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화
‘안 돼!’
가르시아 교수는 지금 상황을 전혀 모르고 접근하는 순진무구한 제자의 모습에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제자를 향해 교수는 재빨리 손짓했다·
해골을 손으로 표현한 이 동작은 에인로가드 학생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접근 금지 위험’의 손짓이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한 학생!’
“안녕하세요· 교수님·”
“아니!”
가르시아 교수는 손짓이 통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왜 왔어요!”
“예? 여기 카페로 오라고 하셨잖···”
“그게 아니라! 방금 내 손짓···”
“손짓이요? 그게 무슨 뜻인데요?”
이한은 가르시아 교수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의아해했다·
그 모습에 가르시아 교수는 충격을 받았다·
‘···요즘은 이거 안 쓰는구나!’
자신의 학창 시절 때 쓰던 손짓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가르시아 교수 같은 마법사에게도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는 사이 페트로가드 마법사들은 이한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에인로가드 학생인 모양이군요·”
“예· 맞습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이라고 합니다·”
“!”
두 마법사의 눈동자에 커다란 파문이 일어났다·
저 이름에 뒤따라오는 소문은 실로 많았다·
구울의 왕이나 서리거인의 왕과 대결했다느니 마법범죄자나 반마법주의자와 혈투를 벌였다느니···
하지만 두 마법사에게 가장 중요한 소문은 하나였다·
현재 해골 교장의 총애를 받고 있는 새 제자!
“혹시 고나달테스 님께서 직접 가르치고 있다는 그···?”
“예? 예·”
“졸업 이후 원추리 마탑에 가입하기로 확정되어 있는 그 학생입니까?”
“그건 아닌데요?”
“그렇죠? 저도 그건 아닐 것 같았습니다·”
페트로가드 마법사는 빠르게 납득했다·
원추리 마탑 마법사들의 말은 솔직히 신뢰도가 조금 떨어졌다· 예전에 가르시아 교수 때도 그렇게 자기네 마탑에 올 거라고 허언을 늘어놓지 않았던가·
“여하튼 현재 고나달테스 님의 유일한 제자는 맞으시군요·”
“아니 무슨 그런 기분 나쁜 표현을?”
이한은 처음 보는 마법사들이 기분 나쁜 말을 하자 살짝 불쾌해했다·
에인로가드 학생처럼 차려 입은 마법사답게 말도 에인로가드 교수처럼 무례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저 말고도 많습니다· 여기 킴 교수님도 있고 배그렉 교수님도 있고 모르툼 교수님도 있고·”
“아 물론 그 분들도 사사(師事)하긴 하셨지만 현재는 각자 교수로서 독립하셨잖습니까·”
‘교수가 되면 제자로 취급을 안 해주나?’
이한은 살짝 솔깃해했다·
교수가 되면 해골 교장의 유일한 제자라는 표현에서 벗어나게 된다니·
“현재 유일하게 순수한 제자 신분을 유지하고 계신 워다나즈 학생에게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버두스 교수님 넘겨달라는 거면 안 됩니다·”
마법사들의 간절한 부탁에 이한은 경계심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 * *
“이한 학생! 왜 그랬어요!”
가르시아 교수는 두 마법사들이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놀랍게도 이 선량한 제자는 페트로가드에서 온 마법사들의 부탁을 받아들인 것이다!
어떻게든 휘말려들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던 가르시아 교수 입장에서는 실로 당황스러운 결말이었다·
“어 그런데 저 분들이 그래야만 교수님 부탁도 들어준다고 하셨잖습니까·”
“설마 나 때문에 그런 거예요?!”
가르시아 교수는 더더욱 대경실색했다·
물론 마법학교끼리 교류를 더 돈독히 하고 싶은 건 사실이었지만 그게 불쌍한 제자를 제물로 바쳐서까지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에인로가드는 지금까지도 잘 자급자족하지 않았던가·
“아뇨·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러면···?”
“그 지금 소동의 이유가 교장 선생님의 옛 제자 분이라고 하셨잖습니까·”
“확정은 아니에요· 운이 좋을 경우 마법범죄자일 수도 있어요·”
가르시아 교수가 중얼거리는 말을 이한은 못 들은 척 무시했다·
“그렇다면 저한테도 어느 정도 의무가 있지 않나 싶어서··· 가능한 도와드리려고 한 겁니다·”
“···!!!”
명예욕의 분신에게 많은 것을 물려받은 다음부터 이한은 약속에 대한 의무감을 상당히 느끼고 있었다·
옛날이었다면 ‘교장 선생님의 옛 제자 분이 사고를 쳤다면 투서를 넣죠?’라고 했겠지만···
···이제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설득을 돕겠다는 정도까지는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교수님 혼자서 그런 분을 상대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죠·”
“···이한 학생!”
가르시아 교수는 깊이 감동했다·
만약 학창 시절 뼈가 부러진 몇몇 친구들만 아니었다면 확 끌어안았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아까 편지 말인데요 이한 학생이 못 풀 정도의 마법이라니· 어떤 마법이죠?”
지금 마법사들은 바로 페트로가드로 떠나는 대신 수도 별장에 먼저 방문하고 있었다·
이한이 저택에 마법 문제가 있다고 한 만큼 그것부터 도와주려고 한 것이다·
“그 웬 미친 마법사 유령이 지하에 있습니다만···”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설명을 듣던 가르시아 교수의 얼굴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한 공간의 미궁이라니·
설마···
“그거 미친 마법사 노엔첸프 아닌가요???”
“누구요?”
이한은 의아해했다·
미친 마법사라니·
‘너무 많지 않나?’
솔직히 어지간한 마법사들에게는 다 붙일 수 있는 칭호였다·
“미친 마법사 노엔첸프라고 예전에 시끄러웠던 마법사가 있어요·”
가르시아 교수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미친 마법사 노엔첸프는 교수가 에인로가드의 학생이었을 때 제국 신문에 올라왔던 사건이었다·
이스란 시 서쪽 성문 인근에서 기묘한 건물 발견! 마법사의 저주인가?
익명의 인근 마법사는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의 소행 같다고 증언했···
플라허 시에서도 발견되었다! 지하에 수상한 마법이 설치된 연금술 가게!
정말로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의 소행인가?
웬 미친 마법사가 제국 전역의 저택이나 상점 건물 지하에 진입할 수도 없는 이상한 공간 미궁을 설치해놓은 것이다·
당연히 이런 기괴한 짓을 할 사람은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고 실제로 해골 교장도 졸업생이 한 일인 줄 알고 재빨리 마법사들을 투입했다(그러면서 재학생들에게는 졸업생들 본받지 말라고 훈계한 건 덤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짓을 한 사람은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가 아니라 그냥 독창적으로 미친 마법사였다·
평생 시공간 마법을 연구하다가 자신의 미해결 과제를 제국 곳곳에 박아버린 마법사!
‘정말 민폐군·’
이한은 나중에 해결하지 못하는 마법이 있다 하더라도 제국 곳곳에 박아놓지는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저게 무슨 민폐란 말인가·
“해결이 됐나요?”
“아뇨· 해결이 됐다면 이한 학생의 별장 지하도 아무 문제가 없어야죠· 그 지하 공간 미궁은 다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마법이거든요· 해결됐다면 제국 전역의 미궁 저택들도 다 원래대로 돌아왔을 거예요·”
에인로가드 출신도 아닌데다가 쉽게 해결하기 힘든 난제를 만난 마법사들의 선택은 간단했다·
그냥 지하 공간의 마법을 파괴해버리고 유령을 퇴치시키는 것이었다·
어차피 지하 공간에 설치된 마법은 공간 미궁의 입구 같은 것이었으니 파괴하는 게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지만 일단 저택은 평화로워졌다·
“!”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일도양단하는 듯한 해결책에 이한은 반색했다·
생각해보니 문제를 풀 수 없다면 이런 해결책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 거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령의 전투력이 그렇게 강하지도 않으니···
“다만 이한 학생· 이 방법을 쓰면 저택이 무너져요·”
“···예????”
“아무래도 마법을 파괴하면 주변에 충격이 안 갈 수가 없어서 보통 지반이나 1층까지 흔들리거든요·”
“···”
커다란 충격을 받은 이한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르시아 교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교장 선생님의 옛 제자 이야기보다 더 충격 받은 것 같은데···’
아니겠지?
“그 그러면 교수님· 그냥 내버려두면 어떻습니까?”
“네?”
“마법사 유령을 내버려두고 같이 지내는 건?”
“···위협적이지 않으면 괜찮긴 한데 정말 그러고 싶어요 이한 학생?”
가르시아 교수는 광기 넘치는 제자의 각오에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미친 마법사 유령과 앞으로도 같이 지낼 각오를 하다니·
“저는 괜찮습니다· 이전 마법사들도 한 일인데 제가 못하겠습니까·”
“???”
* * *
뒤에서 가르시아 교수와 그 제자가 떠드는 대화를 눈치 못 챈 채 페트로가드 마법사 달세르는 별장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이야 아주 깔끔한데요?”
“워다나즈 가문은 대귀족 가문이지 않나· 별장 저택도 품위 있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마찬가지로 페트로가드 출신인 가르녹 가문의 벤저민 경은 놀랄 일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고 페트로가드에 방문하도록 하죠·”
“그러게나· 앗· 다른 학생들도 있군·”
두 마법사는 저택 안에서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발견했다·
-너 이 자식 거기 안 서?!
-아 아니· 황자 놈아! 고기 파이 하나 주워 먹었다고 이럴 일이냐! 워다나즈랑 달리 너무 쪼잔하잖아!
-닥쳐! 준비도 되기 전에 음식에 손을 대다니!
“···어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아닌가요?”
달세르는 살짝 당황했다·
자신이 제대로 본 게 맞다면 분명 서로 다른 탑의 학생들이 한 자리에 우르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에인로가드라면 그럴 리 없는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학생과 같이 방문했는데··· 저기 뒤에 오고 있습니다·”
“들어오시죠·”
살코는 신경 쓰지 않고 문을 열었다·
황자나 흰 호랑이 탑 놈들이 외부인 앞에서 체면 좀 상한다 하더라도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워다나즈와 왜 같이 방문하신 겁니까?”
“지하실에 미해결 마법이 있다고 들어서 도우러 왔지요·”
“···어 두 분이서 말입니까?”
살코는 둘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워다나즈도 실패했는데 두 분이···”
“···우린 페트로가드 출신이랍니다· 아시겠어요?”
“네· 근데 워다나즈도 실패했는데 두 분이···”
“···”
달세르는 어이가 없었다·
물론 에인로가드 마법사들이 다른 마법사들의 복장을 뒤집는 데에 재주가 탁월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고작 2학년 학생이 이 정도 능력을 보여줄 줄이야·
“우리는··· 그··· 따지자면 에인로가드 교수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페트로가드에서요·”
“네· 알고 있는데 두 분이···”
“안내나 해주시죠!”
목소리가 높아지자 다른 학생들이 시선을 돌렸다· 시아나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앗· 손님 오셨네요?”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지하실 마법 해결하려고 오셨다는군·”
“두 분이서요?”
“···”
두 페트로가드 마법사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아찔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가르시아 교수가 복수하려고 여기에 초대한 것일까?
‘아 아니· 고나달테스 공도 아니고 킴 교수가 그럴 사람은 절대 아니지···’
“두 분! 잠깐만요!”
뒤늦게 도착한 가르시아 교수가 둘을 불렀다·
“사실 지하실 마법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킴 교수님· 지금 바로 해결하고 올 테니까요·”
달세르는 보기 드물게 의욕을 불태웠다· 가르시아 교수는 안절부절 못하며 말리려고 했다·
“그러니까 그게 평범한···”
“기다리고 계십시오!”
두 페트로가드 마법사는 위풍당당하게 망토를 휘날리며 지하실로 향했다·
가르시아 교수는 그 모습에 울상이 되어서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도 에인로가드를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죠···”
“···제가 페트로가드 가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