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5화
‘왜 스테달 나고의 많고 많은 경력 중에 저런 특이한 경력을?’
물론 이한도 욕심을 담아 넣은 경력이긴 했다·
제국의 어느 누가 뼈살이꽃 투기 파동 때 역으로 재산을 불리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이 저기에 저렇게 많이 주목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해적들한테 붙잡혀 있었던 경험이나 보물지도의 보물을 찾아낸 경험이 더 흥미롭지 않나?
“뭐? 그 나고 가문의?! 나도 들었네· 뼈살이꽃 투기 파동 때 파산한 여덟 가문을 인수했다고!”
“!”
어느새 와전된 소문에 이한은 움찔했다·
그런 말은 안 했는데?
“놀랍군· 실로 대단한 통찰력이고 실로 대단한 부(富)야· 괜히 남부의 대부호가 아니었어·”
“서부 아니었습니까?”
“어? 동부···”
“나고 가문이 무슨 가문입니까? 나는 처음 듣습니다만·”
“아· 경께서는 여행을 다녀오느라 못 들으셨나보군요· 최근에···”
모인 사람들끼리 빠르게 소문을 공유하는 동안 배 안에서 드러누워 있던 마법사들은 황당한 시선을 공유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지?
“스테달 나고가 뭡니까?”
“나 나도 모르겠네· 가명 같은데·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쓰는 가명인가?”
“혹시 고나달테스 공께서 쓰는 가명 아닙니까?”
“그럴··· 그럴지도 모르겠군·”
푸요는 아발카이겐의 가설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해골 교장의 행동을 보면 제국법 없이 사는 사람이란 인상이 강했지만 의외로 이 대마법사는 법을 준수하는 편이었다·
물론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준수냐?’소리가 절로 나오겠지만 그게 정말 자제한 편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제국에는 가끔씩 수상한 소문이 돌곤 했다·
정체불명의 무시무시한 대마법사의 습격을 받아 험한 꼴을 당한 사람에 대한 소문이!
그리고 이상하게도 꼭 그런 사람은 최근에 해골 교장의 심기를 거스른 적이 있었다·
푸요는 해골 교장이 남몰래 가명을 사용해 심기를 거스른 놈들을 습격했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가명도 고나달테스 공과 관련이 깊어 보이는군·”
“그런데 너무 성의 없는 이름 아닙니까?”
“아마 깊은 생각이 있으신 것 같네· 우리 같은 마법사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두 마법사는 설마 해골 교장의 제자가 스승의 가문을 멋대로 가명으로 써먹고 있다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그러는 사이 모여든 사람 중에 누군가가 드디어 이한이 원하는 말을 해줬다·
“아! 그 해적들에게서 탈출한 마법사 말입니까!”
‘드디어!’
이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거칠게 행동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자신을 제국 투자의 신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했던 것이다·
-흥· 꺼ㅈ···
-나고 님! 올해 서부에 풍작이 찾아올지 흉작이 찾아올지 부디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생각만 해도 민망하군·’
그런 상황은 벌어져서는 안 됐다·
“해적들에게서?”
“예· 듣기로는 소싯적에 해적들한테 붙잡혔는데 밧줄을 독사로 바꿔 해적들을 전부 중독시켰다고 하더군요· 뿐만 아니라 해적 우두머리는 돌로 만들어서 바다 곳곳에 조각을 흩뿌려놨다고!”
“···”
끼어들려던 이한은 다시 멈칫했다·
투자에 관한 소문이 부풀려진 것처럼 다른 소문들도 꽤 많이 부풀려진 것이다·
“아! 들어본 거 같습니다! 그랑덴 시에서도 탐욕스러운 자를 땅 속에 묻어버렸다고!”
“···운하다!”
심지어 정확히 따지면 운하에 처박은 것도 아니긴 했지만 그것까지 이 자리에서 해명하는 건 무리였다·
거친 목소리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자신도 모르게 외친 이한은 재빨리 목을 가다듬었다·
“감히 누가 나고 가문의 스테달을 모욕하는가? 앞으로 나서라!”
“사··· 사과드리겠소·”
자우 백작이 잘 갈린 단검을 재빨리 집어넣으며 사과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다 버두스 교수로 오해 받는 일이 얼마나 불쾌하고 모욕적인지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죄 없는 다른 사람한테 그런 피해를 준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저 단검 대체 마법이 몇 개나 걸린 거지?’
이한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인자해 보이는 노백작이었지만 들고 있는 단검의 기운은 정말로 살벌했다·
목적은 아마 부여 마법사의 몸을 방어하고 있는 마법들을 일격에 관통할···
만약 싸움이 벌어지면 저건 염동력으로 방어시도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이한은 외쳤다·
“감히 수도에서 이런 횡포를 저지르다니!”
“죄 죄송합니다· 나고 님· 다만··· 그 돛단배는 마법사 비블레 버두스의 작품 아닙니까?”
“아ㄴ···”
“돛단배 앞에 붙은 비버 선수상(船首像)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도 버두스 교수의 편지에서 몇 번 본 적 있습니다·”
‘아차!’
부정하려던 이한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돛단배 앞에 달린 비버 선수상을 바로 잘라냈어야 했는데!
잘 만들어진 걸작 마법의 균형을 깨뜨릴까봐 내버려둔 게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모인 귀족들은 혹시라도 다른 죄없는 사람을 버두스 교수로 몰게 될까봐 걱정할 뿐이지 결코 호락호락한 이들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해명이 없다면 이들을 돌려보낼 수 없었다·
“내가··· 놈에게서 뺏었지·”
“!!!!”
“뺏 뺏었다고!!”
사람들이 충격으로 술렁였다·
이한은 남의 물건을 멋대로 강탈한 스테달 나고의 무법자스러움에 사람들이 압도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어떻게 버두스 교수의 물건을 뺏을 수 있었습니까? 대체 어떤 방법으로?”
“정말 대단하군···! 소문이 틀린 게 아니었어!”
버두스 교수는 본인부터가 뛰어난 마법사인데다가 적이 많아서 경계심 또한 강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시간은 에인로가드 영지 안에 있는 자기 댐 아니 자기 마탑에 숨어 있었다·
그런 마법사 상대로 물건을 강탈하는 건 용의 보물을 훔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교활한 계략과 강인한 힘으로 강탈했지·”
“대 대단하군···”
“나고 님· 혹시 저희 가문에 잠시 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 저희 가문에 먼저!”
수도 귀족들은 이 말도 안 되게 비범한 마법사를 초대하려고 너도나도 나섰다·
이 마법사의 힘을 빌린다면 그들도 버두스 교수를 붙잡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무슨 일입니까!
‘후· 다행이군·’
멀리서 기사들이 날아오자 이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공 위에 여럿이 모여 있는 걸 보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이제 곧 사람들이 해산될···
“여기 나고 님이 버두스 교수의 물건을 강탈했다지 뭡니까!”
“!”
이한은 당황했다·
수도 귀족이란 자들이 품위 없게 바로 고자질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기사들은 그 말을 듣고 당연히 크게 놀랐다·
“어떻게 말입니까? 무슨 방법으로?”
“···”
이한은 할 말을 잃었다·
방법을 물을 게 아니지 않나?
기사 중 비교적 신참인 사람이 있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저기 말입니다· 그래도 물건을 강탈했는데 그건 그냥 넘어가도 됩니까?”
“비블레 버두스 님이 속여서 강탈한 액수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조사해봤자 어차피 나오시지도 않을 걸·”
기사들은 노련하고 현명했다·
어차피 버두스 교수는 제국 법정에 나오지도 않았다· 대신 난리를 피워봤자 별 의미도 없었던 것이다·
“그보다 어떻게 강탈한 겁니까?”
“교활한 계략과 강인한 힘으로 강탈했다는군요!”
“허 제국 역사에 길이 남겠군· 이름이 나고 가문의 스테달···”
놀라워하던 기사들은 뒤늦게 스테달 나고의 신분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분명히 허가를··· 에인로가드 죽음의 기사들이 신청했었지?”
“그랬습니다·”
“그러면 에인로가드 사람인가? 새 교수?”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실 같은 에인로가드 교수끼리 서로 물건을 뺏고 강탈하는 것부터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긴 했지만 여기 있는 기사들 중 어느 누구도 그 부분을 의아해하진 않았다·
“그럼 무리한 부탁은 어렵겠군·”
만약 에인로가드 사람이 아니라면 기사들이 직접 나서서 ‘버두스 교수를 습격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 시간을 가졌겠지만 상대가 에인로가드 사람이라면 그런 건 무리였다·
조용히 대화를 끝낸 기사들은 사람들을 해산시키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알겠습니다만 여기 계속 모여 계시면 안 됩니다!”
“다들 사전에 이야기하신 대로 움직여주십시오!”
모여든 사람들은 아쉬워 죽겠다는 듯이 이한에게 외쳤다·
“나고 님· 제안을 꼭 생각해주십시오!”
“저희 가문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흩어지는 모습에 이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중간 중간 위험한 순간들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 잘 마무리한 것 같았다·
“다 갔습니다· 내려가시죠·”
“오늘 있었던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네·”
“!”
먼저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는 두 마법사의 모습에 이한은 감탄했다·
안 그래도 부탁하려고 했는데···
‘역시 명성 높은 마법사는 달라도 뭔가 다르구나·’
“감사합니다·”
“우리가 감사해야지· 하마터면 명성에 먹칠이 갈 뻔했는데·”
아발카이겐은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설마 살면서 버두스 교수의 제자한테 도움을 받을 날이 올 줄이야·
“만약 이 배를 고치거나 더 개선할 일이 생긴다면 편지를 보내서 물어봐도 좋다·”
“아무래도 버두스 교수한테는 물어보기 곤란하겠지? 버두스 교수보다는 못하겠지만 다른 마법사들의 지혜를 모아줄 수는 있네·”
탁-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오자 두 마법사는 2층으로 내려온 뒤 떠날 준비를 했다·
“버두스 교수님은 안 뵙고 가셔도 됩···? 안녕히 가십시오!”
이한은 버두스 교수와 인사 나누지 않아도 되냐고 물으려다가 자신이 멍청한 질문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두 마법사는 웃으며 각자 출발했다· 어느 누구도 1층에 있는 버두스 교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지고 이제 누가 봐도 버두스 교수와의 연관성을 의심할 것 같지 않자 아발카이겐은 제자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냐?”
분명 제자가 <비블레의 비통>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었는데?
“아· 그게 말입니다·”
아발카른은 아까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잠깐 자리를 비우고 해골 교장으로 추측되는 스승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비블레의 비통>을 시전해 유물을 완벽히 고쳐왔다고···
“···뭐라?!!”
아발카이겐은 고함이 터져 나오는 걸 참고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걸 왜 지금 말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크윽·’
스승은 굳게 다짐했다·
앞으로는 제자의 말을 도중에 끊지 않고 꼭 끝까지 들어주기로!
* * *
“워다나즈·”
“아· 알시클 님· 어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 아냐· 그건 네 고생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었지· 근데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
다음 날·
별장 저택에서 같이 머무르고 있던 알시클이 부르자 이한은 의아해했다·
무슨 일이지?
“혹시 스테달 나고 신분으로 최근에 뭐 한 거 있냐??”
“···왜 그러시죠?”
촤르르륵-
알시클은 들고 있던 배낭을 거꾸로 뒤집어서 흔들었다·
그러자 백 통은 족히 넘는 것 같은 편지들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몇 개는 부리에 씹힌 자국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나한테 스테달 나고 소개해달라는 편지로 방이 꽉 차 있더라고···”
“죄송합니다!”
이한은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