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2화
그런데 그건 내 잘못이 아니지·
떠올렸음에도 불구하고 해골 교장은 매우 당당했다·
애초에 선약이 있고 방학 때 마법 노예로 쓰고 싶었으면 먼저 실력으로 데리고 갔으면 됐을 것 아닌가·
자기도 버두스 교수 밑에서 그런 짓을 해놓고 이제 와서 당했다고 불평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마법 노예?”
녀석· 비유란다·
“···”
이번에는 이한도 해골 교장을 노려보았다·
기껏 에인로가드의 빈 금고를 채워줬더니?
“아니· 교장 선생님· 유크벨티레 학생하고 선약 있는데 데리고 나오신 거예요??”
가르시아 교수가 황당해하며 입을 열자 5학년 선배의 눈빛이 희망으로 반짝였다·
다행히 여기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가 한 명 있었던 것이다·
그래· 하지만 가르시아 교수· 감히 변호해보자면 유크벨티레도 다를 게 없다네· 작년에는 교수를 납치 시도했고 재작년에는 친구를 납치하려고 했지· 칼을 휘둘렀으면 맞을 각오도 해야 하는 법 아니겠나·
“···”
안타갑게도 가르시아 교수는 즉시 논파당했다·
유크벨티레의 과거가 발목을 붙잡은 탓이었다·
과연 워다나즈와 선약도 정상적으로 했을까? 선배의 권위를 이용해서 못되게 굴지 않았을까?
“헉·”
“아 아니· 그건 아닙니다만·”
가르시아 교수가 설마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이한이 당황해서 대답했다·
물론 유크벨티레가 귀찮게 구는 사람이긴 했지만 적어도 이번 건 권위로 협박당한 게 아니었다·
듣지 말게· 가르시아 교수· 워다나즈 녀석은 저번에도 납치당해놓고 제자로 들어갔잖나· 마법만 배울 수 있다면 정상적인 사리 판단이 안 되는 녀석이야·
“그건 교장 선생님 분신이었잖습니까···”
이한은 어이없어서 힐난했지만 이미 가르시아 교수는 거의 넘어간 뒤였다·
완전히 패배했음을 직감한 유크벨티레의 손끝이 해골 교장을 향한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나중에 해골 교장을 수상할 만큼 싫어하는 대마법사가 탄생하겠군·’
예지 마법을 쓰지 않았는데도 왠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이한은 선배를 달래기 위해 말했다·
“저 하던 일 대충 끝났습니다· 연구 도와드릴게요·”
“하지만 날아간 시간은 보충할 수가 없는데·”
“남은 방학 동안이라도 하실래요 아니면 그냥 꺼지ㅅ··· 가실래요?”
유크벨티레는 조금 고민한 다음 대답했다·
“남은 방학 동안이라도 하는 게 낫겠어·”
“역시 선배님은 똑똑하십니다·”
이한이 선배를 칭찬하는 동안 가르시아 교수는 조용히 알시클에게 접근했다·
알시클은 씩씩대며 말했다·
“사람을 두고 가다니!”
“쉿!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에요·”
“그런 얕은 수작으로 날···”
알시클은 전형적인 에인로가드 수법에 더욱 분노했다·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들은 온갖 협잡질에 뛰어났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무슨 큰일이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서 사람을 속이는 수법이었다·
-앗! 펭에린 님· 저기 마법사가 가고일의 화염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응급조치를 해주십시오!
-알 알겠다!
-됐다! 펭에린은 빠졌어! 저 후원자는 우리가 먼저 만난다! 달려!
-···이런 개자식들이!
이미 졸업생들에게 몇 번 당한 알시클에게 이런 수작은 분노만 더 지필 뿐이었다·
아니· 정말로 그럴 때가 아니다· 자네는 더 중요한 걸 신경 써야 해·
“?!”
해골 교장까지 진지하게 말하자 알시클은 멈칫했다·
고나달테스는 위대한 대마법사였고 아무리 알시클과 비교적 친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 경외심은 빛바래지 않았다·
알시클은 화를 내던 걸 참고 일단 물었다·
“어째서입니까?”
볼라디 교수가 저번 원정에서 있었던 일을 확신하고 자네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하고 있거든· 그럼 이만·
팟-!
해골 교장은 알시클에게 발목 잡히기 싫었는지 바로 사라졌다·
가르시아 교수는 혼자서 허둥대다가 말했다·
“그 그래도 괜찮을 거예요! 대신 혼자서만 돌아다니지 마세요!”
“···그냥 페트로가드에 있을 걸 그랬군···”
알시클은 깊게 후회했다·
내가 무슨 영광을 보려고 여기 돌아왔을까!
* * *
“와! 알시클이다!”
“악!”
알시클의 고난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터덜터덜 별장 안으로 들어가 중앙 계단을 올라간 알시클은 몇 번 본 적 있는 황금빛 눈동자의 소녀를 목격하고 기겁했다·
조우린 전하가 왜 여기 있단 말인가?
“알시클! 와이번 놀이! 와이번 놀이 하자! 어디 가느냐! 조우린이랑 놀자!”
“워다나즈! 워다나즈! 도와줘!”
그나마 이 용족을 말릴 수 있는 계약자인 이한을 찾아 알시클은 미친듯이 날개를 퍼덕였다·
얼음으로 계단 위를 덮어 지름길을 만든 뒤 쓩 내려가는 알시클을 보며 2학년 학생들은 감탄했다·
“대단한 마법이야·”
“귀엽기까지 하다니!”
알시클은 간신히 1층에서 이한을 찾을 수 있었다· 워다나즈는 다른 친구들과 모여서 떠들고 있었다·
“워다나즈! 전하가 날 죽이려고 한다니까!”
“예? 그 정도는 아닙니다· 무슨 호들갑을···”
이한도 와이번 놀이가 뭔지는 알았다·
알시클을 위로 던지면 알시클이 와이번처럼 퍼덕대는 놀이였다·
“인간 형태는 드래곤 형태보다 힘 통제가 더 어려운 거 몰라? 내가 천장에 박히는 게 보고 싶은 거냐? 그리고 그렇게 박히면 바로 볼라디 배그렉이 와서 날 찌르고 갈 걸·”
“···”
이한은 ‘에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에 알시클은 더욱 겁에 질렸다·
“아 아니라고 해줘야지· 왜 그러는 건데?”
“확실히 배그렉 교수님은 좀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기도···”
“···나 여기 좀 있는다·”
알시클이 사이에 끼어서 앉자 2학년 학생들이 단호하게 말했다·
“전리품에는 손대지 마세요·”
“전리품?”
“워다나즈가 도적들 요새 털고 전리품 갖고 왔거든요· 지금 경매중이었어요·”
“···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페트로가드에서 제법 시간을 낭비하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변화가 있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알시클 님· 응접실 문 좀 닫아주시겠습니까?”
“아· 조용한 곳에서 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알시클은 뒤뚱거리며 일어났다· 그러나 이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선배님 시선이 신경쓰여서요·”
“···”
그제야 알시클은 문 밖에서 유크벨티레가 우두커니 서있는 걸 알아차렸다·
경매가 끝나면 바로 1초의 시간 낭비도 없이 후배를 데리고 연구에 들어가려는 끈질긴 집념이었다·
아덴아르트는 창피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같은 자매인 걸 모두가 잊어줬으면 싶을 정도였다·
“들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하면 안 돼?”
“그건 저희가 싫은데요·”
“솔직히 선배가 부담스럽습니다·”
‘냉정한 자식들·’
알시클은 2학년 학생들의 차가운 반응에 전율했다·
냉기 마법 전문인 알시클이었지만 여기 에인로가드 2학년 학생들의 반응과 비교한다면 차라리 다루는 냉기가 따뜻할 정도였다·
“너희도 들으면 생각이 바뀔 거다· 자· 들어봐라·”
알시클은 유크벨티레의 여정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해골 교장 때문에 완벽한 방학 연구 계획이 무너졌다는 걸 깨달은 유크벨티레는 그 충격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반응했다·
-오 안 돼! 유크벨티레! 그런 사악한 대마법사 때문에 네 마법이 방해받을 줄이야· 차라리 내가 네 시종이 되어서 돕게 해줘!
친구가 자청해서 나섰지만 유크벨티레는 거절했다· 이건 친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잠깐· 시작부터 이상한데요·”
“왜?”
“친구면 디레트 선배 아닙니까? 디레트 선배가 저렇게 말할 사람이 절대 아닌데···”
이한이 아는 디레트라면 이렇게 말할 게 분명했다·
-뭐 어쩌겠어· 방학 때 못 도와주겠네· 교장 선생님한테 따지던가·
“그래? 하여간 난 이렇게 들었어·”
알시클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한은 노골적이고 뻔뻔한 왜곡에도 어쩔 수 없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비열한 사람이군· 자리에 없다고 저런 왜곡을·’
어쨌든 붙잡고 늘어지는 친구를 뿌리치고 나서 유크벨티레는 수도에 뒤늦게 도착했다·
이한이 일주일 먼저 출발한 만큼 아무리 빨리 날아와도 시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린 알다시피 페트로가드에 갔잖아·”
“그랬죠·”
“페트로가드는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재수 없는 녀석들도 많았지만·”
듣고 있던 친구들이 입을 열고 끼어들었다·
페트로가드를 방문했던 경험은 여기 에인로가드 학생들에게도 꽤 커다란 충격이었던 것이다·
“다행이군· 페트로가드 마법사들 말하는 거 보니까 교류회는 열릴 거 같더라· 에인로가드와 페트로가드 둘이서 하면··· 피타흐 축제인가·”
알시클은 기억을 더듬어가며 옛 이름을 떠올렸다·
제국 마법학교들의 교류회는 각자 다 이름이 있었다·
두 학교끼리 할 때 세 학교끼리 할 때 등등···
에인로가드와 페트로가드 둘이서 여는 대회 이름은 분명 <피타흐 축제>였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긴 이한이 물었다·
“에인로가드와 칼라로가드도 둘이서 교류회를 연 적 있었습니까?”
“응· 발푸르기스의 밤·”
“에인로가드와 발드로가드도?”
“어··· 분명 제국 마법학교 친목 교류회였지·”
“···”
“···”
갑자기 사무적이고 냉정한 이름이 나오자 학생들은 당황했다·
이한은 괜히 물어봤다고 후회했다·
“하여간 저기 황녀님이 뒤늦게 페트로가드에 도착한 거지·”
놀랍게도 유크벨티레는 페트로가드 마법사들과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하긴 그 학년과 실력을 생각해보면 교우 관계가 없는 게 더 이상했다·
“그래서 이야기하신 다음에 쫓아오신 겁니까?”
“아니· 페트로가드 마법사들이 꺼지라고 난리쳤지· 알다시피 에인로가드 부여 마법 학파하고 페트로가드 사이가 썩 좋진 않잖아·”
“···”
모르는데!?
이한은 황당했지만 불행히도 설명해 줄 사람이 없었다·
“소란이 벌어지길래 내가 나가서 말렸어· 서로 화해할 겸 마법 이야기도 나누고 아티팩트도 보여주고·”
알시클의 뛰어난 마법과 걸출한 경력 그리고 귀여운 외모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데에 탁월했다·
알시클이 나서서 중재하자 페트로가드 마법사들은 묵은 원한을 내려놓고 유크벨티레의 출입을 허락해줬다·
유크벨티레 또한 페트로가드 마법사들의 아티팩트들을 칭찬해줬고·
“오·”
“그래서 저기 황녀님이 너 어디 있냐고 물었고 먼저 갔다고 대답이 나왔거든?”
이한은 갑자기 불길함을 느꼈다·
훈훈한 분위기였는데 왜 불길함이 느껴지는 것일까?
“어떻게 됐습니까?”
“바로 페트로가드 마법사들 아티팩트 쓰레기라고 지적해서···”
“지적 안 했는데·”
밖에 서있던 얼굴이 보이지 않는 한 선배가 대꾸했다· 알시클은 무시하고 말했다·
“지적했어· 사실 말이 지적이지 원색적인 비난에 가까웠지·”
안되겠다 싶었던 알시클은 유크벨티레를 데리고 후다닥 빠져나왔다·
적의 영지에서 싸움이 일어나서 좋을 게 없었던 것이다·
“···어 근데 알시클 님· 들어보니까 알시클 님은 고생만 하신 것 같은데 용케 선배님 편을 들어주시네요?”
“누가 날 버리고 갔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불쌍해지더라고·”
“···유크벨티레 선배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이한은 재빨리 문을 열고 화제를 돌렸다·
* * *
“그래서 뭘 하면 됩니까?”
“이번 주에 도전할 건 이 두 마법의 융합이야·”
유크벨티레는 수십 장의 마법진 도면을 탁자 위에 늘어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 눈빛이 약간 이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두 마법을 융합시키는 건 결코 쉽지 않으니 각오하는 게 좋겠어· 구체적으로 현상금 사냥이나 다른 일들을 모두 다···”
이한은 대충 귓등으로 흘린 다음 중요한 도면을 챙겼다·
“잠시만요· 잠깐 좀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멈ㅊ···”
유크벨티레는 사악한 후배가 사악한 해골 교장한테 배운 사악한 도주를 시도하는 줄 알고 당황해서 허둥댔다·
그러나 의외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한은 돌아왔다·
“여기 마법진 새로 그려왔습니다· 기존 마법진은 좀 실수가 있다고 하시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