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6화
의아해하던 이한은 뒤늦게 조우린이 꾸미고 있는 흉계를 떠올렸다·
마법사를 꽁꽁 묶어두려는 사악한 흉계·
생각해보니 그 계획의 대상이 해골 교장이 아니라 에안두르데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참· 에안두르데· 조우린을 만날 때 네가 알아둬야 할 게 있다·”
이한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신중한 태도로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에안두르데는 처음 보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 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말··· 말씀해주셔서 감사함니다···”
“신경 쓰이면 나만 갈까? 아무리 조우린이 초대했다지만 방학을 날리는 건 곤란하잖아·”
에안두르데는 고개를 다시 저었다·
그 모습에서는 친구에 대한 강한 신뢰가 느껴졌다·
‘에안두르데가 나보다 낫군·’
이한은 괜히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기분이었다·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걱정됐던 에안두르데가 저런 반응을 보일 줄이야·
“혹시 선물 고를 때 도움이 필요해?”
“괜찮을 것 같슴니다·”
에안두르데는 이한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 태도에서 느껴지는 확고한 자신감에 이한은 끄덕였다·
“과연· 미리 생각한 선물이 있구나?”
“예···”
* * *
철커덕!
이한은 손목에 채워진 수갑을 보고 눈을 깜박였다·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말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었다·
조우린의 계략이 성공했노라!
그러거나 말거나 조우린은 동굴 한가운데에서 앞발로 바닥을 탕탕 치며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
설마 조우린의 저택에 방문했다가 이렇게 기습을 당할 줄이야·
마법범죄자나 반마법주의자들이 에인로가드를 습격해도 이렇게 놀랐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노리는 게 나였다고?!”
그제야 깨달은 이한은 경악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옆에서 에안두르데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초대장에서부터 그런 낌새가 느껴졌던 것이다·
에안두르데에게
방학 때 꼭 놀러와! 이한도 초대한 다음에 저택에 가둬놓을 테니까 같이 계속 놀자!
조우린
“왜 말을 안 해줬지?!”
“···친구를 선택하라고 하셨잔···”
‘아·’
더듬더듬 변명하는 후배의 모습에 이한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라고 했구나!
“이런 우정일 줄은 몰랐지·”
다시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었다·
저택에 방문해서 정문을 지난 다음 이 저택 특유의 문을 열면 나오는 거대한 동굴 형태의 내부로 발을 디디자마자···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조우린이 냉큼 튀어나와 이한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것이다· 드래곤의 덩치로는 믿기 어려운 속도였다·
‘과연 드래곤 종족인가!’
이 와중에 새삼 드래곤이란 종족의 강력함을 깨달으며 이한은 일단 수갑을 확인했다·
마력을 미친듯이 불어넣어서 과부하시킨 다음 터뜨리면···
“!”
놀랍게도 이 평범하게 생긴 수갑은 완벽하게 마력을 분산시켰다· 순수한 마력 충격으로는 전혀 타격을 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동생의 도움을 받았노라! 제작은 다른 용들이 도와줬고!
“···”
이한은 자신이 조우린의 동생 우만에게 했던 조언을 떠올리고 자괴감에 빠졌다·
-순수한 마력 충격에 대한 대비는 하셨습니까? 일반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아주 보기 드물게 이런 마법사가 있···
자신의 무덤을 일부러 파려고 해도 이렇게 잘 팔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계약자가 자괴감에 빠진 틈을 타 조우린은 재빨리 엉금엉금 기어와 검을 뺏었다· 그런 뒤 지팡이까지 뺏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이한이 정신을 차리고 막아냈다·
“어허· 전하·”
지팡이는 여기에 보관하면 되노라·
못 본 사이 조우린이 좀 더 뻔뻔해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한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 수갑 푸십시오·”
···
“전하?”
···
조우린은 다시 못 들은 척했다·
불리한 말은 못 들은 척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니· 왜 이렇게 에인로가드스러워졌지? 설마 에인로가드 방문한 것 때문인가?’
이한은 미운 일곱 살처럼 구는 조우린은 일단 내버려둔 채 족쇄를 푸는 일에 집중했다·
용이 만든 수갑을 푸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사슬부터 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정말 용이 만들긴 했나보군· 무슨 깃털 같은데·’
탐지 마법을 시전하고 마력을 흩뿌려서 수갑과 사슬을 감지해보던 이한은 새삼 놀랐다·
착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고 부드러운 수갑과 사슬이었지만 막상 마력을 안으로 흘려보내면 견고한 성벽처럼 침입을 흐트러뜨렸다·
딱히 특별한 금속을 쓴 것 같지도 않았는데 이런 강력하고 기묘한 아티팩트를 만들어내다니·
혹시 언령 마법을 쓴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용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잠깐· 지금 감탄할 때가 아니지·’
용의 마법 실력에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 일단 수갑과 연결된 사슬을 풀어야 했다·
이한은 탐지 마법을 강화하고 감지 범위를 확장시켰다·
아무리 완벽한 아티팩트라 하더라도 만들어진 이상 쇠락과 약화가 생길 수밖에 없는 법·
가장 약해진 부분에 마법을 될 때까지 연사해볼 생각이었다·
아무리 내부에서 오는 마력 충격에는 대비되었다 하더라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공격에 무적일 수는 없었으니까·
‘아까 검부터 뺏은 거 보면 이런 물리적 공격에는 오히려 한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엉금엉금-
마력의 움직임을 느낀 조우린이 재빨리 사슬 위로 기어 올라갔다·
자기 몸으로 사슬을 공격하지 못하게 가린 형태였다· 이한은 어이가 없어서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전하· 비키십시오·”
···
조우린은 못 들은 척 날개로 머리를 덮었다· 에안두르데는 자기 친구지만 창피해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너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새끼 바실리스크는 조우린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조우린이 뾰로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친구면서!
-아 아니···! 친구여도 아닌 건 아닌···
조우린은 이렇게 선물도 준비했는데!
조우린은 꼬리를 휘두르며 동굴 벽을 가리켰다· 새끼 바실리스크를 다시 만나면 주려고 큼지막하게 포장해놓은 냉기 마법으로 얼린 각종 몬스터 고기들이 선반에 즐비했다·
그 선물을 본 새끼 바실리스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이한은 한숨을 쉬었다·
먹을 거에 낚일 거면 애초에 나서질 말지!
“전하· 이렇게 속이지 않았어도 애초에 저택에 머무를 생각이었습니다만·”
정말?
조우린은 귀를 쫑긋거렸다· 자기 유리한 주제에만 청력이 돌아오는 걸 보니 에인로가드에 다녀 온 영향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았다·
“예·”
얼마나? 100?
“···100시간 말입니까? 그 정도는 뭐···”
조우린은 100년을 말한 거였노라·
“···”
“···”
-···
너무 양심 없는 소리에 이한은 물론이고 에안두르데와 새끼 바실리스크까지 할 말을 잃었다·
하다못해 100일일 줄 알았는데···
“···너무한 거 아니야?”
에안두르데가 속삭이자 조우린은 우물쭈물했다·
협상은 원래 이렇게 하는···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조우린의 편이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힝··· 알겠어요···
에안두르데만큼 기가 강하지 못한 새끼 바실리스크는 그대로 꼬리를 내렸다·
그러는 사이 이한은 돌아다니면서 사슬의 범위를 확인했다·
‘저택 밖만 나가지 못하는 건가?’
사슬은 이한의 움직임에 따라 길어졌지만 저택의 문을 향해 다가서는 순간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멈췄다·
조우린은 혹시라도 이한이 몰래 사슬을 부술까봐 졸졸졸 쫓아왔다·
그런데 이한· 저기 갖고 온 짐꾸러미는 혹시 선물이야?
이한은 대답하지 않고 창문을 확인했다· 역시 창문으로 나가는 게 될 만큼 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
무시당한 조우린은 눈망울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무시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흠· 조우린이 잘 때 사슬을 부숴야 하나? 감각이 예민해서 바로 일어날 것 같은데·’
이한은 조우린의 체력이 어느 정도 됐는지 떠올려보았다·
분명 에인로가드 기숙사에 있었을 때는 잠이 많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상시의 경우·
만약 작정하고 잠을 안 자기로 버틴다면 이한보다 훨씬 체력 좋게 버틸 수도 있었다· 일단 종족부터가 드래곤 아닌가·
‘역시 억지로 부수는 것보다는 설득해야 하나·’
이한···
조우린이 울먹이며 계약자를 불렀다· 이한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전하·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멋대로 구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에인로가드에서 이렇게 배웠노라·
“···”
이한은 속으로 해골 교장을 욕했다·
자꾸 원하는 게 있으면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하라고 마법사들을 밀어붙이니 조우린도 괜히 비뚤어진 것 아닌가!
“그건 잘못 배우신 겁니다· 에인로가드의 진정한 가르침은 화합 협동 우애입니다·”
“?”
에안두르데가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선배를 쳐다보았다·
한 학기밖에 안 다니긴 했지만 저 셋 중 어떤 것도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그런 가치를 잃지 않는 꿋꿋함이 진정한 에인로가드의 가르침이지요·”
-정말이에요?
아닌 것 같은데?
새끼 바실리스크는 물론이고 조우린까지 의심스러워했다· 에인로가드 방문 이후 유독 똑똑해져서 속이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못 믿으시겠으면 교장 선생님한테 물어보시죠· 바로 동의하실 겁니다·”
해골 교장도 죽기 싫다면 조우린이 에인로가드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은 막으려 들 것이다·
이한은 그걸 믿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자· 전하의 계약자를 믿고 풀어주십시오· 나중에 전하가 성을 박살내더라도 용들의 법정에 같이 방문해줄 이 계약자를 말입니다·”
···조우린은 그런 짓 안 하노라!
조우린은 말도 안 되는 음해에 투덜댔다·
자신이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그럼 이한· 얼마나 있을 거야?
“참· 전하· 선물 사왔습니다·”
이한은 불리한 주제가 나오자 말을 돌렸다·
이건 어디까지나 예감이었지만 100년 미만으로 말할 경우 무조건 조우린이 안 풀어주겠다고 고집을 피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물 이야기에 조우린의 신경이 다른 곳으로 쏠렸다· 이한은 사슬을 절그럭대며 장난감을 꺼냈다·
“···어··· 그거··· 괜찮슴니까???”
에안두르데는 당황해서 물었다·
이한이 꺼낸 건 아주 큼지막한 뼈다귀 형태의 장난감이었다· 마치 개한테 던져주는 장난감을 크게 확대시킨 것 같았다·
“이 수갑? 괜찮아· 생각보다 훨씬 가볍거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에안두르데가 당황해하는 사이 이한은 개 뼈다귀 아니 드래곤 뼈다귀의 마법을 활성화시켰다·
경매장에서 보고 감탄한 이 장난감은 사실 제작자인 부여 마법사 가슈파도 팔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아이템이었다·
원래는 와이번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막상 만들고 나니 와이번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와이번들은 기질이 난폭하고 야성적인 만큼 좀 더 파괴적이고 유혈이 낭자한 보상을 원했다·
하지만 이한은 이 장난감에서 다른 가치를 발견했다·
-당신이 이걸 만드셨습니까? 정말 훌륭한 아이템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저는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닙니다! 이건 걸작입니다· 여기 있는 걸 전부 사겠습니다!
-!!!
에인로가드 출신 학생이 극찬을 하고 돌아가자 가슈파는 크게 놀랐다·
에인로가드의 마법사가 저렇게 말해줄 줄이야·
혹시 자신의 작품에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자· 전하· 갑니다!”
쉭!
이한이 뼈다귀를 던지자 조우린은 신나서 따라 날아갔다· 그 모습에 에안두르데와 새끼 바실리스크는 매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이래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