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화
조우린도 함께하겠노라!
“전하·”
이한의 반응에 조우린은 살짝 눈치를 봤다·
생각해보니 아직 외출금지가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한은 화를 내거나 엄한 태도로 쳐다보지 않았다· 오히려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을 조우린에게 보냈다·
“제가 이렇게 도움을 받아놓고서 어떻게 계속 외출금지를 시키겠습니까· 같이 하시죠·”
와!
조우린은 기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때 저 아래 쪽에서 소란과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일행과 같이 있던 데스 나이트들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누가 방문했지?
-꽤 신분이 높은 사람들 같군·
데스 나이트들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올라오는 이들의 복장은 누가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으니까·
“근위기사단 같은데요?”
가르시아 교수가 신분을 알아보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제국 수도, 거기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황제의 궁전을 지키는 제국기사단·
사실 황제의 진짜 정체를 생각해보면 기사단의 호위가 그렇게까지 필요하진 않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근위기사단의 실력은 확실했다·
그 상징과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기사들인 만큼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근위기사단이 에인로가드에는 왜?
“···어, 혹시 저희 졸업생 중 사고친 사람 없죠?”
-아마··· 아마 최근에는 없었을 겁니다·
데스 나이트의 대답에 가르시아 교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종종 먼지투성이가 된 기사단원이 찾아와서 ‘졸업생 누구누구가 사고를 쳤는데, 혹시 어디로 갔을지 짐작가는 곳이 있으십니까?’같은 질문을 던져왔던 것이다·
근위기사단이 찾아올 정도라면 그 사고의 규모도 평소보다 몇 배는 클 테니···
“잠깐· 그럼 사고 친 사람이 없는데 왜 온 거죠?”
-아마 주인님의 분신 때문 아니겠습니까? 주인님께서 마침 수도에 올라가셨으니 지원을 피력하셨겠지요·
“과연·”
꽤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지금 해골 교장은 수도에 올라가 있는 상황 아닌가·
저 미친 분신이 에인로가드 영지에 있는 걸 잘 아는 만큼 지원을 요청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확실히 지금 상황을 생각해보면 기사단원들이 있어서 나쁠 건 없겠네요· 가능하면 금화가 더 좋았겠지만·”
“······”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의 솔직한 말을 조용히 경청했다·
제자로서 감히 하늘 같은 스승의 말을 지적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드드드드드-
“?”
옆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이한은 의아해하며 시선을 돌렸다·
어디서 산사태라도 났나?
으으으으으으으···
“···???”
진동의 정체는 조우린이었다·
아까 신나서 벌떡 일어났던 조우린이 다시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었던 것이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아아아아아무것도 아니노라·
“···절대 그런 거 같지 않습니다만·”
이한은 위화감을 느꼈다·
누가 봐도 지금 조우린의 모습은 사고를 치고 나서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고를 칠 게 있나?’
생각해봐도 딱히 사고를 칠 게 없었다·
쳤던 사고들은 이미 이한한테 다 들킨 상태였고···
“잠깐· 혹시 용석 관해서 편지라도 쓰셨습니까?”
그런 게 아니노라···
“전하· 저희 약속했잖습니까· 서로 믿기로 말입니다·”
조우린이 움찔했다·
그 말에 고민하던 조우린이 이한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럼 조우린의 편을 들어줄 거야?
“그건 어떤 사고를 치셨는지에 따라 좀 달라질···”
······
“그래서 무슨 사고를 치셨습니까?”
“전하!”
조우린이 자백하기도 전에 근위기사단 단원들이 도착했다·
바늘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엄격한 분위기를 풍기며, 기사단 단원들은 깍듯이 예의를 표했다·
“제국 마법의 적통을 이어받은 마법사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앗· 네· 안녕하세요·”
가르시아 교수는 예상보다 훨씬 더 과한 인사에 살짝 당황해하며 인사했다·
보통 일반적인 기사들은 한숨 푹푹 쉬면서 ‘안녕하십니까 교수님’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전하를 보좌해 귀환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아하· 그런데 시험이 끝나려면 아직 좀 남지 않았나요?”
조우린은 어디까지나 에인로가드 학생들의 시험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한 것이었다·
당연히 시험이 끝나면 귀환해야 하겠지만, 일단 시험 자체가 끝나지 않은 상태 아닌가· 이렇게 먼저 올 이유가 없었다·
“혹시 호위 때문에?”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말하려던 기사가 머뭇거렸다· 보다 못한 조우린이 다급히 외쳤다·
조우린은 준비됐노라! 귀환!
“전하· 여기 마법사들도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
부끄러움이 담긴 한숨을 한 번 쉬고서, 기사들은 설명을 시작했다·
* * *
원래 조우린은 예전부터 에인로가드에 호기심이 많았고, 그 호기심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방문한 뒤 절정을 찍었다·
하지만 황제는 조우린의 에인로가드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드래곤은 네가 에인로가드 학생들에게 방해만 될 것 같은데···
-대, 대체 어째서 그런 생각을?!
조우린이야 재밌고 신나겠지만 에인로가드 학생들이나 교장에게는 별로 즐겁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몇몇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광기를 드러내면 조우린한테도 별로 즐겁지 않을 수 있었다·
-조우린은 전혀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학생들도 아주 좋아할걸요!
-알겠다· 알겠어· 그럼 먼저 오수의 허락을 받아와라·
귀찮아진 황제는 일을 해골 교장한테 떠넘겼다·
해골 교장이 보기에 ‘흠 조우린 전하도 이제 슬슬 에인로가드에 방문하셔도 되겠군’ 싶다면 허락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만약 해골 교장이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조우린도 갈래! 조우린도 갈래!! 조우린도 갈래!!!!!!
-전하· 죄송하지만 폐하의 허락을 받아오셔야 합니다·
당연히 해골 교장도 황제 못지않게 교활한 사람인만큼 호락호락 수긍하지 않았다·
황제가 자신한테 일을 떠넘겼다는 걸 파악하자마자 바로 다시 황제한테 일을 떠넘긴 것이다·
실로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들이 보여주는 천외천의 지략대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양쪽에서 서로 귀찮다는 듯이 거절하자 조우린은 풀이 죽었다·
하지만 드래곤은 성장이 빠른 종족이었고, 최근 조우린의 성장은 특히 남다른 면이 있었다·
그 덕분인지 조우린은 제국 역사에 길이 남을 속임수를 떠올렸다·
-고나달테스의 허락을 받아왔어요!
-그래? 정말 놀랍구나· 오수가 괜찮다면 드래곤도 괜찮다·
황제한테는 먼저 ‘오수의 허락을 받아왔다’고 말을 한다·
그 다음은···
-폐하의 허락을 받아왔노라!
-어쩐지 해골 안쪽이 뒤숭숭하더니!
-······
-농담입니다· 전하· 폐하께서도 참 너무 너그러우시군요·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방문하셔도 좋습니다·
-정말!?
-대신 너무 길게 방문하진 마시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방문하셔야 합니다· 이것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에인로가드 교수들이라면 모두 다 조우린을 환영할 거야!
-벤도졸을 구출하지 말았어야 했나···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하·
* * *
“···이렇게 된 겁니다·”
이야기를 들은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들은 모두 경악해서 조우린을 쳐다보았다·
심지어 볼라디 교수마저 살짝 놀란 것 같았다· 이한은 화를 내야 할지 감탄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대단하다!’
아무리 상대방이 방심했다지만 황제와 해골 교장을 동시에 속이다니·
저건 정말 대단한 업적이 맞았다·
“그런데 어떻게 들킨 겁니까?”
“이한 학생· 지금 그게 중요해요?”
가르시아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저걸 궁금해 하다니?
하지만 기사들은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주었다·
“폐하께서 마령관 각하와 대화하시다가 우연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깝군!’
이한은 속으로 탄식했다·
조우린의 계책이 분명 날카로운 부분을 찔렀지만, 천운은 조금 부족했던 게 분명했다·
이런 식으로 발각이 될 줄이야·
만약 운만 조금 더 좋았다면 정말 완전범죄가 가능했을지도 몰랐다·
···조우린은 잘못한 거 없노라! 이 모든 건 다 둘이 자꾸 거절해서야! 자꾸 다른 사람한테 허락 받으라고만 하고! 일부러 조우린을 속이는 것 같다!
토라진 조우린의 외침에 이한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저걸 알아차리시다니?’
황제와 해골 교장의 교활한 속임수를 눈치 채다니·
이 정도면 에인로가드에서 정말 성장했다고 봐도 좋았다· 이한은 상황과 맞지 않는 뿌듯함을 살짝 느꼈다·
“전하· 진정하십시오·”
진정 못하겠노라! 이한은 화나지도 않아? 조우린은 이제 돌아가면 에인로가드에 방문금지 당할 텐데! 어쩌면 영원히!
그게 그렇게 큰 벌 같지는 않았지만, 이한은 어린 드래곤의 마음을 이해하고 좋게 말했다·
“꼭 그러란 법은 없습니다· 전하· 원래 두 분이 전하의 방문을 말렸던 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기 힘들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이렇게 증명하셨잖습니까· 앞으로는 좀 더 쉽게 오실 수 있을 겁니다·”
···정말? 언제쯤??
“그건 저도 정확히는···”
다음 주?
“···그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요·”
다다음 주?
“그리고 꼭 전하께서 오지 못하더라도 제가 방학 때 찾아가면 되죠·”
이한은 슬쩍 말을 돌렸다·
여기서 더 이야기가 길어졌다가는 수습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다행히 조우린은 눈치채지 못했다·
와! 정말이지? 꼭 찾아와야 하노라!
“예·”
방학 내내 있을 거야?
“···그건 좀··· 제가 마법 연구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보다 못한 기사들이 나서서 말렸다·
“전하· 에인로가드의 마법사들은 잠 잘 시간도 아껴서 제국 마법을 이어나가려고 정진중입니다· 방학이라고 해서 시간이 남지는 않을 겁니다·”
‘그 정도는 아닌데·’
에인로가드는 너무 못됐어!
가르시아 교수는 살짝 찔려서 고개를 숙였다· 교수로서 반박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투덜대던 조우린은 결국 방학 때 이한이 찾아오는 걸로(기간은 미정이었다) 타협을 보았다·
그리고는 근위기사단들과 함께 엉금엉금 교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그 속도가 마치 달팽이와 맞먹을 만큼 느렸다·
“···전하· 일부러 느리게 걸으실 필요는···”
흥·
기사들은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한숨을 내쉰 뒤 조우린을 달래기 위해 달려갔다·
* * *
조우린을 배웅한 뒤 일행은 다시 영락 마법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모였다·
“전하는 괜찮으시겠죠?”
“걱정 마세요· 이한 학생· 전하는 별 문제 없을 테니까·”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을 위로했다·
조우린과 가장 오래 같이 있었던 만큼, 갑작스러운 귀환에 마음이 허전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지 않던가·
“전하께서 설득에 성공해서 다음 주에 또 오진 않으시겠죠?”
“그거 걱정이었어요!?”
가르시아 교수는 황당하다는 듯이 외쳤다· 그러자 이한은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지금 저 분신 문제가 해결 안 됐는데 전하께서 에인로가드에 머물러서 좋을 게 없지 않습니까?”
“···이한 학생!”
가르시아 교수는 깊이 반성했다·
사악한 건 자신이었구나!
저런 마음을 가진 제자를 몰라보고 의심하다니·
“걱정 마세요· 이한 학생· 우린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참· 교수님·”
이한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모습에 가르시아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 뛰어난 제자는 <고나달테스의 영락> 마법에 관해 대체 어떤 질문을 하려고 이러는 걸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제국의 언어들> 중간고사 제출 좀 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