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화
“···대체 무슨 일이!?”
브레스에 힘입어 반신 햄스터를 다시 흑제관에 가둔 뒤 완전히 역소환시킨 두 교수는 예상치 못한 광경에 당황했다·
드래곤이 땅이 꺼져라 울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앙!
“전, 전하· 왜 그러세요?”
이한이 죽어가고 있노라! 조, 조우린이 생각한 모험은 이런 게 아닌데···!
조우린은 울음 때문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동화나 전설로 들었던 모험은 언제나 용맹무쌍한 영웅이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적을 토벌하는 것이었지, 쓰러진 계약자를 무력하게 지켜보는 건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이런 게 모험이라면 조우린은 제국에서 모험을 금지시키겠노라!
“그 무슨··· 그것보다 그냥 자고 있는 건데요?”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의 상태를 확인하고 말했다·
“배그렉 교수님?”
“맞소·”
“네· 그냥 피곤해서 쓰러진 거 같아요·”
두 교수의 보증에도 최근에 부쩍 의심이 많아진 드래곤은 믿지 않았다·
조우린을 속이거나 달래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어떻게 믿어!
“···혹, 혹시 최근에 누가 전하를 속이기라도 했나요? 아니· 확인해보세요· 정말 괜찮아요·”
조우린은 가르시아 교수의 말에 쭈뼛거리며 확인했다·
차마 두려워서 확인하지 못했는데 정말 맥박이 뛰고 있었다·
그, 그러면 왜 쓰러진 거지? 혹시 조우린이 브레스를 많이 쏴서?!
“아뇨· 그거 때문은 아닐걸요·”
이한의 마력을 잘 아는 가르시아 교수는 바로 부정했다·
저번에도 브레스를 쓰는 걸 보조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못 버틸 리 없는 것이다·
하, 하지만 저번보다 더 많이 썼노라·
“그래도 별 차이 없을 거예요· 전하·”
······
가르시아 교수의 대답에 조우린은 속으로 의심을 품었다·
사실 눈앞의 이 교수는 냉혹한 사람이라 제자가 쓰러지고 피를 토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아닐까?
‘생각해보니 이한도 교수들은 다 차갑고 비정하다고 했노라!’
“쓰러진 건 아마 오기 전부터 마법을 과하게 써서 그런 거겠죠· 마력이랑 별개로 사람의 집중력에도 한계가 있으니·”
“뇌화를 썼군·”
“네?”
가르시아 교수는 볼라디 교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볼라디 교수는 교수들의 휴게실에서 종종 보여줬던, 평소와의 모습과는 다른 긴 설명을 시작했다·
벼락장군, 혹은 뇌공왕의 별호를 가진 정령왕의 권능으로부터 시작된 이 권능은 원래 섬뢰화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괜히 물었다·’
가르시아 교수는 깊이 후회했다·
지금 뒤처리할 게 많은데 굳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에인로가드 교수들 중 가장 어렸고, 그 말은 에인로가드 교수들 밑에서 제자로 지낸 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한 번 자리 잡힌 교수-제자간의 위계질서는 어지간한 저주나 맹약보다 강력한 법·
가르시아 교수는 속으로 툴툴대면서도 감히 말을 끊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경청했다·
다행히 흥미로운 내용이긴 했···
“잠깐· 그걸 권장하셨어요?!”
“권장하지 않았소·”
“과, 과연· 그렇군요·”
가르시아 교수는 옆의 드래곤처럼 속으로 의심했다·
과연 정말 권장하지 않았을까?
“으흠· 이한 학생이 요즘 뇌화 마법에 관심이 많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꼭 지금 썼다는 증거는 안 되지 않나요?”
그래도 제자라고 가르시아 교수는 슬쩍 이한의 편을 들었다·
뇌화 같은 무모한 마법까지 가지 않아도 이한 학생은 충분히 쓰러지고 남을 사람이었던 것이다·
평소 하는 일들만 봐도···
볼라디 교수는 손을 뻗어 저 뒤쪽을 가리켰다· 사상과 관념이 담긴 번갯불이 반신 햄스터를 관통한 뒤 암벽까지 흔적을 남겨놓은 게 보였다·
“···과연·”
이, 이한은 언제 깨어나는 거지?
“조금 회복되면 바로 일어날 거예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가르시아 교수는 간단하게 응급조치를 취했다·
마력이 많다는 것은 그 항상성이 비례해서 강해진다는 것·
많다는 말로는 제대로 표현이 안 될 만큼 마력이 많은 제자라 이런 상황에서도 회복이 빨랐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참· 다른 흑제관들이 열리기 전에 마저 봉인해놓죠·”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스 나이트들도 동의를 표했다·
지금 흑제관이 하나 열렸는데도 이 소란이 났는데, 여기서 더 열리면 일이 얼마나 귀찮아질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조우린이 궁금한 게 있노라·
“어떤 게 궁금하시죠?”
가르시아 교수는 친절하게 되물었다·
이 마음 약한 드래곤이 오늘 크게 충격 받은 것 같아서 괜히 안쓰러웠다· 뭘 물어보더라도 친절하게 대답해줘야 할 것 같았다·
다른 교수들은 왜 안 오지?
“······”
-······
가르시아 교수와 데스 나이트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볼라디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건·”
“제가, 제가 대답할게요!”
* * *
“!”
푹 자고 일어난 이한은 옆에서 웅크린 채 졸고 있는 거대한 드래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전하!”
으으으응!?
“대륙은 어떻게 됐습니까? 혹시 이미 반신들에게 정복당했···”
으아아앙! 이한이 이상해졌노라!
상황을 모르는 조우린은 다시 통곡했다·
이한이 고통과 피로로 인해 환각을 보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아직 아니군·’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이한은 산맥 아래 에인로가드 본관을 확인했다·
언제나처럼 평화로웠다·
11층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4층 창문에 거대한 촉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긴 했지만 뭐 이 정도면···
‘멀쩡하다·’
“죄송합니다· 전하· 제가 착각했습니다· 쓰러진 사이에 에인로가드가 공격당하거나 하진 않았죠·”
응···
확답을 들은 이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두 교수들은 대단했다· 반신 군단의 소환을 어떻게든 막아낸 것이다·
“이한 학생· 일어났어요?”
“교수님!”
돌아오는 두 교수의 모습이 이렇게 위풍당당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이한은 존경심을 가득 담아 인사했다·
“교수님들이 대륙을 구하셨습니다!”
“그,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가르시아 교수는 약간 민망해했다·
물론 막지 못했다면 일이 조금 커졌을 수도 있긴 했지만, 이 정도 일 가지고 대륙을 구했다는 말을 듣는 건 조금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반신 군단은 다 소멸된 겁니까?”
“아뇨· 봉인만 해놨어요·”
가르시아 교수는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미친 분신은 결심하고 나서 얼마 되지도 않은 그 짧은 시간을 참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흑제관을 연속으로 시전한 뒤, 그 안의 반신들에게 계약을 걸어 차례대로 꺼내려 한 것이다·
물론 이런 비전에는 막대한 힘이 필요했기에 미친 분신은 처음 반신만을 마법으로 꺼내고 그 뒤부터는 꺼내진 반신의 힘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다행히 첫 반신을 막은 뒤 나머지 흑제관들을 재빨리 봉인할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
“첫 반신을 막고, 나머지 반신들은 나오기도 전에 봉인했으니 일단은 괜찮을 거예요· 저런 건 역소환도 쉽지 않거든요·”
흑제관 자체가 워낙 강력한 마법이다 보니 주변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고 역소환시키는 것도 일이었다·
아무리 에인로가드의 교수들이어도 단둘이, 즉석에서 해낼 일은 아닌 것이다·
“분신은 만나보셨습니까?”
“네· 보고 왔어요· 야차들의 왕이란 분도 만나봤고요· 보기 드물게 현명한 분이시던데요·”
가르시아 교수는 야차왕에게 호의를 표했다·
원래 다른 차원의 존재들은 괴팍하거나 예상하기 힘든 이들이 많았다·
특히나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일수록 더더욱·
그런데 야차왕은 미친 분신을 봉인할 정도의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필멸자들을 대할 때 예의와 기품을 잃지 않았다·
실로 보기 드문 존재였다·
“이한 학생이 그런 분과 계약해서 잘 됐네요· 다행이에요·”
“···그, 그렇군요·”
이한은 야차왕 때문에 자신이 할 필요도 없던 별과의 계약을 해야 했다고 욕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교장 선생님의 분신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으음·”
이한이 조심스럽게 묻자 가르시아 교수는 난색을 표했다·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흑제관하고 달리 워낙 본인이 뛰어난 대마법사라···”
현재 야차왕이 시전하고 있는 봉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보여도 매우 고차원적인 비전이었다·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닌 수십 가지가 넘는 비전·
미친 분신 정도 되는 대마법사를 막는 건 수십 명이 넘는 기사(棋士)들을 상대로 다면기를 펼치는 것과 비슷했다· 단 한 판만 실수해도 주도권이 상대한테 넘어가는 것이다·
야차왕이 쓰고 있는 비전 중 하나는 자신의 존재 정보를 적과 중첩시켜 상대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
강력한 봉인이었지만 이건 외부에서 공격할 때는 오히려 난점으로 작용했다·
야차왕에게 타격을 주거나 혹은 야차왕을 방해해 미친 분신의 봉인을 풀어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공격으로 해결하는 건 힘들 것 같아요· 이한 학생·”
“어, 지금 원래대로 되돌리는 이야기 아니었습니까? 왜 공격을?”
이한은 교수가 묻지도 않은 걸 대답하자 의아해했다·
되돌릴 방법이 있냐고 물었지 공격으로 소멸시킬 방법이 있냐고 묻지는 않았던 것이다·
가르시아 교수는 이한의 반응에 멈칫했다·
“···그냥 이한 학생이 궁금해 할 것 같아서요! 하하! 하하하!”
“???”
이한은 교수가 왜 이러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를 소(小) 볼라디 교수마냥 전투에 환장한 사람으로 착각했다는 부끄러움을 숨기며, 가르시아 교수는 마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난 배그렉 교수님하고 같이 영락 마법을 연구해볼 생각이에요·”
“!”
알고 있는 마법의 이름이 나오자 이한은 놀랐다·
‘하긴, 야차왕을 만나고 오셨으니 당연히 들었겠군·’
생각해보니 그 수다스러운 왕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분명 지금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조언했을 것이다·
그래서 두 교수는 최대한 빨리 <고나달테스의 영락>을 연구하기로 결정한 것일 테고·
“부족하겠지만 저도 돕겠습니다·”
“정말요? 이한 학생· 안 그래도 힘들 텐데요·”
가르시아 교수는 내심 기뻤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사실 야차왕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이 해결책에는 이한이 필요할 가능성이 컸다·
마법적인 부분이 아니라, 미친 분신의 제자라는 신분이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전혀 모르는 외부인이 <고나달테스의 영락>을 쓰는 것과 제자가 쓰는 것은 그 설득력이 다를 테니···
“그렇긴 하겠지만··· 이건 제 일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한은 반쯤 체념하고서 말했다·
이미 미친 분신과 너무 엮인 게 많아서 두 교수에게만 맡기고 신경을 끌 수도 없었다·
언제 누가 납치하러 올 줄 모르는 상황 아닌가·
“······”
“배그렉 교수님?”
가르시아 교수는 이 와중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고민하고 있는 볼라디 교수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지금은 기특한 제자를 칭찬해야 할 때 아닌가?
“아· 미안하군· 고민하고 있었소·”
“뭘요?”
볼라디 교수는 천천히 설명했다·
원래 중간고사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상황도 특수한 만큼 오늘 있었던 일을 중간고사로 인정하고 그냥 넘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
가르시아 교수는 어이가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 없으신가??’
고작 2학년인 제자가 반신의 준동을 혼자서 막아내고 있었는데!
“인정해주셔도 될 것 같은데요?”
“하지만 기대를 많이 했을 텐데·”
가르시아 교수는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이한을 쳐다보았다· 이한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학생 의사는 무시하세요, 교수님! 우리는 교수잖아요·”
“음· 가르시아 교수의 생각은 약간 동의하기 힘들군·”
굳이 긁지 않아도 될 가르시아 교수의 속을 박박 긁으며, 볼라디 교수는 중간고사를 넘어가겠다고 인정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