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8화
몇몇 마법사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리지는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
부나방이 타죽을 걸 알면서도 불 속으로 날아드는 것처럼 마법사란 족속이 원래 파멸할 걸 알면서도 지혜에 뛰어드는 이들이었다·
사악한 대마법사 고나달테스가 가르시아 교수를 이용해 그들을 속인 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사소한 원한 때문에 정말 원추리 마탑에 들어오려고 하는 마법사를 놓쳐버리기라도 한다면···
‘절대 그럴 순 없다!’
사소한원한과달리 죽을 때까지 평생 잊지 못할 상처가 될 게 분명했다·
“제가 듣기로는 뛰어난 전투 마법사라고 들었습니다· 구울의 왕이나 씨 서펜트 토벌 전적이 있다고···”
“놀랍군! ···그런데 우리는 전투 마법사 마탑이 아닌데?”
마법사들은 놀라워하면서도 의아해했다·
마탑은 그 창립 목적에 따라 제각기 성격이 달랐다· 원추리 마탑은 마법 전투와는 거리가 먼 연구형 마법사들의 마탑이었다·
그런데 전투 마법사를 데리고 와서 소개해주려고 하다니· 대단한 실력이긴 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지어 고작 2학년이라고 하던데요·”
“그건 정말 놀랍군···!”
“···잠깐 아무리 에인로가드라지만 2학년한테 구울의 왕이나 씨 서펜트 토벌을 시켜도 되는 겁니까?”
마법사 중 제국법에 대해 능통한 사람이 당연한 의문을 꺼냈다·
설마 2학년이 아니라 1학년 때 했던 일이라고는 아무도 의심하지 못했다·
“원래 각하께서는 적전제자에게 꽤 가혹하신 편이긴 했는데···”
“지금이 야만스러운 고대나 암흑 시대도 아니고 저래도 됩니까?”
“고대 시절에도 저런 가혹한 토벌은 안 시켰을 것 같은데·”
이야기가 산으로 흘러가자 을랑담이 담뱃대를 흔들며 끼어들었다·
“각하의 엄한 가르침에 대해서는 에인로가드 마법사들이 투서를 보낼 일이지 우리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죄송합니다·”
“혹시 다시 무력을 쓰시려는 것 아닙니까?”
누군가의 말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의외로 설득력 있는 추측이었던 것이다·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번에 그렇게 패악질을 부리셔놓고 한 번 더 하실 리가···”
“···있으시긴 하지·”
“가원· 너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지?”
을랑담은 마탑 소속 마법사 가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평소라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봤을 이 자신감 넘치는 마법사가 오늘 따라 유독 조용했던 것이다·
“저··· 그게 말입니다· 작년 교류회 때 만난 에인로가드 마법사 말입니다·”
“아· 그 마법사?”
동료들이 누군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마법사 교류회에 참가했던 가원의 경험담은 실로 놀라웠었다·
인공 차원 연구 발표도 놀라웠고 발표 도중 실수로 악마 공작이 소환된 것도 놀라웠지만 역시 가장 놀라운 일은 가원의 마법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이었다·
-물 원소와 구(球)를 사용한 마력 여과 증폭 장치?
-그거 5년 전에 발표된 <오타의 광성 프리즘>을 원소만 바꾼 거 아닌가?
동료들이 보기에는 좀 얄팍하고 단순했었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몇 배는 개량되었다’ ‘압축과 효율의 솜씨가 예술적이다’같은 말과 함께 크게 호평받은 것이다·
동료 마법사들의 질문에 가원은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실은 우연히 만난 에인로가드 마법사가 약간의 조언을 했네·
-약간?
-···나 말 안 하겠네·
-아 아니· 미안하네· 말해보게·
가원의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아무리 가원의 마법이 참신하지 않더라도 매우 복잡한 마법이었다· 마법사 본인이 별도로 설명하지 않고서는 분석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런데 처음 보는 마법사가 그 자리에서 필요한 마력을 1/3으로 줄여버리다니?
에인로가드의 학생이라 하더라도 보통 비범한 게 아니었다·
“그 마법사는 왜?”
“그 마법사 이름도 이한이었던 것 같은데···”
해골 교장이 제자 이한을 데리고 방문한다고 연락하자 그 이름에 가원의 기억이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무슨 소리인가? 4학년이라면서? 그럼 올해는 5학년이잖나?”
“학년이 안 맞는데?”
이야기의 모순을 알아차린 동료들은 의문을 제시했다·
분명 작년 이야기에서는 4학년이었던 이한이 왜 올해에는 갑자기 2학년이 된단 말인가·
“···엄밀히 따지자면 학년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네·”
동료들이 머저리 보듯이 쳐다보자 가원은 다급히 변명했다·
“그 교류회는 에인로가드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보통 4학년 이상들이 참가한단 말일세!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하더라도 3학년이 한계고! 그런데 3학년이 아니라고 했으
니··· 당연히 4학년인 줄 알았지!”
“···”
“···”
“무심코 넘어갈 수 있긴 했겠군· 그래도 가원· 앞으로는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습관을 갖게·”
을랑담의 말에 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마법사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에인로가드의 고학년 학생들을 만날 때 1학년인지 아닌지 확인하란 뜻인가?
그런 일이 두 번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정리해보도록 하지· 걸출한 전투 마법사인 것과 별개로 작년에 1학년인데 가원의 마법을 완성시켰다?”
“엄밀히 따지자면 완성이 아니라 개선···”
“완성이지·”
“솔직히 완성시킨 거나 다름없네·”
동료들은 냉혹하게 지적을 던졌다· 심지어 을랑담도 인정했다·
“그건 에인로가드 마법사가 완성해준 게 맞다·”
“···”
가원은 쭈그러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마법사들은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마법 전투와 별개로 정말 대단한 재능 아닙니까? 마탑에 들어온다면 제가 직접 보살피겠습니다·”
“왜 갑자기 이야기가 그렇게 흐르지? 자네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내 먼 친척 중에 에인로가드 출신 마법사가 있다는 것 모르나? 에인로가드 출신들은 다들 하나 같이 괴팍하고 예민하니 나 같은 이해자가 필요할 걸세·”
“말도 안 되는 소리· 자네의 구역에는 이미 마법사들이 충분하잖나· 나는 결원이 있네·”
···정확히는 ‘마탑에 가입하면 누가 데려갈지’로 이야기를 나눴다·
을랑담은 탑 중앙의 높은 천장을 바라보며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아직 들어온다고 확정이 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마법사들이 이렇게 다투는 걸 보니 고나달테스 각하에게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후우··”
“을랑담 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가 보살피는게 좋을까요?”
“다들 그만 다투도록· 내가 직접 보살피지·’
“···”
“···”
마법사들이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을랑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정한 마법사는 세간의 시선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지혜를 추구해야 하는 법이었다·
* * *
“그런데 교장 선생님·”
이한은 조심스럽게 해골 교장을 불렀다·
세 빚쟁이 세력 중 두 세력을 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골교장은 아직까지 투덜대고 있었다·
“대륙 정복을 안 한 게 그렇게···”
“···”
귀족들의 저택을 나와 수도 외곽의 원추리 마탑까지 이동했는데도 계속 투덜대는 끈기에 이한은 물론이고 데스 나이트들까지 놀라워했다·
-정말 어지간히 서운하신가봅니다·
-인타렌달스 님에게 베풀어주신 게 있지 않습니까·
“교장 선생님?”
“왜? 인타렌달스가 또 숨겨놓은 재산이라도 있냐?”
“설령 있다 하더라도 유언 때문에 못 알려드리는 거 아시잖습니까·”
“···”
있구나!
해골 교장과 죽음의 기사들은 전율했다·
대륙 정복의 청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이렇게 끝까지 복수하는 인타렌달스의 치졸함이 그들을 전율시킨 것이다·
“···어떤 재산인지 단서라도 좀 줘봐라·”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마탑에 다 왔는데 무슨 이야기를 할 건지 아직도 안 정하셨잖습니까·”
이한이 걱정하는 이유가 있었다·
앞의 둘은 운좋게 해결했다지만 마지막은 이한도 아무 계획이 없었던 것이다·
해골 교장이야 ‘걱정하지 마라 가르시아 교수한테 한 번 속은 놈들은 두 번도 속는다’하고 호언장담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속았으면 오히려 두 번째에는 안 속지 않나?’
“말했지 않느냐· 그냥 가서 담담히 소개만 해줘도 그쪽 마법사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쓰러질 거라고···”
“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시고요·”
이한은 짜증 섞인목소리로 일축했다·
해골 교장이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가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라도 좀 알려주십시오·”
“믿음 없는 녀석 같으니·”
불신 가득한 제자의 모습에 해골 교장은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이렇게 아둔하단 말인가?
“좋다· 알려주도록 하지· 마탑 앞에 도착하면 먼저 문을 두드릴 거다· 그 때 이렇게 말해라·”
“에인로가드에서 왔습니다?”
“아니· 여기 2학년에 소세계를 익힌 마법사가 왔다고·”
“···”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자기소개도 저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이한은 정색하며 거절했다·
“싫습니다·”
“그러면 아르나와 계약했다고 하거나 뇌공왕과 계약했다고 하는 건?”
“에인로가드에서 왔다고 하겠습니다·”
“어차피 다 말해야 할 텐데 고집은·”
해골 교장은 빈정거렸지만 이한은 무시했다·
마탑 안에 들어가서 말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문 두드리면서 자기소개를 저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는 대층 알았다·’
소세계나 정령왕과의 계약 같은 성취들이 여기 마탑 마법사들에게 잘 먹히는 게 분명했다·
이한은 마법사들을 만나면 그런 성취들을 이야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여기 원추리 마탑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데 그래도 되나 싶어서 조금 찔리긴 했지만··!
“각하· 오셨습니까?”
죽음의 기사들이 모는 마차를 발견한 마탑의 마법사들이 정문이 열리지 않았는데도 먼저 달려왔다·
그 환영에 해골 교장이 당당히 선언하려고 했다·
“여기 소세계를 익힌···”
이한은 마차 안에서 나오려다가 다시 들어갔다· 데스 나이트들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말리고 싶었습니다만··
“···마음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해골 교장은 선언을 마치지 못했다·
마차 안의 이한을 확인한 마탑의 마법사들이 감격의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말 안 했는데?’
이건 해골 교장의 예상도 넘어선 반응이었다·
소세계 마법에 관한 사실을 밝히고 나서야 마법사들이 눈물 흘리면서 쓰러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밝히기도 전에 이런 반응이라니·
“혹시 미리 알려줬나?”
-저희가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하긴 그렇겠군·”
해골 교장은 의심을 거뒀다·
죽음의 기사들이 가끔 주인을 배신하긴 해도 이럴 때 배신하지는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제가 직접 탑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니 내가···”
“이 손 놓지 못해?”
“네놈이 놓아라!”
원추리 마탑이 전투 마법사들의 마탑이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법사들이 다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허약한 마법사들이 휘청거리면서 서로 멱살을 잡는 모습에 해골 교장은 못 볼 꼴을 봤다는 듯이 질색했다·
차라리 마법으로 싸우면 싸웠지 이게 무슨 추한 모습이란 말인가·
“가르시아 교수 때보다 더 심하군· 진정시켜라·”
-그런데 주인님·
“?”
-소세계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면 소세계 이야기를 꺼내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됩니다만··
“음·”
해골 교장은 기사들의 충언에 멈칫했다·
전혀 생각치 않은 문제였는데 갑자기 걱정이 됐다·
“5서클 마법 정도만 이야기할까?”
-그것도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