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화
“그리고 샤르칸도 그럴 녀석은 아니야·”
‘그럼 전 그런 녀석이란 거예요?’
새끼 바실리스크는 속으로 항의했다·
자신도 충분히 성숙하고 어른스러웠다· 굳이 따지자면 조우린이 가장 유치했다·
“하긴· 언데드 소환수가 안 불렀다고 토라질 리는 없지?”
가이난도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친구의 말에 동의했다·
다른 분야와 달리 흑마법은 가이난도도 알고 있는 게 많았다·
기본적으로 언데드 소환수들은 주인이 적게 부른다고 해서 서운해 하거나 토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한 네 말이 맞아· 하긴 다 똑같겠지? 다른 차원에서 카드 게임 하고 있는데 마법사가 멋대로 부르는 걸 누가 좋아하겠어· 안 부르는 걸 오히려 더 좋아하지· 정령들도 그럴 거야·”
“아냐· 정령들은 주기적으로 불러주는 게 좋아·”
“······”
가이난도는 시무룩해졌다·
정령과 계약한 마법사들은 친밀도를 생각보다 중요시하는 만큼 주기적으로 불러서 교감을 나누곤 했다·
이한도 당장 샤르칸은 소환 안 하더라도 화염 참새 정령이나 냉기 다람쥐 정령, 암흑 공 정령은 주기적으로 개인실에서 소환하곤 했으니(물론 정령들이 썩 좋아하진 않았다)···
“힝· 내 언데드도 내가 부르는 거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언젠가 친해질 거야·”
‘아니면 힘으로 제압하거나·’
이한이 보기에 가이난도가 언데드와 친해지는 것보다 흑마법을 익혀서 제압하는 게 더 쉬워보이긴 했다·
언데드 소환술은 정령 소환술처럼 친밀함으로 굴러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보다 토라진 게 아니라면 뭐지?’
이한은 맹약이 걸린 샤르칸의 뼛조각을 매만지며 다시 소환을 시도해보았지만 정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말 만약에 토라진 거라면 거부반응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건 조금 당황스러웠다·
“콜록,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 교수님!”
마침 흑마법 학파의 모르툼 교수가 마른기침을 해대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잘 됐다 싶어서 이한은 질문했다·
“여쭤볼 게 있습니다·”
“물어볼 게 있다고?”
언제나 병든 기색이 완연한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했다·
가이난도나 이미르그, 라파드엘이면 모를까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질문하는 건 꽤 드문 일이었다·
“꽤 어려운 문제인가보군·”
“그런 건 아닙니다·”
“그래? 말해보게·”
제자가 아니라고 하자 모르툼 교수는 생각을 바꿨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정말 별 문제 아닌 모양이었다·
“샤르칸이 소환이 안 됩니다·”
“···콜록! 콜록콜록콜록!!!”
모르툼 교수는 미친듯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사레라도 들린 것 같았다·
이한은 당황해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콜록···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했지 않나!”
“아, 아니· 그냥 사소한 문제인 줄 알았는데요?”
기침을 해대면서도 모르툼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샤르칸이 소환이 안 되는 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원래 샤르칸은 바위 산맥과 표범 사이에서 태어난, 표범들의 숭배를 받는 강력한 몬스터였다·
이렇게 생전에 강력했던 몬스터를 언데드로 부리는 건 당연히 위험했다·
강한 육신에는 강한 존재가 강림하기 마련이었고 그 존재가 언데드계에 속한 존재라면 더더욱 그랬으니까·
아무리 모르툼 교수가 에인로가드의 교수라고 하더라도 고작 1학년 학생한테 일부러 위험천만한 언데드 소환수를 선물하진 않았다· 충분히 안전장치를 해놓고 선물했다·
“······”
이한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게 있었나?’
딱히 안전장치를 느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샤르칸은 처음부터 파괴력이 있었던 언데드 소환수였다· 이한이 굴복시키거나 설득하지 못했다면 언제든 덤벼들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안전장치라는 게 저를 공격 못 하는 그런 거였습니까? 샤르칸이 좀 친근하게 굴긴 했는데···”
“콜록·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힘을 약화시켜놓은 거지·”
“······”
이한의 눈빛이 조금 차가워졌다·
혹시 ‘안전장치’의 뜻을 모르시나?
‘저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시다니· 저러니까 기침이 안 멈추지·’
공격을 못하게 금제를 걸었어야지 무슨 힘 좀 빼놨다고 안전장치란 말인가!
“그래서 그 안전장치로··· 힘을 약화시켜놓은 게 뭡니까?”
“콜록· 샤르칸은 분신이다·”
“?”
“본체는 강력한 언데드계의 거물이지· 그 거물의 힘이 약해졌을 때 분신을 훔쳐서 갖고 나온 거다·”
“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범한 샤르칸의 혈통에 이한은 경악했다·
누구의 뭘 훔쳐서 갖고 나왔다고?
꼭 해골 교장이 아니더라도 분신으로 쪼개지는 성질을 갖고 있는 존재는 제법 많았다·
당장 히드라만 봐도 아홉 개의 머리가 각자 따로 판단을 하지 않던가·
이런 히드라가 강해지거나 분신화의 능력을 가진다면 마치 쪼개지듯 분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렇게 나눠진 존재는 원래 존재보다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긴 했다·
···그렇다고 그걸 훔쳐서 갖고 나오면 안 됐지만!
“아니·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상대가 약해졌다고 그런 안일한 도둑질을 하시다니!”
경악한 이한은 평정심을 잃고 교수를 지적했다·
상대가 약해졌다고 대놓고 도둑질을 하다니·
위치 이동 클럽 회원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멍청한 실수였다·
악마 대공이 조금 약해졌다고 상대의 저택을 털어버리면 나중에 회복했을 때 어떤 보복이 돌아오겠는가·
심지어 그냥 물건이나 보물도 아닌 본인의 분신이었다·
“콜록· 끝까지 들어라· 무작정 도둑질을 한 게 아니니까· 훔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와 협상을 했다·”
“제가 알고 있는 도둑질과는 개념이 다른 것 같습니다만···”
모르툼 교수는 콜록대며 마저 설명했다·
전에 언데드계를 여행하던 교수는 우연한 기회로 강력한 존재를 대면하게 되었다·
그 존재는 연기를 토해내는 흑요석 거울들을 반석 삼아 만들어진, 끊임없이 형태가 변화하는 궁전 속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집중해서 응시하면 거대한 표범 같은 형상이 얼핏 위로 드러났다·
상대의 강력함을 알아차린 모르툼 교수는 바로 궁전에 침입해 보물을 획득할 준비부터 했다·
“······”
이한은 속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꾹 참았다·
“콜록· 상대가 싸움 때문에 약화되었단 걸 느꼈기 때문이지· 원래 다른 차원의 터줏대감에게 먼저 무리해서 시비를 걸진 않는다·”
‘상대가 약화되었어도 그렇게 바로 털 준비를 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강약약강의 모르툼 교수는 다른 차원에서 보물을 얻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
그리고 당연히 상대도 그 기색을 알아차렸다·
궁전의 기세와 자신의 칭호를 들었음에도 마법사가 들어오려고 하자 한 발 물러서서 협상을 제안했다·
-마법사여· 죽음과 어둠을 다스리는 맹수의 궁전을 침입하지 말지어다· 분신 중 하나를 선물할지어니, 이 분신은 강력한 언데드가 되리라·
-콜록· 그래도 들어가겠다면?
-그렇다면 파멸할지어다·
약화된 와중에도 느껴지는 상대의 강력함에, 모르툼 교수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물러서는 걸 선택했다·
강력한 언데드의 분신이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콜록· 정말 쩨쩨하게 주더군· 자아도 없는 파편 수준의 분신을·”
모르툼 교수는 아직도 손해를 봤다고 생각했는지 기침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불평을 토해냈다·
“계속 이야기해주십시오· 그 분신이 어떻게 된 겁니까?”
“아· 그거 말이냐·”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강력한 언데드에게 받아서 갖고 나온 분신은 분명 비범한 힘이 있었지만 자아도 없고 이성도 없는, 갓 태어난 아기 같은 분신에 불과했다·
이런 건 모르툼 교수가 다스리고 관리하기에는 타산이 별로 맞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교수는 그 분신을 샤르칸의 유해에 고착시켜서 언데드 몬스터로 재탄생시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새로 태어난 언데드 몬스터 샤르칸은 신입생을 든든하게 지켜주며 갖은 궂은일들을 해냈다·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최대한 침착하게 듣고 있던 이한은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손을 들었다·
샤르칸이 사실 평범한 언데드 몬스터가 아닌, 비범한 언데드 존재의 핏줄을 갖고 있다는 것까지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 교수님이 말하신 안전장치가 뭡니까?”
“콜록· 말했잖냐· 힘을 약화시켜놨다고· 파편 수준의 분신이니 별로 위험하지 않아·”
“······”
설마 했는데 정말 저게 안전장치였다·
이한은 나중에 모르툼 교수의 뒤에서 마법을 갈긴 다음에 ‘이 정도는 사실 안 아프시죠? 하하’라고 외쳐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자아도 없는 파편 수준의 분신이라고 해도 강력한 몬스터의 육신을 가졌으면 충분히 위협적인 것이다·
실제로 샤르칸은 엄청나게 잘 싸우지 않았던가·
이한이 제압하거나 다루지 못했다면 그 공격이 이한 본인에게도 날아올 수 있었는데···!
‘어쩐지 하는 짓이 조금 유치하긴 했지·’
본체에서 분리된, 갓 태어난 분신이라면 설명이 됐다· 하는 짓이 새끼고양이나 강아지 같은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런데 왜 소환이 안 되는 겁니까?”
“콜록· 이유야 여러 가지지· 하지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본체가 힘을 회복했을 가능성이군·”
“!”
이한은 모르툼 교수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원래 본체가 불리한 상황에서 분신을 내준 것이니, 힘을 회복하고 유리한 상황이 됐다면 분신을 회수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기껏 도둑질하러 가셔놓고 이런 손해 보는 거래를 하신 겁니까? 고작 1년 같이 했는데!”
“콜록· 이상하긴 하군· 백 년은 족히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모르툼 교수도 마법사인 만큼 거래의 허점은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상대의 분신이니만큼 상대가 부상을 회복하고 힘을 되찾으면 당연히 회수하리라·
하지만 교수가 봤을 때 그 기간은 백 년 정도는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어떻게 1년 정도로 단축시켰지?
“이상하군· 이상해· 콜록· 혹시 샤르칸이 마력을 따로 흡수해가진 않았겠지?”
“예?”
“콜록· 분신이 마력을 흡수하면 본체도 마력을 흡수했을 테고, 그럼 힘을 회복하는 것도···”
말하던 모르툼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허황된 계산이었다·
언데드계에서 만났을 때 느꼈던 강함을 생각해보면, 부상 회복에 필요한 마력도 어렴풋이 가늠이 갔다·
아무리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마력이 많아도 그런 양의 마력을 흡수당하는데 멀쩡하기도 힘들고 눈치채지 못하기는 더더욱 힘들···
“······”
이한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모르툼 교수는 그 모습에 오늘 가장 크게 경악했다·
* * *
“콜록, 마력을 그렇게 펑펑 낭비하다니!”
“애초에 교수님께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주셨잖습니까! 그런 녀석이었으면 떼놨었겠죠!”
이한은 교칙에 에인로가드 교수들의 설명을 강제하고 싶었다·
대체 왜 아무 말도 없이 위험천만한 물건들을 제자한테 선물한단 말인가?
생각해보니 이 지팡이도 사악하고 난폭한 존재가 안에서 잠들어있었다·
‘혹시 학교에서 준 누더기에도 악마가 잠들어 있는 건 아니겠지·’
하품을 하며 걸어 나오던 디레트는 제자와 교수가 큰소리로 다투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흑마법 학파가 장점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 중에 하나가 화목함이었던 것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선배! 교수님 때문에 죽을 뻔했습니다!”
“콜록, 선물해줬더니 무슨 음해를···”
“잠깐· 침착하게 설명해봐·”
디레트는 후배를 진정시키고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설명을 들을수록 디레트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어, 그러니까 일상생활을 하면서 언데드계의 강력한 존재를 회복시켜줬다는 거지?”
“모두 다 교수님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