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9화
다행히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두려움을 떨쳐내고 반신 햄스터를 강하게 염원했다·
팟!
거대 해골이 사라지더니 그 자리에 거대 햄스터가 나타났다·
-햄, 햄스터?!
-산맥파괴햄스터도 있나??
거인들은 웬 꾸물거리는 거대 햄스터가 검은 관에서 머리를 내밀려고 하자 당황스러워했다·
우리 안에 갇힌 마법범죄자 햄스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외쳤다·
-잘했다· 집중해라! 놈을 유지시킨 뒤 공격을 퍼부어!
물론 햄스터의 형태가 되었다고 해서 반신은 결코 만만하지 않을 터였다·
더군다나 저 폭군이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인공사념체 아닌가·
그래도 리치의 형태보다는 햄스터의 형태가 나았다·
-다시 들어가!
거인 한 명이 몽둥이를 우악스럽게 휘두르며 반신 햄스터에게 한 방 먹였다·
마치 산사태 같은 소리를 내며 반신 햄스터가 휘청거렸다·
-쳐!
-워다나즈의 적!
거인들은 반신 햄스터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평소 양을 돌보느라 온순하게 행동하던 거인들이 원래 힘을 드러내자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신 햄스터의 육신은 계속해서 회복되었다·
두들겨 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인들이 움찔할 정도였다·
-이··· 이 햄스터, 뭐냐!
-양들보다 무섭다!
공격을멈춰라·
-흥!
반신 햄스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거인은 다시 한 방 크게 날렸다·
그러자 반신 햄스터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
-몽, 몽둥이가!
-내 몽둥이! 거금을 주고 다듬은!
거인들은 비명을 질렀다·
들고 있던 몽둥이들이 순식간에 삭아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마치 혼자서만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버린 것 같았다·
-이익!
몽둥이가 사라졌다고 해서 거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산맥의 바위를 뜯어내서 검은 관을 향해 던지고 거목을 뽑아내서 휘둘렀다·
-관둬라! 멍청이들아! 질서와 법칙이 바뀌었다!
반신 햄스터가 아닌 마법범죄자 햄스터가 찍찍 비명을 터뜨렸다·
지금 반신 햄스터가 낸 울음소리는 단순한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저 검은 관 근처의 질서와 법칙을 자신에게 맞춰서 뒤바꾼 것이다!
아마 공격무효화에···
‘그것 하나만이 아닐 텐데!’
전투용 반신의 능력이라면 더 까다로울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거인들이 입고 있던 옷가지들이 마치 족쇄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우어억?
-컥, 커억!
-그러니까 물러나라고 했잖나!
아무리 우리 안의 햄스터가 찍찍대봤자 거인들이 들을 리 없었다· 이한이 대신 마력을 담아 폭발적으로 외쳤다·
“후퇴! 후퇴!”
-후퇴해라!
-우린 후퇴 안 한다! 뒤로 전진하는 거다!
거인들은 지혜로웠다· 강한 적을 상대로 무작정 승산 없이 덤비지 않았다·
“뭡니까, 저건?”
-아마··· 아마 굴복이나 굴종시키는 법칙 같은데··· 정확한 건 더 봐야 알 것 같다!
단순히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게 아닌, 자신에게 덤벼든 적을 무릎 꿇리고 노예로 만들어 군대로 부리는 법칙·
실로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햄스터로 바꿨는데도?!”
-햄스터로 바꿨으니까 그나마 저런 법칙만 쓰는 거야! 리치 상태였다면 저 놈이 온갖 끔찍한 흑마법이란 흑마법은 다 퍼부었을 거다· 네놈이 아는 고나달테스 공의 흑마법을 저 놈이 그대로 쓴다고 생각해봐라!
이한은 오싹해하며 이를 악물었다·
‘···가이난도로 바꿔봤자 별 효과 없겠지·’
햄스터든 가이난도든 반신의 법칙을 쓸 수 있다면 그냥 반칙적인 존재였다·
이미 햄스터로 바꾼 것만으로 다른 능력을 충분히 막은 셈이었다·
그리고 가이난도는 햄스터보다는 유능할 테니까···
-앞에!
고민하는 사이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반신 햄스터가 이한이 거인 일행의 우두머리인 걸 알아차렸는지 적극적으로 견제를 시작한 것이다·
“!!!”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이한은 허공에 떠있는 검은 관을 향해 확 끌려가는 자신을 느꼈다·
-놈이 널 삼키려고 한다! 빠져나와!
이한은 반신이 집어삼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묻지 않았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마법이 펼쳐져 나왔다·
하나는 워다나즈의 염력이었다· 강력한 무영창 5서클 마법이 인력을 막아내고 이한을 어떻게든 정지시켰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파지지지직!
“번개여, 깃들어 현현하라!”
아직 완벽하게 익히지 못한 마법을 강제로 시전한 탓에 입 안에 쇳조각을 던져 넣은 듯 피맛이 물씬 났다·
‘리바운드!’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마법을 강제로 시전하는 건 단순히 실패를 떠나 마법사 본인에게도 강력한 부담을 줬다·
평소 재능과 행운으로 무장한 탓에 이런 경험이 드문 이한이었지만,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너무나도 많이 해온 탓에 결국 탈이 난 것이다·
하지만 이한은 물러설 수 없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물러서면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최악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거대한 마력이 폭풍처럼 이한의 주변을 휩쓸었다·
평소 마법을 시전할 때면 언제나 마력을 찻숟가락으로 조심스레 뜨듯 세심히 조절하는 이한이었지만, 지금은 리바운드를 막기 위해 과감하게 마력을 방사시켰다·
통제를 벗어난 사나운 번개가 이한의 육신을 치고 휘갈기는 대신 튕겨나가서 밖으로 흩어졌다·
급한 불을 끈 이한은 이를 악물었다· 두 번 실패하면 정말로 위험했다·
“···번개여, 깃들어 현현하라!!”
지팡이를 잡지 않은 다른 손이 순간 번개로 변했다·
평소 사용하던 번개 원소와는 차원이 다른, 사상(思想)이 담긴 번개였다·
마법의 주인인 이한은 그 뜻을 누구보다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적을 꿰뚫고 관통해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힘이 일순 뻗어져 나오더니 검은 관을 향했다·
그 강력한 마법에 우리 안에 갇혀 있던 마법범죄자 햄스터가 비명을 질렀다·
-질서와 법칙이 바뀌었다니까!
“!”
공격에 집중하느라 시야가 좁아진 이한은 눈을 크게 떴다·
생각해보니 반신의 법칙이 방어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부른 공격은···
콰직!
마법, <워다나즈의 뇌화>는 그대로 반신 햄스터를 관통했다·
시전한 이한이나 당한 반신보다 마법범죄자 햄스터가 가장 놀랐다·
‘어떻게!?’
물론 방금 보여준 마법이 에인로가드 저학년 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수준 높은 마법이긴 했다·
최소 5서클, 거기서도 저렇게 번개의 성질을 변형시켜 고차원의 개념이나 사상을 담는 건 그 수준이 한층 더 높았다·
그걸 이제 다른 5서클 마법을 유지하며 시전했으니···
햄스터는 대마법사였지만 이 정도면 뛰어난 후진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칙은 냉혹한 법·
아무리 이 신예 마법사가 대단한 곡예와 성장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법칙은 변하지 않았다·
반신이 공격무효화와 굴복의 법칙을 펼쳤다면 넘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넘어 관통하다니?
‘고작 5서클 마법으로 법칙을 뚫었다는 뜻인가?!’
상대가 힘으로 법칙을 바꾸었으니, 대항 방법은 간단했다·
이쪽도 힘으로 법칙을 바꾸면 됐다·
문제는 마법사가 그러려면 최소한 소세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
고위 마법 중에서 소세계를 동원하지 않고서도 세계의 허점을 이용해 법칙을 바꾸는 마법이 있긴 했지만, 적어도 그건 5서클은 아니었다·
고작 5서클 마법으로 법칙을 뚫을 만큼의 힘을 발휘하다니···!
공격을멈춰라사령관·
반신 햄스터는 사령관 역할을 해야 하는 이한이 자신을 공격하자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다·
심지어 방금 공격은 무슨 이치인지 법칙으로 만든 방어까지 꿰뚫지 않았던가·
“누가 네 사령관이냐?”
이한은 피를 퉤 뱉으며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방금 준 타격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어차피 이쪽도 마력은 무한이었다· 정신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마법을 퍼부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반신 햄스터는 이한보다 한 수 더 위였다·
방어불가의 날카로운 번개를 가진 마법사와 드잡이질을 벌이는 대신 우회를 시도한 것이다·
공간을 깎은 탓에 가까워졌던 이한이 이번에는 다시 확 멀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이한과 반신 햄스터 사이의 공간이 기하학적으로 변형되더니 일그러졌다·
‘조준이···!’
이한은 상대의 속셈을 깨달았다·
닿는 순간 법칙을 꿰뚫고 데미지를 준다면, 아예 조준조차 못하게 주변의 난이도를 올려버리면 그만이었다·
이한이 직접 파고들면 공간을 비틀어서 거리를 벌리고, 벌리고, 또 벌리고···
마치 쏘아진 화살의 역설 같은 난관을 순식간에 만들어버리는 모습에 이한은 허탈해질 지경이었다·
‘이런 걸 군단 단위로 소환한다고?’
처음에는 미친 분신이 미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시간만 주면 대륙 정복이 정말 가능성 있는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관을 벗어나지도 못한 반신 하나를 역소환시키지 못해서 이렇게 발이 묶였는데 다른 반신이 추가로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이한 학생!”
“!”
익숙한 트롤 혼혈 교수의 목소리에 이한은 순간 울컥했다·
저 멀리서 가르시아 교수와 볼라디 교수, 그리고 데스 나이트들이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교수님들도 오고 계십니까?”
-예?
“···지금 이 상황을 알아차리신 거 아닙니까?”
-아! 이제 이해했습니다·
데스 나이트가 이한의 오해를 정정해주었다·
에인로가드에서 무슨 일이(예를 들어 반신이 소환되는) 일어나더라도 교수들이 바로 달려오지는 않았다·
사실 이럴 때 나서는 건 해골 교장의 하수인들, 즉 데스 나이트 같은 이들이었다·
워낙 사건사고가 잦은 만큼 강력한 파동이 느껴졌다고 교수들이 전부 다 방문했다가는 학사일정도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다·
데스 나이트들이 확인하고 수습한 뒤 그래도 힘들 것 같으면 그 때 교수들에게 지원 요청이 전해졌다·
“···여기 두 분은 오셨···!”
“전 이한 학생 걱정되어서 혹시나 하고 왔죠· 여기 배그렉 교수님도요·”
“······”
이한은 차가운 에인로가드의 교칙에 진절머리를 쳤다·
나중에 투서를 넣는 한이 있더라도 이런 교칙을 바꿔버리든가 해야 할 것 같았다·
“됐습니다· 두 분만 계셔도 충분합니다! 천군만마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이한 학생· 입가에 혹시 피인가요?”
“···아까 물약이 좀 튀었나봅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두 교수는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가르시아 교수는 걱정 섞인 눈빛으로 텔레파시를 전했다·
‘무리한 것 같은데 학교로 돌려보내야 할까요?’
‘알겠소·’
‘네? 뭐가요?’
‘지금 제압할 테니 가르시아 교수는 데리고 돌아가시오·’
‘아, 아니· 설득하자는 이야기였는데요??’
볼라디 교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설득한다고 돌아갈 제자였다면 애초에 여기서 이러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박할 수가 없었기에 가르시아 교수는 잠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두 교수가 음험한 기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이한은 재빨리 상황을 설명했다·
“교장 선생님이! 미쳐서! 대륙 정복을!”
···다급한 탓에 별로 효과적이진 못했다·
“목적이 반전되었군·”
“반전한 교장 선생님의 분신이 군대를 만들기 위해서 반신을 소환하고 있군요·”
다행히 두 교수는 똑똑했다· 이한이 개같이 말해도 아주 잘 알아들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의 분신 정도면 세계의 저항은 충분히 막거나 피할 수 있지 않나요? 왜 이런 상황이?”
“혼란이나 동요가 있었을 거요·”
“혹시 이한 학생 영향도 조금은 있었을까요?”
“아마도· 뛰어난 제자는 스승에게도 영향을 주니·”
두 교수의 대화에서 심상찮음을 느낀 이한은 당황해서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한 학생· 반신 역소환에만 집중하세요·”
“그래서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