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7화
“지하실이 무슨 소리에요?”
가르시아 교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혹시 벌써 공간 마법으로 지하실을 연결한 건가?’
현재 이한의 수준으로는 구현하기 힘든 마법이었지만 원래 눈앞의 제자는 교수를 방심시켜놓고 멋대로 진도를 나가버리는 데에는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가르시아 교수 몰래 아공간과 지하실을 연결시켜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아· 그게 말입니다·”
이한은 매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미친 마법사 노엔첸프를 규탄했다·
웬 이상한 마법에 집착한 탓에 전혀 상관없는 후배 마법사까지 이렇게 고통받고 있지 않은가·
설명을 들은 가르시아 교수는 놀라워했다·
“이한 학생이 의도한 게 아니었군요!”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자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자 가르시아 교수는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럼 이한 학생· 역시 별장 지하를 파괴하는 게 좋지않을···”
“!”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볼라디 교수도 아닌 가르시아 교수가 어떻게 이렇게 폭력에 의존한 해결책을?
-글쎄요· 제자님· 제가 보기에 저 유령은 차원 사이 틈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림 속 젊은 왕자는 가르시아 교수의 해결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재 이한의 상태를 봤을 때 영혼에 깃들거나 저주하는 방식으로 귀찮게 구는 건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은 차원의 틈새에서 떠돌다가 이한이 공간 마법을 시전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것·
공간 마법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다중차원과 깊은 연관이 되어 있는 만큼 차원 사이를 떠돌아다니는 유령이라면 충분히 저런 현상이 가능했다·
“하 하지만 교장 선생님· 다른 저택은 지하를 파괴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됐었어요·”
-그렇지만 그 저택의 주인들은 여기 제자님과 같은 문제를 겪지는 않았잖아요?
젊은 왕자는 차분하게 가르시아 교수를 설득했다·
다른 저택의 주인들은 유령의 선택을 받지 못한 만큼 지하만 파괴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한 같은 경우는 유령이 차원의 틈새에서 방황하고 있다가 끌려나오는 상황·
지하를 파괴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한 학생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유령한테 선택받을 수··· 있긴 하겠네요·”
“···”
이한은 황당하다는 듯이 가르시아 교수를 쳐다보았다·
아니?!
“아 아니· 부정해주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왜 갑자기 혼자 납득을···”
“선택받을 수 있다·”
-그럴 수 있죠·
볼라디 교수와 젊은 왕자까지 거들자 이한은 갑자기 외로워졌다·
대마법사들 사이에 홀로 있으니 평범한 마법사는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러면 교장 선생님·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저는 지하실도 괜찮은데요? 지하실에 걸어주세요·
“네? 어 해결해야 하지 않나요?”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해결할 수 없는 재해라면 그 힘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자· 어서요·”
젊은 왕자는 이한을 재촉했다·
이한은 떨떠름해하며 팔을 뻗어 지하실 벽에 그림을 걸었다· 유령이 황당해하는 목소리가 배낭 안에서 울려나왔다·
-뭔··· 그림을···
-아· 당신이 그 유령이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잠시 여기를 빌려도 괜찮을까요?
유령의 대답은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림 속 왕자는 멋대로 움직였다· 지하실 안의 공간 왜곡을 파악한뒤 자신의 힘으로 통제권을 장악한 것이다·
-제자님· 들리나요?
“앗· 예· 아직 안 닫았습니다·
-제가 있는 동안에는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에요·
원래 이 마법사 유령의 계획은 지하실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공간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 계획이 실패하고 공간이 통제 불가능에 빠진 탓에 제국 전역에 이렇게 나타나게 된 것이었고·
그 공간 미궁은 지금 이한의 수준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웠지만 유령 때문에 미궁 안에 존재하는 원래의 지하실로 이동하게 되는 현상은 별도로 이용이 가능했다·
통제불가능의 저주라지만 통제만 할 수 있다면 일종의 아공간 창고 아니겠는가·
-자· 이러면 제자님이 원할 때 방문할 수 있겠죠·
-아니··· 그러면· 마법은··· 언제···
유령은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도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해결해달란 마법은 해결 안 해주고 이 지하실을 창고로 쓰겠다니?
-조용히 하세요·
젊은 왕자는 유령을 접어버리더니 지하실 상자에 가둬버렸다·
그 가차 없는 모습에 이한은 새삼 상대가 누구의 젊은 시절인지 느낄 수 있었다·
* * *
기사가 사라지고 부나르조와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다른 곳에서 작업을 재개했다·
얼추 작업이 완성되자 부나르조는 꽤 기뻐하며 칭찬했다·
이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다들 생각보다 재능이 있었던 짓이다·
“흐으음· 제법 괜찮은걸·”
“감사합니다·”
“사제님· 괜찮다면 이 그림은 팔아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주말에 귀족들이 찾아올 텐데 그 때 제안해보고 싶군요·”
티질링에게 제안하는 부나르조의 모습에 가이난도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나는? 내 건 어때?”
“아· 가이난도· 너는···”
가이난도는 두근거림을 느꼈다·
벌써 머릿속에는 제국 귀족 경매장에서 ‘고귀한 황자 가이난도의 작품 <독높에서 걸어나오는 내 멋진 언데드 소환수>가 제국 금화 천팔백닢에 낙찰되었습니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팔리면 일단 1/3은 마법사 카드에 쓰고 1/3은 간식용 1/3은 이한 선물 사줘야지· 남은 건 친구들 선물 사고·’
에인로가드식 계산을 하고 있는 가이난도의 컷가에 부나르조의 말이 들려왔다·
“···못 팔 것 같은데·”
“뭐!? 왜!?! 어째서!??!”
부나르조는 오늘 처음으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 예술가의 싹을 상처입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말이지· 작품을 사러 오는 귀족들은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사람들이라···”
페트로가드에 작품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하게 좋은 작품들을 선호했다·
기상천외하고 기발하게 좋은 작품들은 페트로가드 마법사들이나 ‘드디어 새 경지에 눈을 떴구나!’하며 좋아하지 사람들은 ‘이걸 저택에 걸라고? 마구간에도 걸기 싫은데?’같은 반응을 보였다·
“여기 사제님의 그림은 프리싱가 교단 소속은 당연하고 소속이 아니더라도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되잖냐·”
사제 출신답게 티질링의 그림은 경건함과 신앙심이 느껴졌다·
물론 에인로가드 출신답게 배고픈 사람들의 묘사가 좀 에인로가드 학생들을 닮긴 했지만 그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터였다·
“내 그림도 멋지지 않아!?”
“멋 멋지긴 한데 사악한 언데드 소환수를 벽에 걸어놓고 싶어할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흑마법사도 아니고···”
옆에서 듣던 라파드엘이 질색했다·
“흑마법사도 저런 그림 안 걸어놓는다· 흑마법사를 무슨 미치광이로 아냐?”
흑마법사도 자기 집에서는 따뜻한 홍차를 마시고 아름다운 그림을 즐기지 무슨 독과 피를 마시지는 않는 것이다·
요네르가 슬쩍 물었다·
“제목을 바꿔서 팔면 안 돼? <밤의 연못에서 헤엄치는 아름다운 달의 정령>으로···”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네 네가 그러고도 예술가야!?”
“나 예술가 아닌데·”
요네르는 사촌을 한 대 치려다가 다른 학교라는 걸 되새기며 참았다·
오늘 붓 처음 잡은 주제에 말하는 걸 보니 무슨 거장처럼 굴고 있었다·
“가이난도· 네 마음 이해한다·”
부나르조는 가이난도의 어깨를 붙잡고 달랬다·
“제국의 멍청이들이 널 알아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흔들릴 필요 없어· 그래· 이 그림은 내가 여기 방문하는 사람들한테 권해보겠다·”
“부··· 부나르조!”
“별 거 아니야· 분명 이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한 명은 있을 거다·”
‘없을 것 같은데·’
‘어떤 미치광이가 저길 사지?’
‘모르툼 교수님도 안 살 것 같군·’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모두 다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반대쪽에서 이한과 교수들 붉은 머리칼의 기사가 걸어나왔다·
부나르조는 깜짝 놀라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에인로가드 1학생들은 괜찮다고 손짓했다·
“아냐· 저건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거냐?! 아까 날뛴 기사잖아!”
“뒤에 교수님이 계시잖아·”
“아하·”
부나르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르시아 교수가 기사 뒤에 서있는 길 보니 확실히 안심이 됐다·
“실로 든든하군· 저 분의 성함이 가르시아 킴 교수님이라고 했나?”
“어? 아니· 옆에 배그렉 교수님 말한 건데· 가르시아 교수님은 벌레 하나 못 죽이셔·”
“···날 놀리는 건가?!”
떠드는 사이 이한 일행이 도착했다·
가리히 가문의 기사 람은 솔직하게 사과했다·
“미안하네· 내가 잠시 이성을 잃고 페를 끼쳤군·”
“!”
생각보다 너무 다른 기사의 태도에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소곤거렸다·
“혹시 가르시아 교수님도 주먹을 쓰신 거 아닐까?”
“그럴지도···”
볼라디 교수가 제압했을 것 정도는 예상했지만 저렇게 태도가 변하려면 가르시아 교수도 나서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흥· 아무리 그래도 신성한 마법학교의 영지에서 그런 행패라니· 그러고도 기사란 말입니까?”
부나르조는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외부인 그것도 기사가 와서 행패를 부리다니· 이건 페트로가드 학생으로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사이 조금 친해진 에인로가드 친구들도 동의를 표했다·
“맞는 말이야· 마법사도 아니고 기사가 여기서 행패를 부리는 건···”
“여기 기사님은 고인의 초상화를 부탁하셨는데 페트로가드 마법사가 약속을 어기고 도망가서 찾아오셨다는군·”
이한은 친구들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기 전에 재빨리 설명했다·
친구들은 즉시 태도를 바꿨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부나르조! 실망이다!”
“버두스 교수님도 그런 짓은··· 하시겠지만 너희가 버두스 교수님과 같은 수준이야?!”
“아 아니··· 엄밀히 따지면 페트로가드 마법사는 아니신···”
궁지에 빠진 부나르조는 허둥대며 변명했다·
설마 위대한 예술가에게 그런 사정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런 걸 모르고 무례하게···”
“아니네· 내가 잘못했지· 제국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마법사들에게 행패를 부리다니· 혹시 작품에 손상이 가진 않았나? 그렇다면 보상해주겠네·”
“괜찮습니다· 아주 멀쩡하죠! 혹시 하나 가져가시겠습니까?”
람은 빙그레 미소지으며 말했다·
“완성되면 제값을 주고 구입하도록 하지·”
말을 마치고 난 기사는 가이난도의 그림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쳐다보았다·
“다시 봐도 강렬한 그림이군·”
“···헉· 혹시 관심 있으신가요? 사실래요?”
가이난도는 금화 한 닢에도 팔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사이 시세가 많이 내려간 것이다·
“아니· 괜찮네· 하인들이 무서워할 것 같군·”
“···마구간에라도 걸어놓으시면···”
“말도 무서워할 것 같군·”
“정문에···”
“그만해· 이 자식아·”
보다 못한 친구들이 가이난도를 끌어냈다·
이한은 그냥 끝까지 발드로가드 학생이라고 우길 걸 그랬다고 조금 후회했다·
“그래도 기사님이 화가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군· 예술가 님한테 아직 물어볼 게 많았거든·”
“···어?”
이한은 부나르조의 말에 멈칫했다·
혹시 아직 위대한 예술가가 도망친 걸 모르나?
당황한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를 보며 속삭였다·
“혹시 돌아오실 것 같습니까?”
“아뇨··· 이한 학생한테 영감 얻을 거 다 얻으셨는데 다른 곳 갔겠죠···”
그랬었지!
이한은 납득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진 이유는 절대 비밀로 해야겠군·’
페트로가드 학생들이 증오하는 마법사 이름 목록에 버두스 교수와 같이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