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2화
“아니· 말이야 맞는 말이잖습니까·”
누가 용의 계약자 아니랄까봐 편을 들어주는 제자의 모습에 해골 교장은 기가 막혔다·
“맞는 말 같은 소리 하고 있구나· 제국에 안전한 곳이 백 군데가 넘을 텐데 왜 하필 에인로가드냐?”
“마법사들이 많고 마령관 각하도 계시고 ‘에’로 시작하니까요·”
“그럼 에린다르벨의 장원으로 보내면 되겠군·”
“거긴 교장 선생님이 안 계시잖습니까·”
해골 교장은 얄미운 제자를 한 대 치려고 지팡이를 휘둘렀지만 이미 이한은 예측하고 거리를 벌린 뒤였다·
뛰어난 제자를 가르치는 것은 스승의 기쁨이지만 가끔 너무 뛰어나면 분노로 돌아올 때가 있는 법·
해골 교장은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며 말했다·
“됐다· 어차피 고집을 부리셔도 상관없지·”
“?”
“폐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테니까·”
원래 황제는 조우린을 에인로가드에 보내는 걸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의 교육에 방해가 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딱히 안 그런 것 같···”
“조용히·”
확실히 드래곤에 황족이기까지 한 조우린은 에인로가드의 근면성실한 분위기를 흐트러뜨릴 수 있었다·
더군다나 저번 학기 때 조우린은 제국 역사에 길이 남을 속임수를 쓰지 않았던가·
“폐하께서 거절하시면 대충 다른 곳으로 옮겨드려야겠군· 황궁이 좋겠다· 네가 꼬드겨보거라·”
“황궁에 가기 싫어하십니까?”
이한은 의아해했다·
만약 에인로가드 행(行)이 거절된다면 황궁이 가장 좋은 선택지처럼 보였다·
같은 수도니 거리도 가까웠고 강력한 아군과 지원 병력이 있으며 무엇보다 가족이 있지 않은가·
“당연히 가기 싫어하시지· 거기 가면 공부만 해야 할 텐데·”
황제는 자식들이라 하더라도 멋대로 행동하거나 횡포를 부리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현재 수도 황궁은 수많은 관료들이 오고 가는 제국 행정의 심장 같은 곳·
그런 곳에서 아무 방이나 열고 들어가 ‘조우린이랑 놀자!’했다가는 크게 꾸지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읽을 수 있는 책은 고서(古書)와 계서(計書 보고서)밖에 없고 할 수 있는 건 관료들과 같이 즐거운 서류 분석 정도였으니···
‘가기 싫어하실 만도 하군·’
“그런 곳에 보내면 나중에 절 원망하실 것 같습니다만· 좀 더 즐거운 곳은 없습니까?”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전하를 제국의 야심가들하고 접촉시켜서 좋을 게 없다·”
해골 교장은 진지하게 말했다·
황제의 순수 핏줄이 아닌 자식들도 이렇게 야심가들이 몰려드는데 조우린 같은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건 너를 위한 충고기도 하다· 전하가 널리 알려지면 사람들이 누굴 노리겠느냐?”
“교장 선생님이요?”
“···네가 계약했지 내가 계약했냐?”
해골 교장은 제자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걸 참고 설명했다· 이한은 그제야 깨달았다·
‘아차· 확실히 그렇군·’
유명세로만 따지면 해골 교장이 워낙 유명하니 그쪽으로 몰릴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계약자는 이한이었다·
조우린을 자기 파벌로 끌어들이고 싶다면 해골 교장보다 이한 본인에게 접촉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음· 그렇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재미없는 곳에 보내는 건 좀···”
말하는 사이 종이 새가 날아왔다· 황제에게 보낸 연락에 대한 답장이었다·
해골 교장은 조우린에게 보여주기 위해 편지를 펼쳤다·
“보십시오· 전하· 폐하께서 안 된다고 하시···”
?
“?”
-?
옆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의아해했다· 조우린은 눈을 끔벅이면서 물었다·
된다고 쓰여 있는데?
놀랍게도 편지에는 품격 넘치는 글씨로 허락의 뜻이 적혀 있었다· 해골 교장의 반반한 낯짝이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폐하께서 정신이 나가셨나봅니다·”
“교장 선생님· 속으로 한 생각이 흘러나오셨습니다·”
“속으로 한 생각 아니다·”
“···”
평소 황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끌어들인 만큼 존중의 태도를 보였던 해골 교장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대체 왜 에인로가드로 보내는 걸 허락한단 말인가?
“이한 학생이 있어서 아닐까요?”
가르시아 교수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최근 조우린은 정신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거기에 계약자까지 있으니 에인로가드 학생들을 그렇게 방해하지는 않지 않을까?
“아니· 폐하라면 분명 워다나즈도 배려해주셨을 걸세·”
해골 교장은 부정을 표했다·
물론 조우린이 똑똑해지고 있다는 건 교장 본인도 동의하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계약자가 있으니 큰 사고는 치지 않을 터·
하지만 조우린을 챙겨줘야 하는 계약자한테는 꽤 큰 부담이 갔다·
황제는 자기 자식의 즐거움 때문에 학생을 희생시킬 사람이 아니었다· 그게 단 한 명뿐이라도·
“이한 학생 능력에 저 정도는 별 부담 안 될 거라고 생각한 거라면요?”
“···교수님···”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추측?
“그럴듯하긴 하지만 폐하가 그럴 것 같지는 않군· 이상해·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게 있어···”
해골 교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아까 악신 교단이 나타났단 이야기를 할 때보다 몇 배는 더 심각해보였다·
‘아니· 조우린이 에인로가드에 간다고 저렇게까지 심각하게 고민할 일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조우린은 신나서 날개를 퍼덕였다·
신난다! 에인로가드에 간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전하· 폐하께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해골 교장은 구질구질하게 물고 늘어졌다·
혹시라도 저번처럼 편지에 무슨 속임수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물론 조우린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에인로가드!! 이한도 신나지?!
“예 예·”
와! 에인로가드!
“전하· 사슬을 당기지 말아주십시오· 전하?”
조우린은 신나서 아직 풀리지 않은 이한의 수갑에 연결된 사슬을 붙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 흉참한 모습에 가르시아 교수는 수갑이 풀리자마자 즉시 압수해야겠다고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 * *
최근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수도의 기괴한 별장·
원래는 인기척 하나 없이 유령이나 악령의 소리만 들렸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여러 마법사들의 작업으로 인한 활기찬 북적거림이 별장 전체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2층 끝방 수리 다 끝났어?”
“물이 안 나와· 연결에 실수가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마법으로 필요할 때마다 물 불러오면 안 되나?”
“미쳤냐? 워다나즈하고 같이 다니더니 정신이 나갔나보군· 물 만들다가 탈진하고 싶나?”
“···연결하면 되잖아· 연결하면!”
흰 호랑이 탑 학생이 투덜거리며 내려가자 살코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별장 건물을 밖에서 한 번 둘러보았다·
처음에는 그렇게 기괴했던 건물도 점점 더 멀쩡한 행색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2층 끝방 수리 마치고 굴뚝 옆의 색칠을 다시 해야겠군· 저긴 마법 오염 흔적 같은데 물약을 새로 만들어야 하나···’
“투탄타· 여기 야금(冶金) 공방에 대해 들어봤나? 의뢰를 받아도 괜찮을까?”
“거긴 보수가 별로 좋지 않아· 근처 목공 길드가 나을 거다·”
“이런· 괜찮으면 2학기 때 의뢰도 여기서 해치우려고 했는데···”
“그랑덴 시가 나을 거다· 거리가 가까운 곳이 아무래도 유리할 테니까·”
에인로가드로 들어오는 의뢰는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외부에서 직접 방문해 학생들에게 맡기고 찾아가는 의뢰· 주로 제작이나 분석 계열이 이쪽에 들어갔다·
다른 하나는 에인로가드 학생이 직접 외출해서 찾아가야 하는 의뢰· 보통 수색이나 토벌 계열이 이쪽에 해당됐다·
당연히 전자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 약삭빠른 학생들은 벌써 이런 의뢰들을 미리 확보해두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확실히· 그랑덴 시 길드들이 가까우니까 좀 더 자주 맡기려나?”
“그렇지·”
“근데 그랑덴 시 길드면 워다나즈한테 맡기지 않을까?”
“···”
생각치도 못한 지적에 살코는 움찔했다·
그리고 은근히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그런가?!’
에인로가드에 가까운 그랑덴 시는 이미 이한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는 상태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워다나즈가 몸이 백 개쯤 되냐? 그걸 다 받게·”
옆에서 지나가던 아산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살코는 제정신이 돌아왔다· 확실히 생각해보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내가 멍청하게 흰 호랑이 탑 놈의 말에 넘어갈 줄이야!’
“근데 워다나즈는 전 학파도 듣잖아· 그럼 의뢰도 다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
“···”
살코와 아산은 고작 흰 호랑이 탑 학생한테 말문이 막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나 왔다·”
다행히 이한이 그들을 구해줬다·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이한은 정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워다나즈!”
“와· 이걸 다 고친 거야? 대단하군·”
이한은 그 사이 또 변한 별장 저택의 외관에 크게 놀랐다·
이렇게 빨리 수리가 될 줄이야·
‘···잠깐· 보수를 지불해야 하나?’
친구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그냥 넘겨도 되나 싶었다·
‘얼마를 지불해야 하지? 분명 표준 시세는···’
“···악!!!”
아산이 비명을 지르자 이한은 흠칫했다·
혹시 보수를 어떻게든 아껴보려는 추잡한 속마음이 들통난 것일까?
“저 저기···! 저기! 워다나즈!”
“아·”
이한은 친구가 왜 비명을 질렀는지 이해했다·
뒤에서 가르시아 교수와 같이 따라온 인간 형태의 조우린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놀란 건 이해한다· 저택에 방문했는데 놀러오고 싶어 하시더라고·”
“그거 말고! 그 뒤에!”
아산은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다·
조우린에게 놀라서 비명을 지른 게 아니었다·
물론 놀라긴 했지만 이미 저번 학기 때 만난 적 있는 이상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아산이 놀란 이유는 바로 그 뒤에 있었다·
해골로 돌아온 에인로가드의 교장이 둥둥 떠서 날아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 교장 선생님? 저택에서 만나서 같이 왔지·”
“···같이 올 게 따로 있지···!”
아산은 전율했다·
마치 길가에서 돌멩이 주운 것처럼 태연하게 말하는 친구를 보니 멱살을 잡고 싶었다·
‘아무리 워다나즈라지만 미친 거 아닌가?!’
“악!”
“끄악!”
“꺄아악!”
뒤늦게 해골을 발견한 친구들이 저택 곳곳에서 비명을 터뜨렸다·
이 별장에서 볼 수 있는 최악의 상대였다·
오늘 즐거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제국의 머저리들이 다 여기 모여 있구나·
해골 교장은 참 많이도 모여 있다고 생각하며 빈정거렸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모래알 같아서 이렇게 뭉쳐 있는 모습은 매우 보기 드물었다·
볼라디 교수는 어디 있지?
“잠깐 외출하셨는데요·”
어디로?
“어··· 수배서가 다 떨어져서 새로 좀 받으러 가겠다고 하셨던 것 같아요·”
···
그 사이 자리를 비운 교수의 모습에 해골 교장은 속으로 탄식했다·
참 짜증나게 부지런한 제자였다·
따라가라· 워다나즈·
“예? 제가 말입니까?”
···아까 한 말을 벌써 잊어버렸느냐? 그럼 누가 따라갈까? 저 무쇠대가리가 따라갈까?
해골 교장이 자신을 가리키자 가이난도는 투덜댔다·
“저 이제 무쇠 아닌데요·”
“지금 갑자기 따라가면 아무리 배그렉 교수님이어도 수상하게 여기실 것 같습니다만···”
?
“?”
해골 교장과 가이난도가 동시에 의아함을 표했다·
뭘 수상하게 여긴다는 거지?
“어떤 걸 수상하게 여긴다는 거야 이한?”
“···음 내가 갑자기 현상금 사냥에 관심을 보이면 수상하게 여기실 것 같···”
해골 교장과 가이난도는 동시에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이한은 배신감 가득한 시선으로 가이난도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