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화
-습격이다!
폭풍의 강림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악마들이었다·
군세 후방에서 신선한 피와 영혼만을 기다리던 악마들은 갑작스러운 마법의 폭풍에 경악했다·
-감히!
에사도지콰 휘하에서 복무하는 수석 악마 대장장이이자 공성관 직위를 맡고 있는, 머리 아홉 개 달린 구두(九頭)의 악마가 분노의 함성을 터뜨렸다·
그 함성은 단순히 분노의 표출로 끝나지 않았다· 악마들이 마련한 지옥의 공성 장치들이 화력을 내뿜었다·
——–!
구리 대포 안에 갇힌 필멸자의 영혼들이 울부짖더니 한 줄기 에너지로 화했다· 공간을 찢어버리고 대지를 불태워버리는 힘에 젊은 해골 교장은 점멸로 회피하며 경멸을 표했다·
“악마들이여· 이 악업에 대한 대가는 너희 종족이 영원히 치르게 될 것이다·”
-필멸자 주제에 헛소리가 과분하구나· 너 마법사여! 너는 종족이 아니라 나에게도 보복할 힘이 없지 않느냐?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젊은 해골 교장은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손가락 위에 작은 물방울이 떠올랐다· 완전한 구체의 형태를 가진 물방울이었다·
어떤 악마도 방금 보인 마법에 대해 짐작하거나 예측하지 못했다·
고작 물방울 하나를 손가락 위에 띄웠는데 그게 무슨···
쾅!
의아함이 끝나기 전에 충격이 찾아왔다· 젊은 해골 교장의 손을 떠난 물방울은 사람의 인지를 뛰어넘는 속도로 가속했다·
원뿔형 충격파와 함께 청백색의 빛이 사방으로 난반사되었다· 그러나 악마들은 물방울이 일으키는 현상을 관찰할 여유가 없었다·
물방울이 그들의 공성 장치들을 사정없이 찢어발기고 있었던 것이다·
방금까지 필멸자의 영혼을 가두던 구리 대포와 전투마차, 공성추가 순식간에 불길로 뒤덮였다· 물방울이 한 번 닿을 때마다 악마들의 피와 땀으로 제련된 거대한 무기들은 폭발하고 무너져 내렸다·
이한이 물을 압축하고 회전 속성을 추가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저 물방울 하나에는 적어도 수십 개가 넘는 속성과 개념, 사상이 담겨 있었다·
절망한 악마들이 반격하려고 했지만 이미 젊은 해골 교장은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난 뒤였다· 구두의 악마가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마법사! 붙잡히면 네놈의 심장과 눈만 남겨놓겠다· 너는 영원히 매달려서 고통 받게 되리라!
그러나 이한이 보기에 싸움은 이미 머리 아홉 개 달린 악마의 패배였다·
주변에 있던 거대 병기들은 다 박살났고 악마 혼자서 발악하듯 외치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젊은 해골 교장은 완전히 무시한 채 다른 곳을 부수고 있었다· 분신이 강림한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또 너냐, 요 빌어먹을 왕자 놈!
후방이 눈 깜박하는 사이에 녹아내리자 에사도지콰가 고함을 내질렀다·
이미 젊은 해골 교장과 악연이 몇 번 있었는지 마법의 여파만으로 즉시 정체를 알아차렸다·
네놈을 타락시키지 못한 게 이 에사도지콰의 가장 큰 실수다· 모두 왕자 놈을 포위해라! 다른 쓰레기들은 놓쳐도 좋다· 하지만 왕자 놈을 놓친다면 너희 모두를 잡아먹겠다!
미노타우로스를 연상시키는 겉모습을 가진 악마는 눈에서 영원히 타오르는 불을 쏟아내며 호령했다·
그 모습에 젊은 해골 교장은 분신들을 일제히 회수했다· 에사도지콰와 그 부하들을 상대하려면 분신들에게 힘을 낭비할 수 없었다·
“이 사악한 악마 놈들!”
“!”
젊은 해골 교장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크게 놀랐다·
분명 허공에 있으라고 했던, 먼 미래 차원에서 온 제자들이 전장에 참가한 것이다·
“이한 학생! 절대 앞으로 나오면 안 돼요· 알겠죠? 절대 절대 앞으로 나오면 안 돼요!”
“알겠으니까 앞에 보십시오! 앞!”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의 등을 퍽퍽 치며 앞을 가리켰다·
지금 가르시아 교수가 제자 걱정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볼라디 교수는 암흑의 칼날을 허공에서 불러온 뒤 악마들을 좌르륵 썰어댔다·
“외인은 여기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니···”
가르시아 교수는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웠다· 이런 상황에서 집중하려면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볼라디 교수는 공격·
가르시아 교수는 방어·
그리고 이한은···
“교수님! 마력 가져가십시오!”
“이한 학생· 큰 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
가르시아 교수의 말에 이한은 의아해했다·
“여기 들을 사람 악마들밖에 없습니다만?”
“···그래도요!”
교수로서의 체면은 악마들 앞에서도 제자 마력을 흡수하고 있다는 걸 차마 밝히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참 악마들을 썰고 돌아온 볼라디 교수는 제자한테 마력을 보충받은 뒤 다시 나가서 또 썰기 시작했다·
공격, 방어, 회복의 3요소가 완벽히 어우러진 이한 일행은 혼란스러운 악마들의 전장 내에서도 빠르게 자리 잡았다· 그 모습에 젊은 해골 교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오셨습니까? 분명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요·”
“악마들이 이렇게 덤비는데 어떻게 지켜보고만 있습니까! 저는 몰라도 여기 두 교수님은 충분히 전력이 됩니다·”
“이, 이한 학생· 저는 그다지 자신이···”
가르시아 교수는 제자가 너무 자신을 고평가해주는 것 같자 당황했다·
어디까지나 배그렉 교수를 믿고 내려온 거지 본인의 전투 능력은 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파지지지직!
그 사이 가르시아 교수가 펼친 거대 결계를 뚫고 들어오려던 악마가 그대로 가루로 변해버렸다·
그걸 본 젊은 해골 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전장을 돌아다닐 자격이 있었다·
“다들 저 같은 모자란 스승을 걱정해줘서 고맙습니다·”
“진짜 제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십시오·”
이한이 질색하자 가르시아 교수도 무심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여기 내려오기 전에도 이야기를 나누고 굳게 각오를 했지만, 그 각오도 젊은 해골 교장의 저런 감사하는 모습을 버티기는 힘들었다·
“···아니! 저 자식들이?!”
대화를 나누던 이한은 뒤늦게 변화를 알아차리고 경악했다·
악마들의 포위망이 풀린 틈을 타 도시의 마법귀족들과 하수인들이 도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인로가드에서도 악마가 나오면 같이 싸우는데!’
말도 안 되는 비겁함에 이한은 격노했다·
“고나달테스 님!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배그렉 교수님이 저 자들을 전부 쓸어버리실 겁니다!”
볼라디 교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모습은 많이 달랐지만 젊은 해골 교장은 그의 스승이었고, 스승을 배반하고 도망치는 적들을 추적하는 건 제자로서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젊은 해골 교장은 고개를 저었다·
“내버려두세요· 방해되지 않으니 오히려 좋습니다·”
도시의 마법귀족들에 대한 증오와는 별개로 그 하수인들도 여기에는 많았다·
젊은 해골 교장은 하찮은 보복 때문에 이들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왕자 놈· 설마 스스로를 희생해서 저 쓰레기들을 구해내겠다는 말도 안 되는 망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왕자와 악연이 많은 에사도지콰는 생각을 바꿨다·
지금 도망치는 도시의 마법사들이 혹시라도 상대가 계획한 바라면 그냥 놓고 봐줄 수가 없었다· 그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놈들을 추적해라! 끝까지 추적해서 보이는 모든 걸 죽여 버려!
“!”
젊은 해골 교장의 안색이 살짝 바뀌었다·
마법귀족들을 걱정하는 건 아니었다· 포위망에서 벗어난 이상 저들은 자기 목숨을 챙길 능력이 충분했다·
젊은 해골 교장이 걱정하는 건 도시 성문 근처의 사람들이었다·
마법귀족들이 생각을 바꾸고 성문 근처에서 요격을 시도한다면 상관없겠지만, 오만하고 이기적인 저들의 성격상 바로 성문을 통과해 도시의 가장 안전한 곳으로 잠시 피신할 게 분명했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성문 근처에는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법귀족들이 급히 통과한 상태에서 악마들이 도착할 테니···
생각을 마친 젊은 해골 교장은 즉시 반응했다· 분신이 만들어지더니 주변의 방해를 뚫고 누구보다 빠르게 성문 앞에 도착했다·
‘성문이!’
이한은 젊은 해골 교장이 뭘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지금 이 다급한 상황에서 남옥과 인어의 눈물을 사용해 성문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분신을 따로 만들어서!
“고나달테스 님, 집중하셔야 합니다!”
뒤쪽에서 몰려오는 악마들을 교수들과 함께 막으며 이한은 외쳤다·
사방에서 덤벼드는 악마들은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이한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가르시아 교수와 볼라디 교수가 어디서 마력을 자꾸 충전해오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감히 나 에사도지콰 앞에서 방심을 하다니· 왕자 놈· 오늘이 네 최후다!
에사도지콰도 젊은 해골 교장이 무리수를 뒀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회복하거나 여유를 부릴 시간을 주지 않고 곧바로 덤벼들었다· 핏빛 도끼가 주변의 마법들을 귀곡성과 함께 빨아들였다·
“고나달테스 님! 분신을 취소하시고 다음에 다시 작업하십시오!”
이한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젊은 해골 교장은 고개를 저었다·
“제자님·”
“예?”
“영락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마법이 아닙니다·”
“무슨···!”
대악마가 살기를 흩뿌리며 도약하는 상황에서 하는 말치고는 지나치게 여유로운 말이었다·
이한은 보는 자신이 초조해질 지경이었다·
“제자님이 저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내려온 것처럼,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걱정해주십시오· 그러면 곧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말맺음과 함께 젊은 해골 교장은 에사도지콰와 정면으로 격돌했다·
분신이 성문 작업을 하고 있는 탓에 휘청거리며 밀렸지만 젊은 해골 교장은 멈추지 않았다· 눈과 코에서 피가 흘렀지만 연달아서 마법을 사용했다·
왕자 놈· 아직도 거만하게 여유를!
에사도지콰는 자신이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굴욕감에 으르렁거렸다· 그 난폭한 모습에 이한은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마력이라도 도와드려야겠다!’
가르시아 교수와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원래 약속은 예외가 있는 법·
지금 상황이라면 가르시아 교수도 분명 이해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 때 주변의 공간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가르시아 교수가 깜짝 놀라 외쳤다·
“셉터가!”
셉터가 원래 있던 곳으로 이한 일행을 돌려보내려고 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귀환에 가르시아 교수의 안색이 변했다·
전투가 한창인데 귀환한다면 젊은 해골 교장은 어떡한단 말인가?
그러나 젊은 해골 교장은 괜찮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돌아가세요· 제자님들· 여긴 제자님들의 시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가세요!”
작별인사와 함께 공간의 소용돌이가 주변을 휩쓸어 올렸다· 덤벼들던 악마들이 산산이 흩어지고 이한 일행은 차원 속으로 진입했다·
마지막으로 이한이 본 광경은 에사도지콰의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끝까지 성문을 지켜내던 젊은 해골 교장의 모습이었다·
* * *
팟!
“···!”
에인로가드로 귀환한 이한은 휘청거렸다· 단순히 유물 시전에 의한 충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감명 받았다·’
거대한 마법이나 금화 무더기가 아니라 태도만으로 깊은 감명을 줄 수 있다니·
그만큼 마지막에 본 광경은 이한을 전율시켰다·
처참하고 비정한 시대에, 자신을 제외한 온 왕국이 해를 끼치려 하는데도 꿋꿋이 선업을 베푼 것이다·
단순히 영락 마법을 익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목격한 과거 때문에라도·
이한은 앞으로 조금 더 관대하고 선량한 사람이 되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젊은 교장 선생님 수준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더···’
-감히 내 우리에 다른 햄스터들을 넣어?!
무사히 귀환하고 여유가 생기자 햄스터가 분노의 찍찍 소리를 토해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그랬다가는!
“지금은 사라졌으니 된 거 아닙니까! 젊은 교장 선생님은 사람들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마법사 님은 햄스터 친구 하나 넣었다고 아직까지 투덜거리시는 겁니까? 창피함을 좀 아십시오!”
-······
햄스터는 억울함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