데?”
“킴벨단은 졸업했어· 에인로가드는 마법학교잖나·”
“아 안 돼! 그 놈 없으면 사람이 없다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걱정이나 야유 최근 왜 이렇게 못하냐는 외침이 많았다·
시끄러운 인파 사이를 뚫고 이한은 클럽 선배들에게 합류했다·
카르넬라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관중들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진지한 응원이 뭔지도 모르는 자식들 같으니··· 1 2년 못했다고 응원을 멈춰?”
‘당연한 것 아닌가?’
보통 몇 경기 지면 응원 안 할 것 같은데···
그래도 선배라고 이한은 일단 달랬다·
“진정하십시오· 선배님· 잘하면 다시 응원할 겁니다·”
“못해도 응원해야지! 누군 뭐 바보라서 가문 선수가 100패를 했는데 응원한 줄 알아?!”
‘격구 광인들 정말 짜증나는군·’
이한은 차라리 마법 광인을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둘 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마법에는 이한도 관심이 있었으니까·
“후배··· 난 너만 믿는다· 네가 킴벨단 선배를 능가하는 새 공격수 역할을 해줘야 해· 다른 선수들을 부숴버리고 밟아버려야 해· 눈동자만 봐도 오금이 떨리게 만들어야 해· 그림자만 봐도 두려워서···”
“근데 다른 2학년은 없습니까?”
이한은 주변을 둘러보고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외출한 학생들 중 2학년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어? 어·”
“···왜요?”
“보통 2학년은 쓸만한 탈것이 없기도 하고 경험이 부족하기도 하고··· 아! 후배· 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 같은 경우는 내가 직접 다른 사람들을 설득했거든·”
“···왜 그렇게까지···”
2학년 학생은 격구 클럽 경기에 출전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탈것도 탈것인데다가 아직 경험 부족한 후배를 굳이 내보내서 다치게 할 만큼 격구 클럽 학생들은 냉혹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카르넬라는 승리할 수만 있다면 해골 교장의 골통에도 격구채를 휘두를 수 있는 사람·
카르넬라에게 이한은 2학년 학생이 아니었다·
그리폰과 유니콘 바실리스크를 비롯해 정 안 되면 산맥파괴양이나 네 발로 걷는 거인(우기는 게 통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등등이 가능한 탁월한 공격수 유망주였다·
“그저··· 네 재능을 믿는 거지·”
‘정말 하나도 안 기쁘군·’
다른 선배였다면 살짝 감동받았을 테지만 카르넬라의 눈에는 욕심이 그득그득했다·
이한이 와이번한테 맞던 베헤모스한테 맞던 이기기만 하면 별로 신경 안 쓸 것 같았다·
“호르마시· 워다나즈 좀 그만 괴롭혀라·”
“페르세 선배· 전 한 번도 워다나즈를 괴롭힌 적이 없습니다· 워다나즈의 재능을 칭찬해주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선수가 부족하다지만 2학년 학생을 내보내는 건 좀 위험한 게 아닌가 싶은데···”
페르세는 여전히 좀 고민이 되었는지 이한을 한 번 보고 카르넬라를 한 번 본 뒤 다시 이한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후배 너라면 말려도 듣지 않겠지·”
“···예? 아니 한 번도 안 말리셨···”
뜬금없는 소리에 이한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속마음을 내뱉었다·
한 번도 안 말려놓고서 이제 와서 저런다니·
그러나 페르세는 이한의 말을 듣지 못하고 자기 할 말만 했다·
“여하튼 몸조심해라· 워다나즈· 카르넬라 빼고 아무도 너한테 정도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고 있으니까· 클럽 상황은 누구나 다 알고 있거든·”
현재 에인로가드 격구 클럽은 뛰어난 선수들의 이탈(졸업과 행방불명)과 탈것들의 도주 등 여러 악재로 약화된 상황·
이런 상황에서 급히 들어온 2학년 학생에게 모든 걸 맡길 만큼 회원들은 뻔뻔하지 않았다·
한 명을 제외하고·
“근데 카르넬라는 조심해라· 만약에 경기 지면 한동안 멀리하고·”
“····”
별 도움 안 되는 말에 이한은 고개를 조용히 흔들었다·
그리고는 <99가지 격구 속임수>를 꺼내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음··· 몰래 마법을 쓰는 방법은···’
이번 학기 동안 격구 클럽에서 배웠던 것들을 다시 복습하는 것보다는 이런 속임수가 더 효과적일 것 같았다·
“맞다· 워다나즈· 잊을 뻔했군·”
다시 탈것을 돌보러 가려던 페르세가 이한을 불렀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별 건 아니고· 가르시아 교수님이 널 찾으시던데· 격구 경기가 끝나면 꼭 자기한테 오라고 하시더군·”
이한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