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화
“움직입시다! 위로!”
탐사대원들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아무리 괴물이 탐이 나고 범죄자들의 현상금이 욕심나더라도···
“젠장· 한 명만 잡아도 여기 있는 인원들이 각자 금화 8125닢씩 나눠 가질 수 있었을 텐데·”
“···”
“···”
탐사대원들은 이 와중에도 완벽한 암산을 해내는 에인로가드의 마법사에게 경악했다·
제국의 악명 높은 범죄자들과 공허의 괴물 때문에 현상금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아무리 괴물이 탐이 나도 지금은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악신숭배자의 말이 거짓말이냐 아니냐 상관없이 일단 위로 올라가서 정보를 전하고 준비를 강화해야 했다·
끽!
알시클이 차고 다니던 목걸이의 수정이 위험을 감지하고 깨져나갔다· 짧은 미래를 예지한 알시클이 비명을 질렀다·
“좌측! 좌측 통로에서 적 접근! 수십 마리 이상이다!”
“뒤로!”
탐사대원들은 즉시 방향을 틀었다· 거의 동시에 좌측 통로에서 거미 괴물들이 쏟아져내려왔다·
-■■■■■■! -■■■■■■■!
이한은 망설이지 않고 화염을 불러와 형태를 벽으로 확장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심화 속성인 청염과 신성 속성인 백염으로 변환시켰다·
푸르고 흰 청백의 화염!
그 모습에 탐사대원 중 한 명이 다급하게 외쳤다·
“마법사 님· 마력을 낭비하지 말고 합류하십시오!”
마법사의 마력은 무한한 자원이 아니었다· 아무리 물약이나 아이템으로 보조를 받는다 하더라도 벌써부터 낭비를 해서는 안 됐다·
“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알시클은 탐사대원의 등을 떠밀며 서리 아뮬렛을 소환해 다른 이들에게 착용시켰다·
오염과 광란을 막아주는 환상 학파의 마법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냉정할 수가!’
알시클을 오해한 탐사대원은 속으로 그 냉정함에 전율했다·
저렇게 귀여운 외모로 어찌 이리 차가울 수가!
저 마법사는 냉기의 비의를 찾다가 자신의 심장마저도 얼어버린 걸지도 몰랐다·
“최소한 아뮬렛이라도 착용시켜주십시오!”
“뭐? 아냐! 쟤는 필요 없다니까!”
탐사대원이 이한을 가리키며 서리 아뮬렛을 걸어달라고 하자 알시클은 날개를 퍼덕이며 거절했다·
노련한 마법사답게 알시클은 남은 마력과 자신의 집중력을 예리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오염이나 광란에 면역인 놈에게 퍼줄 마법은 없었다·
‘진짜 너무해!’
“다 됐습니다· 가시죠!”
통로 전체를 태워버릴 만큼의 불을 소환한 이한이 뒤늦게 따라붙었다·
마력을 회복할 여유도 없이 일행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그 모습에 탐사대원은 깜짝 놀랐다·
“괜찮으십니까? 회복은?”
“아 괜찮다니까! 너나 신경 써! 움직여!”
알시클이 대신 화를 냈다·
그 모습에 탐사대원은 결심했다·
위로 복귀하면 꼭 제국 신문에 젊은 천재 마법사의 잔혹한 본모습을 고발하겠다고!
* * *
“죽-어-라!”
거인 혼혈 전사 바시르맥은 폐를 크게 부풀린 뒤 마력을 끌어내 고함을 쳤다·
경지에 오른 전사가 작정하고 지르는 함성은 강렬한 충격파로 변해 통로를 휩쓸어버렸다· 구름처럼 몰려들던 거미 군단이 일제히 으깨졌다·
그러나 그 뒤에는 여전히 많은 거미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줄었다는 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뭐 이렇게 많아?!”
“번식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는군·”
키타렌아눔이 신음하듯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원의 장벽을 넘어서 온 괴물이 단시간에 이런 물량을 자랑하는 건 말이 안 됐다·
일반적인 유성생식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였다·
“주변의 물질은 무엇이든 다 잡아먹고 알을 낳는 건가?”
“지금 마법 분석할 때냐 요 주문쟁이 새끼야!”
바시르맥은 앞을 가리켰다·
기껏 데리고 온 용병들은 단 두 명만이 남아 있었다· 거미 괴물들의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 것이다·
이 와중에 살아남은 종말주의자 마법사는 기분 나쁘게 실실대고 있었다· 바시르맥은 아까 놈을 던지지 않은 걸 후회했다·
화르륵!
갑자기 거미 괴물들 사이에서 마력으로 된 불화살이 만들어지더니 발사되었다·
강한 위력은 아니었지만 바시르맥과 키타렌아눔은 깜짝 놀랐다·
이 거미들이 마법을 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마법도 쓸 줄 알아?! 뭐냐!”
바시르맥은 손등으로 불화살을 쳐내며 고함을 터뜨렸다· 그러나 키타렌아눔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모 모르겠군· 놈이 마법을 쓸 줄 아는 차원 출신이었나? 하지만 처음에는 분명 안 썼는데?”
“이 불화살은 분명 갈색머리 용병이 쓰던 마법이었다·”
갑자기 불쑥 말을 꺼내는 종말주의자 마법사의 모습에 키타렌아눔은 움찔했다·
“무슨···”
“짐작가는 게 있지 않나?”
-이런 빌어먹을· 흡수 능력도 있군!
대악마 에사도지콰가 경악해서 중얼거렸다·
어쩐지 악마들이 소리 소문 없이 쓸려나갔다 싶었는데 이 괴물 놈은 잡아먹은 자의 능력도 흡수할 수 있었다!
괴물 중에서도 저런 권능을 가진 괴물은 극히 드물었다·
-그걸 놓치면 어떡하나!
-이 정도 정보라도 감지덕지해라· 마법사!
“그나마 다행이군· 용병 놈들은 별 거 아니었어· 마법을 써도 위협적이진 않을 거다·”
“더 잡아먹힐 경우도 생각해야지· 마법사 백 명을 먹는다 치면 그 중 백 분의 일만 흡수해도 한 명분의 마법을 얻는 거다·”
“그럼 나와 넌 더더욱 잡아먹히면 안 되겠···”
말하던 거인 혼혈 전사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깨닫고 외쳤다·
“엎드려!!”
“뭐···”
거미 괴물들에게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키타렌아눔은 반응이 늦었다·
종말주의자 마법사가 어느새 둘을 향해 마법을 갈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키타렌아눔은 자신이 상대를 얕봤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마법사라 하더라도 자신이 훨씬 더 경지가 높은 만큼 상대가 자신의 눈을 속이지 못할 거라고 과신한 것이다·
그러나 종말주의자 놈은 무슨 수법을 썼는지 둘의 감각을 완전히 속이고 마법을 불러왔다·
콰르릉!
“주문쟁이 놈!!! 심장을 씹어먹어주마!!!”
바시르맥은 날카로운 진공의 칼날을 육체로 받아내며 이를 갈았다·
하여간 마법사란 놈들은 하나 같이 다 믿을 게 되지 않았다·
“이딴 마법으로 기습을 하다니· 미치광이답군·”
여유를 되찾은 키타렌아눔도 방어를 확인하고 반격을 준비했다·
기습은 놀랐지만 그 위력은 별로 대단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바로···
“···안 돼! 안 돼!!”
키타렌아눔은 뒤늦게 깨닫고 울부짖었다·
종말주의자 놈이 히죽 웃으며 마법을 완성시키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멈추지 못해 미친놈아!!!”
“뭐냐! 무슨 일인···”
그 순간 주변 통로의 모든 벽과 바닥이 녹아내렸다· 밑에서 올라오던 거미 괴물들이 신나게 포효하며 뛰어올랐다·
올라온 괴물들은 종말주의자부터 삼켜버렸다· 간신히 새로 발판을 불러온 키타렌아눔은 이를 악물어야했다·
‘빌어먹을! 마법을 교체할 시간이···!’
“뭐라도 해봐라! 주문쟁이 놈아!”
광역 마법을 준비하려면 잠깐 교체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괴물들은 전후좌우는 물론이고 위아래에서 몰려왔다· 그 잠깐의 시간이 도저히 나오질 않았다·
뚝!
그 때였다·
갑자기 괴물들이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는 방향을 바꿔서 더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폭풍이여 풀려나와서 쓸어버려라!”
간신히 마법을 교체할 여유를 얻은 키타렌아눔은 팔을 폭풍으로 바꿨다· 살벌한 풍압이 주변의 괴물들을 쓸어버렸다·
바시르맥은 괴물의 체액과 껍질을 털어버린 뒤 물었다·
“놈들이 왜 갑자기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거냐?”
“모르겠군· 새로운 먹잇감이라도 발견했나? 우리보다 더 먹음직스러운···”
“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이 와중에도 거인 혼혈 전사는 오만함을 놓지 않았다·
괴물의 탐나는 먹잇감 순위라 하더라도 이 전사에게는 절대 질 수 없었던 것이다·
“···해골의 저주를 받았나? 밑에서 더 온다· 움직이자!”
키타렌아눔은 밑에서 느껴지는 새 괴물들의 접근에 지긋지긋하다는 듯 외쳤다·
사냥꾼으로 찾아와 사냥감이 될 수는 없었다·
* * *
“알시클 님·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헉 헉헉··· 헉헉헉···”
이한의 등에 업힌 알시클은(체력 때문에 금세 뻗었다)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헉헉댔다·
“뭐··· 뭐가 이상한데?”
“아까부터 괴물들이 저만 노리는 것 같습니다만···”
“그··· 그럴 만하지· 위협적이잖아· 마력도 많고·”
알시클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괴물들이 보기에도 비정상적으로 마력이 많고 오염에도 면역인 적은 가장 위협적으로 느껴지리라·
“하지만 마법은 알시클 님이 더 뛰어나시잖습니까·”
“···녀석!”
업힌 와중에도 알시클은 눈시울이 뭉클해지는 걸 느꼈다·
마법사 친구가 그리 많은 알시클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남들 앞에서 자랑할 친구가 한 명은 있었다·
“그보다 알시클 님· 탐사대원 분이 자꾸 노려보시는데··· 혹시 과거에 원한 있으셨습니까?”
“아 아니· 그런 거 없어· 아마 내가 너한테 업혀서 그런 거겠지·”
후배 마법사한테 업혀 가는 모습이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으리라·
‘그런가?’
이한은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탐사대원한테 ‘마법사는 원래 허약합니다’라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위층으로!”
“할 말이 있다·”
갑자기 악신숭배자 엘프가 입을 열었다· 이한은 다시 한 번 화염 마법을 시전하려다가 의아해했다·
“뭐냐?”
“저 마법사를 버리는 게 더 안전할···”
“닥쳐·”
퍽!
이한은 지팡이로 엘프의 주둥이를 후려갈겼다· 알시클은 후배 마법사의 과격한 반응에 깜짝 놀랐다·
두들겨 맞았지만 악신숭배자 엘프는 멈추지 않았다·
“버리기 싫다면 방향을 틀어라· 그쪽은 벌써 괴물들이 점령했다·”
“어디로?”
“오른쪽의 샛길로· 폐쇄된 수로가 하나 더 있다· 그쪽으로 가면 이용 가능한 도구가 있다·”
“!”
알시클은 가볍게 점을 쳤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쪽의 샛길로!”
“이용 가능한 도구는 뭐지? 수문 개폐 장치라도 있나?”
이한은 달리면서 엘프에게 물었다·
만약 고대 드워프들이 만들어놓은 그런 장치로 괴물들을 싹 쓸어버릴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마법범죄자 키타렌아눔과 분리주의자 바시르맥이 있다· 궁지에 몰린 놈들을 괴물들한테 던져줘라· 그러면 괴물 너는 폭주하지 않고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
“···”
“···”
이한과 알시클은 물론이고 탐사대원들도 할 말을 잃었다·
뭐 이런 새끼가 있냐?
“이용할 수가 있습니까? 악명 높은 수배범인데?”
“놈들도 우리 같은 상황이면 궁지에 몰렸다는 걸 알 겁니다· 아마 협력하자고 하면 받아들이겠죠·”
“하지만 놈들도 바보가 아닌데 우리 속셈을 모르겠습니까? 괜히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더 위험해집니다·”
탐사대원들이 빠르게 의견을 교환하자 악신숭배자 엘프가 조용히 이한에게 말했다·
“마법범죄자 키타렌아눔은 대악마와 계약하기 위해 거인족들의 심장 아흔 아홉개를 바쳤다· 이 사실을 바시르맥에게 말한다· 그러면 둘은 크게 다툰다·”
“그게 정말인가??”
“아니· 거짓말이다· 그러나 효과적이다·”
“···”
이한은 상대가 섬기는 신이 왜 악신인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에인로가드 학생들을 능가하는 사악한 화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