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2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난해하고 초월적인 마법에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수군거렸다·
영혼 없는 작품을 생명체로 탈바꿈시키겠다니·
마법사들 중에서 특히 더 위험한 부류는 바로 저렇게 어려운 마법에 몰두하는 이들이었다·
까다로운 마법에 영혼을 맡긴 채 전념하다보면 어느새 마법사가 미쳐버리는 것이다·
“아무래도 미친 마법사 같은데···”
“위대한 예술가 님은 미친 사람이 아니다!”
부나르조는 발끈했다·
수많은 페트로가드 학생들에게 영감을 준 예술가를 저렇게 모욕하다니·
“외부에서 왔다고 기껏 설명해줬더니···! 흥! 꺼져라·”
그나마 협조적인 페트로가드 학생이 역정을 내자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서둘러 달랬다·
만약 저 위대한 예술가가 정말 미친 마법사라면 상대를 달래서 정보를 캐내야지 이렇게 그냥 헤어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 아니· 오해야· 잘못 들은 거라고· 여기 황자 녀석이 말실수했어·”
“맞아! 넌 왜 오해하게 그런 말을 하냐! 빨리 사과해!”
“크윽· 내가 잘못했어· 미친 마법사는 다른 사람을 말한 거였어·”
“다른 사람 누구?”
“어··· 우리 교장 선생님?”
“···”
자신의 학교 교장을 미친 마법사라고 말하는 가이난도의 모습에 부나르조는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래· 일단 사과를 받아주도록 하지·”
“고마워!”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반색했다·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위대한 예술가에 대해 좀 더 말해보라고·”
“약점이 있다면 약점도 좀 말해봐· 혹시 마력이 많이 필요한 마법을 준비하진 않지? 그러면 걱정인데·”
“···”
부나르조는 살짝 의심 섞인 눈빛으로 에인로가드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과연 위대한 예술가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것일까?
“수상한데·”
“무 무슨 소리야· 우리도 그··· 예술에 관심이 생겨서 그래· 그렇지?”
“맞 맞아요· 예술! 예술 좋아요· 와!”
“그렇다면 증명해봐·”
“뭐?”
“증명해보라고·”
부나르조는 가죽 주머니를 몇 개 더 꺼내더니 바닥에 부었다·
그림을 그릴 때 쓰는 화구(畫具)부터 조각용 도구 악기 시나 소설에 필요한 깃펜과 종이 등등이 즐비했다·
“하나씩 잡고 뭐라도 만들어봐· 진심이 느껴지면 위대한 예술가 님에 대해 설명해주지·”
“···그냥 에인로가드 방식으로 해결하면 안 되나요?”
“쉿· 여기 페트로가드라고· 일을 키우지 말자·”
예술에 자신 없는 학생들이 무력으로 해결하려고 하자 다른 친구들이 다급히 말렸다·
“으윽· 그림은 어렸을 때 잠깐 그려본 게 다인데·”
“투탄타는 차라리 낫겠군· 원래 조각에 능하잖아·”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나는 실용적인 건물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각자 투덜대며 그나마 자신 있거나 쉬워 보이는 도구를 하나씩 잡았다·
이번 기회에 닐리아에게 플루트를 가르쳐주려던 요네르는 가이난도가 캔버스와 붓을 붙잡자 의아해했다·
“너 그림 그릴 줄 알아? 그냥 짧은 소설이나 쓰지?”
물론 가이난도가 쓰는 소설이라고 해봤자 형편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요네르는 이미 입학하기 전부터 가이난도가 제국 추리 잡지에 응모하겠다고 직접 쓴 소설(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고귀한 핏줄을 타고난 황자가 눈만 마주치면 모든 범인을 자수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을 몇 번이고 읽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른 것보다는 훨씬 나을···
“안 돼· 아직 반전이 덜 완성됐단 말야·”
“그 그래· 그럼 그림은 자신 있고?”
“없지만 대충 칠하면 되는 거 아니야?”
부나르조가 뒤에서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는 것도 모르고 가이난도가 말했다·
요네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이난도는 무조건 탈락이었고 남은 사람들끼리 저 까다로운 페트로가드 학생을 만족시킬 작품을 어떻게든 하나라도 만들어내야 할 것 같았다·
* * *
“선배님! 선배님!”
가르시아 교수는 위대한 예술가가 머무는 처소의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어찌나 세게 두드렸는지 주변의 공간 마법 표면이 뒤흔들릴 정도였다· 알시클은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문 두드리는 거 핑계로 습격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그건 아닐 것 같았다·
그런 거였다면 알시클한테도 미리 말해줬을 테니까·
···아마!
벌컥!
문이 열리더니 위대한 예술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에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복장으로 겉모습을 숨기고 있었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와 동작으로 가르시아는 상대가 해골 교장의 옛 제자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아ㄱ··· 아니 선배님!”
이름을 부르려다가 가르시아 교수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상대는 제자의 신분을 버리면서 이름도 같이 버린 마법사·
괜히 본명을 불러서 화를 돋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교수라는 직위를 가진 이상 무슨 말을 해도 상대의 심기를 거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누가 네 선배란 말이냐? 꺼져!”
쾅!
위대한 예술가는 문을 닫더니 그 겉으로 여덟 겹으로 중첩된 공간 왜곡 마법을 걸어버렸다·
-위 위대한 예술가 ㄴ···
밖에서 뒤늦게 깨달은 가르시아 교수가 애타게 불렀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무시했다·
“···방금 교수님 아니었습니까?”
“배신자들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위대한 예술가는 다시 팔을 흔들었다·
그러자 살풍경했던 처소의 벽이 허물어지듯 뒤집어지더니 그 안에 숨겼던 그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다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어서 안의 내용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안에서는 비범한 힘이 느껴졌다· 평범한 그림은 확실히 아니었다·
“어디까지 설명했었지?”
“작품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정말 가능합니까?”
“해골 교장의 제자이자 계승자인 네가 대답해봐라· 어떨 것 같지?”
‘진짜 뒤끝 심하시네·’
속으로 불평하며 이한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일시적인 정도라면··· 소세계나 고유세계로 구현할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다른 마법이라면 너무 공정이 복잡해질 것 같군요·”
무생물을 생물처럼 움직이게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했지만 아예 일시적인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마법을 어떻게 연계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그냥 법칙 자체를 어긋나게 하는 소세계나 고유세계로 가는 게 훨씬 더 가능성 높아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영구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맞아· 영특하구나· 언령 마법이나 소세계 심지어 고유세계··· 무슨 방법을 쓰든 영구적으로 구현하는 건 힘들지· 나는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생각이다·”
위대한 예술가는 허공에 사람의 형태를 나타내는 기호를 그렸다·
그리고 그 안에 고유세계를 나타내는 기호를 그리고 영구히 순환되는 기호를 그렸다·
뜻을 이해한 이한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작품 안에 고유세계를 불러낸 다음 계속 유지시키겠다는 겁니까?”
“그래·”
“그게 가능합니까?”
만약 고유세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작품은 정말로 영혼을 가진 생명체처럼 계속 살아 있는 것도 가능했다·
법칙을 뒤틀어버리는 대마법에는 그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고유세계를 계속 유지하는 건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보다 더 아득하게 들렸다·
대체 어떻게?
이한은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어서 멈칫했다·
‘설마?!’
“설마 제 마력을···!”
“바로 예술에 담긴 원시 마법의 정수를 이용해서··· 방금 뭐라고 했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한은 민망함을 숨긴 채 헛기침했다·
‘이게 다 버두스 교수 때문이다·’
교수가 되어서 학생의 마력을 멋대로 쓸 생각만 하니 이한이 이런 피해망상에 빠지게 된 것 아닌가·
위대한 예술가는 이한의 망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어쩌면··· 마법사가 마법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건 스스로 그 한계를 너무 빠르게 규정지어서일지도 모르지· 유리병 안에 갇혔던 벼룩이 밖에 나와서도 더 높이 뛰지 못하는 것처럼·”
“그거 실제로는 안 그러는데요·”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오히려 그 지적이 방금 내가 말한 의견에 힘을 보태주는군·”
예시가 틀리긴 했지만 위대한 예술가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현실을 뒤트는 마법이란 학문은 마법사의 의지와 관련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의 무의식 깊은 곳에 ‘이건 불가능해’라고 제약을 걸어버리면 안 그래도 불가능에 가까운 난이도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확실히··· 저도 자신감이 좀 부족한 편이라 공감이 갑니다· 마법을 익힐 때는 자신감도 중요하죠·”
“그렇지?”
만약 다른 친구들이 있었다면 장난하냐며 돌을 집어던졌을 발언이었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그대로 속아 넘어갔다·
교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한계를 원시 마법으로 돌파하려고 한다· 무작위적이고 통제 불가능하지만 오히려 그런 특성이 심리적 제약을 돌파할 수 있지·”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은근히 그럴듯하군·’
위대한 예술가가 하는 말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어차피 힘드니 될 때까지 가능성 낮은 도박을 하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목표가 목표다보니 오히려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확실히···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위대한 예술가는 피부의 아주 작은 일부도 보이지 않을 만큼 철저히 자신을 가리고 있었지만 이한은 상대가 처음으로 웃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예술로 도피하면서 얻은 깨달음이지· 그 새끼 밑에서 계속 있었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거야·”
“···”
이한은 그 새끼가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게 어떤 작품입니까? 혹시 상상 속의 연인?”
자신이 상상한 연인을 조각한 뒤 생명을 불어넣고 싶어 했던 조각가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한은 물었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이 황당해하며 대답했다·
“에인로가드에 있을 때에도 그런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체 어째서 연인 같은 걸 만들기 위해 이 모든 마법과 예술을 쏟아 넣어야 하지?”
“죄 죄송합니다·”
이한은 매우 부끄러움을 느꼈다·
상식적으로 그럴 리가 없는데!
‘동화를 너무 많이 읽었어·’
“너도 보면 관심을 가질 거다· 봐라·”
위대한 예술가는 다시 한 번 팔을 흔들었다·
어디선가 이한이 들은 적 있는 고대 왕국 시절의 노래가 들려왔다·
동시에 아까 모습을 드러낸 그림을 가렸던 천들이 사라지고 바닥에서 조각상이 천천히 올라왔다·
놀랍게도 그건 모두 다 해골 교장의 인간 시절 모습이었다!
“···”
이한이 경악해서 할 말을 잃은 채 쳐다보자 위대한 예술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설명했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터무니없는 추측은 당장 갖다 버려라· 혹시라도 내가 그 자를 존경해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어··· 저는 생명을 불어넣은 뒤 복수하기 위해 고통을 주시려는 줄 알았습니다·”
“···무슨 끔찍한 생각을 하는 거야?!”
위대한 예술가는 학파 막내의 잔인한 발상에 경악했다·
복수를 할 거면 본인한테 해야지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복수심 때문에 이 모든 예술과 마법을 준비하진 않는다· 나는 그렇게 어리석은 마법사가 아니야· 너는 왜 제국의 마법사들이 그 자 앞에서 굽신거린다고 생각하지?”
“교장 선생님이 굽신거릴 때도 더 많···”
애초에 이한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지 위대한 예술가는 자기 할 말을 이어서 했다·
“정답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신비의 적통을 그 사악한 자가 잇고 있기 때문이지· 거꾸로 말하자면 그 신비의 적통을 이은 자가 한 명 더 있다면 그 무도한 횡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상상해볼 수 있겠느냐? 그 사악한 대마법사와 똑같은 능력을 가졌지만 선량하고 정의로운 마음을 가진 마법사가 있다면?”
“앗· 저 만나본 적 있습니다·”
“···혹시 정신이 나간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