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3화
‘에인로가드 마법사가 이래도 되나?’
아리언은 고민했다·
일단 정체는 안 들켰다·
투명화 마법에 변장 마법까지 건 상태였으니 상대가 누구인지는 짐작이 불가능하리라·
···너무 과격하게 행동해서 그렇지!
보통 에인로가드 마법사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아이템을 회수하고 당한 상대는 분통터져 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이렇게 두들겨 패고 갖고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워다나즈 가문의 도련님께서 다 생각하고 하신 일이겠지요 아마?”
결국 아리언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아리언이 노련한 상인이라 하더라도 에인로가드의 일에 관해서는 외부인이었다·
학생이 저렇게 행동하는 걸 보고 저래도 되는구나 할 수밖에·
‘진짜 괜찮은 게 맞나?’
아무르는 흥미로워했다·
아무르 또한 거친 규칙이 지배적인 야생의 땅 출신이었지만 도시는 조금 문화가 다르지 않은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하는 행동이 통쾌하긴 했다·
너무 통쾌해서 문제였지···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또 앞으로는 안 그러실 거잖습니까?”
“물론입니다· 절 믿어주십시오·”
이한은 자신을 도와주러 온 둘에게 단호히 약속했다·
애초에 이한은 폭력적인 수단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조용히 가지고 나가는 게 좋지 뭐하러 상대를 공격한단 말인가·
* * *
-스승님· 여기 고대 문자로 봉인해놨는데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번 한 번만 도와주는 거다· 이렇게 읊으면 된다· αρχαίος···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어떤 놈이 감히··· 컥!
-젠장!
도시 인근에 위치한 버려진 지하 감옥·
아주 비싼 돈을 들여서 만든 고대 문자 해석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마법 창고였지만 불운하게도 침입자에게는 고대의 존재가 옆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더 불운한 것은 어쩌다 한 번 확인하러 나온 주인이 침입자를 만났다는 점이었다·
-후· 이번에는 진짜 어떤 싸움도 없이 조용히 해결하자· ···바실리스크 어? 바실아· 있니?
-넵!
-그럼 부탁할···
-바··· 바실리스크가 안에 있다! 바실리스크가 안에 있어!
-···젠장!!
포목 상점 아래에 위치한 비밀 연금술 공방·
바실리스크의 속삭임으로만 접근 가능한 시약 금고는 새끼 바실리스크를 데리고 다니는 침입자에게 손쉽게 열렸다·
그리고 그 시약 금고의 주인은 바실리스크의 쉿쉿 소리를 듣고 놀라서 외쳤다가 침입자에게 제압당했다·
-···이건 정말 운이 없었을 뿐이다· 다음에는 다를 거야· 알겠지?
-그냥 힘으로 제압해서 털면 안 되는 거예요?
-안 돼! 그건 도둑 아니 위치 이동꾼으로서 불명예스러운 짓이라고·
새끼 바실리스크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참 이해 가지 않는 짓을 한다고·
그 뒤로도 이한은 의뢰에 남은 물품들을 회수하기 위해 움직였고 또 성공했다·
걸린 시간만 따지고 보면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였다· 다른 클럽 선배들이 봤다면 박수를 쳤을 것이다·
···문제는 관련된 모든 주인들을 때려눕히고 나왔다는 점이었다·
“······”
“······”
“······”
세 명은 묵묵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결국 견디지 못한 아리언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이렇게 된 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이렇게 빨리 다 모으셨으니 대단한 일입니다!”
“···저는 의뢰를 맡을 능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조용히 처리해야 했는데···”
“하하· 아니오· 한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릴 놈들을 때려준 게 뭐 그리 잘못했다고·”
아무르는 이쯤 되자 오히려 살짝 신난 것 같았다·
처음 이야기했을 때는 마법사들의 세계가 잘 이해가 가지 않고 난해하게 느껴졌는데 보다 보니 생각보다 꽤 간단한 것 같았다·
못된 놈 찾아가서 얼굴에 주먹 한 방 갈긴 다음 사악한 물품 찾아오는 일 아닌가!
이렇게 보니 에인로가드 마법사들도 조금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걱정할 것 없소· 당한 놈들은 창피해서 어디 말도 못 할 테니까·”
-그거 들었나? 웬 마법사들이 그랑덴 시를 돌아다니고 있다는데? 사악한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놈들을 습격해서 거꾸로 매달아 놓나봐· 우압 그 놈이 아주 처절하게 당했다는군·
-아· 나도 들었어· 그렇게 사람들을 괴롭히더니 아주 제대로 당했군· 내가 듣기로는 운하에 거꾸로 처박아놨다던데?
-내가 듣기로는 얼굴에 악인의 낙인을 새겼다고···
“······”
“······”
“······”
이한은 고개를 더욱 푹 숙였다·
* * *
“이런 개자식이!”
햄스터 수인 세비우스는 분노의 찬 고함을 내질렀다·
옆에 있던 세비우스의 외부 동료이자 도둑 길드 길드원인 기니피그 수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러지?”
“버두스 이 개자식! 또 귀찮아서 정보를 대충 줬어!”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준비하던 도중 세비우스는 충격적인 정보를 얻었다·
버두스 교수가 구매한 <아센의 편광경>을 훔친 우압이 아티팩트를 보호하기 위해 <아센의 영혼 비명>을 추가로 구매한 것이다·
이런 사악한 방어 마법이 공방에 준비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비교적 쉽다고 생각해서 후배를 줬는데!’
“버두스가 누군데?”
“교수!”
“···미친 놈 아니야? 교수인데 학생한테 정보를 그렇게 줘도 돼?”
기니피그 수인은 당황스러워했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원하는 게 교수 아닌가·
그런데 정보를 귀찮아서 대충 준다니·
기니피그 수인이 알고 있는 스승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러니까 개자식이지· 후배를 찾아야겠다· 따라와·”
“별 미친 놈 때문에 진도만 느려지겠군· 나중에라도 이 약을 타서 먹이라고· 이 약 한 방이면 일주일은 앓아누워야 할 걸·”
“······”
세비우스는 속으로 살짝 고민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 마법사는 경계심이 생각보다 강해서 독은 안 통한다·”
“나 원 참· 마법사들이란· 에인로가드는 제국 제일의 마법학교인데 왜 저런 미친놈을 교수로 두는 거지?”
세비우스는 에인로가드의 자세한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금제 때문에 대부분은 말하지도 못할 테니까·
-누가 우압을 거꾸로 매달아놨대!
-뭐?! 정말인가?
“···잠깐·”
달려가던 세비우스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에 멈칫했다·
“방금 우압이라고 하지 않았나?”
“못 들었는데· 뭐라고 했길래?”
“우압을 누군가 거꾸로 매달아놨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방어 마법도 추가로 샀다면서? 누가 그런 놈을 거꾸로 매달아놔?”
“그건··· 그렇지· 교장 선생님도 아니고···”
“교장 선생님은 왜 나오는데?”
“···아무것도 아냐·”
세비우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초조하고 급한 마음에 헛것을 들은 모양이었다·
“다시 가···”
-야! 우압을 누가 운하에 처박아놨다는데?!
-그걸 왜 지금 말해!? 빨리 보러 가자!
“!!!”
이건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세비우스는 경악하며 사람들을 따라갔다· 벌써 운하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저기 우압이다!”
“저 미친 드워프 놈 일꾼들을 그렇게 괴롭히더니 천벌을 받는군!”
-저리 꺼지지 못해!
“우압 이 놈! 계속 그렇게 굴면 또 천벌이 찾아올 거다!”
-···히익!
상대는 탐욕스럽고 사악한 드워프라고 들었는데 지금 꼴을 보니 전혀 연상할 수가 없었다·
누가 말만 하면 잔뜩 겁먹는 꼴이 제대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혹시 세비우스· 네 후배가 한 일 아닌가?”
기니피그 수인은 논리적인 추리를 했다·
에인로가드 마법사는 강하다·
우압은 에인로가드 마법사의 물건을 건드렸다·
그리고 우압은 매우 겁을 먹고 있다·
“···아냐· 후배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다· 저런 식으로 과시하고 겁주는 건 교장 선생님이나 하는 짓이지·”
“하긴· 추가 마법도 샀다고 했지· 혹시 그 버두스 교수란 사람이 제자를 위해서 도와주러 나온 거 아냐?”
“절대 아냐·”
“···그 그래·”
“움직이자· 일단 우압의 공방을 확인하고 후배를 찾아봐야겠어·”
-여러분! 여러분! 바르단 저택이 털렸답니다!
-뭐라?! 바르단 저택이?!
-오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린벨 가문과 연관이 있는 방계 귀족 바르단의 저택이 털렸다는 이야기는 운하 앞에 모인 그랑덴 시 사람들을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다·
아무리 바르단이 탐욕스럽게 여러 사람들을 착취하고 협박해서 보물을 뜯어냈다지만 습격을 당할 줄이야?
-저기 폭주한 정령이 저택을 부수고 있다!
-···다들 지금이다! 바르단에게 뺏긴 원한을 풀자!
“······”
공방 확인하기도 전에 저택으로 따라온 세비우스는 반쯤 박살난 저택의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누가 소환했는지 웬 폭주한 물의 정령이 저택을 박살내고 있었고 분노한 사람들은 그 틈을 타 안의 보물들을 챙겨갔다·
“이것도 네 후배가 한 일은 아니지?”
기니피그 수인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아··· 아닐 거다· 아마··· 후배가 아무리 화가 났어도 정령을 소환해서 폭주시키진···”
‘아까는 분명 <아마>라고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기니피그 수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 후로도 곳곳에서 그랑덴 시의 악인들이 습격 받았다는 소문이 빠르게 추가되었다·
세비우스는 결국 클럽 회원들을 소집했다·
“너희 중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참가한 사람이 있나?”
“어 후배가 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 난 감탄 중이었는데·”
“나도 세비우스 네가 시킨 줄 알았지·”
“무슨 헛소리냐!”
세비우스는 벌컥 화를 냈다·
고작 2학년 학생한테 저렇게 위험한 방식을 누가 추천한단 말인가?
위치 이동이 조용하고 은밀하게 이뤄져야 하는 건 그게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상대를 두들겨 패고 뺏을 수 있으면 훔칠 필요도 없었다·
“저렇게 겁 줘서 앞으로 쉽게 못 훔치게 하려고 하는 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능력 있는 후배 들어온 김에 써먹나보다 생각했지·”
“···아니야!”
여관 위층에서 <월간 마법 교육>을 읽고 있다가 내려온 가르시아 교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교장 선생님 잘못이야·’
다른 건 몰라도 운하에 처박아놓고 저택을 부숴버리는 건 해골 교장한테 배운 게 분명했다·
저렇게 선량한 이한 학생이 어디서 저걸 배웠겠는가·
* * *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한이 포기하고 체념하자 두 못된 외부인들은 잘 생각했다고 박수를 쳤다·
이미 이렇게 된 거 어쩌겠는가·
“도련님·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빨리 일을 끝내신 겁니다· 대단한 위업이지요·”
“선량한 시민을 운하에 처박았다고 소문 돌고 있습니다만···”
“안 선량합니다· 자· 그보다 연극 관람에 참가하고 싶으시다고요?”
“예·”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관람하는?”
“맞습니다·”
반쯤 포기한 이한은 자신의 이름과 신분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 만족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다음 일인 연극 클럽 탈주를 고민할 시간이었다·
다른 강도도둑위치이동 의뢰는 다 끝냈으니···
“어렵지 않습니다· 저와 친분이 있는 몇몇 분들과 같이 가시면 될 테니까요· 앗· 한 가지 문제가···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괜찮을 겁니다·”
“그게 뭡니까?”
“정말 별 거 아닙니다· 아무래도 이런 연극 관람은 사교 모임이기도 해서 서로 대화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제국의 연극에 대해 잘 모르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도련님께서는 워다나즈 가문 출신이시니 괜찮···”
“······”
살면서 절대 쓸 곳 없을 거라고 굳게 믿은 지식이 발목을 잡자 이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