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6화
가르시아 교수는 방금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한 뒤 순찰대원들을 햄스터로 변신시켰다·
우리에 동료가 들어오자 햄스터는 행복해 죽겠다는 듯이 사납게 찍찍거렸다·
“통역은 부탁드리겠습니다·”
-닥쳐라·
우리 안에 순찰대원들을 모두 가둔 뒤 가르시아 교수는 다시 한 번 변신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셋의 겉모습이 순찰대원으로 완벽하게 뒤바뀌었다·
“표식 확인하고··· 됐네요· 안 어색하죠, 이한 학생?”
“교수님의 실력은 실로 완벽하십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요· 참· 마지막으로 안에서 주의할 게 있는지 순찰대원들에게 물어봐주시겠어요?”
교수의 말을 들은 이한은 햄스터에게 말을 전했다·
햄스터는 찍찍대며 순찰대원들에게 전했고, 순찰대원들은 거부의 찍찍소리를 냈다· 그러자 햄스터가 순찰대원들을 두들겨 팼다·
잠시 후 대답이 돌아왔다·
-약한 척을 하거나 겸손하게 굴지 말라고 하는군· 기껏 나가서 노예도 못 잡아왔냐고 물으면 ‘네놈을 노예로 팔아버리기 전에 닥쳐라’라고 대답하고, 윗사람 같으면 ‘곧 노예를 붙잡아서 바치겠습니다’라고 대답해라·
“······”
‘여기 사람들은 새 노예 말고는 관심이 없나?’
이한은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시대, 다른 지역에 들어가는 만큼 일단 상대방의 관습을 존중해야 했다·
* * *
“저기···”
“노예로 팔아버리기 전에 닥쳐라!”
“힉! 죄송합니다!”
“노예로 팔아버리기 전에 닥쳐라!”
이스란 시에 접근하자 순찰대원의 복장을 알아보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이한은 열심히 준비한 대사로 사람들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휴· 쉽지 않군요· 제가 어색하거나 하진 않았겠죠?”
“전, 전혀요· 이한 학생· 훌륭했어요·”
가르시아 교수는 제자를 칭찬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너무 잘 하는 거 아니야?’
마치 타고난 것처럼 사람들을 쫓아내는 제자의 연기에 가르시아 교수는 살짝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옆을 보니 볼라디 교수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제자의 활약이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내, 내가 이상한 건가?’
“그러면 계속 이동하겠습니다· 도시 안의 마법사를 찾아볼게요·”
일행이 굳이 위험한 도시 안으로 들어온 이유는 간단했다·
정보는 이런 도시 안에서 가장 구하기 쉬웠던 것이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후미지고 작은 마을 같은 곳에서는 질문을 던져도 제대로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일행의 목표는 도시 안에서도 외부 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을 법한 족속들, 즉 도시의 마법사였다·
‘걱정이 되긴 하는군·’
말을 걸거나 은밀한 뒷거래를 시도하려는 사람들을 쫓아내면서 이한은 생각에 잠겼다·
이 고대 삼왕국 시절은 그야말로 약육강식, 강자존의 시대였다·
철저하게 계급이 나뉘어져 있으며 귀족들은 공포와 폭력으로 아랫사람들을 억누르는 시대·
그리고 여기서도 마법사들은 귀족이었다·
가끔 마법을 쓰는 노예들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외였고, 일단 혈통이 되지 않는 자는 마법을 배울 수도 없는 것이다·
귀족이 곧 마법사고, 마법사가 곧 귀족·
‘성격이 개같이 더러울 것 같은데···’
저기 순찰대원도 외부인인 걸 알자마자 바로 노예로 만들어서 팔아버리겠다고 으르렁대는데, 여기 마법사 귀족들은 성격이 얼마나 더러울지 예상도 가지 않았다·
푸른 용의 탑 친구들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차라리 좀 차려입고 귀족으로 사칭해볼 거 그랬나? 아니· 어차피 별 의미 없었을 거다·’
괜히 허름한 누더기 같은 에인로가드 복장 때문에 바로 노예 의심을 받았나 후회도 됐지만, 어차피 귀족으로 위장했어도 도시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이상 금세 들통났을 것이다·
결국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마법사를 찾아가서도 배그렉 교수님 설득법을 쓸 수밖에···’
어떻게 된 게 문제 해결을 위해 과거 차원에 방문했으면서 자꾸 폭력적인 수단만 쓰는 것 같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시대가 야만스럽지 않은가!
“곧 노예를 붙잡아서 바치겠습니다!”
고민하던 이한은 지나가는 기사에게 굽신거리며 인사했다· 기사는 ‘순찰대원 놈이 예의를 아는군’하며 만족스러워했다·
햄스터는 한심하다는 듯이 찍찍댔다·
-네놈이 완벽한 순찰대원이라는군·
“오· 감사합니다·”
-칭찬으로 들리면 네 귀가 썩어 문드러진 거다·
‘동료도 넣어드렸는데 왜 저렇게 심술이시지?’
이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길을 찾았다·
순찰대원들이 내놓은 정보와 도시에서 추가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여기 이스란 시에는 찾아갈 만한 마법사들이 세 부류가 있었다·
먼저 항구에 위치한 <파도의 전당>을 운영하는 마법사들·
이 마법사들은 왕국의 마법함대를 이끌었던 사악한 선장의 후손들로, 바다의 힘을 빌린 파괴적인 마법으로 적국의 해안가를 쓸어버리는 이들이었다·
다음은 성문 쪽에 위치한 <메타모포시스의 굴혈>에서 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들·
여기 마법사들은 수십 년 전 다른 왕국에서 건너온 배반자들로, 무려 열두 종족을 결합시킨 키메라를 진상해 왕국의 귀족들을 감탄시킨 적이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내성 쪽에 위치한 <동상들의 회랑>·
앞의 마법사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덜 파괴적이고 덜 잔인했으나, 주기적으로 노예들을 잡아가 동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기벽이 있었다·
볼라디 교수는 마지막 마법사들을 추천했다·
“그쪽으로 가지·”
“저들이 가장 교묘하게 사악해서인가요?”
“구조가 기습에 취약해 보이는군·”
“······”
가르시아 교수는 질문한 걸 후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동상들의 회랑>은 기습하기 좋아보였다·
일단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 숫자 자체가 적었으며, 별다른 경비도 없었다·
곳곳에 자리 잡은 묘하게 사람 같은 동상들만 제외한다면·
“가르시아 교수· 부탁하겠소·”
“네·”
가르시아 교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이 지팡이를 흔들었다·
규칙과 술식, 구조가 현재 제국 마법과 다르긴 했지만 뛰어난 마법사라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르시아 교수는 뛰어난 마법사 중에서도 특별히 뛰어난 마법사·
여기 걸린 마법들 정도는 쉽게 해결 가능했다·
이한은 교수의 마법에 감탄했다·
‘과연· 동상들에 마법을 걸어놓은 거군· 혹시 모를 침입자들을 대비해서·’
“이한 학생· 여기 와서 보세요· 설명해줄 테니까·”
“아· 저도 해제해야 합니까?”
“네? 아뇨· 해제는 내가 할 거에요·”
“??”
이한은 ‘그럼 왜 저한테 설명해주십니까?’라는 말을 하려다가 일단 들었다·
교수가 가르쳐준다는데 옆에서 왜냐고 묻는 건 감히 제자로서 하기 힘든 대답이었다·
“···이런 마법이에요· 알겠죠? 나중에 돌아가서 궁금하면 나한테 한 번 묻고 연습해요·”
“···교수님, 혹시 제가 이걸 몰래 연습할 거라고 생각해서 설명해주시는 겁니까??”
“무, 무슨 소리에요· 이한 학생· 그런 거 아닌데요? 그냥 교수로서 순수히 제자를 가르쳐주는 건데요?”
가르시아 교수는 말을 더듬으며 살짝 횡설수설했다· 그것만으로 이한은 진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누명이군·’
그래도 고대 마법은 상당히 이질적이고 낯설어서 흥미롭긴 했다· 이한은 배운 걸 기억해두었다·
“들어간다·”
“예·”
주변 정리를 끝낸 셋은 회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디서 본 것 같은 마법사와 눈이 마주쳤다·
“······”
“······”
마법사는 고대 조각상 같은 외모를 갖고 있었으며, 그 아래 양손에서는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주변에는 시체가 즐비했다· 복장을 보니 누가 봐도 회랑 소속 마법사들의 시체였다·
“어쩔 수 없군요· 미안합니다·”
현장을 들킨 젊은 해골 교장이 미안하다는 듯 사과하며 동작을 펼치려고 했다·
그 동작이 암시하는 파괴력에 긴장하며 이한은 다급히 외쳤다·
“잠깐! 우린 적이 아닙니다!”
말만으로는 설득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한은 재빨리 변장 마법도 풀었다·
순찰대원의 복장이 아닌 처음 보는 거지 복장이 나타나자 젊은 해골 교장은 그제야 멈칫했다·
“이 도시 사람이 아닙니까?”
“예· 그, 저희는··· 다른 차원에서 온 방문자입니다!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으음·”
고민하던 젊은 해골 교장은 일단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볼라디 교수에게 말했다·
“옆에서 숨어있지 말고 나오시지요·”
볼라디 교수는 순순히 은신을 풀고 나타났다· 젊은 해골 교장은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그 마법, 제 가문의 마법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만···”
“맞습니다· 당신에게 배웠으니·”
“??”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시체부터 치우고 나서·”
볼라디 교수의 말에 젊은 해골 교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건 탐욕 때문에 죽인 게 아니라···”
“압니다· 이 자식들이 건방지게 군 거겠죠?”
이한은 짐작간다는 듯이 말했다·
젊은 해골 교장은 왕족이었으나 어디까지나 소국의 왕족이었다·
이런 강한 왕국의 마법사들은 당연히 그런 왕족에게 무례하게 행동할 터·
아마 젊은 해골 교장이 마법적인 일 때문에 조용히 방문했다가 받은 모욕에 폭발한 게 분명했다·
“아닙니다만·”
“네? 아니에요?”
“여기 갇힌 무고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찾아온 겁니다·”
젊은 해골 교장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대답했다·
건방지게 굴었다고 사람을 죽인다니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당신 누구··· 읍읍!”
경악해서 소리치려는 이한의 입을 가르시아 교수가 다급히 막았다·
“하하· 방금 건 잊어주세요!”
“???”
* * *
회랑의 시체를 치우고 안에 자리를 잡자, 이한 일행은 젊은 해골 교장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우리 차원에서는 당신이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대마법사가 되는데, 그 대마법사가 되어서 마법학교도 운영하고, 우리는 거기 출신 제자들이고···
“놀··· 놀랍군요!”
젊은 해골 교장은 양 뺨을 기쁨으로 붉히며 전율했다·
“저처럼 부족한 마법사에게도 이런 가능성의 미래가 존재했다니!”
예지 마법의 개념을 깊이 이해하는 마법사에게 다른 차원의 자신이나 미래 차원의 자신은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었다·
젊은 해골 교장은 어느 차원의 자신이 먼 미래에 제자들을 키워내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격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거라고는 사악한 마법사들을 습격해서 죽이는 하찮은 일들밖에 없었다·
그렇게 부족한 자신이 나중에는 어엿한 제자들까지 키워낸다니!
“그 마법학교는 어떤 곳입니까?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곳인가요?”
“······”
“앗, 그게·”
두 교수가 모두 말을 하지 못하자 이한은 제자로서 거짓말을 해야 했다·
“아주 따뜻하고 사랑이 넘칩니다· 노래도 있을 정도죠· ‘에인로가드· 에인로가드· 너무 좋다네· 따뜻한 식사와 푹신한 침대가 있는 곳· 에인로가드·’”
“정말 큰 위로가 되는군요·”
젊은 해골 교장은 크나큰 행복감을 담아 대답했다·
지금은 비록 사악한 마법사들을 습격하는 것 정도밖에 못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조건 없는 박애로 마법사들을 키워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니·
그 생각만으로도 젊은 해골 교장은 다시 기운이 되돌아왔다· 앞으로도 계속 사악한 마법사들을 습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희 혹시 잘못 온 거 아닙니까?”
“정신 차리세요· 이한 학생· 제대로 온 거 맞아요·”
가르시아 교수도 정신이 어질어질했지만 교수로서의 책임감으로 간신히 버텼다·
이건 분명 젊은 해골 교장이 맞았다·
정말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