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8화
‘그래· 이게 왜 있는지부터 묻자·’
정리를 끝낸 이한이 물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습니까?”
응?
조우린은 이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저택에 던전 입구가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잖습니까·”
···그래?!
계약자의 말에 조우린은 진심으로 놀랐다·
다른 드래곤의 거처를 보면 이런 던전 한두개 정도는 흔히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
이한은 자신이 용이란 종족에 대해 모르는 사실이 아직도 많다는 걸 실감했다·
몰랐노라·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놀랍군요·”
‘주인님이 놀랄 건 없지 않나?’
새끼 바실리스크는 꼬리를 흔들며 속으로 생각했다·
주인의 저택에도 악마며 골렘이며 이상한 건 즐비할 텐데 왜 용의 저택에 던전 입구가 있다고 놀란단 말인가·
다른 드래곤들은 다들 던전을 열심히 가꾸노라!
조우린은 신이 나서 설명에 들어갔다·
자연적으로 혹은 인공적으로 형성되는 이런 던전은 제국의 모험가들에게 언제나 두려움과 설렘의 대상이었다·
바깥과 다른 기묘한 환경에서 어떤 위험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 위험을 극복하고 내려갔을 때 어떤 보상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설렘·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필멸자들의 이야기였고 드래곤들은 조금 더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접근했다·
일종의 저택 정원이나 안뜰 가꾸듯 던전을 관리하는 것이다·
공기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마력도 좀 넣고 내부 순환을 위해 마법도 좀 걸고 희귀한 몬스터 알도 넣고 무기도 넣고···
마치 어항에 물고기를 들이기 전에 수초와 돌멩이와 흙을 깔듯 이런저런 준비를 한 뒤 시간을 들여 푹 숙성하면 제법 괜찮은 던전이 완성되었다·
그 뒤에는 이제 하수인을 시켜 필요한 물품이나 시약을 수집해오면 됐다·
희귀한 몬스터를 넣었을 경우에는 숫자가 불어난 몬스터를 데리고 나올 수도 있었고 무기를 넣었을 경우에는 던전의 마력을 머금고 강화된 무기를 꺼낼 수도 있었다·
즉···
‘일종의 드래곤 텃밭이군!’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자급자족을 위해 영지 어딘가에 몰래 텃밭을 가꾸는 것처럼 드래곤들도 비슷한 걸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규모가 너무 차원이 다르긴 했지만 근본적인 원리는 똑같았다·
조우린이 고나달테스 몰래 열심히 가꿨노라· 다른 드래곤들은 방문할 때마다 도와줬구···
‘더 불길한데?’
해골 교장 몰래 다른 드래곤들의 도움·
둘 다 불길하게만 들렸다· 이한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내려가 보신 적 있으십니까?”
이한과 친구들이 왔을 때 같이 가려고 남겨놓았노라!
조우린은 마치 아껴뒀던 간식을 친구들에게 대접하려고 꺼내는 것 같았다·
물론 이한은 그 간식이 별로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음· 생각해보니 다른 드래곤들이 그렇게까지 위험하게 만들진 않았겠군·’
해골 교장 몰래 만들었다는 건 여전히 좀 찜찜하긴 했지만 드래곤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던전 가드닝의 달인일 터·
호기심 많은 조우린이 언제 들어갈지 모르는데 위험한 것들을 채워 넣진 않았으리라·
옆을 힐끗 보니 에안두르데의 눈빛이 초롱초롱 반짝이고 있었다· 저렇게 반짝이는 눈빛을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던전···!”
“···”
이한은 이미 대세가 기울어졌다는 걸 느꼈다· 넷 중 둘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차려야 한다·’
여기 있는 비늘모험가단의 책임자로서 다들 다치지 않도록 이한이 정신을 차려야 했다·
“던전 안에 뭐가 있는지는?”
그런 건 안 물어봤노라·
“위험하다거나 들어가면 안 된다거나 이런 말들은?”
조우린은 고개를 힘껏 흔들었다·
‘으음· 정말 괜찮나···’
계속 질문을 던지며 상황을 확인한 이한은 어느 정도 확신을 얻었다·
드래곤들 중 어느 누구도 경고하거나 말리지 않았다면 위험할 가능성은 대폭 줄어들었다·
조우린도 이상한 걸 넣지 않고 마력 정도만 불어넣었다고 했으니···
“그럼 전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응! 물어봐도 좋도다·
“이게 근데 왜 제 선물입니까?”
어··· 이한은 위험을 좋아하니까?
조우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해골 교장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읊었다·
정확히는 ‘죽고 싶어서 환장한’ 어쩌구저쩌구였던 것 같은데 그건 좀 무례한 것 같아서 잊어버렸다·
“과연·”
이한은 굳이 묻지 않아도 누가 범인인지 짐작했다·
다음에 황제를 대면하게 되면 사악한 복수의 투서가 모습을 드러내리라!
* * *
“구울이나 서리거인이 있으면 좋겠슴니다·”
“···소름끼치는 이야기 하지 말렴· 에안두르데·”
던전 입구로 내려간 이한은(먼저 내려간 조우린이 푹신하게 둘을 받아줬다) 기겁해서 에안두르데에게 말했다·
다른 차원의 종족인 서리거인을 만나는 건 별로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특히 이한은 서리거인들 사이에서 ‘왕에게 인정받은 마법사’같은 이상한 헛소문까지 퍼져 있지 않은가·
-헛소문 아니지 않아요?
“너 잘 시간 다 되지 않았냐? 빨리 자라· 안 자면 안 큰다·”
-···
새끼 바실리스크는 매우 억울해했다·
그냥 물었을 뿐인데!
“빛이여·”
이한은 마법을 시전했다·
드래곤들이 가꾼 던전인 만큼 통로는 조우린이 좌우로 데굴데굴 굴러도 될 정도로 널찍했지만 밝기는 어두웠다·
던전에서 자라는 동식물들을 위해서겠지만 만약의 경우 조우린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었다· 이한은 광량을 대폭 증폭시켰다·
“?”
에안두르데는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빛의 광구를 보고 의아해했다·
아무리 봐도 자신과 친구들이 쓰는 <빛 생성> 마법과는 그 규모와 위력이 달랐던 것이다·
이건 일반적인 마법보다 더 강력하게 시전해서 나올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어떻게···?”
“아· 이건 마법을 고친 거야· 굳이 따라할 필요 없어· 별 쓸모 있는 방법도 아니거든·”
이한은 던전에 들어오기 전 사슬을 자르려다가 깨달았던 걸 다른 마법에도 적용하고 있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워다나즈의 빛 생성>이 되리라·
“···”
에안두르데는 마법을 새로 고쳐서 만들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선배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경악과 존경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이상하지 않아?”
뒤에서 엉금엉금 따라오는 조우린에게 묻자 골드 드래곤은 뭐가 이상하냐는 듯이 되물었다·
이한은 원래 저랬는데?
“그 그래·”
에안두르데는 여기 자리에 마법사가 자신밖에 없다는 게 매우 안타까웠다·
다른 마법사가 있었다면 이 경악에 같이 공감해줬을 텐데!
“잠깐·”
강해진 빛줄기 덕분에 저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었다· 앞을 본 이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상한데·”
“!”
에안두르데는 선배가 왜 발걸음을 멈추고 경계하는지 깨달았다· 저 멀리 통로에서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앞쪽 통로의 일부는 자연 그대로의 울퉁불퉁한 동굴이었는데 그 뒤로 연결된 통로는 누가 봐도 잘 깎고 다듬어놓은 화강암 통로였다·
이런 통로가 번갈아서 위치한 모습은 누가 봐도 기묘한 풍경이었다· 에안두르데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몬스터가 부순 걸지도 모름니다·”
과연!
조우린도 신이 나서 거들었다·
몬스터가 나타나서 부순 거라면 저런 들쭉날쭉한 통로도 말이 됐다·
‘저런 몬스터가 있나?’
이한은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에인로가드에서 돌아다니다보면 자연스럽게 몬스터에 대해 박학다식해지기 마련·
특히 이한처럼 몬스터와 얽히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살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중에 저렇게 자로 잰 듯 반듯하게 통로를 파괴하고 돌아가는 몬스터는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다들 여기 있어· 내가 확인하고 올 테니까·”
이한은 전투용 예지 마법을 걸고 수정 팽이 점술까지 치며 움직였다·
아무리 봐도 주변에 위험이 보이진 않았지만 혹시 모르는 만큼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
“!”
앞서 통로를 탐사하던 이한은 벽에 글자가 새겨진 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이 기묘한 통로의 정체에 대한 단서일까?
통로는 우만이 포장했네· 누님께서 훗날 내려오셨을 때 넘어지실 수 있으니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면서 바닥을 걷어내지 말게· 통로를 포장한다고 던전의 환경이 오염되지는 않아!
-우만
아우니나가 맡은 부분은 다시 포장 치웠어요· 던전의 환경도 환경이고 자연스러워야 던전이거든요! 언니는 오히려 포장된 걸 더 실망스러워 할걸요?
-아우니나
“···”
이한은 살짝 휘청거렸다· 이걸 진지하게 본 자신에 대해 실망했을 정도였다·
‘아니 뭔···’
글을 읽어보니 이 통로를 꾸미는 데에 있어서 두 드래곤의 대립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한도 아는 드래곤인 우만은 포장파였고 모르는 드래곤인 아우니나는 비포장파···
저기 보거라! 이한이 정체를 짐작한 게 분명해!
뒤에서 조우린이 들뜬 목소리로 다른 비늘모험가단 동료에게 속삭이는 게 들렸다·
어떤 몬스터가 나왔는지 너무나도 기대되는 것 같았다·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이한은 재빨리 벽 위의 글자를 마법으로 덮은 뒤 말했다·
“도난이가란 몬스터입니다· 가끔 나타나서 통로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죠·”
역시!
“처음 들어봄니다!”
“아주 희귀한 몬스터라서 그래· 어지간해선 볼 일 없을 거야· 자· 방심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이한은 시선을 피하며 거짓말을 했다·
던전의 위협을 잔뜩 기대하고 있는 둘에게 차마 진실을 말해줄 수가 없었다·
저기! 저기 봐 이한!
조우린은 앞발로 이한을 꽉 끌어안고 흔들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자빠졌을 근력이었지만 이미 조우린에게 익숙해진 이한은 당연히 대비하고 있었다·
마치 바닥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저건···?”
통로 옆으로 난 샛길·
그 끝에 자리 잡은 둥그런 공터에는 한 자루 검이 바위에 꽂혀 있었다·
조우린과 에안두르데는 벌써 기대와 흥분에 빠져 있었지만 이한은 냉정했다·
‘아니··· 이거 드래곤이 만든 던전이잖아·’
다른 던전이었다면 정말 고대의 유물일수도 있었지만 드래곤들이 만든 던전인 이상 이야기가 달랐다·
혹시 기존 던전 위에 만들기라도 한 것일까?
“잠깐· 확인 좀 해보고 올게·”
이한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아까 본 것 같은 글자가 없는지 확인했다·
이 킨나라의 검은 우만이 직접 구해서 여기에 심어놨네· 아직 던전의 마력을 더 머금어야 하니 건드리지 말게·
-우만
“···”
왜? 왜?
“여기 함정은 너무 위험해서 아직 저희 수준으로 접근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
조우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런 위험한 함정이 생겼을 줄이야!
던··· 던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것 같노라···!
“앗· 그럼 돌아가시겠습니까?”
이한은 반색했다·
사실 이쯤 오니 이한도 느끼고 있었다·
여긴 정확히 말하자면 던전이 아니라···
‘조우린을 위한 보물 창고잖아!’
사실상 다른 드래곤들이 나중에 조우린이 활동할 때를 대비해 이것저것 가꿔놓은 텃밭이었다·
방금 이한이 발견한 보물 검도 당장 저렇게 쓰여 있었고··· 그렇다면 괜히 이한 일행이 먼저 빼내가서 좋을 게 없었다· 아직 더 숙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조우린은 고개를 저었다·
조우린은 이한을 믿노라· 에안두르데도 믿고·
“···!”
에안두르데는 홱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감동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는요?
바 바실이도 당연히 믿노라!
당황한 조우린은 허겁지겁 덧붙였다· 다행히 새끼 바실리스크는 헤헤 웃으며 속아넘어갔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더 들어가시죠·”
이한! 저기 보물상자가 있노라!
“저런· 제가 보기에 저건 건드리면 즉사하는 함정입니다·”
?!
그런 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