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8화
“뭐? 진짜?? 어디???”
바로 고개를 내미는 가이난도의 모습에 시아나는 살짝 존경스럽다는 듯이 속삭였다·
“가이난도 님은 참 친구를 잘 도와주시는 거 같아요·”
저렇게 속보이는 거짓말에 호응해줄 줄이야·
보통 도와주고 싶어도 그렇게 뻔뻔하지 못해서 힘들었다· 실제로 옆의 티질링은 구름이 있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이난도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와이번 모양 구름 어딨는데?”
“···앗! 저기 그리폰 모양 바위가!”
시아나는 한 번 더 화제를 틀었다· 가이난도는 그걸 또 믿고 시선을 돌렸다·
“와! 저기 봐!”
“???”
황자가 매우 놀란 목소리로 밖을 가리키자 시아나는 깜짝 놀랐다·
‘어라? 정말 있었나?’
그냥 대충 한 소리였는데 그리폰 모양 바위가 우연히 밖에 있었다고?
그러나 가이난도는 그리폰 모양 바위 때문에 놀란 게 아니었다·
웬 시체가 언덕 경사진 풀밭 위에 놓여있어서 놀란 것이었다·
“저거 시체 아니야???”
페트로가드 마법사들은 미소지었다·
외부에서 온 손님들은 자유로운 페트로가드의 마법사들을 보고 오해할 때가 있었다· 지금 저 시체도 그런···
“시체 아닌데? 시체는 저런 색이 아니지·”
“맞아· 황자 너는 흑마법 학파면서 시체도 못 알아보면 어떡해·”
“아 아차· 이한한테는 비밀로 해줘·”
“···저건 시체가 아니라 페트로가드의 학생입니다·”
“네? 아니 이 시간에 왜 학교 안도 아니고 이런 언덕에서 누워 있습니까?”
“하하· 직접 들어보도록 할까요? 부나르조!”
교수 역할을 맡았지만 본인은 교수가 아니라고 한사코 주장하는 마법사 달세르는 학생을 불렀다·
언덕 위에서 시체처럼 누워 있던 학생은 부름에 귀찮다는 듯이 눈을 떴다·
“왜?”
“잠깐 이리 와보세요· 여기 손님들이 물어볼 게 있답니다·”
“싫어·”
부나르조는 다시 눈을 감고 누웠다·
짝짝짝짝짝-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그 모습에 자신들도 모르게 기립박수를 쳤다·
“···”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손이···”
학생들의 변명에 가르시아 교수는 창피해 죽겠다는 듯이 얼굴을 가렸다·
달세르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어쩔 수 없네요· 저희가 갑시다·”
마차가 가까이 다가오자 부나르조는 성가시다는 듯이 일어났다·
“부나르조· 대답을 안 해주면 더 귀찮아질 뿐이에요·”
“···알겠어 하면 되잖아· 교수님· 뭐가 궁금한데?”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벤저민이 엄하게 훈계했다·
“부나르조! 말을 조심해라!”
“···알겠어 알겠어! 교수님이라고 안 하면 되잖아! 뭐가 궁금한데!”
대화를 듣고 있던 이한은 이해가 가지 않아 가르시아 교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 지금 왜 화를 내신 겁니까?”
“교수님이라고 불렀잖아요· 이한 학생· 그건 페트로가드의 자유로움과 어긋나는 칭호고요·”
“···”
억지로 교수님이라고 못 부르게 하는 것도 만만찮게 부자유스럽지 않나?
이한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페트로가드 학생들을 도발하려고 방문하는 게 아니라 도와주려고 가는 것이었으니까·
“여기서 뭘 하고 있었나요?”
“작품을 만들고 있었어·”
“????”
그 대답에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수군거렸다·
아덴아르트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물었다·
“어떤 장비나 작업대 재료도 보이지 않습니다만···”
마법 아이템을 제작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 장비를 필요로 했다·
그건 에인로가드 부여 마법 학파의 학생들도 벗어날 수 없었다·
괜히 선배들이 버두스 교수를 싫어하면서도 그 마탑에서 작업하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런데 여기 학생은 그런 것 하나 없이 작업하고 있다니·
혹시 페트로가드 학생들은 새로운 작업 방식을 갖고 있는 것일까?
“영혼을 다른 차원으로 보내서 작업하는 거 아니야?”
“그런 미친 짓을··· 워다나즈도 아니고·”
“야·”
외부에서 온 손님들이 수군거리는 동안 부나르조는 머리의 옆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걸 찾고 있었지·”
“재료? 시약?”
“필요 비전 마법? 설계?”
“아니· 예술적 영감·”
“···”
“···”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마치 평생 생존을 위해 싸워 온 야만인들이 예술이란 단어를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했다·
“예술···”
“적··· 영감···?”
“어 마법 이름인가?”
“아니· 마법이 아니라 진짜 예술 말하는 거 같은데· 그 교양에서 다루는 예술 있잖아· 제국에서는 음악 미술 시 등등으로 표현되는·”
“그 그렇군· ···그게 왜 마법 아이템에 필요하지?”
“마법 아이템이 아니라 예술 작품을 만드는 거 아닐까?”
부나르조는 외부에서 온 야만인들을 혐오스럽게 쳐다보았다·
“난 마법 아이템 만들고 있는 거 맞아· 이 야만스러운 작자들 같으니· 너희들은 예술이 뭔지도 몰라?”
그 말에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발끈했다·
“감히 그런 말을? 우리도 예술이 뭔지 안다고!”
“밖에 연극 보러 나가기도 하고 심지어 노래를 작곡하기도 해! 달카드! 네가 보여줘!”
아산이 ‘에인로가드 에인로가드 너무 좋다네’ 노래를 시작하려고 하자 이한은 재빨리 말렸다·
부르는 순간 에인로가드의 사회적 체면은 산산조각나고 가르시아 교수는 한동안 출신을 숨기고 다녀야 할지도 몰랐다·
다행히 노래를 듣지 못한 부나르조는 조금 반응이 달라졌다·
“노래를 작곡하기도 한다고? 그건 대단한데· 하지만 그럴 줄 아는 녀석들이 왜 그렇게 멍청한 질문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마법 아이템에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 텐데?”
“마법··· 아닌가?”
이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부나르조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지·”
“혹시 마감 기한인가?”
“그건 가장 신경 쓸 필요 없는 거고· 가장 중요한 건 아름다움이야· 이걸 보라고·”
부나르조는 품속에서 작은 목걸이를 하나 꺼냈다·
정십이면체 형태로 세공된 청옥석 안에서는 꽤 복잡하고 세련된 마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냉기 통제 계열 마법인가?’
이한은 한눈에 마법을 파악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아티팩트에 쓸데없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청옥석을 감싼 순금 장식이 바로 그랬다·
천사의 형태를 하고 있는 순금 장식은 처음에는 냉기에 대한 통제력이나 원소 증폭 혹은 정령 감응을 효과적으로 늘리기 위해 추가된 건가 싶었다·
그러나 굳이 천사의 형태로 만들 필요가 없었다· 만약 이한이었다면 황금을 두른 뒤 최소한의 마법진을 새긴 뒤 마력을 강하게 때려박았을 것이다·
‘왜 저렇게 조각을?’
“뭐가 느껴지지?”
“잘··· 모르겠는데·”
이한의 질문에 부나르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목걸이는 인근의 냉기를 막고 원할 경우 눈보라를 불러올 수 있는 작품이야·”
“아니· 그건 알겠어· 옆의 순금은 냉기에 대한 통제력과 인근 정령과의 감응력을 올려주는 용도겠지·”
“!!”
부나르조는 깜짝 놀랐다·
아티팩트의 마법을 떠나서 옆의 장식 역할까지 보는 것만으로 파악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왜 조각을 한 건지 이해가 안 가서··· 그냥 황금을 둘러서 감싼 다음에 마법진 새기는 게 가장 효율적이지 않나?”
이한의 질문에 깜짝 놀랐던 부나르조의 표정이 다시 돌변했다·
마치 혐오스러운 말을 들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추한 방식을··· 그건 전혀 아름답지 않잖아!”
“그 그러니까 지금 이 조각은 그냥 순수히 보기 좋으라고 한 겁니까?”
아덴아르트가 믿기 힘들다는 듯이 물었다·
“마법적 효과도 있지·”
“하지만 방금 워다나즈가 말한 것처럼 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인···”
“그건 아름답지 않다고 했잖아!”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일제히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머저리’ ‘얼간이’ ‘버두스보다 멍청한’ 같은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그러나 이한은 살짝 감탄하고 있었다·
‘내가 에인로가드에 찌들어서 초심을 잊고 있었군·’
예전에는 어떻게 아티팩트를 비싸게 팔 수 있을까만 고민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떻게 아티팩트를 좋게 만들까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생존의 위협을 지속적으로 겪다보니 중요한 걸 놓쳐버리고 당장 직면한 문제만 생각하게 된 걸지도 몰랐다·
‘맞는 말이다· 성능과 상관없이 좀 예쁘게 만들어야 더 잘 팔리지· 이걸 잊고 있었다니·’
“이해했어· 아름다움도 중요하지·”
“역시· 보는 눈이 있는 만큼 심미안도 있을 줄 알았지· 그럼 가봐· 내 사색을 방해하지 말라고·”
페트로가드 학생은 다시 눈을 감고 드러누웠다·
자신이 원하는 작품의 형태가 떠오를 때까지 계속 언덕에서 시체처럼 누워 있을 생각이었다·
그 모습에 가이난도가 울컥했다·
“저 게으른 자식! 지팡이를 휘두르고 망치를 두드려도 모자랄 시간에 저렇게 놀고 있어?!”
“황자 녀석이 모처럼 맞는 말을 하는군· 저건 마법사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니야·”
“버두스 교수님보다 못한 짓이지!”
학생들의 반응이 격렬해지자 가르시아 교수는 황급히 나서서 달랬다·
“모두들 진정해요! 물론 페트로가드의 방식이 좀 특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특이한 게 아니라 틀린 건데요?”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적대심으로 활활 타오르는 눈빛이었다·
-저런 마법사들은 존재해서는 안 돼!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만 명의 마법사가 있다면 만 개의 마법 방식이 있는 법이에요· 저건 페트로가드의 학풍이니 존중해줄 줄 알아야 해요· 다들 알겠죠?”
“···”
“···”
“다들 알겠죠???”
가르시아 교수의 아무것도 없는 주먹 안에서 공간이 압축되고 찌그러지는 소리가 나자 학생들은 재빨리 외쳤다·
“예!”
“저희 명예로운 에인로가드 학생들은 언제나 다른 마법학교를 존중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페트로가드 학생들은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많으니 에인로가드 같은 방식을 생각하면 안 돼요·”
“차라리 칼라로가드 방문하자고 할 걸···”
2학년 학생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제국에서는 가장 으슥하고 음침하고 냄새나는 땅에 있다는 이유로 별 인기가 없는 흑마법의 학교였지만 에인로가드 학생들에게는 그나마 가장 낫게 느껴졌다·
마차가 출발하자 달세르는 학생들이 받은 충격에 유쾌히 웃었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가끔 방문하면 언제나 똑같은 반응을 보여주는군요·”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저래도 작업이 진행이 됩니까?”
이한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에인로가드에서 배운 탓에 이한도 저런 방식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느리고 아예 작업에 진전이 없는 학생들도 꽤 있죠·”
“그러면 페트로가드는 곤란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인가요? 학생 자신의 선택인데요·”
“!”
페트로가드는 에인로가드처럼 학생에게 강한 열과 압력을 줘서 변성시키는 곳이 아니었다·
일정 이상의 실력만 되면 자유롭게 들여보내고 자유롭게 지내게 풀어주는 곳이었다·
학생 본인이 작품을 만들지 못해 굶어죽는다 하더라도 그건 학생 본인의 선택·
물론 그만큼 나오는 작품의 숫자는 들쭉날쭉하고 그 질도 천차만별이었지만 가끔씩 나오는 걸작들이 페트로가드의 명성을 책임졌다·
“이한· 이한·”
“왜 불러?”
“음악 마법으로 저 자식들의 콧대를 눌러버리자· ‘에인로가드 너무 좋다네’로···”
“···최소한 <그림자 요새로의 피신> 같은 곡을 연주하게 해줘·”
이한은 대충 흘려듣고 넘겼다·
그러나 옆에 있던 가르시아 교수는 멈칫했다·
‘어?’
생각해보니 지금 에인로가드에서 다시 연구하고 있는 음악 마법에 가장 관심을 많이 보일 학교는 바로 여기 페트로가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