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화
그러나 설명을 듣고 나자 알시클은 이한이 왜 화를 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원하는 공간을 특정 짓는 시공간 마법을 그냥 가서 해보라고 했으니 누구든 화가 안 나겠는가·
알시클도 저런 말을 들었다면 정어리를 낯짝에 던졌을 것이다·
“미 미안하다·”
“원래 가르시아 교수님에게 여쭤보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교수님은 바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교장 선생님이 낫겠죠?”
“?”
“???”
옆에 있던 검은 거북이 탑 친구들과 불사조 탑 친구들이 모두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시아나가 티질링에게 속삭였다·
“보통 모르는 게 있어도 교장 선생님한테 묻나요?”
“쉿· 시아나 사제님· 다 들리겠습니다···”
알시클은 후배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킴 교수에게 묻는 게 무조건 낫다· 내가 연락을 전해주마·”
“어째서 말입니까? 아· 생각해보니 교장 선생님도 바쁘실···”
“아니· 그냥 고나달테스 님이 여기 오는 게 싫어·”
“···”
어이없는 이유였지만 알시클이 너무나도 진지했기에 이한은 압도당했다·
알시클은 재빨리 편지를 썼다·
먼 거리에서 종이새를 주고받는 마법사들은 자신의 위치로 날아올 수 있게 마력 반향(反響)을 뿜어내는 별도의 아티팩트를 소지한 뒤 상대에게 그 마력의 패턴을 알려주곤 했다·
가르시아 교수와 평소 종이새를 주고받았던 만큼 알시클은 어렵지 않게 편지를 날려보냈다·
“3일··· 아니 4일만 기다리자! 워다나즈 너도 그 동안 시장 갔다 오면 되잖아!”
“에이· 지금 당장 살 것도 없는데 너무 시간 낭비 같은데요·”
‘너 방금 사제님들은 수도 시장 구경 가라고 했었잖아···’
살코는 속으로 어이없어했다·
이런 미친 마법 중독자 같으니!
“그래도 알겠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저택 남은 곳이나 확인해보겠···”
휙-
“!”
알시클이 날려 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저택 위로 종이새가 돌아오자 학생들은 놀랐다·
뭐지?
“다른 종이새인가?”
“아니··· 킴 교수가 보낸 게 맞는데? 뭐지? 수도에 와있나?”
놀란 얼굴로 펭귄 수인 마법사는 편지를 확인했다·
펭에린 가문의 알시클 님에게!!
교장 선생님한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이한 학생을 외차원 괴물 추적에 동행시켰다니 다른 교수님들이 알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화르륵!
알시클은 재빨리 첫 장을 불태워 증거를 인멸했다· 학생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태우세요?”
“킴 킴 교수께서 첫 장은 태우라고 하셨어·”
시선을 피하며 알시클은 서둘러 다음 내용을 읽었다·
다행히 가르시아 교수는 첫 장에만 화를 내고 그 다음에는 멀쩡한 내용을 적어놓았다·
···저는 지금 마법학교 관련 일로 수도에 와있습니다· 이한 학생이 물어볼 게 있다면 바위 정령의 사과잼 카페로 오라고 해주세요···
“교수가 바위 정령의 사과잼 카페로 오라는데?”
“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한 학생이 정말 해결 못하는 문제가 맞나요? 혹시 모르니 다시 한 번 해보고 오라고 해주세요·
‘이건 못 본 척 해야지·’
알시클은 마지막 추신도 태워버렸다·
이한이 본다면 분노로 펄펄 뛸지도 몰랐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알시클 님·”
“그래· 잘 다녀와!”
이한을 배웅한 뒤 알시클은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뭘까?
‘뭐지? 왜 이상한 기분이···’
알시클은 저택 안에 이상한 거라도 있나 확인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의 마법사 유령은 이한이 기다려달라고 한 덕분인지 아직 잠잠했고 다른 구역들은 에인로가드 학생들이 힘을 합친 덕분에 빠르게 원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펭에린 님! 손님 오셨어요!”
“에린다르벨 님인가? 나 원 참· 그 분은 저택 주실 때 확인 한 번 하고 주시지· 워다나즈랑 어울리긴 하지만 그래도 저건 너무 심하잖···”
“아뇨· 배그렉 교수님이신데요·”
“···!!!!!!”
그제야 알시클은 자신이 놓치고 있던 걸 깨달았다·
애초에 볼라디 배그렉 때문에 이한을 옆에 두고 있었던 거였지!
* * *
“와· 이 돌 수프 정말 맛이 훌륭한데!”
“그렇군·”
마법학교 페트로가드에서 온 마법사들은 돌 수프의 맛에 감탄했다·
이 바위 정령이 갖고 나온 볼품없는 돌 수프에서는 믿기 힘들 만큼 진한 영혼의 맛이 났다·
끼기긱·
지나가던 바위 정령이 쑥스러워하자 마법사가 찬사의 휘파람을 불었다·
“여기입니다 킴 교수님!”
“다들 안녕하세요!”
뒤늦게 카페에 도착한 가르시아 교수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다른 마법학교에서 온 손님들을 반겼다·
아쉬운 게 있어서 부른 만큼 그 태도는 더욱 더 과장될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뵀을 때보다 더 수척해지신 것 같습니다·”
콧수염을 기르고 모자와 비단 조끼를 착용한 전형적인 제국 신사처럼 차려입은 마법사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 아니에요·”
“킴 교수님께서 쓰러지시면 저희는 에인로가드에서 말 통하는 분이 아무도 없어진다구요·”
다른 마법사도 한몫 거들었다· 이 마법사는 옆의 동료와 달리 자유로운 복색을 하고 있었다·
사실 자유로운 복색은 아주 좋게 말해준 거였고 굳이 따지자면 에인로가드 학생 비슷한 차림이었다·
거지와 구분이 안 되는 허름한 누더기 패치워크를 망토처럼 두른 모습!
“무슨··· 그 정도는 더더욱 아니에요· 에인로가드에도 좋은 교수님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누구를 말하시는 겁니까?”
“누구요?”
“···”
가르시아 교수는 슬쩍 말을 돌렸다·
“그래서 두 분· 교류회나 대회 제안은 생각해보셨나요?”
제국의 마법학교들은 서로 그리 교류가 잦은 편은 아니었다·
자주 교류해봤자 손해여서는 아니었고(특정 마법학교는 교류하면 손해긴 했다) 마법학교마다 각자 사정이 있어서였다·
에인로가드 같은 경우는 대부분의 교수들이 관심이 없어서라는 놀라운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페트로가드 같은 경우에는···
“제안은 영광입니다· 킴 교수님· 그런데 아무래도 저희 마법사들이 수락하진 않을 거 같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두 마법사는 미안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둘 다 뛰어난 마법사인 가르시아 교수에게는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학교 간의 일을 멋대로 결정지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혹시 버두스 교수님을 꽁꽁 묶어서 저희 학교로 보내주실 수는 없으시죠? 그러면 저희가 정말 뭐든지 해드릴 수도 있거든요· 저번에 요청하신 마법 아이템의 두 배를 만들어서 보내드릴 수도 있구요·”
“그 그건 좀···”
가르시아 교수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주먹을 꼭 쥐었다·
에인로가드 밖에서 만나는 가장 커다란 유혹 중 하나는 수상할 만큼 돈이 많은 제국 사람들의 버두스 판매 제안이었다·
-버두스 교수의 목만 갖고 오면 내 성(城) 하나를 통째로 채울 만한 황금을 수여하리다!
그리고 그건 마법학교 페트로가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전에 버두스 교수가 여러 번 엿을 먹인 것 때문에 아직도 페트로가드 마법사들은 이를 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여러분· 마법학교끼리 교류를 늘리고 제국 전역에 마법사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잖아요·”
가르시아 교수는 한동안 끊겼던 여러 마법학교 사이의 교류를 다시 늘리고 싶어했다·
공적으로는 제국의 사람들(특히 관료들)에게 마법학교가 이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사적으로는···
“폐하께서도 막대한 지원을 해준다고 하셨고요·”
“으음·”
“그건 저희도 받긴 했지요·”
마법학교만 보면 이를 가는 관료들과 달리 황제는 마법사와 마법학교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그런 만큼 꾸준히 마법학교들을 지원하고 제국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기도 했고·
문제는 마법학교들이 더럽게 말을 안 들어먹는다는 점이었다·
당장 에인로가드도 가르시아 교수가 나선 걸 보면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고나달테스 공은 폐하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했겠지···’
당장 페트로가드도 아쉬운 게 없어서 교류나 친선 대회를 생각해보라는 서신을 못 본 척 넘겼으니 더 막나가는 에인로가드의 마령관이 어땠을지는 뻔히 보였다·
“어쩔 수 없죠· 휴· 페트로가드도 설득하기 힘들면 다른 마법학교는 더 힘들 테니···”
“아니! 설마 발드로가드 놈들이 거절했단 말입니까!?”
마법사는 자신도 거절해놓고 발드로가드가 에인로가드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가르시아 교수는 당황해서 대답했다·
“아 아뇨· 발드로가드 분들은 언제나 좋다고 하시죠·”
“다행이네요· 당연히 그래야죠!”
“···”
격렬한 반응에 가르시아 교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발드로가드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닐까?
“어쨌든 알겠습니다· 두 분 오늘 여기까지 나와 주셔서 감사···”
“아 아니에요· 킴 교수님· 사실 그냥 거절하기 위해서 교수님을 여기까지 불렀을 리 없지 않습니까? 저희도 제안이 있거든요·”
“?”
가르시아 교수는 갑자기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버두스 교수님은 못 드려요·”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희가 킴 교수님을 속이고 버두스 교수를 강탈하겠습니까·”
두 페트로가드 마법사는 강하게 항변했다· 하지만 가르시아 교수는 의심을 풀지 않았다·
이제까지 버두스 교수의 목을 원하는 사람들은 온갖 교활한 계략을 펼쳐왔던 것이다·
“사실 지금 저희 페트로가드에 대마법사 한 분이 와계시거든요·”
“오! 어떤 분이세요?”
가르시아 교수는 반가워했다·
제국에 이름이 알려진 대마법사들은 대부분 그 행적이 모호했다·
고나달테스 공이나 에린다르벨 경은 예외적인 경우였고 대마법사들은 보통 자신이 쫓는 비의 때문에 제국 전역은 물론이고 그 밖이나 차원 너머까지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대마법사가 한 명 페트로가드에 와있다니· 가르시아 교수로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실력은 대마법사가 확실한데 말입니다··· 좀 수상한 분입니다·”
“···마법범죄자인가요?”
가르시아 교수는 긴장했다·
마법범죄자 중에 대마법사가 없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페트로가드 마법사들이 다치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그건 아닙니다! 아니··· 정체를 모르니까 마법범죄자일수도 있나···? 그게··· 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고나달테스 공의 옛 제자 분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예!?”
페트로가드는 별도의 고정된 학교 영지 대신 제국 전역을 움직이는 유랑하는 마법학교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페트로가드에 한 마법사가 찾아왔다· 비범한 실력과 심미안을 가진 그 마법사는 순식간에 페트로가드 마법사들을 사로잡았다·
-대단하십니다! 생전 처음 보는 이 마법은···
-별 것 아니다·
-고나달테스 님께서 이런 마법을 쓰셨던 것 같은데 혹시 관계가 있으십니까?
-···내 앞에서 꺼지지 못해!?!
와장창!
-???!
수상할 정도로 마법 실력이 뛰어나고 제국에서 찾기 힘든 고대 마법에도 능통하며 고나달테스의 이름이 나오면 매우 분노하는 대마법사·
이건 운이 좋을 경우 마법범죄자였고 최악의 경우에는 해골 교장의 옛 제자였다·
“아무리 찾아봐도 마법범죄자들 중에는 해당되는 사람이 없더군요· 그래서 넌지시 내보내려고 했는데···”
“거절하셨나요?”
“네· 자기가 원할 때까지 있겠다고 하시더군요·”
덕분에 페트로가드 마법사들도 둘로 나뉘었다·
‘해골 교장의 옛 제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미쳤다고 학교에 두느냐’파벌과 ‘아직 확실하지도 않고 마법범죄자일수도 있는데 좀 더 학교에 둬도 되지 않느냐’파벌로·
이 둘은 당연히 전자였다·
“처음에는 고나달테스 님을 부를까 했는데 역효과가 날 거 같아서요·”
“···그건 그렇죠···”
가르시아 교수는 바로 납득했다·
해골 교장의 옛 제자 즉 가르시아 교수의 사형(師兄)이라면 교장의 모습만 봐도 극대노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공의 제자들께서는 서로 아끼시지 않습니까? 부디 킴 교수님께서 설득해주세요! 그러면 저희도 최선을 다해 교수님의 제안을 실행시키겠습니다!”
“그게··· 선배면 후배를 불쌍하게 여기기는 하는데요··· 저는 이미 에인로가드 교수가 되어서 교장 선생님 앞잡이 취급을 하실 것 같은···”
말끝을 흐리던 가르시아 교수는 저 멀리서 워다나즈 가문의 소년이 걸어오는 걸 발견했다·
만약 정말 사형이라면 가장 순수히 안쓰러워할 해골 교장 학파의 막내 수제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