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1화
“에인로가드의 교수로서 멋대로 행동할 생각은 없습니다·”
“교수님!!”
볼라디 교수가 쐐기를 박듯 감동적인 선언을 하자 반신반의하던 가르시아 교수는 그대로 넘어갔다·
드디어 볼라디 교수도 에인로가드 교수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게 된 게 분명했다·
사람은 역시 제자가 생겨야···
더더욱 수상한데···
“···”
그러나 해골 교장은 옛 제자의 선언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과연 이 발언은 자신을 속이기 위한 속임수인가 아니면 정말 진심으로 에인로가드의 교수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애초에 이래서 진실을 밝히면 안 됐네· 서로 괴롭잖나·
‘그냥 서로 간에 믿음이 부족한 게 근본적인 원인 아닌가요?’
가르시아 교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해골 교장과 교수들 사이의 유대감 문제였다·
뭘 말해도 믿을 수 없으니 이 꼴이 나는 것 아니겠는가·
“배그렉 교수님을 좀 믿어주세요·”
믿네· 믿으니까 이러는 거지·
해골 교장은 볼라디 교수를 매우 신뢰했다·
볼라디 교수는 자신을 속이고 몰래 악신 교단 사냥에 돌입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믿음이 아니거든요!”
이것도 믿음이지· 흥· 자네처럼 무작정 아끼기만 하는 게 믿음인지 아나?
둘이 투닥대자 조용히 기다리던 볼라디 교수가 입을 열었다·
“애초에 워다나즈를 감시에 투입하지 않으셨으면 됐을 것 같습니다만·”
“!”
어라?
그런가?
가르시아 교수는 순간 설득됐다·
그냥 볼라디 교수를 믿고서 괜히 제자를 투입시키지 않았다면 교수도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꾸 적에게 넘어가지 말라니까·
“적··· 과연 적은 누구일까요?”
벌써 반쯤 넘어갔군· 귀는 참 얇아가지고· 워다나즈가 감시 안 하면 누가 감시하나? 제자가 한 명밖에 없는데·
“두 명이에요·”
“두 명입니다·”
···그래· 두 명· 잊고 있었네· 하지만 신입생은 이런 일에서 없는 셈 쳐야지· 자네가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었나? 응?
“그러니까 애초에 서로 간에 믿음이···”
시끄럽네· 하여간 볼라디 교수· 앞으로 지켜보겠어·
‘왜 들킨 사람이 더 당당한 거지?’
가르시아 교수는 으름장을 놓는 해골 교장의 모습에 황당해했다·
자꾸 저러면 멋대로 행동할 생각이 없는 사람도 비뚤어질 것 같았다·
설마 그런 다음에 ‘내가 맞았네!’라고 하는 건 아니시겠지?
“엇· 교수님?”
이빈타를 데리고 요새를 수색하던 이한과 지젤은 새 손님들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볼라디 교수나 가이난도는 그렇다 쳐도 해골 교장과 가르시아 교수가 있다니?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
“글쎄요· 어떤 학생이 도적들의 지하 요새를 혼자서 공략한다고 연락이 와서 아닐까요?”
가시 돋친 교수의 말에 이한은 지젤을 쳐다보았다· 도와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젤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걸 어떻게 도와주겠어· 알아서 극복해라·’
‘비열한 자식 같으니· 역시 흰 호랑이 탑이다·’
이한이 말도 안 되는 원한을 품고 있는 사이 가르시아 교수는 이어서 말했다·
“참· 저번에는 차원 공허 괴물을 수색하는 원정에도 참가했다면서요?”
“···!”
그 말에 이한은 충격과 공포가 섞인 시선으로 해골 교장을 쳐다보았다·
이런 배신자 같으니!
“교장 선생님이 시키신 겁니다!”
···반응이 빠른 건 훌륭하지만 그것도 이미 말했다·
“아니· 그걸 왜 말하시는 겁니까?”
이야기하자면 길어진다· 그 놈은 왜 데리고 다닌 거냐?
“아· 여기 도적단 두목인데 수색에 협조하고 있었습니다· 그··· 있잖습니까·”
이한은 볼라디 교수를 의식하며 손짓했다· 해골 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귀로스 교단도 이미 말했다·
“대체 뭡니까?!”
황당함에 이한은 폭발했다·
자기가 볼라디 교수 걱정된다면서 남몰래 일을 맡겨놓고 다 말하다니·
나도 말하고 싶어서 말한 게 아니다· 여기 이 녀석이 나불나불대서 그런 거지·
“!”
그제야 이한은 상황을 깨달았다·
볼라디 교수한테 이상한 점을 깨닫고 나불나불 말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아차· 가이난도구나···!”
“뭐? 무슨 소리야 그게?”
옆에 있던 지젤은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이한은 체념한 얼굴로 설명했다·
“가이난도가 역시 수상하게 생각했나봐· 그래서 배그렉 교수님한테 말한 거지·”
“···말도 안 해줬는데 저 황자가 알아냈다고?!”
지젤은 경악했다·
심지어 자신도 헛발질을 했는데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황자가 맞췄다니·
이건 진상을 떠나서 굴욕적이기까지 했다·
“잠깐· 이한· 나만 말 안 해준 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가이난도는 발끈했다·
심지어 흰 호랑이 탑 학생도 들었는데!
‘이건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지?’
지젤은 갑자기 흥미를 느꼈다·
워다나즈가 푸른 용의 탑 학생들을(그리고 가끔은 다른 탑 학생들도) 수족처럼 잘 통제하고 있긴 했지만 이번 황자가 느낀 배신감은 심상치 않아보였다·
혹시 탑 내부 질서에 균열이라도 일어난다면···
“넌 워낙 정직하잖냐· 가이난도· 말해주면 들킬 것 같았지·”
“그치? 하긴 그건 그래·”
“···”
지젤은 믿을 수 없는 멍청이를 보는 눈빛으로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뭐 저런···?
‘저딴 말에 넘어간다고?!’
흰 호랑이 탑 학생들도 저러진 않았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데 저 놈은 왜 저렇게 겁을 먹었지?
“요새가 이 꼴이 났는데 겁을 안 먹는 사람이 있나요?”
그걸 넘어선 두려움인데?
해골 교장은 의아해했다·
이빈타의 눈동자 속에 너무 진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히에르단 형님한테 당한 적 있답니다·”
“당 당한 게 아니라··· 말은 똑바로 해다오· 제발· 그냥 목격한 거지· 나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으셨다·”
이빈타는 황급히 말을 수정했다·
당하지도 않았는데 당했다고 했다가 보복당할까봐 겁을 먹은 것이다·
해골 교장은 바로 납득했다·
저렇게 겁먹은 걸 보니 워다나즈를 만난 게 맞나보군·
“히에르단 님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분은 아니지 않아요?”
가르시아 교수의 질문에 해골 교장은 매우 불쾌하다는 듯이 해골을 흔들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놈이 얼마나 음험하고 비열한데? 틈만 나면 사람을 조종하려는 녀석이다·
“···”
“···”
“···”
가르시아 교수 이한 그리고 심지어 볼라디 교수마저 해골 교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제자들이 보내는 무언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해골 교장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은 언제나 떳떳했기 때문이었다·
가르시아 교수는 해골 교장이 흔히 하는 음해라고 생각하고 말했다·
“말이 나온 김에 히에르단 님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나요?”
제국의 여러 대마법사 중 워다나즈 가문의 장남이라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해골 교장은 회의적이었다·
아직 준동도 안 한 놈들 가지고 불러봤자 대답도 하지 않을 거다· 가주를 똑 닮은 녀석이라··· 그보다 여기 있는 놈이나 잘 활용해보도록 하지·
해골 교장은 푸른 안광을 내뿜으며 이빈타를 쳐다보았다·
꽤 발이 넓은 도적놈 같으니 이번 악신 교단을 뿌리 뽑을 때까지 제법 쓸만한 말이 되어줄 것 같았다·
“충···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놈· 고분고분한 점은 좋구나· 앞으로도 부디 그러길 빈다·
“여 여기 마법사 님의 명령을 받아서 움직이면 됩니까?”
이빈타는 은근히 이한 밑에서 움직이고 싶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해골 교장은 신기해했다·
히에르단한테 그렇게 데인 놈이 워다나즈 가문 마법사 밑에서 움직이고 싶어하다니?
물론 가르시아 교수가 좀 무섭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만 옆에는 볼라디 교수도 있지 않은가·
워다나즈 너 뭘 한 거냐? 히에르단이 죽이러 오면 살려주겠다고 약속이라도 했느냐?
“아뇨· 그냥 여기 요새를 관리하는 일에 대해서 듣기만 했습니다만·”
···
해골 교장은 참 별종도 다 보겠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차라리 히에르단처럼 공포를 주는 게 더 평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저렇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산전수전 겪은 도적놈을 구워삶다니···
대체 워다나즈 가문에서 어쩌다 저런 녀석이?
“교수님· 교수님·”
이한은 재빨리 볼라디 교수에게 접근해서 속삭였다·
아무리 해골 교장의 명령이 있었다지만 조금 찔렸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괜찮다·”
‘어떤 괜찮다지?’
스승의 대답에 이한은 멈칫했다·
같은 ‘괜찮다’도 해골 교장이 하는 ‘괜찮다’가 있고 가르시아 교수가 하는 ‘괜찮다’가 있는 법·
만약 방금 대답이 전자라면 볼라디 교수의 진노를 풀기 위해 고민을 좀 해봐야 했다·
방법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지만···
‘5서클 마법을 두세개는 더 익혀가야 할지도·’
“원래 제자는 스승에게 숨기는 게 있을 수밖에 없지·”
볼라디 교수는 선뜻 말을 이어나갔다·
제자는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깨뜨린 뒤 새로운 가르침을 만들어가기 마련이었다·
당연히 과정에서 모든 걸 스승에게 알릴 수 없었다·
그렇지? 자네도 드디어 염치를 깨달았군· 자네가 내 속을···
“제발 좀 조용히 하세요·”
해골 교장이 의기양양하게 끼어들려고 하자 가르시아 교수가 질색하며 말렸다·
왜 남의 사제(師弟) 관계를 망치려고 한단 말인가·
“지나치게 위험한 것만 아니라면 상관하지 않는다· 정말로 괜찮다·”
평소 감정을 읽기 힘든 스승이었지만 이한은 볼라디 교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해골 교장처럼 악랄하게 괜찮다고 말하면서 뒤로는 복수의 칼날을 가는 그런 함정이 아니었다·
“교수님···!”
이한은 다시 한 번 해골 교장을 속으로 탓했다·
이렇게 대화를 하면 통하는 상대를 의심하다니·
“정말 전혀 화나지 않으신 거죠?”
“···”
볼라디 교수가 잠깐 침묵하자 좌중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해골 교장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외쳤다·
하!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바로 복수하러 갈 생각이었어!
“설 설마 그럴 리가요· 아니죠? 교수님? 아니라고 해주세요·”
가르시아 교수는 당황해서 물었다·
“아니· 복수하러 가실 거면 여기서 이렇게 안 밝히셨겠죠·”
“그러면··· 혹 혹시 저한테 화나셨나요??”
뒤늦게 가르시아 교수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해골 교장과 손을 잡고 제자를 위험한 일에 떠민 사람 아닌가·
그러나 볼라디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해골 교장은 툴툴댔다·
나한테 또 화났겠지· 자네는 염치란 게 없으니·
“아닙니다·”
···아니라고?
해골 교장은 살짝 당황했다· 당연히 자신일 줄 알았던 것이다·
혼란스러움에 해골 교장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가이난도가 헉 소리를 내뱉었다·
‘난가?!’
“알시클 펭에린입니다·”
아·
“아·”
그제야 사람들은 납득할 수 있었다· 해골 교장은 괜히 걱정했다는 듯이 넘겼다·
쓸데없는 이야기였군·
“아 아니· 이러면 알시클 님이 위험한 거 아닙니까?”
이한은 혼자 걱정했다·
안 그래도 저번에 볼라디 교수의 습격을 걱정했었는데 그게 진짜였다니?
안 보이잖나? 알아서 잘 숨어있나 보군·
“···”
“···”
이한과 가르시아 교수는 시선을 교환했다·
굳이 따진다면 숨어있다고 할 수 있긴 한데···
“괜찮은 거 맞습니까?”
“음· 바로 안 돌아오시는 거 보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요· 방학 끝날 때까지만 안 만나면 학기 때는 자연스럽게 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 * *
“저 왔습니다·”
“악!”
“으악!”
“···두고 온 주제에 너무 심한 거 아니냐?”
가르시아와 이한의 반응에 별장 앞에 서있던 알시클은 살짝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페트로가드에 에인로가드 학생이 찾아왔길래 만나서 같이 왔습니다·”
슥-
알시클 뒤에서 낯익은 에인로가드 5학년 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 머리칼이 인상적인 아덴아르트의 언니이자 에인로가드 부여 마법 학파의 후계자인 유크벨티레였다·
유크벨티레는 원독 어린 눈빛으로 해골 교장을 쳐다보았다· 평소에는 정말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아!
해골 교장은 뒤늦게 떠올렸다·
내가 선약 있는 워다나즈 녀석을 빼돌렸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