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화
대화를 마치고 마탑을 빠져나오는 길에(해골 교장은 마법사들의 시선을 교란시키기 위해 정문에 불을 질러야 했다) 해골 교장은 질문했다·
“나고 가문의 시약을 처리했다는 게 무슨 뜻이냐?”
“클럽 주간 때 밖에 나갔는데 용돈벌이로 의뢰를 맡았습니다· 그 때 일입니다·
“성실한 녀석 같으니· 가끔 네가 정말 푸른 용의 탑이 맞는지 의아할 때가 있다·”
그 얼마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의뢰를 받아서 해치우다니·
심지어 사이에 악신숭배자들과의 전투도 있었지 않은가·
감탄하느라 해골 교장은 나고 가문에 대한 의문을 지나쳐버렸다·
제국에는 수없이 많은 가문이 있는 만큼 해골 교장이 일일이 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았다·
대화를 듣고 있던 몇몇 기사들은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피와 살로 된 육신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진작 들켰을 것이다·
“출발하도록·”
“괜찮겠습니까? 다음 마탑에서도 여기처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해골 교장은 자신감 있는 태도로 말했다·
“물론 네 성취가 외부 마법사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조금 과소평가하긴 했다·”
-조금···?
“조금이요?”
해골 교장은 소음을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제 파악이 끝났다· 마법사들이 채무를 연장하줄 정도만 적당히 선별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원추리 마탑에서 있었던 일은 해골 교장의 계획에서도 벗어난 일이었다·
해골 교장은 마법사들을 적당히 속이고 싶었지 미쳐버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깊이 반성한 해골 교장은 앞으로는 적절히 정보를 통제해 의도한 효과를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인님· 여기서 그런 소란이 있었는데 다른 마탑에 소식이 퍼지지 않았을까요?
“그럴 리 없다·”
해골 교장은 단언했다·
“마법사들은 자기들밖에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에는 절대 소문을 퍼뜨리지 않거든·”
-과연!
“···”
이한은 황당해했지만 부정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이한이 보기에도 원추리 마탑 마법사들은 비밀을 지킬 것 같았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잠깐· 그런데 메이킨 님은 내가 소세계를 익힌걸 어떻게 아셨지?’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정령왕과의 계약은 그렇다 치더라도 소세계를 익힌 건 비교적 최근이었던 것이다·
‘요네르가 편지에 적었나? 최근에 밖으로 편지를 빼돌릴 기회가 없었던 것 같은데·’
-다음 마탑은 어디입니까?
“녹휘석 마답·”
-아 염력을 다루는 그 친구들이군요·
“그래· 저번에 버두스 교수에게 제작을 맡긴 지팡이가 모처럼 완성되었지·”
가끔 버두스 교수에게 맡긴 의뢰도 성공적으로 완성될 때가 있었다·
이번의 운좋은 의뢰자는 바로 녹휘석 마탑의 마법사들이었다·
“꼭 워다나즈를 안 꺼내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건 아닙니다·
기사들은 단호하게 직언했다
약속된 기간보다 휠씬 늦게 완성된 아티팩트가 왔다고 기뻐서 넘어갈 만큼 마법사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 *
“삯을 지불하는 걸 미뤄달라고···”
“그렇게 하십시오·”
-!
녹휘석 마탑 마법사들이 흔쾌히 수락하자 기사들은 깜짝 놀랐다·
이한도 마찬가지로 놀랐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쉽게?’
버두스 교수가 얼마나 의뢰를 지연시켰으면 완성된 것만으로도 이런 호의를 베푼단 말인가·
이한은 그 악명에 오히려 전율 비슷한 감정을 느낄 지경이었다·
실로 경지에 오른 지각 솜씨였다·
“그러면 이대로 넘어가는 겁니까?”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제자 님
이한의 질문에 기사들도 기꺼워하며 대답했다·
<원추리 마탑의 광란> 사건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는 건 기사들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행이 속닥이는 사이 녹휘석 마탑의 마법사 중 한 명이 이한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분이 배그렉 교수의 제자분이십니까?”
“···”
“···아차·”
해골 교장의 말에 이한은 무언가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교장 선생님?”
“여기 놈들이 볼라디 교수하고 친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군·”
“···”
잊을걸 잊어야지!
이한은 어이가 없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배그렉 교수가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수옥탄은 이야기했을 거 같고 워다나즈의 염력도 이야기했을 거 같고···
“저희 녹휘석 마탑의 마법사들은 필연적으로 전투 마법사들의 숫자가 상당한 편입니다· 워다나즈 가문의 이한 님처럼 어리고 재능 있는 마법사라면 더더욱 환영이지요·”
“···혹시 어디까지 들으셨습니까?”
“뭘 말입니까?”
마탑의 마법사는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웃음이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수상쩍었다·
해골 교장은 옆에 서있던 기사에게 눈짓했다· 기사가 헛기침을 하며 응접실의 문으로 이동했다·
달칵!
-···
문을 열고 밖을 확인하려던 죽음의 기사는 광경에 압도되었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어느새 응접실 앞에 쥐죽은듯 모여있었던 것이다·
-망한 거 같습니다·
“그래· 알겠다·”
해골 교장은 짧게 대답했다· 싱글벙글 웃던 마법사가 말을 이어나갔다·
“마침 문이 열린 김에 저희가 준비한 선물을···”
“선물은 괜찮네! 마음만 받도록 하지!”
“각하! 평소에는 그렇게 기부금을 요청하지 않으셨습니까! 준비했는데 왜 거절하시는 겁니까!”
“네놈들 눈깔이나 거울로 한 번 쳐다보고 그런 소리를 하도록 해라! 마법범죄자 죽일 때보다 더 맛이 가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목적을 마친 해골 교장은 다시 한 번 후퇴할 준비를 했다·
여기 마탑은 전투 마법사들이 많아서 탈출이 몇 배로 성가셨다·
“각하! 각하!”
“제자님· 배그렉 교수님이 저희 이야기는 안 해주셨습니까?”
“사실 제가 배그렉 교수와 친분이 깊습니다! 교수에 대해 알려드릴 게 있는데 잠깐 앉아서 이야기만 좀 하고 가시죠!”
“어 정말이십니까?”
“정말이겠냐!”
해골 교장은 제자의 귀를 잡아당기며 응접실 창문을 열었다· 연락을 받은 기사가 벌써 마차를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배그렉· 이 도움 안 되는 녀석 같으니!”
-하지만 교수님께서 녹휘석 마탑과 친분이 있는 건 원래··
죽음의 기사들은 볼라디 교수를 변호하려고 했다·
볼라디 교수가 녹휘석 마탑과 친분이 있는 건 기사들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사실이었다· 제국에 무력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동원되는 게 전투 마법사들인 만큼 서로 친분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해골 교장도 분명 볼라디 교수가 녹휘석 마탑 마법사들에게 서신을 보내 후계자의 마법 교육 강도를 높이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기뻐하며 박장대소하지 않았던가?
“닥쳐라·”
-예·
주인은 원래 반박하기 힘든 지적을 더 싫어했다· 기사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마차가 공중을 통해 도망치려고 하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허공에 염동력 계단을 만들어 달려오는 마법사들의 모습에 해골 교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도ㅇ··· 아니다· 넌 가만히 있어라·”
마차를 방해하는 각종 염동력을 제거하고 쫓아오는 마법사들을 안전히 제압해서 돌려보내는 건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당연히 제자도 시키려던 해골 교장은 마음을 바꿨다·
제자가 활약할수록 여기 마탑의 마법사들이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여기 놈들도 소세계에 대해 들었을 줄이야···”
중얼거리던 해골 교장은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볼라디 교수가 염동력 마법에 대해서는 강의 내용이니 서신으로 물어봤다 쳐도 소세계에 대해 알리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자네들·”
“예!”
해골 교장이 밀어버린 탓에 허공에서 염동력으로 헤엄치던 마답 마법사들이 대답했다
“혹시 소세계에 대해서도 아나?”
“예? 소세계 말입니까? 당연히 뭔지 알고 있습니다만 왜 갑자기?”
“···아무것도 아닐세! 출발!”
해골 교장은 오랜만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소세계를 익힌 걸 몰랐는데도 이 정도였다니···!
* * *
-주인님· 마탑은 그만 도시는 게 어떻습니까?
-맞습니다· 성과와 별개로 나중에 제자 님이 괜찮을지 좀 걱정이···
“···”
기사들의 말에 이한은 매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오늘 방문한 마탑들은 앞으로 가능한 방문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설령 방문했다 하더라도 거기서 내오는 음식이나 음료는 절대 드시지 마십시오·
이한은 죽음의 기사들이 보내는 충고를 가슴 깊숙이 새겼다·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니! 이제 남은 마탑들은 진짜 괜찮을 것이다·
“···”
‐···
이한과 기사들은 불신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해골 교장은 이해한다는 듯이 다독였다·
“너희의 마음도 이해한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유독 많았지·”
“솔직히 녹휘석 마탑은 예상을 해주셨어야 하는 것 아닙···”
“볼라디 교수의 친분까지 내가 다 어떻게 기억하느냐? 녹휘석 마탑의 일은 팔불출처럼 제자 자랑 세세하게 해댄 볼라디 교수 잘못이다·”
‘와· 뻔뻔하기가 거의 버두스 교수 급이시군·’
“남은 마탑들은 정말 완벽하게 정보를 통제해서 의도한 효과를 만들어내겠다·”
“교장 선생님이 마법사들을 상대하기만 하면 이상하게 역효과가 나는 것 같습니다만···”
‘역시 영특하시군·’
기사들은 내심 감탄했다·
벌써 저런 비밀을 깨달으시다니· 과연 후계자로서 자격이 있었다·
-주인님· 편지입니다·
마부석에 앉은 기사가 멀리서 날아오는 종이 새를 가리켰다· 해골 교장이 심드링하게 말했다·
“녹휘석 마탑에서 보냈느냐?”
-아닙니다·
“원추리 마탑?”
-아닙니다·
“아니라고? 그러면 태우지 말고 갖고 와라·”
마탑에서 보낸 편지라면 바로 태워버릴 생각이었지만 아니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해골 교장은 종이 새를 받아 내용을 확인했다·
“에린다르벨이 보냈군·”
“!”
상대는 이한도 이름을 들어본 적 있을 만큼 유명한 대마법사였다·
“무슨 일로 보내신 겁니까?”
“글쎄· 저번에 보냈을 때는 사과 편지였었는데··· 혹시 유크벨티레가 또 사고를 쳤나?”
“예? 선배님이 왜 나오시는···”
“뭐냐· 둘이 친한 사이 아니었느냐? 에린다르벨은 유크벨티레의 어머니다·”
이한은 크게 놀랐다·
그리고 놀란 와중에도 부정할 건 정확히 부정했다·
“안 친합니다·”
“···그 그래· 알겠다·”
기억이 맞다면 마지막에 보낸 편지 내용은 분명 방학 때 유크벨티레가 흑마법 학파의 친구를 비롯해 여러 마법사들을 휘말리게 한 사고에 대한 사과 편지였었다·
그 때 해골 교장은 관대히 답장했었다·
마법사가 살다 보면 공간 왜곡도 시키고 중첩도 시킬 수 있고 그러면서 느는 것 아니겠냐고·
물론 휘말린 마법사들은 생각이 조금 달랐지만 그건 해골 교장이 알바 아니었다·
친애하는 고나달테스 각하께 편지 보냅니다·
각하의 제자께서 2학년 때 소세계 마법을 티득했다고 유크벨티레에게 연락받았습니다·
허락해주신다면 각하의 이번 마탑 방문 때 제국 미래의 동량이 가진 역량을 직접 참관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신-유크벨티레가 연구에 대한 선약을 강탈당한 일로 각하를 제국 법정에 고소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 기다리겠습니다·
에린다르벨
“···”
편지의 내용을 생각하던 해골 교장은 멈칫했다·
유크벨티레가 에린다르벨에게 말했고 에린다르벨도 제자가 소세계를 익혔다는 사실을 안다면···?!
“마차 돌려라!”
-주인님· 마법사들이 벌써 앞에 마중 나왔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