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4화
당연히 가이난도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칭얼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흑흑흑·”
“그만 칭얼대· 황자· 좋아서 와놓고 이제 와서 왜 그러는데·”
지젤은 뒤에서 푸른 용의 탑 친구를 타박했다·
자기도 좋아서 와놓고 갑자기 저러는 걸 보면 저 황자는 겁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누가 좋아서 왔···! 크흑· 좋아서 온 거 맞아·”
해명하려던 가이난도는 이한의 조용히 하라는 시선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니까 그만 칭얼대라고·”
“···”
가이난도는 속으로 생각했다·
해골 교장과 같이 웃은 게 이렇게까지 벌을 받아야 한 죄였을까?
‘···아니· 죄가 맞긴 해···’
생각해보니 매우 기분 나쁜 죄가 맞았다· 가이난도는 새삼 반성했다·
그래도 억울한 점이 있다면 해골 교장 본인은 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
“차라리 교장 선생님도 같이 왔어야 했는데·”
‘미쳤나?’
지젤은 경악의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가이난도를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그래서 누굴 잡으시려는 겁니까?”
이한은 볼라디 교수에게 물었다·
일단 따라가는 만큼 잡으려는 상대가 누군지 궁금한 게 당연했다·
그리고···
‘악신 교단 관련자인지도 확인해야 하고·’
아직 교수가 눈치 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세상일에 절대란 건 없는 법·
은밀하고 교묘하게 감시를 계속해야 했다·
“마법사다·”
“!”
이한과 지젤은 놀란 눈동자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리고 동시에 말했다·
“에인로가드 출신이군요·”
“아니다·”
“···”
“···”
이한과 지젤은 ‘너 때문에 속았잖아!’의 눈동자로 시선을 교환했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가이난도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마법사라고만 하셨는데 왜 에인로가드 출신이라고 한 거야?”
“···그러게 말이다·”
“묻지 마· 황자·”
“???”
가이난도가 눈을 끔벅이는 사이 볼라디 교수는 현상금이 걸린 수배범에 대해 설명했다·
드워프 마법사 토만은 제국의 비(非) 마법학교 출신 마법사의 전형적인 경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모험가로 지내다가 우연히 주운 유물에서 마법을 얻고 그 마법의 힘에 취해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점점 더 타락해나가는···
‘음·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하고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이한은 남몰래 속으로 생각했다·
제국의 마법학교 출신 마법사들은 흔히들 ‘교육 받지 않고 독학한 마법사는 위험하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교육 받는다고 해서 덜 위험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교육 받은 덕분에 더 체계적으로 위험하게 사고를 치는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 저 토만은 마법범죄자라고 불리지도 않았다· 저 정도 마법사는 제국에서 그냥 잡범 취급이었다·
“그런데 여러 수배범 중에 이 마법사를 굳이 고르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이한은 슬쩍 물었다·
그러면서 수배서를 힐끗 쳐다보았다· 혹시 사악한 악신 숭배 기록이라도 있나 싶었던 것이다·
‘교수님이 고른 것 치고는 지나치게 평범한데?’
걸린 금화가 수십 닢도 안 됐고 딱히 위험천만한 놈도 아니었는데(가문 묘지에서 시체를 훔친 죄와 서부 목장에서 말 14마리를 훔친 죄가 전부였다) 볼라디 교수가 고르다니·
이한이 알아차리지 못한 내막이라도 있는 것일까?
“현재 수도에 있다·”
“?!”
이한은 물론이고 지젤도 놀랐다·
아무리 볼라디 교수가 뛰어난 마법사라지만 수배범의 위치까지 꿰고 있을 줄이야?
“뭐지? 현상금 사냥꾼한테는 저런 방법도 있나?”
“아 아니· 저런 건 들어본 적 없어· 혹시 배그렉 교수님이 다른 현상금 사냥꾼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있는 것 아니야?”
이한의 질문에 지젤은 추측했다·
북부에는 온갖 종류에 현상금 사냥꾼들이 들락날락했지만 저렇게 보지도 않고 위치를 맞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모라디· 그건 말도 안 돼·”
“어째서지?”
“배그렉 교수님이 그렇게 교우 관계가 넓을 리 없어·”
“···”
지젤은 이한이 농담을 하나 싶어서 쳐다보았다·
그러나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은 매우 진지했다· 농담을 하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예지 마법 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예지 마법으로 저걸 찾아내는 건···”
예지 마법은 만능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찾고 싶다면 걸맞은 단서와 실마리들이 있어야 했고 그런 게 없다면 난이도는 미친듯이 올라갔다·
만약 필요한 만큼 단서와 실마리를 모은다면?
그럴 때는 그냥 그걸로 쫓는 게 더 편했다· 예지 마법처럼 고난이도의 마법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당장 에인로가드만 해도 적합한 학생들을 예지하기 위해 영지 단위의 대마법을 쓰지 않았던가·
뛰어난 예지 마법사일수록 마법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교수님은 그런 제약들을 우회할 방법을 찾아낸 게 분명해· 그렇지 않습니까 교수님? 예지 마법으로 찾아내신 거죠?”
제자의 신뢰 가득한 질문에 볼라디 교수는 짧게 대답했다·
“아니· 다른 사냥꾼들에게 정보를 얻었다·”
“···”
“야·”
* * *
드워프 마법사이자 현상금이 걸린 수배범인 토만은 수도 남쪽 성문 근처에 위치한 허름한 여관에 묵고 있었다·
남쪽 성문은 떠돌이 모험가나 용병들이 북적거릴 만큼 많이 오고 가는 곳이었고 덕분에 수배범이 숨어 있어도 그리 티가 나지 않았다·
똑똑똑-
“누구야?”
“식사 가지고 왔습니다·”
“문 앞에 놓고 꺼져!”
토만은 까칠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떻게 보면 수상하게 느껴질 법한 반응이었지만 종업원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여기 여관에서는 저렇게 반응하는 손님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방값과 식사값만 미리 지불해놓으면 구석에서 죽어있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다·
“젠장· 쩨쩨하고 인색한 놈들· 시체 좀 훔쳤다고 추격대를 보내다니···”
토만은 수많은 선배 흑마법사 범죄자들이 먼저 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언데드 계열 흑마법의 연습에는 시체가 더 정확히는 질 좋은 시체가 필요했다·
시체가 생전에 갖고 있던 강력함이 언데드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체는 당연히 비쌌고 대부분은 돈을 줘도 구하기가 힘들었다· 어떤 미친 기사 가문이 금화에 가족 시체를 팔겠는가·
흑마법의 발전을 위해 토만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한밤중에 기사 가문의 묘지에 침입해 시체를 훔치는 것이었다·
슬프게도 기사 가문은 토만을 이해해주지 않았고 신고하는 걸로도 모자라 독자적으로 추격대까지 조직해서 보냈다·
제국의 병사들에게 잡히면 그나마 다행이었고 추격대한테 잡히면 그냥 목이 뎅겅 잘려나간 뒤 야산에 시체가 버려질 가능성이 높았다· 토만은 투덜대며 나무로 된 창을 당겨서 연 뒤 아래 길가를 쳐다보았다·
‘기사 같아 보이는 놈은 없겠지?’
똑똑똑-
“···누구야?!”
종업원이 방금 식사를 놓고 갔는데도 누군가 문을 두드리자 토만의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졌다·
토만은 한손에는 지팡이 다른 손에는 쇠뇌를 들고 주문을 외울 준비를 했다·
만약 싸움이 벌어지면 토만이 현재 쓸 수 있는 가장 사악하고 강력한 흑마법 <뼈 화살 발사>를 시전할 생각이었다·
이 뼈에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독 시약을 넣어놓은 만큼 그 위력이 한층 더 지독했다·
‘누구든 들어오기만 해봐라·’
“옆방에서 묵는 사람이다·”
“···뭐? 어쩌라고?”
“잠깐 문 좀 열고 대화하지· 토만· 제국에 신고하면 너도 곤란해질 텐데?”
“!!!”
드워프 마법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여관에 들어와서 딱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다니?
‘이 놈···!’
기선을 제압한 상대는 달래듯 말을 이어나갔다·
“토만· 널 신고하려는 게 아니다· 같은 제국 수배범으로서 제안할 게 있어서 이러는 거다·”
“제안할 게 있다고?”
“그래· 문 열어라· 무기는 내려놓고· 실수로라도 발사하면 나도 네 목숨은 보장 못 해준다·”
“···”
고민하던 토만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놀랍게도 앞에 서있던 건 이 여관의 마구간을 관리하는 늙수그레한 종업원이었다·
평소 손님의 탈것을 쩔쩔매며 관리하던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놈이 이런 협박을 할 줄이야·
토만은 당황해서 물었다·
“너··· 너· 여기 여관에 들어왔을 때 본 적 있어· 이름이 뭐였지? 종업원이 아니었나?”
“이름은 중요하지 않지· 직업 또한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건 진정한 믿음뿐이다·”
‘악신숭배자!’
순간 토만의 머릿속에 단어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이런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닐 놈들은 제국에서 악신숭배자밖에 없었다·
“···뭐야· 어느 교단 소속이야?”
“그건 알려줄 수 없다· 토만· 아직 너는 자격이 없거든·”
늙은 종업원은 형형한 눈빛으로 말했다·
“자격 같은 소리 지껄이고 있군· 누가 들어가고 싶어한대?”
“과연 그럴까? 솔직히 말해봐· 토만· 쫓기는 거에 지치지 않나? 보호해줄 길드도 공방도 마탑도 없이 혼자서 시약을 찾는 게 지겹지는 않고?”
“···”
토만은 살짝 흔들렸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제국에서 도망자의 신분인 마법사는 마법에 전념할 여유가 없었다·
악신숭배자들은 꺼림칙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못 이용할 것도 없었다·
놈들의 도움만 받고 적당히 도망쳐도 되는 것 아닌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자· 토만· 이걸 받아라·”
늙은 종업원은 기묘하게 깎여진 작은 목상(木像)을 던졌다· 흉측하고 징그러운 게 신보다는 괴물처럼 보였다·
“여기에 제물을 바치고 기도해봐라· 그럼 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다·”
“하·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토만은 코웃음을 쳤다·
제국 사람들 중 어렸을 때 신전 가서 기도 한 번 안 해본 사람은 드물었다·
그리고 그런 기도 중에서 효과를 본 사람은 더더욱 드물었고·
도망치느라 한 푼이 아까운데 무슨 악신한테 제물을 바친단 말인가?
“기도 같은 걸로 낭비할 시간은 없다· 이런 소리를 할 거면 꺼져라!”
“토만· 내가 모시는 신께서는 이렇게 불리신다· 공정한 섭정관이라고· 이 뜻이 뭔지 아나? 절대 제물을 무시하시지 않는단 말이다· 한 번 해봐라· 후회하지는 않을 테니· 그리고 생각이 바뀌면 날 찾아오도록·”
종업원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원래라면 무시했을 토만이었지만 그 깔끔한 태도가 역으로 마음을 흔들었다·
저런 태도는 정말 자신이 없다면 나오기 힘든 것이다·
“···”
토만은 시약주머니를 뒤져 큼지막한 몬스터의 간을 꺼냈다· 그리고 목상을 잡고 진지하게 기도했다·
“!!!”
순간 토만은 차오르는 마력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눈을 뜨고 보니 마치 목상이 불길하게 미소짓는 것 같았다·
토만은 홀린 듯 목상을 쳐다보았다· 목상이 마치 ‘더 갖고 와라’하고 속삭이는 듯했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유혈이 낭자한···
똑똑똑-
“뭐야?!”
오늘 세 번째로 문을 두드리자 토만은 신경질이 폭발했다·
자꾸 왜 두드린단 말인가?
“손님! 아래 주방 화덕에서 불이 났습니다!”
원래 토만이었다면 이런 말을 들었으면 수상하게 여기고 일단 창문 밖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악신과의 첫 거래 때문에 판단력이 무뎌진 상태·
토만은 무심코 문을 열어버렸다·
“뭐 대단한 걸 끓인다고 불이··· 헉!”
“!”
토만이 놀란 것처럼 이한과 친구들도 놀랐다·
볼라디 교수는 상대가 창문 밖으로 도망칠 거라고 예측했던 것이다·
‘아니?’
퍽!
토만의 머리통과 명치에 공격이 들어왔다· 이한은 지팡이로 지젤은 검집째로 공격을 가했다·
기습을 당한 연약한 드워프 마법사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깜 깜짝 놀랐다···!”
이한은 상대가 쓰러지고 나서야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가이난도는 속으로 생각했다·
‘놀란 것치고는 너무 침착하게 두들겨 패던데·’
이게 놀란 거라면 안 놀랐을 경우 어떻게 팼을지 궁금할 정도였다·
“잠··· 잠깐· 타 타협하자·”
“시약 숨긴 거 있으면 더 말하십시오· 나중에 괜히 마법 시전하려고 하면 저희보다 더 무섭고 강력한 마법사가 아프게 팰 겁니다·”
이한은 무시하고 토만을 묶었다· 마법사를 제압할 때는 일단 지팡이와 시약부터 뺏은 뒤 입을 막는 게 정석이었다·
“악 악신숭배자가 있다! 악신숭배자가 더 탐나는 먹잇감 아닌가?”
“속지 마· 워다나즈·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수작부리는 거야·”
지젤은 믿지 않았다·
원래 수배범들은 궁지에 몰리면 온갖 거짓말을 던지곤 했다·
“알아· 걱정하지 마·”
“정말이다! 여기 목상을 봐라! 공정한 섭정관이란 악신인데···!”
“···이 자식! 어디서 같잖은 수작을!”
이한은 기겁해서 황급히 상대를 꽉 제압했다·
그 과정에서 마력이 폭발하듯 위압감을 뿜어냈다· 겁먹은 드워프 마법사는 물론이고 지젤과 가이난도까지 깜짝 놀랐다·
“왜 왜 그래· 이한? 화났어?”
“이 제국의 법을 어긴 뻔뻔한 범죄자 놈이 사람을 우롱하고 있잖아!”
“그··· 그 정도로 화를 낼 건 아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가이난도는 불똥이 튈까봐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