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0화
“그러면 이빈타· 다음 질문에 대답하도록· 도적들 중 최근 수상하게 행동한 놈들이 있었나? 참고로 수상한 행동이란 건 이런 행동들을 의미한다· 자꾸 피를 찾거나 쓸 곳이 있다면서 살코기를 숨기거나···”
‘없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이빈타는 이를 갈았다·
제국에 돌멩이만큼 널린 게 도적단인 만큼 워다나즈 가문의 마법사가 도적 우두머리를 무시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빈타는 스스로의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제국 수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런 지하 요새를 꾸리고 유지하는 게 그리 쉽지 않은 것이다·
애초에 도적단이란 건 기사단처럼 철저하게 규율이 잡혀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 도적들은 욕심을 채워주지 않으면 금세 이탈하거나 뒤통수를 쳐댔다·
이런 쓰레기들을 휘어잡고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감시와 의심이 필수적이었다·
‘···참자·’
이빈타는 화를 내는 대신 조곤조곤하게 이치를 설명했다·
상대의 가문만 생각하면 분노도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새 내부에서 악신숭배자가 있었다면 내가 금방 알아차렸을 거다· 못 믿겠다면 안에 널브러진 놈들의 뱃가죽을 들어내서 확인해보던가·”
상대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행동하자 이한은 지젤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너무 감정적인 것 같지 않나?”
“자기 부하들하고 요새가 다 박살났으면 누구든 저러겠지·”
‘자기도 같이 했으면서 남일처럼 이야기하다니·’
이한은 속으로 투덜댔다·
물론 목적을 제시하거나 직접적 수단을 소환한 건 이한이 하긴 했지만···
“알겠다· 이빈타· 나머지는 직접 확인해보도록 하지· 말 안 듣는 부하들을 관리하느라 고생이 많았겠군·”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나도 말 안 듣는 놈들 다뤄봐서 아는데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
지젤은 떨떠름한 눈빛을 던졌다·
혹시 그 말 안 듣는 놈들이 흰 호랑이 탑은 아니겠지?
“도적놈들이 말을 더럽게 안 듣긴 했지· 애초에 키타렌아눔 그 놈을 받은 것도 다른 놈들이 황금을 탐내서였다· 나는 그 놈을 별로 받고 싶지 않았는데···”
“이해해· 이해해· 하여간 욕심은 더럽게 많다니까·”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빈타는 이상하게 설득되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눈앞의 마법사가 자신을 알아주는 것 같다는 기분까지 같이 들 정도였다·
‘뭐지?’
이빈타는 혼란스러워했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정신 계열 마법에라도 당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워다나즈 가문 출신의 괴물한테 이런 기분이 들 리가···
* * *
이럴 줄 알았다!
‘알았으면 말리셨어야죠·’
가르시아 교수는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지금 둘은 소식을 듣고 다급히 현장으로 날아온 상태였다· 아무리 제자를 믿고 맡긴다지만 지하에 자리 잡은 규모 있는 도적단을 토벌하는 건 예상을 벗어난 것이다·
“이한 학생이 다치기라도 하면 다 교장 선생님 탓이에요·”
글쎄 그것보다는 다른 걸 걱정해야 할 텐데·
“네?”
정말 모르는 건가 가르시아 교수?
해골 교장은 가르시아 교수의 반응에 황당해했다·
아무리 제자에 대한 애정 때문에 눈이 어두워졌다지만 이렇게 편협하게 바라볼 줄이야·
당연히 주변 피해를 걱정해야지! 워다나즈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죽여 버릴 수 있는 수단을 적어도 네다섯 개는 갖고 있는데!
전투에 절대란 건 없는 만큼 워다나즈도 방심하면 다칠 수 있었다·
그리고 적의 준비가 정말 잘 되어 있다면 궁지에 몰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위험한 건 워다나즈가 아니라 도적들이었다·
평소 통제하지 못해서 쓰지 않는 마법들을 이판사판으로 꺼내놓기라도 하면···
“아 아니· 이한 학생이 학년에 비해서 많이 강력하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과신하시는 거 아니세요?”
제발 페르쿤트라 제발 페르쿤트라 제발 페르쿤트라··· 오! 행운의 해골이 내 편을 들어주는군!
폐허에 도착한 해골 교장은 반색했다·
다행히 똑똑한 제자가 꺼낼 수 있는 수단 중 가장 온건한 수단을 꺼낸 것이다· 이 벼락쟁이는 쓸데없는 피해를 사방으로 난사할 성격이 아니었다·
만약 만마의 팔찌 같은 걸 써서 갇혀 있던 악마라도 불렀다면 지하 요새를 넘어 인근 숲이나 가도까지 반파됐을 수도 있었다·
“빨리 들어가자니까요!”
보게· 가르시아 교수· 누가 봐도 정령이 휩쓸고 갔군·
해골 교장은 지표면 위를 가리켰다· 지상에서도 이렇게 강력한 번개의 흔적이 보이는데 지하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지 뻔히 알 수 있었다·
“오시기나 하세요· 앗· 이 구멍 누가 뚫어놓은 거지?”
워다나즈가 뚫어놨겠지·
“아뇨· 이한 학생의 방식은 아닌데요· 이런 소환수가 있었나?”
새로 힘으로 굴복시켰겠지·
“···”
가르시아 교수는 저 말에 강하게 반박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살짝 싫어졌다·
“배그렉 교수님은 왜 안 보이시는 거죠?”
불길하군·
“제가 그러게 불길하다고 했잖아요! 빨리 이한 학생 위치나 찾아주세요!”
워다나즈가 불길하단 게 아니라··· 워다나즈는 아주 멀쩡해· 그러니 진정하게· 오히려 볼라디 교수의 위치가 불길하군·
해골 교장이 불길하다고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원래 해골 교장이 기대한 상황은 이한이 요새를 쓸어버리고(최대한 주변 피해는 덜하게) 볼라디 교수가 그런 제자를 뒤늦게 혼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도착해서 마법으로 훑어보니 이한은 지하 요새 서쪽에서 웬 도적놈과 같이 돌아다니고 있고 볼라디 교수는 가이난도를 데리고 요새 동쪽의 폐쇄된 구역을 하나씩 빠르게 수색하고 있었다·
‘이 놈· 설마 들킨 거 아니야?’
해골 교장은 살짝 불안해졌다·
워다나즈가 거짓말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긴 했지만 아직 무른 부분들이 있었다·
만약 자기 스승에게 비밀을 감추는 게 죄책감이 들어서 실수라도 저질렀다면···
볼라디 교수!
해골 교장은 일단 볼라디 교수한테 먼저 날아갔다· 위화감의 정체부터 파악해 볼 생각이었다·
“헉 헉헉··· 교장 선생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볼라디 교수의 뒤를 비틀거리며 쫓아가던 가이난도는 가쁜 숨을 내쉬며 항의했다·
도둑놈들에게 공격이라도 당했느냐? 볼라디 교수가 그럴 사람은 아닌데·
“아뇨! 힘들어서요! 아까부터 교수님이 안 쉬고 계속 돌아다니고 계신다고요!”
해골 교장은 가이난도의 배짱에 감탄했다·
아무 상관도 없는 문제를 저렇게 당당하게 따질 수 있다니·
에인로가드 5학년 학생들도 쉽게 보이기 힘든 용기였다·
무슨 일이지 볼라디 교수? 왜 이렇게 따로 돌아다니고 있나?
“교수님은 악신숭배자의 흔적을 찾고 계세요·”
···
“···”
별 생각 없는 가이난도의 대답에 해골 교장과 가르시아의 안색이 돌변했다·
아니?
악신숭배자라니? 크삭사리골 교단이라면 잊어버리게· 볼라디 교수· 저번 참가는 실수였다니까·
“무슨 참가요?”
가르시아 교수는 미심쩍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크삭사리골 교단에 참가라니 저번에도 그렇고 뭔가 이상했다·
분명 이한과 해골 교장은 ‘완전 크삭사리골이었잖아요’같은 말로 넘겼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자가 크삭사리골 교단과 엮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혹시?
“크삭사리골 교단이 아니에요·”
가이난도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대신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의 예리한 추리를 늘어놓았다·
최근에 이한이 자꾸 악신숭배자를 찾고 있는 것 같은데 프라흐갈도 크삭사리골도 아니고···
“···”
···
가르시아 교수와 해골 교장은 정말로 경악했다·
아니????
“교 교장 선생님· 어떡하죠? 가이난도 학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놀랍지만 나도 그렇다·
설마 황자한테 들통이 날 줄은 몰랐던 만큼 둘의 충격은 더더욱 컸다·
정체까지는 들키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저것만 보면 시간문제였다·
“짐작가는 게 있는 모양이오· 가르시아 교수·”
“앗 네? 그게 어 음·”
볼라디 교수가 무뚝뚝하게 말을 걸어오자 가르시아 교수는 횡설수설했다· 해골 교장은 재빨리 뒤로 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권위에 약한 가르시아 교수의 성격상 내버려두면 선배 교수의 심문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아는 걸 알려준다면 나도 정보를 공유하겠소·”
“어··· 어떤 정보요?”
“현재 가르시아 교수가 크삭사리골 교단에 대해 갖고 있는 의문에 대한 정보·”
“····”
가르시아 교수는 순간 넘어갈 뻔했다·
저번부터 자꾸 이한 학생과 해골 교장이 개수작질을 부리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답을 알려준다는 말인가?
가르시아 교수! 적에게 넘어갈 셈인가?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르시아 교수의 눈빛은 교활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해골 교장은 한숨을 쉬며 항복했다·
알겠네· 알겠어· 차라리 먼저 말해주도록 하지· 사실 이번 방학 때 차원 밖 공허에서 온 괴물을 사냥하는 원정대가 조직되었었네·
“거기 이한 학생이 참가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시죠? 제발 아니라고 해주세요·”
참으로 불운한 비극이었어·
“아니라고 해달라니까요??”
이 비극의 책임은 첫 번째로는 펭에린 놈에게···
“···”
참가했구나!
가르시아 교수는 직감했다· 가이난도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항의했다·
“어쩐지 이한이 귀찮다고 안 놀러가더니 그거 때문이었어요?!”
아니· 워다나즈가 너와 같이 놀러가기 싫어하는 건 네가 맨날 지는 마법사 카드 덱만 고집하는 고집불통의 멍청이라서 그런 거고·
“···”
심술이 잔뜩 난 해골 교장은 가이난도의 세상을 한 번 으깨버린 다음 마저 변명했다·
과정 도중 이런저런 자들과 접촉했고 그 중에는 크삭사리골 교단도 있었던 거지· 하지만 다 잘 끝났으니 참으로 복된 일 아니겠나? 가르시아 교수· 투서 집어넣게· 우리 이러지 말자고·
“폐하 앞에서 그렇게 지껄여보시죠·”
그리고 볼라디 교수· 이것도 다 자네를 위해서 한 일일세· 그건 가르시아 교수도 동의할 걸·
“어··· 음··· 그··· 그건 그렇긴 해요·”
가르시아 교수는 우물쭈물하며 볼라디 교수의 시선을 피했지만 뜻을 꺾지는 않았다·
솔직히 악신의 이름을 들으면 볼라디 교수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전혀 알겠다는 표정이 아니잖나···
‘어떻게 표정 구분을 하시는 거지?’
가르시아 교수는 속으로 살짝 신기해했다·
겉으로 보면 똑같은 무표정인데 해골 교장은 대체 어떻게 알아차리는 것일까?
상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 같자 해골 교장은 결국 포기하고 선언했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겠군· 진실을 말해주도록 하지· 대신 맹세하게· 멋대로 행동하지 않겠다고·
볼라디 교수는 즉시 맹세했다·
에인로가드 교수로서의 명예도 걸고 맹세하게·
볼라디 교수는 다시 한 번 즉시 맹세했다·
제자도 걸고 맹세해·
“···언제까지 하시는 거예요?”
저렇게 고분고분하니까 오히려 더 수상하잖나!
가르시아 교수는 해골 교장의 말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가르시아 교수나 워다나즈를 붙여서 감시해도 순순히 받아들이게·
“알겠습니다·”
젠장· 가르칠 제자가 없었으면 그냥 징벌방에 한동안 가둬놨을 텐데·
해골 교장은 푸념하더니 진실을 밝혔다·
생귀로스 교단이 부활했고 추종자들이 목격되고 있다고·
···워다나즈는 우리 명령을 들은 거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 말게·
“우리요?”
···내 명령· 됐나? 응? 가르시아 교수 지금 그게 정말 중요한가?
둘이 다투는 사이 볼라디 교수가 묵묵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다시 돌아온 즉답에 해골 교장과 가르시아 교수는 매우 괴로워했다·
심지어 가이난도마저 옆에서 속삭일 정도였다·
“저거 거짓말 아니에요?”
조용히 해라· 이 마법사 카드의 패배자 녀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