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8화
웬 다른 차원의 괴물이 자신을 먹음직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끼 바실리스크가 저러는 건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해를 받은 새끼 바실리스크는 풍차처럼 꼬리를 돌리며 항변했다·
-저 그런 생각 안 했어요!
‘무슨 생각인지 아직 말 안 했는데·’
-저 나쁜 괴물들은 주인님의 마력을 느낀 것 같아요·
새끼 바실리스크는 같은 괴물답게 얼굴도 본 적 없는 상대의 욕망을 정확히 짐작했다·
언제나 팔뚝에 칭칭 감겨 마력을 풍족히 먹는 새끼 바실리스크와 달리 다른 괴물들은 언제나 허기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강대한 육신이 요구로 하는 양에 비해 먹이로 흡수하는 마력의 양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력한 몬스터들이 흉폭한 성정을 지닌 경우가 많은 것도 그래서였다·
-저렇게 강력한 괴물이라면 마력도 엄청나게 많이 필요할 테니까요·
“과연·”
새끼 바실리스크는 주인의 살점과 피를 탐하는 괴물에 대해 깊게 분개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저처럼 예의바르게 마력을 먹어야죠!
“으응·”
이한은 아직 어린 새끼 바실리스크한테 굳이 뭐라고 하는 대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 건 없다!”
“없다고? 그렇다면 아까부터 왜 네놈들을 노리는 거지?”
“우리가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겠지·”
‘으음·’
키타렌아눔은 움찔했다·
아까라면 믿지 않았겠지만 방금 펭에린 가문의 마법사가 역마법으로 비술을 막아버리는 걸 직접 목격한 것이다·
탐사대의 규모도 생각해보면 괴물이 더 위협적으로 느꼈을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차원을 넘어온 괴물치고는 전략이 너무 소극적인데· 강해봤자 자신한테 위협이 될 정도도 아닐 터· 한쪽을 방치하고 공격할 정도인가?’
고민하던 마법범죄자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좋다· 어떻게 협력할 생각이지? 같이 합류해서 움직이기라도 할 생각인가?”
“하· 퍽이나 서로 그럴 수 있겠군·”
알시클이 비웃었다· 탐사대나 저쪽이나 아무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같이 합류하는 순간 괴물 대신 서로의 등을 노리게 될 테니···
“구역을 나눠서 탈출하자· 어차피 합류해봤자 서로 싸우기만 할 것 아닌가· 그쪽도 여기에 잠입한 이상 지도는 꿰고 있을 터·”
이한의 제안은 합리적이었다·
지금 일행이 위치한 곳은 층수로 따지자면 지하 4층 정도·
남은 3층을 올라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비교적 단순하고 직선적인 서쪽 통로와 복잡하게 꼬여 있는 동쪽 통로로·
둘 다 서쪽 통로로 빠져나가려고 했다가는 내분이 일어나거나 괴물들만 몰려올 수 있으니 여기서 구역을 나눠서 탈출하자!
‘뭐지? 병신인가?’
키타렌아눔은 의아해했다·
지금 괴물들은 탐사대를 적극적으로 쫓고 있었다· 탈출 구역을 나눠봤자 한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탐사대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고작해봤자 서로 싸우는 상황을 피하는 정도·
물러도 보통 무른 게 아니었다·
‘하긴· 그 이상은 제안해봤자 이쪽이 거절하겠지· 공멸하면 놈들도 손해고·’
-무언가 이상하군· 놈들이 수작을 부리는 것 아닌가? 마법사· 네가 평소에 말했잖나·
-···에인로가드 출신이 교활하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키타렌아눔은 악마에게 해명했다·
에인로가드 출신의 교활함은 마법범죄자들도 쉬이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키타렌아눔에게는 에인로가드 마법사들에게는 없는 사악함이 있었다·
타고난 사악함!
에인로가드 마법사들은 대면할 때마다 ‘혹시 에인로가드가 무시해서 비뚤어진 것이냐! 내가 대신 사과한다!’하며 자존심에 상처를 냈지만 키타렌아눔은 스스로가 타고 난 사악함에 자부심이 있었다·
어떤 외부의 비극이나 불행 무시도 없이 순수하게 사악함을 타고난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마법사가 가져야 할 천부적인 덕목이자 강함 아니겠는가·
-놈들은 숫자가 많아서 챙겨야 할 목숨도 많다· 당연히 무리한 교섭은 시도할 수 없지· 그게 놈들의 약점이다·
-과연··· 알겠다· 네 판단을 믿어보도록 하지·
‘몰락한 대악마 주제에 더럽게 징징대는군·’
마법범죄자는 계약한 악마를 속으로 욕했다·
“좋다! 하지만 통로를 양보할 생각은 없다· 우리가 서쪽을 쓰겠다·”
옆에서 바시르맥이 잘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우리도 양보할 생각은 없다· 우리가 서쪽을 쓰겠다·”
이한의 말에 알시클이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상대가 거절하면 어쩌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범죄자라면 오히려 이 정도는 강하게 나가줘야 의심을 안 합니다·”
‘이 녀석· 마법범죄자들에 대해 왜 이렇게 잘 아는 거야···’
알시클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이한을 쳐다보았다·
협상이 깨질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고작 2학년인데 벌써 마법범죄자들의 생태를 꿰뚫고 있다는 점이 우려가 됐다·
···진짜 고나달테스 님만 믿고 있어도 되나?
‘으음· 고나달테스 님이 위대한 마법사시긴 하지만 예전부터 제자분들이 다 좀···’
“그쪽도 알고 있겠지· 괴물들이 이쪽을 먼저 노린다는 걸· 그쪽만 이득을 얻을 생각은 버려라·”
“···아주 머저리는 아니었군· 좋다· 우리가 동쪽으로 나가지·”
“뭐? 왜? 미쳤냐?”
바시르맥은 분노했다·
제국의 번견들한테 무엇 때문에 저렇게 양보한단 말인가·
“진정해라· 지금 공멸하고 싶지는 않을 텐데·”
“놈들을 위협해! 협박하란 말이다!”
키타렌아눔은 더 이상 듣지 않았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우린 먼저 갈림길로 간다· 뒤에서 따라와라· 거리를 유지하고·”
“알겠다·”
탐사대는 먼저 움직였다· 서쪽과 동쪽으로 나뉘는 통로의 갈림길을 향해서·
바시르맥은 불평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소홀히 하진 않았다·
“놈들이 아래에서 더 몰려온다· 지긋지긋한 벌레들 같으니· 그렇게 죽였는데도 몇 마리가 남아 있는 거야?”
“그 사이 숫자를 늘렸겠지· 신경 쓰지 마라· 놈들이 도착하기 전에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빠지면 그만이니까·”
키타렌아눔은 다시 물량을 보충하고 지하에서 올라오는 거미 괴물들에게 신경을 껐다·
어차피 통로에서 갈라지면 괴물들은 대부분이 저쪽을 노릴 터였다·
“이봐!”
“?”
먼저 도착한 탐사대 쪽에서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아까 그 에인로가드 마법사 같았다·
“뭐지?”
“바시르맥! 마법범죄자 키타렌아눔은 대악마와 계약하기 위해 거인족들의 심장 아흔 아홉개를 바쳤다!”
“···”
“···”
“그럼 이만!”
키타렌아눔은 등골을 얼음으로 찔린 듯 오싹함을 느꼈다·
옆에 있던 거인 혼혈 전사 바시르맥은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평소의 다혈질적인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 오히려 더 두려웠다·
“헛소리다! 놈들이 이간질을 하는 거다!”
“네놈이 악마와 계약한 건 알고 있었다· 냄새가 풀풀 났거든·”
“···!”
“그럼 이번 기회에 말해봐라· 뭘 제물로 바친 거냐?”
-크하하하!
악마가 기뻐하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 악마와의 계약에는 제물로 무엇을 바쳤는지도 밝히면 안 된다는 조약이 있었던 것이다·
밝히는 순간 계약은 파기되고 키타렌아눔은 상대의 영원한 노예가 됐다·
“그건 악마와의 계약으로 밝힐 수 없다·”
“과연·”
“놈들에게 속지 마라! 교활한 에인로가드 놈들답게 속임수를···”
말하면서도 키타렌아눔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방금 말 한 마디로 둘의 발을 묶어 놓은 수법은 그들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하면 절대 쓸 수 없는 수법이었다·
그걸 어떻게 얼굴도 보지 못한 에인로가드 놈이 사용한단 말인가?
“난 널 믿는다· 키타렌아눔·”
“고맙다!”
그리고 동시에 둘은 서로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키타렌아눔의 육신에서 마법이 풀려나오고 바시르맥의 대검에서 오러가 폭발하자 주변 통로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 아래로 거미 괴물들이 미친듯이 기어 올라오고 있었지만 둘은 신경 쓰지 않고 서로의 목숨만을 노리며 덤벼들었다·
* * *
“훌륭하다· 폭주하지 않겠군·”
악신숭배자한테 칭찬을 받은 이한은 기분이 매우 미묘해졌다·
“···용케 놈들을 싸우게 하는 방법을 알았군· 예지 마법의 힘인가?”
“그렇다· 위대한 예언자께서 주신 힘이지·”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바로 싸울 줄은 몰랐는데· 거인족들이 습격 당한 적이라도 있나?”
“그렇다· 교단의 전사들이 바시르맥 휘하의 거인족들을 습격해 심장 아흔 아홉개를 강탈했다·”
“···”
“···”
어쩐지 바로 싸움이 일어나더라!
이한과 알시클은 질린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역시 악신숭배자들은 절대 가까이할 게 아니었다·
“한 층 남았습니다!”
“가속 마법 부탁한다!”
“부작용 좀 있어도 됩니까?”
“뭐든지 부탁드리겠습니다!”
탐사대원들의 동의에 이한은 바로 지팡이를 꺼냈다·
원래 검은 책이 가르쳐 준 강화 마법들은 육신에 부담이 가는 만큼 에인로가드 학생이 아니고서야 잘 시전해주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동의까지 받았으면 이야기가 달랐다·
어차피 남은 층은 한 층일 테니···
-■■■■■■!
“놈들이 따라붙었다!”
“돌파해! 어차피 다 빠져나왔다!”
탐사대원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여기 모인 이들이 결코 약해서 싸움을 피한 게 아니었다· 깊은 곳에서 무의미한 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뿐·
쾅!
바로 그 때 공간이 으깨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래쪽이 아니라 위쪽에서·
“????”
···괜찮나 다들!
낯익은 거대 해골이 보기 드물게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날아왔다·
그 옆에는 저번에 본 적 있는 대마법사 에린다르벨도 보였다· 그쪽도 만만찮게 당황했는지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고나달테스 님! 도와주러 오셨군요!”
“에린다르벨 님까지! 이 탐사의 위험성을 미리 예상하고 계셨던 건가!”
어··· 어어· 그렇지·
“그 그렇습니다·”
두 대마법사는 재빨리 이한부터 확인했다· 멀쩡히 살아 있는 마법사의 모습을 확인하자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골 교장은 옆에 있는 대마법사를 째려보았다·
이 대마법사는 가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질러서 없는 심장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이한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예지 마법으로?”
나는 원래 이 탐사의 위험성을 짐작하고 있었다·
“????”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였다·
해골 교장은 분명 이 탐사에 대해 ‘아티팩트 나눠 갖는 행사겠지’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한은 다시 물었다·
“원래는 숨겨진 지하 창고에서 아티팩트 가져가는 거라고 하셨잖습니까?”
괴물들이 몰려오는군·
해골 교장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일반적인 괴물들과 수준이 다릅니다·”
맞는 말이다· 나오기 전에 알아차려서 다행이군·
두 대마법사는 아예 침식된 공간째로 불태워버릴 생각이었다·
괜히 이런 괴물이 밖에 빠져나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내가 공간을 소멸시키면 그 뒤처리를 맡아줄 수 있겠나?
“예· 주변 공간을 고정시켜놓겠습니다·”
그래· 바로 시작하지·
해골 교장은 즉시 마법을 시전하려고 했다· 이런 일은 길게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바로 그 때 종이새 한 마리가 해골 교장 곁으로 날아왔다· 새가 뭐라고 지저귀자 해골 교장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혹시 괴물이 빠져나갔다거나?”
···잠깐 이리 와봐라·
“???”
해골 교장이 부르자 이한은 더욱 걱정이 됐다·
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저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이한을 부르는 것일까?
지금 녹휘석 마탑에 볼라디 교수가 도착했다·
“예? 아· 네· 교수님이 아는 사이라고 하시더군요·”
···넌 오늘 여기 없었던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