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2화
푸요는 두 에인로가드 학생이 완성한 마법을 보고 찬사를 퍼부었다·
“이런 걸 아직 학생의 신분인 마법사들이 완성할 줄이야! 버두스 교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일세!”
“??”
버두스 교수는 탁자 아래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비열한 속임수를 쓴 제자들 때문에 네 발로 기어 다니고 있는데 왜 행복하단 말인가?
“그런··· 아니· 이건 본 적 없는 고대 마법인데? 이걸 어디서 구했나?”
판 위에 새겨진 마법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발카이겐은 놀라서 외쳤다·
차원 막대와 굴절을 융합해서 판 하나에 새겨 넣은 것도 놀라웠지만 그 안을 자세히 훑어보니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고대 마법 몇 개가 마법진의 작동과 형태를 보조하는 게 보였다·
고대 유물에 관해서는 상당한 전문가인 아발카이겐도 처음 보는 고대 마법이라니·
“혹시 고나달테스 공에게 가르침을 구한 건가?”
“아냐· 걔는 치졸해서 쉽게 안 가르쳐줘·”
아래에서 들려오는 대답에 아발카이겐은 황당하다는 듯이 내려보았다·
고나달테스 공이 그 독선적인 행보 때문에 제국에서 말이 조금 있긴 하다지만 엄연히 제국 마도방벽의 수호자이자 황제의 마령관이었다·
심지어 저 비버 수인 놈은 에인로가드의 교수인 만큼 자신의 상관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런데 저런 무례한 태도라니·
‘에인로가드 부여 마법 학파는 참으로 안타깝구나!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그렇지 저런 미친 작자를 스승으로 모셔야 하다니·’
아발카이겐은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이한과 유크벨티레를 쳐다보았다·
유크벨티레는 그 눈빛을 오해하고 후배에게 속삭였다·
“주의하도록·”
“뭘요?”
“저 눈빛 우리가 완성한 마법을 탐내고 있는 게 분명해·”
“···저건 저희를 불쌍하게 보고 있는 눈빛입니다· 선배님·”
“어째서?”
“버두스 교수의 제자니까요·”
“···”
평소에 남이 동정한다면 절대 받지 않을 유크벨티레였지만 이번만큼은 말문이 막혔다·
우물대던 유크벨티레가 뒤늦게 말했다·
“하지만 장점도 아주 조금은 있을 텐데? 후배 네가 대신 반박해봐·”
“싫습니다·”
이한이 아무리 언변에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저런 주제로 나서긴 싫었다·
아무리 가도 승산이 없어보였다·
“혹시 이걸 어디서 찾았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어··· 에인로가드 안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과연· 실례되는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줘서 고맙군·”
너무 대충 대답했나 걱정했지만 아발카이겐은 의외로 납득했다·
제국 마법학교가 세워지기 전에도 에인로가드는 온갖 마법이 그 학풍을 쌓았던 곳이었다· 지금은 찾기 힘든 마법이 발견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마법을 둘러본 아발카이겐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트집을 잡고 싶어도 완벽에 가까운 마법 설계였다· 마치 고대의 대마법사가 직접 그린 것 같았다·
“졌다· 졌어· 버두스 교수· 인정하도록 하지· 스승으로서도 네가 한 수 위라는 것을·”
“아닙니다· 스승님!”
제자인 아발카른은 죄책감에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자신이 부족하면 부족했지 스승에게 뭐가 부족했단 말인가·
“맞습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
오크 마법사는 옆에서도 격렬하게 외침이 튀어나오자 당황해서 시선을 돌렸다·
이한을 비롯해 에인로가드 일행이 성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절대 아발카이겐 님이 부족한 게 아닙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십시오!
“제가 유크벨티레 선배하고 같이 고생해서 만든 건데 이게 왜 버두스 교수님 덕분입니까! 말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죽음의 기사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한은 아발카이겐 기준에서 아직 새파란 애송이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발카이겐은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에게 압도당했다·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상대하는 듯한 살벌한 기세!
“내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군· 사과하지·”
“···아닙니다· 저도 너무 흥분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는 에인로가드의 모든 학파에 다 소속되어 있으니 스승님도 여럿입니다· 절대 버두스 교수님 덕분이 아니란 말입니다·”
“···”
아발카이겐은 확실히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에인로가드 부여 마법 학파 학생들은 고학년이고 저학년이고 할 것 없이 모두 다 버두스 교수를 정말 싫어했다·
* * *
“자!”
지루한 제자 소개가 끝나자 버두스 교수는 즉시 제국에서 제일 흥미로운 주제 그러니까 자기 마법 연구를 꺼냈다·
손바닥에 올라갈 만한 크기의 돛단배가 탁자 위에 올라가자 마법사들은 탄성을 내뱉었다·
심지어 이한도 속으로 놀랐다·
“이거··· 혹시 마법으로 실제 배를 축소한 겁니까?”
“눈썰미가 좋군· 아· 혹시 버두스 교수와 친해서 미리 들은··· 아니군· 사과하지·”
“아 아닙니다·”
아발카이겐과 이한 사이의 공기가 살짝 어색해졌다· 이한은 깊게 반성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실례라니·’
원래 이한이 이렇게 무례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버두스 교수와 친하냐는 이야기를 꺼내자 자신도 모르게 살기가 온몸에서···
“여하튼 참 대단하군요· 이 정도로 축소 마법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버두스 교수의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
변환 마법은 만능이 아니었다·
특히 이런 실제 물건을 축소시키는 마법은 그 크기와 지속시간에 비례해서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지금 자리에 있는 마법사들은 돛단배를 구성하고 있는 축소 마법이 얼마나 정교하고 강력하게 작동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원래 크기는 이 방 안을 채울 정도는 족히 되리라·
“잠깐· 원래 돛단배와 모습이 좀 다른 것 같네만?”
푸요는 뛰어난 감식안으로 위화감을 알아차렸다·
원래 버두스 교수가 서신에서 몇 번 그려서 보여줬던 돛단배와는 그 모습이 달랐던 것이다·
“그렇군요· 뭐지? 왜 달라졌나? 새로 만들기라도 했나?”
“그거 라게사한테 도둑맞았어·”
버두스 교수는 지금 생각해도 분통이 터진다는 듯이 투덜댔다·
“라게사? 라게사라면··· 남부 사략함대 제독을 말하는 건가?”
“아마 맞을 걸세· 버두스 교수의 후원자 중에 하나니까·”
“아니 그러면 도둑맞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발카이겐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후원자가 자신이 투자한 물건을 가져간 게 왜 도둑질이란 말인가·
“도둑이지! 허락도 안 받고 가져갔는데!”
버두스 교수가 발끈해서 따졌다·
예전에 만들었던 소형 돛단배가 사라진 탓에 처음부터 새로 만드느라 얼마나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는가·
라게사가 그 이후로 금화를 더 보내주긴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혹시 라게사 님이 투자한 것 말고 다른 걸 가져간 건가?”
“아니? 투자한 걸 가지고 갔는데?”
“···”
-···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분노를 속으로 삭이는 사이 버두스 교수가 다시 투덜댔다·
“워다나즈가 매수당해서 갖다 줬지·”
“다들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매수당한 게 아니라 라게사 님께서 이번에도 완성된 배를 못 받아가시면 정말 분노하실 것 같아서···”
“여기 있는 어느 누구도 오해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게·”
푸요의 말에 기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버두스 교수의 말을 듣고 오해할 생각이 없었다·
버두스 교수가 ‘내 제자 워다나즈가 공방에 불을 지르고 나를 찌른 다음 값나가는 보물들을 모두 약탈해갔어!’라고 말해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이한의 편을 들 것이다·
“잠깐· 선체의 형태가 달라졌잖아?”
“그렇군· 앞쪽 돛대도 변경됐고···”
버두스 교수의 초대를 받고 온 두 마법사는 새로 만든 돛단배가 원래 돛단배와 꽤 달라졌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워했다·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애초에 둘이 여기 초대를 받고서 준비한 것들은 다 예전 돛단배에 맞춘 마법이었던 것이다·
선체에 결합시켜서 허공의 기후를 조절하는 고대 유물부터 시작해서 돛대를 마법지팡이 비슷하게 개조해서 배 자체가 마법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마법까지·
둘 다 섬세한 마법들이라 돛단배의 형태가 바뀌었으면 다시 재조정을 해야 했다·
“새로 만드는 김에 마음에 안 드는 설계도 다시 바꿨거든·”
“···그럼 그걸 말해줬어야지!”
아발카이겐은 으르렁거리듯 외쳤다·
이 미친 비버 마법사 놈이 대체 무슨 짓을!
“여기서 고치면 되잖아?”
“시간낭비를 얼마나 하라는 거냐? 기껏 초대를 받아서 왔더니!”
안 해도 되는 시간낭비를 했다는 불쾌감에 아발카이겐은 벌떡 일어나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서로의 협력이 필요해서 이렇게 초대를 받아왔는데 벌써 후회가 됐다·
“후···”
문 앞에 나가서 시름에 찬 한숨을 내쉬고 있자 안에서 기사들이 따라 나왔다· 아발카이겐은 사과했다·
“미안하군· 기껏 호위로 따라왔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주다니·”
-아니· 그건 상관없습니다· 그보다 마법사 님· 원래 돛단배에 맞춰서 마법을 준비해왔다고 하셨습니까?
“그렇긴··· 한데···?”
아발카이겐은 이 데스 나이트들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의아해했다·
-만약 그 원래 돛단배가 있다면 거기에 작업해주실 수도 있으십니까?
“라게사 님이 가져간 게 아니었단 말인가?”
-그 이후에 라게사 님이 다른 분에게 선물로 주셨죠· 이야기하자면 좀 깁니다· 어쨌든 가능하단 걸로 알겠습니다·
“???”
기사들은 대답도 듣지 않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번에는 푸요를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푸요가 먼저 걸어 나왔다· 아발카이겐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 때문에···”
“아 아· 아닐세· 버두스 교수가 자꾸 몸을 좀 잘라달라고 해서 귀찮아서 나온 걸세·”
버두스 교수는 예전부터 나무 정령 혼혈이자 뛰어난 마법사인 푸요의 육신에 관심이 많았다·
뛰어난 소재인 만큼 만날 때마다 몸 좀 잘라주면 안 되냐고 귀찮게 구는 것이다·
“그런데 기사들은 여기 왜 모여 있나?”
기사들은 아까 아발카이겐에게 했던 질문을 다시 했다· 푸요는 똑같이 반응했다·
“라게사 님이 가져간 게 아니었나??”
-이야기하자면 깁니다· 하여간 알겠습니다!
기사들은 다시 들어가서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해골 교장의 수제자를 데리고 나왔다·
이한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다·
“혹시 버두스 교수님을 습격하시려는 겁니까?”
-아닙니다·
데스 나이트들은 솔깃했지만 부정했다· 하지만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한 번 진지하게 시도는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후계자 님·
“쉿· 듣는 사람 많은데·”
‘후계자?’
두 마법사는 속으로 의문을 품었지만 대화에 끼어들진 않았다·
-알겠습니다· 워다나즈 님· 저번에 그 받으신 돛단배 있잖습니까·
“예·”
-그걸 저 분들에게 맡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
두 마법사는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니· 라게사 님이 가져간 게 아니었나?”
“라게사 님이 저한테 다시 주셨습니다·”
“어째서?”
아발카이겐은 당황했다·
그 공중을 누비는 소형 돛단배는 한두푼 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라게사도 그걸 위해 어마어마하게 버두스 교수에게 투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미워 죽겠는 마법사 놈의 제자한테 다시 주다니·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만 굳이 추측해보자면···”
두 마법사는 귀를 기울였다·
과연 라게사는 이 천재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한 것일까?
“버두스 교수님 밑에서 배우는 제가 불쌍해서 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
순간 설득당할 뻔한 아발카이겐은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