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9화
해골 교장과 휘하의 기사들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마법사들이 왜 이렇게 격렬하게 반응했는지 이유가 드러났다·
“가원의 마법을 완성시켰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원추리 마탑에 와서 그 보석 같은 재능을 빛내주십시오!”
“예?”
이한은 뒤늦게 작년 교류회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건 엄밀히 따지자면 완성이 아니라 개선···”
“완성이죠·”
“솔직히 완성시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방금까지 이한의 환심을 사려고 친절히 굴었던 마법사들이었지만 마법에 관해서는 타협이 없었다·
바로 정색하면서 개선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
이한은 살짝 압도되었다·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봐 단호하게 뿜어내는 광기가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해골 교장과 기사들은 쓸데없는 대화로 시간을 낭비했다·
“그러면 4서클 정도만 말하는 건 어떻지?”
-3서클 어떻습니까?
-그런데 이미 알려진 게 있어서 3서클은 좀 이상할 것 같습니다만···
그러는 사이 뒤쪽에서 새로운 마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낯익은 가문의 문양에 이한은 멈칫했다·
‘메이킨 가문?’
“무슨 일이죠?”
마차 안에 있던 요아넨은 마탑 앞에서 일어난 소란에 의아해하며 창을 열었다·
원추리 마탑의 마법사들이 마치 상한 물약이라도 마신 것처럼 기괴한 소리를 내며 앞의 마차를 둘러싼 채 울부짖고 있었다·
-앗· 죄송합니다· 메이킨 님·
“여러분들은···”
요아넨은 죽음의 기사들과 인간 형태의 해골 교장을 금방 알아보았다·
언데드 형태가 아니더라도 워낙 인상 강렬한 일행이라 못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메이킨 님· 죄송합니다·”
이한도 대신 사과했다·
마음 같아서는 마차 문을 열고 내려서 사과하고 싶었지만 마법사들이 좀비처럼 마차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입니다···”
“설명 안 해도 괜찮아요·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으니·”
요아넨은 자수정 안경 너머로 지성 넘치는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워다나즈 님의 마법 재능을 듣고 마탑에 초대하기 위해 이렇게 모여 있었던 거겠죠·”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한은 깜짝 놀랐다·
물론 요아넨이 뛰어난 마법사답게 날카로운 통찰력을 갖고 있긴 했지만 이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 알아차리다니?
어떻게 알아챈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야 고나달테스 님께서는 킴 교수님 때도 똑같은 일을 하셨다고 들었···”
“쉿· 조용히 하게·”
해골 교장은 마법사의 트릭을 까발리려는 요아넨에게 경고를 보냈다·
원추리 마탑 마법사들의 지능이 내려간 상태라지만 굳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새겨줄 필요는 없었다·
요아넨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마법사로서 서로의 일을 훼방 놓지 않는 게 관례였다·
언젠가 요아넨 본인도 다른 마탑 마법사들의 지능을 낮추고 원하는 목표를 갈취할 일이 있지 않겠는가·
“이해했답니다· 그보다 고나달테스 님·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지 않나요? 정령왕과 계약한 마법사를 탑에 불러들일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버두스 교수님도 용서할 텐데
요·”
요아넨의 지적은 정확했다·
고작 2학년인데 벌써 정령왕과 계약한 마법사라면 마탑의 구성원들은 어떤 굴욕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데리고 오고 싶어할것이다·
설령 그게 버두스 교수를 용서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엇·”
-앗·
“?”
해골 교장과 죽음의 기사들이 보여주는 반응에 요아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러지?
“왕(王)급 정령과 계약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만?”
희번덕거리는 마탑 마법사의 눈동자에 산전수전 겪은 고대의 기사도 압도되어서 움찔했다·
-그··· 말하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혹시 다른 마탑에 가서 말할 생각이었습니까? 우리를 따돌리고?”
-아 아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안에 들어가면 다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맞아! 생각해보니 그 때도 정령왕의 힘으로 악마 공작을 제압했었습니다·”
가원은 그제야 뒤늦게 떠올라서 외쳤다·
옆에 있던 마법사들은 동료에게 살기 석인 질책을 토해냈다·
“자넨 머저리인가?! 그걸 말 안 하면 어떡하려고!”
“가원 저 친구가 자기 혼자 독점하려고 숨긴 게 분명합니다! 그 대가로 초대 권한을 뺏어야 합니다!”
“아··· 아니! 나도 몰랐네! 거기 있던 다른 에인로가드 학생이 특수한 방법으로 소환한 줄 알았어!”
“···”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모습에 요아넨은 아차 싶었다·
마법사로서 신중하지 못하고 실언을 해버린 것이다·
설마 정령왕과 계약한 걸 몰랐을 줄이야·
“정말 미안해요· 워다나즈 님· 정령왕 이야기를 안 한 줄은 몰랐네요· 그러면 소세계 이야기를 한 건가요?”
“···”
-···
“···진짜 미안해요!”
요아넨이 목소리 높여 사과함과 동시에 해골 교장과 죽음의 기사들은 재빨리 마차 안에 올라탔다·
마법사들이 바퀴와 문짝을 붙잡고 늘어지자 해골 교장은 냉정하게 명령을 내렸다·
“출발·”
-예!
기사들은 마차에 달라붙는 마법사들을 밀어버린 뒤 허겁지겁 마탑 안쪽으로 가속했다· 뒤에서 처절하게 부르는 마법사들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메아리쳤다·
해골 교장이 중얼거렸다·
“으음·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너무 격하군·”
마차 안의 기사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시아 교수 때보다 몇 배는 살벌한 저 반응을 보니 그 때처럼 일방적으로 ‘마법사 가르시아 킴은 에인로가드 교수로 임용되었답니다 하하’같은 연락을 보내고 잠수해버
리면 안 될것 같았다·
그랬다가는 정말 마탑 폭동이 일어날지도··
* * *
“오늘 이렇게 방문한 건 사념체를 유폐하기 위한 대마법에 동원된 마법사들의 삯을 지불하는 길 조금 미뤄달라고···”
“그러도록 하십시오·”
“···”
-···
을랑담을 비롯한 마탑의 마법사들이 즉시 대답하자 해골 교장과 죽음의 기사들은 오히려 떨떠름해졌다·
이렇게 일을 쉽게 처리했는데도 찜찜한 건 또 처음이었다·
사실 이유는 모두 알고 있었다·
원래라면 투덜대거나 불평했을 마법사들이 그런 말 한 마디 없이 광기 어린 눈빛만 섬뜩하게 빛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 법·
거꾸로 말하자면 짖지 않는 개는 좀 걱정을 할 필요가 있었다· 해골 교장은 슬슬 자신이 잘못 판단했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가르시아 교수 때처럼 적당히 받아낼 생각이었지 마탑의 마법사들을 모두 미쳐버리게 만들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이거 위험한데·’
지금 돌아버린 눈깔들을 보니 2학기 시작 때 제자가 복귀하는 대신 귀교의 학생은 마탑 가입을 선택했습니다 찾지 마십시오’같은 편지가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결국 해골 교장은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친절을 베풀었다·
“···요즘 마법 연구는 다들 잘 되어가고 있나? 원한다면 내가 가르침을 주도록 하지· 평소의 그런 애매모호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네들도 바로 쓸 수 있게 떠먹여준다 이 말일세·”
‘평소에 애매모호하게 가르쳐주셨다는 건 아시는군·’
‘쉿· 각하 앞에서는 생각도 함부로 하지 말게·’
수많은 마법사들이 해골 교장에게 지혜를 갈구했지만 그 중에서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마법사는 극소수였다·
심성이 배배 꼬여서인지 아니면 비의 전수에 대한 철학이 있어서인지 해골 교장은 매우 애매모호하고 알기 힘든 가르침만 내려줬던 것이다·
그런 해골 교장이 ‘이번에는 진짜 쉽고 빠르게 핵심만 가르쳐준다’라고 말하다니·
마법사라면 누구나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감히 각하의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요·”
“···”
마탑의 마법사들은 일제히 단결해서 거절했다·
그 태도에서는 해골 교장에게 어떤 빚도 지지 않겠다는 오로지 베풀기만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러니까 너도 양심이 있다면 우리 마답에 제자 보내라!
“···누가 텔레파시 썼나?”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해골 교장은 마탑의 마법사들이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의념에 전율했다·
어찌나 강력했는지 구체적으로 그 뜻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각하· 저번에 저희 마법사들이 사들인 유물에 관심이 있으셨죠?”
“‘그랬었나? 기억이 잘···”
“오신 김에 기념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그것까진 괜찮을 것 같네· 마음만 받도록 하지·”
“그러면 기부금은 어떻습니까?”
“에인로가드의 재정이 넉넉해서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네·”
제국에서 제일 말도 안 되는 거짓말과 함께 해골 교장은 제안을 거절했다·
“그보다 자네들· 나중에 제자가 꼭 여기 마탑에 가입하리란 보장은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각하께서 잘 말씀해주시겠죠· 이보게· 유물 갖고 오도록· 각하께 드려야겠어·”
“그만! 괜찮다니까!”
해골 교장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 한동안 원추리 마탑에서 보내는 선물은 꺼림칙해서라도 거절해야 할 것 같았다·
무턱대고 받았다가는 어느 순간 제자 몸값이 될 것 같았다·
허겁지겁 제자를 데리고 빠져나온 해골 교장은 복도에서 요아넨과 마주쳤다·
“자네는 왜 그런 소리를 쓸데없이 해서!”
“죄 죄송합니다·”
요아넨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원래 미치광이 대마법사도 근처에서 계속 접하다보면 두려움이 무더지기 마련이었다·
그런 것처럼 요아넨도 미친 동생 친구를 계속 접하다보니 이상하다는 감각이 사라져버렸다· 그 탓에 무심코 실언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원래는 무슨 이야기를 했던 건가요?”
“5서클?”
요아넨은 의아해했다·
정령왕도 소세계도 원래 이야기 안 했다면 왜 그렇게 미치광이들처럼 모여 있었지?
“···작년에 원추리 마답 마법사가 교류회에서 발표한 마법을 대신 완성해줬다는군·”
“개선했습니다·”
“완성이라니까·”
제자의 말에 해골 교장은 타박하며 설명했다· 다 들은 요아넨은 고개를 끄덕였다·
“완성이네요 그건·”
“···”
“봤느냐? 고집 좀 그만 부려라·”
이한이 투덜대는 동안 요아넨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거면 내가 말 안 했어도 결과는 똑같지 않았을까?’
“혹시 자네가 말 안했어도 똑같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절대 아닙니다·”
요아넨은 짐짓 아니라는 듯 장갑 낀 손을 내저었다·
“자네는 무슨 일로 방문했나?”
“공방에 제작 의뢰가 들어와서 직접 방문해서 확인해 볼 생각이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마법 연구에 필요한 특정 마력에 반응하는 승화성 화합물을 대량으로 부탁받은 요아넨이었다·
수도에 방문한 김에 직접 연구를 보고 견적을 가능해 볼 생각이었다·
“부럽군· 미친 마법사들을 상대할 필요도 없고·”
“부럽습니다· 벌써 그런 의뢰를 받으시다니·”
“···”
-···
해골 교장과 기사들은 이한을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지금 그걸 부러워할 때냐?
그러나 요아넨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워다나즈 님이나 요네르도 곧 이런 의뢰들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저번에 나고 가문의 시약만 해도 잘 처리했잖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운이 좋았죠·”
옆에서 들고 있던 해골 교장은 속으로 의아해했다·
나고 가문이 뭐하는 가문이지?
‘처음 듣는 가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