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3· [True Ending] Love Actually (2)
크로스로드 북쪽·
아리안 왕국군 군영·
국왕 아리안 밀러가 사용하는 막사·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국왕 폐하?!”
국왕의 명으로 소집된 신하와 병사들이 기겁했다·
하지만 밀러는 태연하게 한 번 더 말했다·
“윤을 보내주기로··· 왕족답게 고결한 최후를 맞게 해주기로 결정했다는 말이다·”
“···!”
“저주가 사라졌는데도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이렇게 약해진 채로 먼 아리안 왕국까지 데려가는 것은 무리가 있지·”
밀러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쪽 침대에 잠든 딸··· 윤 아리안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렇다고 왕손(王孫)을 제국의 땅에 남겨둘 수도 없는 노릇· 장차 나라에 어떤 약점으로 작용할지 모르니 말이다·”
“하오나 아직 왕녀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어차피 산송장 아닌가!”
밀러가 역정을 냈다·
“이 세계에 신성력이 남아 있을 때도 치료하지 못했는데· 신성력이 사라진 지금 이 아이를 깨울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
“이것은 왕족으로서··· 그리고 왕녀로서 윤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다·”
신하와 병사들이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귀국하면 괴수전선에서 명예롭게 싸우다 전사했노라고 그리 공표할 것이다·”
긴 한숨을 토한 밀러가 소리쳤다·
“준비한 독을 가져오라!”
그때였다·
퍼엉!
막사의 천장이 둥글게 터져나가더니
펄럭-!
누군가가 망토를 펄럭이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떨어져 내린 거한은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던 윤을 낚아채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너 너는!”
침입자의 정체를 알아챈 밀러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수인족의 왕···!”
붉은 댕기머리를 휘날리며- 품에는 윤을 꽉 붙든 채·
수인왕 쿠일란이 낮게 으르렁댔다·
“···윤은 내가 데려간다·”
“이 이 자식이!”
분노한 밀러가 하나뿐인 팔로 주먹을 내질렀으나
휘익-
쿠당탕탕!
마치 미리 짜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절묘한 동작으로 피해낸 쿠일란이 그대로 밀러를 안으로 내동댕이쳤다·
“아이고!”
조금 전까지 윤이 누워 있던 침대 위에 나동그라진 밀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저 남자를 막아라!”
타앗!
땅을 박찬 쿠일란은 그대로 윤을 끌어안은 채 막사 입구로 질주했다· 그런 쿠일란을 아리안 왕국 신하와 병사들이 앞다투어 막아섰다·
“멈춰라!”
“왕녀님을 돌려줘!”
쿠일란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사방으로 주먹과 발을 뿌렸고
“크아아악!”
“으아아아~”
“너무 강하다아아앗-!”
그를 막아선 아리안 왕국 사람들이 화려하게 나동그라졌다·
스치기만 해도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병사들의 사이를 쿠일란이 재빠르게 지나가는데 쿠일란의 주먹이 그만 한 병사의 턱을 정타로 후려치고 말았다·
“케헥!”
턱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하는 병사에게 놀란 쿠일란이 작게 물었다·
“괜찮수?”
“괘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세요!”
“아 알았어·”
타앗-!
다시 전력으로 내달려 막사를 빠져나온 뒤·
다급하게 쫓아 나오려는 아리안 왕국 사람들을 향해 쿠일란이 호통을 쳤다·
“움직이지 마라!”
“···!”
“너희의 소중한 왕녀가 내 손에 있다! 내 품에서 윤이 죽거나 다치면 너희가 내세우려던 그 ‘명예’도 물거품이 될 테지!”
아리안 왕국 사람들이 일제히 비통한 신음을 토해냈다·
“왕녀님을 납치하다니!”
“요즘 시대에 이 무슨 파렴치한!”
“짐승 같은 남자! 산적 같은 남자!”
“···너무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거 아냐?”
어쩔 줄 몰라하는 아리안 왕국 사람들의 앞에서 쿠일란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이곳 크로스로드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도 애쉬 황자를 납치하면서부터였지·
‘납치로 시작해서 납치로 끝나는 건가·’
쿠일란의 입가에 히죽 악당다운 미소가 맺혔다·
괴수전선에서의 3년·
나쁘지 않았다·
“너희 왕녀는 대수림 인근의 단풍랑 부족 마을에서 요양··· 크흠! 인질로 잡고 있겠다!”
“이 못된 자식! 내 딸을 돌려줘!”
“소중한 딸이 걱정되면 자주 선물··· 아니 성의를 보여주라고· 크큭···!”
“크으으윽!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반년에 한 번씩 사자를 보내 편지와 약을 전해주마!”
이 꼬락서니를 지켜보던 병사들 중 몇몇이 작게 속닥거렸다·
“이렇게 연극까지 하면서 왕녀님을 보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설정에 좀 무리수가 많지 않나?”
“쉿! 조용히 해!”
“국왕 폐하 몰입하신 거 안 보여? 즐기시게 냅둬···!”
마지막으로 쿠일란이 호쾌하게 웃어젖히더니 뒤돌아섰다·
“윤은 내가 열과 성의를 다해 돌보도록 하겠다! 하하하하하! 그럼 아리안 왕국까지 잘 돌아가시구려!”
그리고 땅을 박찬 쿠일란이 삽시간에 시야에서 멀어졌다·
땅에 무릎을 꿇은 밀러는 쿠일란이 달려가는 방향으로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유우우우우우운~!”
밀러의 비통한 외침을 뒤로하고 쿠일란은 윤을 소중하게 끌어안고서 아리안 군영을 빠져나왔다·
어설픈 연극을 해도 상관없다· 오명을 뒤집어써도 상관없다· 훗날 원망받게 된다 해도 상관없다·
‘네가 아침에 눈을 뜰 때까지·’
품에 안긴 정인(情人)의 체온을 감싸며 쿠일란은 맹세했다·
‘내가 지켜줄게 윤·’
***
해산식의 밤·
도시의 곳곳에서 사람들은 이별을 슬퍼하고 각자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아쉬운 작별과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 한데 엮이는 이 시간·
“····”
시끌벅적한 도심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크로스로드 남쪽·
직전의 전투에서 흉하게 무너진 남문 앞에 휠체어를 탄 릴리가 있었다·
잠든 시드를 품에 안은 채· 그녀는 멍하니 남쪽 벌판을··· 그리고 그 너머를 응시했다·
“릴리?”
그때 도심 쪽에서 바디백이 나타났다·
릴리가 어느새 광장에서 사라지더니 숙소에도 보이지 않자 걱정된 바디백이 그녀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괜찮아요 릴리?”
“···응· 그럼·”
바디백을 돌아본 릴리는 평소와 다름없는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드 좀 재우려고· 조용한 곳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네·”
“····”
조용히 걸어서 그런 릴리의 옆으로 온 뒤·
바디백은 밤공기를 천천히 들이켰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네요·”
“그러게·”
바람이 불어왔다·
풀과 꽃의 향이 스민 남쪽의 바람이었다·
바람에 흐트러진 붉은 머리칼이 시야를 어지럽히도록 내버려 두고 릴리는 자신의 품에 안겨 잠든 시드의 순연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봄이 오려나 보다·”
그 긴 밤과 혹독한 추위를 지나 기어코··· 봄은 오고야 말았다·
살짝 잠긴 목소리로 릴리는 가까스로 중얼거렸다·
“또다시 봄이 와····”
바람이 멎었다·
시드가 무어라 옹알거리며 엄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아들을 조심스럽게 고쳐안은 뒤 릴리가 고개를 들었다·
“돌아갈까?”
릴리는 다시 의연하게 웃고 있었다·
“오늘 밤에는 웃으며 보내줘야 할 사람이 잔뜩 있으니까·”
마주 흐릿하게 미소한 바디백은 릴리의 뒤로 가서 그녀의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그렇게 서로를 안고 또 서로를 밀고 끌며····
잠시 멈춰 섰던 세 사람은 천천히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윈터실버 상단· 크로스로드 지부·
상단주의 방 앞·
“크흠!”
괜스레 헛기침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가볍게 노크하고 나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앗!”
집무실 책상에 앉아 서류더미 속에서 바쁘게 일하던 세레나데는 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낭군님!”
“방해해서 미안해 세레나데· 많이 바쁘지?”
오늘은 세계수호전선의 해산식이건만 모두가 웃고 즐기는 밤이건만·
세레나데는 밤새워 일하고 있었다· 내일 나와 함께 브링어 공국으로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브링어 공국에는 현재 윈터실버 상단의 지부가 남아 있지 않다· 제국과의 전쟁 당시 사업을 철수해야 했고 이후로도 지부 재건까지는 할 여력이 없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브링어 대공으로서 공국의 왕으로 취임하는 지금·
전후 복구를 위한 물자가 간절한 상황에 윈터실버 상단은 새로운 지부를 브링어 공국에 재건하고 유통망을 복구하기로 했다· 그 준비로 세레나데는 한창 바쁜 상태였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게 낭군님보다 우선인 일은 없어요·”
허겁지겁 잉크 묻은 손을 닦고 안경을 벗어 내려놓으며 세레나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라도 끓여드릴게요 잠시만 계세요!”
“음··· 아니야 세레나데· 그것보다·”
나는 바깥으로 턱짓했다·
“우리 잠깐 바람 좀 쐴까?”
윈터실버 상단 건물에는 작은 정원이 붙어 있었다·
남단(南端)의 땅답게 이제 3월 초인데도 정원의 나무에는 끝마다 꽃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며칠만 지나면 완전히 만개할 것처럼·
개화를 기다리는 이른 봄의 정원을 나는 앞장서 걸었다· 나를 뒤따르던 세레나데가 조심스레 물었다·
“낭군님 괜찮으세요? 어쩐지··· 평소보다 긴장하신 것 같아서·”
“····”
“뭔가 일이 있는 건가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정원의 가운데에서 멈춰선 나는 한 번 더 헛기침한 다음 세레나데를 돌아보았다·
“음 그게····”
이걸 어떻게 운을 띄워야 하려나·
고심하며 앞을 보았다·
봄과 밤의 정원에 선 연푸른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은빛 눈의 여인을·
언제나 나만을 향하는 이 오뚜기 같은 사람을 똑바로 마주했다·
“세레나데· 공국에 도착하면 너도 나도 엄청 바쁠 거잖아·”
“네 그렇겠지요·”
“그래서··· 공국에 도착한 뒤에는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오늘 밤 확실히 말해둬야 할 것 같아서·”
세레나데가 고개를 갸웃했다·
“뭘요?”
“···세레나데·”
후! 크게 숨을 삼키고·
어느새 쿵쿵거리며 북소리를 내는 심장을 끌어안고·
나는 천천히 세레나데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놀란 세레나데는 다급히 왜 그러시냐며 나를 만류하려다가 이윽고 내 동작의 의미를 깨닫고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좀 더 멋진 곳 멋진 시간이 아니라서 미안해· 하지만··· 더 이상 너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어·”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를 올려다보며·
나는 천천히 재킷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세레나데·”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조그마한 다섯 가지 보석이 일렬로 박힌 아름다운 은색 반지가 한 쌍 자리하고 있었다·
내 부탁으로 지난 며칠간 4대 이종족과 인간 생산조합 모두가 흔쾌히 나서 세공해 준····
오직 이곳 이때에만 만들 수 있는 모든 종족의 가장 귀한 보석과 각자의 귀금속 세공법이 녹아 들어간 프러포즈 반지였다·
“우리 결혼하자·”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세레나데에게 청혼했다·
“나와 평생 함께해 줄래?”
하지만 세레나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은빛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세레나데는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오열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해서 쩔쩔맸다·
“프 프러포즈치고는 너무 엉성해서 그래? 역시 황도 최고 호텔을 예약한 다음에 최상층 스위트룸에 꽃을 깔고 했어야··· 아니 다음에 정식으로 그렇게 할 계획이긴 한데····”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힘겹게 목소리를 낸 세레나데는 이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제게··· 낭군님의 옆에 설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확신이 서질 않아서 그래요·”
“····”
“낭군님께서는 황태자세요· 장차 에버블랙 제국의 주인이 되신다는 뜻이에요· 그렇게 대단한 당신의 곁에 저 같은 게 있어도 괜찮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나는 피식 웃었다·
노예 출신이어서· 돈으로 작위를 산 천출 상인이어서· 이종족의 피가 섞여 있어서·
세레나데는 일평생 세간의 눈총을 받았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잘 모르는 듯했다·
그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지며··· 나에게 필요한 사람인지·
“세레나데 우리 어릴 때 약속 기억해?”
내 질문에 세레나데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그럼요 기억하죠··· 어찌 잊겠어요·”
이윽고 눈물 젖은 뺨으로 흐릿하게 미소했다·
“바로 그날··· 저는 당신을 사랑하게 된 걸요·”
– 피가 천하고 고결하고 그런 건 상관없는··· 우리처럼 따돌림 받는 아이들을 위한 세상· 엄마가 울지 않아도 되고 누나도 괴롭힘 받지 않는 그런 세상·
– 내가··· 꼭 만들게·
이제 내 기억 속에도 선명히 남아 있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 약속이 있었기에 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
“네가 있었기에 내 여정이 이어진 거야· 너와 함께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너와 함께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어서 함께 손을 잡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
나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세레나데· 이미 우리가 약속한 그런 세상이 여기에 있어·”
나는 내 손에 들린 반지를····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세레나데· 약속할게· 내 남은 평생 그런 세상을 완성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모든 종족의 모든 사람이 함께 만든 세상에 다시 없을 청혼 반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완성하려면 네가 필요해·”
“····”
“그러니까 부디 세레나데· 나와 결혼해줘·”
나는 간절히 속삭였다·
“나는 네가 아니면 안 돼·”
“····”
천천히·
세레나데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 손을 내렸다·
“···하나만 더 여쭙고 싶어요·”
“얼마든지·”
“시간이 지나서 제가 더 이상 젊지 않아도 더 이상 당신이 보기에 아름답지 않아도·”
눈물에 젖어 반짝이는 그녀의 얼굴은 전에 없이 슬프고 전에 없이 기쁘고····
늘 그렇듯 눈부셨다·
“그래도 사랑해 주실 건가요?”
나는 빙그레 웃었다·
“내가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 가장 추하고 어리석었을 때도· 너는 날 사랑해 줬잖아·”
그 긴 시간·
나의 모든 순간을 끝내 사랑한 사람아·
나도 마찬가지야·
“약속할게· 네가 가장 빛나는 지금 이 순간도 물론 사랑하겠지만·”
나는 손을 뻗어 세레나데의 왼손을 붙잡은 뒤 내 쪽으로 당겼다·
“네가 스스로 가장 볼품없다고 생각하는 순간까지도 너를 사랑할게·”
그리고 가늘게 떨리는 그녀의 왼손 약지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반지를 끼웠다·
싱긋 웃으며 물었다·
“너도 그렇게 해줄 거지?”
세레나데는 말없이 반지 상자를 받아서 내 몫의 반지를 꺼내어 내 왼손을 잡고··· 소중하게 약지에 밀어 넣었다·
“···네·”
그리고 마침내- 나를 향해 웃었다·
“당신을 사랑할게요· 언제나 몇 번이라도····”
우리는 키스했다·
몇 번이고 입을 맞추며 빙글빙글 정원을 돌다가 나는 그대로 세레나데를 끌어안은 채 정원 밖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상단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반지를 만들어 준 각 종족의 세공장인들이 한데 모여 숨죽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반지 제작을 총괄한 켈리베이가 참지 못하고 소리쳐 물었다·
“성공했냐?! 받아준 거야?!”
나는 대답 대신 세레나데와 맞잡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우리의 왼손 약지에서 프러포즈 반지가 거리의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이예스-!”
“만세! 만세!”
“바로 이거지!”
자리에서 튀어 오른 장인들이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하며 환호했다·
나와 세레나데는 광장으로 나왔다·
다 같이 긴장한 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바짝 끌어안은 우리 둘을 보고는 상황을 알아챘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고 샴페인을 터뜨리고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온 사방에서 쏟아지는 사람들의 축하 세례 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세레나데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소중한 건 혼자 아껴보신다더니!”
“그러려고 했는데 이제 안 되겠어! 너무 좋아서 자랑 좀 할게!”
나는 활짝 웃었다·
“춤추자 파트너!”
준비된 악단은 없었으나 누군가가 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부는 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은 발을 굴러 장단을 맞추고 테이블을 두들겨 박자를 만들며 함께 목청 높여 노래를 불렀다·
If thou must love me let it be for nought
그대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Except for love’s sake only· Do not say
사랑 그 자체만을 위해 사랑해 주세요· 부디
“I love her for her smile―her look―her way
미소 때문에 미모 때문에
Of speaking gently―for a trick of thought
상냥한 말씨 때문에 생각이 나와 잘 맞기 때문에
That falls in well with mine and certes brought
그래서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A sense of pleasant ease on such a day”―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For these things in themselves Beloved may
사랑하는 이여 이런 것들은 변하거나
Be changed or change for thee―and love so wrought
당신을 위해 달라질 수 있으니
May be unwrought so· Neither love me for
그처럼 짜인 사랑은 또 그처럼 풀릴지도 모릅니다·
Thine own dear pity’s wiping my cheeks dry:
내 뺨의 눈물을 닦는 그대의 연민으로도
A creature might forget to weep who bore
나를 사랑하지 마세요· 그대의 위로를 받은 나의 사랑이
Thy comfort long and lose thy love thereby!
눈물을 잊으면 그대의 사랑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But love me for love’s sake that evermore
그러니 사랑 그 자체만을 위해 사랑해 주세요·
Thou mayst love on through love’s eternity·
그대가 영원한 사랑으로 나를 늘 사랑할 수 있도록·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 축복과 건배를 받으며····
나와 세레나데는 춤을 췄다·
이마를 맞대고서 모두가 부르는 사랑 노래를 따라 부르며 까만 밤이 하얗게 새어버릴 때까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청혼의 새벽에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