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 [True Ending] Insert A Coin
어느 불 꺼진 오락실·
다른 기계는 모두 작동을 멈춘 채 화면을 꺼뜨리고 침묵하는 이곳·
어둠에 잠긴 캄캄한 오락실의 중앙에서 거대한 게임기 하나가 웅웅거리는 거친 소음과 함께 기계 특유의 열기를 뿜어냈다·
오락실에서 유일하게 전원이 들어온 이 게임기의 앞에는 한 어린아이가 앉아 있었다·
작은 몸에 맞지 않는 펑퍼짐한 환자복에 바짝 깎은 머리 위에는 비니를 쓴· 햇볕을 받지 못해 창백한 피부의 소년이었다·
“····”
아이는 커다란 게임기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잔뜩 낀 화면에는 한 가지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 CONTINUE?
계속하시겠습니까?
그 문구 옆의 숫자는 역시 노이즈가 낀 채 1과 0의 사이에서 바쁘게 오간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아주 느리게 1에서 0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아마도 0이 되는 순간··· 게임은 영영 끝날 것이다·
“····”
느릿하게 떨어지는 숫자를 보며 소년은 평온했다· 어쩌면 달관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흥미를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소년은 그저 텅 빈 눈으로 화면을 들여다볼 뿐이었다·
어서 빨리 숫자가 0에 도달하기를·
이 커다란 화면에 어서 ‘GAME OVER’라는 문구가 뜨기를 바라는 듯이·
그때였다·
“그 게임 더 안 해?”
오락실 입구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그 젊은 남자는 저벅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오락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까지 진행한 거 아까운데 한 번만 더 해 보는 건 어때?”
“····”
게임기 앞에 앉아서 게임 오버만 기다리던 소년은 마지못해 대답했다·
“지긋지긋해요 이 게임·”
화면을 보는 소년의 눈에는 일말의 원망마저 담겨 있다·
“어렵고· 힘들고· 아프고· 재미도 없어·”
“····”
“이제 그만하려구요·”
저벅· 저벅·
다가온 발소리가 소년의 뒤에서 멈췄다·
소년은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가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어라 고덕 형?”
방송에서 항상 보던 고전덕후와 굉장히 닮은 남자였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시 똑바로 보자 아니었다·
외모가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이 남자는 그동안 본 적 없는 독특한 양식의 제복까지 입고 있었다·
전혀 안 닮은 사람인데 왜 헷갈린 걸까· 소년은 고개를 갸웃했다·
“죄송해요· 제가 아는 사람이랑 분위기가 좀 비슷해서··· 그런데 누구세요?”
머뭇거리던 남자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친구·”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전덕후의··· 오랜 친구야·”
“아 어쩐지·”
소년이 비니로 덮어쓴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고덕 형이랑 외모는 하나도 안 닮았는데 인상이 비슷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헷갈렸구나·”
“하하하· 그런 말 많이 들어· 나랑 고덕 되게 닮았다고·”
웃어젖힌 남자가 옆의 게임기에서 의자를 끌어와 소년의 옆에 앉았다·
“고전덕후 녀석에 대해서 잘 알아?”
“그럭저럭요? 어쨌든 제가 그 형 방송 첫 시청자니까요·”
“그 녀석 방송은 어쩌다 보게 된 거야?”
소년이 피식 웃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 형이 지금은 잘나가는 게임 방송인이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예전에 방송 초창기에는 진짜 초보 중에 왕초보여서요· 방송 세팅도 엉망이고 하는 게임도 엄청 옛날 고전이고· 이러다 보니까 시청자가 아무도 없었거든요·”
좋아하는 방송인 이야기에 소년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저는 뭐 병원에 누워만 있으니까 심심해서 여기저기 방송을 돌아다니는데··· 우연히 고덕 형의 방송을 본 거죠· 시청자 0명의 아무도 있는 줄조차 모르는 그 옛날 게임 방송을·”
거기서 소년이 잠시 말을 멈췄다·
짧은 침묵 후에 소년이 말을 이었다·
“그날은 제가 죽을까 생각하던 날이었어요·”
“····”
“치료는 힘들고 수술은 무섭고 약은 먹다가 토하고 엄마아빠한테는 미안하고··· 다 지긋지긋해서 그냥 이제 슬슬 죽을까 생각하던 그런 날·”
남자는 묵묵히 들었다·
“그날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 방송에 들어갔는데 게임이 딱 봐도 엄청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라이프는 다 날아가고 마지막 한 칸 남았고 온 사방에서 몬스터가 달려오고· 그걸 보고 생각했어요·”
소년이 눈을 내리깔았다·
“이 사람이 게임 오버 당하면 나도 포기해야지·”
너무 주사를 많이 맞아 너덜너덜한 소년의 손이 주먹을 꾹 쥐었다·
“오늘 죽어야지·”
“····”
“그런데··· 깨버리더라고요·”
소년의 목소리에 흐릿한 열기가 감돌았다·
“결국 성공해 버린 거예요· 진짜 게임 오버 직전이었는데· 이 악물고 필사적으로 버티더니···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결국 끝판까지 가서 최종보스를 잡고 엔딩을 보더라고요·”
“····”
“신기하게도 그걸 보고 나니까··· 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어요·”
소년이 한 번 더 말했다·
“살고 싶었어요·”
남자는 소년의 옆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소년은 계속했다·
“이후로도 고덕 형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어려운 고전 게임도 인기 없는 방송도··· 끝까지 계속했어요· 그렇게 아무리 어려운 게임도 클리어해 냈고· 아무도 보지 않던 방송도 조금씩 커졌어요·”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도 용기를 얻었던 거 같아요·”
천천히 시선을 든 소년이 자신의 앞에 놓인 커다란 게임기를 보았다·
“그래서 이 녀석이랑 계속 싸워왔던 것 같아요·”
여전히·
– CONTINUE?
게임기의 화면에서 숫자는 0으로 수렴하고 있다·
“···뭐 그것도 이제 끝이지만요·”
소년이 두 손 들었다·
“더 안 하려고요·”
“왜 더 안 하는데?”
“이길 가능성이 없으니까요·”
소년은 병원용 슬리퍼를 신은 발로 게임기 본체를 툭툭 찼다·
“이 자식이랑 몇 번을 붙었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언제나 두들겨 맞고 KO당하는 건 저였어요·”
“····”
“고덕 형을 보고 용기를 얻어서 다시 일어나서 도전하고 또 다시 일어나서 도전해도·”
소년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단 한 번도··· 이길 수가 없었어요·”
“····”
“희망을 가지려고 해도 열심히 약을 먹고 수술을 받아도 상황은 나빠지기만 해요· 치료도 실패하고 수술도 실패하고 제 발버둥도 실패했어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긴 한숨이 소년의 입가로 새어 나왔다·
“항상 이런 식이에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죽어라 노력해도 세상은 제게서 빼앗아 가요· 조금도 변하지 않아요·”
“····”
“이제 그만할래요· 더 이상 이렇게 힘들게 살고 싶지 않아요·”
드륵!
소년이 의자를 뒤로 밀고 게임기 앞에서 일어났다·
“게임 오버·”
스스로 선언하고·
그렇게 게임기 앞에서 막 뒤돌아서려는 소년에게·
“꼬마야·”
느닷없이 남자가 물었다·
“이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해?”
소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네·”
“힘겹게 눈앞의 고비를 넘어 봤자 사는 건 여전히 고통스럽다고 생각해?”
“···네·”
그러자 남자가 싱긋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네?”
“이 세상은··· 실패하지 않는 철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그런 고통뿐인 지옥이라고· 나도 생각했거든·”
지옥·
철인·
남자의 말을 곱씹던 소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했’다···라는 건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는 뜻인가요?”
“조금은·”
남자가 흐릿하게 미소하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끝난다고 생각했지만··· 바닥 아래까지 추락해도 내게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었어·”
“····”
“삶이라는 건 고통이 대부분인 지옥이지만 그 사이에 들꽃처럼 아름다운 순간이 드물지만 분명하게 피어 있었고·”
남자가 소년에게 눈짓했다·
“너도 그런 사람이 그런 순간이 없진 않았지?”
“····”
소년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으나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소년의 앞에서 남자는 마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세상이 지옥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이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이 철인이 아니라는 말도 하지 않을게· 하지만·”
남자는 소년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이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지옥이고·”
“····”
“철인이 될 수 없는 우리 같은 실패투성이에게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기회는 계속 있어·”
그러자 소년이 으르렁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
“나한테 무슨 말을 하러 온 거냐고요·”
소년의 목소리에 울분이 뒤섞였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잖아요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잖아요! 대신 치료받고 대신 수술받고 대신 토하고 대신 울어줄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그런 무책임한 위로 던져봤자···!”
“고전덕후가 전해달라더라·”
소년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남자는 빙그레 웃었다·
“힘내라고· 너를 응원하고 있다고· ”
“····”
“그리고 너를 응원하기 위해서 그 녀석 네가 잠들어 있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임을 클리어했어·”
741번의 게임 오버를·
그리고 지난 3년의 여정을·
남자는 떠올린다·
“그 녀석이 왜 그랬는지 알아?”
“···몰라요·”
“네가 그 녀석을 지옥에서 구했기 때문이야·”
소년의 몸이 굳었다·
남자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자신만의 지옥에 혼자 고립되어 죽어가던 그 녀석에게 네가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줬기 때문이야·”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철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서로가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 것뿐이라고·
그리고 때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남자는 믿었기에·
“알아· 무책임한 거·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는 거· 우리는 우리 각자의 지옥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우니까· 각자가 마주한 가장 어려운 게임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벅차니까·”
“····”
“하지만 네가 그 친구에게서 용기를 얻었듯이·”
진심을 담아서·
“그 친구도 네게서 용기를 얻었어·”
아주 조금이라도 이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우리는 네가 살았으면 좋겠어·”
남자는 말했다·
“네가 네 삶에 대한 도전을 네 세상에 대한 공략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소년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남자는 계속했다·
“앞으로도 네게는 힘든 일이 많을 거야· 여전히 치료는 고되고 삶을 이어 나가는 건 고통스럽겠지· 한 가지 역경을 넘어서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고난들이 끊임없이 닥쳐올 테고·”
“····”
“그래도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를 꺼내서····
손끝을 튕겨· 소년에게 던졌다·
“싸워줘·”
소년은 날아온 그것을 엉겁결에 받았다·
남자가 소년에게 던진 것은··· 낡은 동전이었다·
멍하니 손에 들린 동전을 내려다보는데 남자가 싱긋 웃었다·
“선택은 네 자유야·”
남자는 뒤돌아섰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서 오락실을 빠져나갔다·
“···저기·”
머뭇거리던 소년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기요 형! 잠시만!”
오락실의 입구에서 남자가 멈춰 섰다·
남자의 등에 대고 소년이 물었다·
“빌려주신 이 동전 어떻게 갚나요?”
그러자 남자는 피식 웃더니
천천히 뒤돌아서서·
“네가 ‘갚는’ 게 아니야·”
검지를 들어 소년을 가리키고는·
뒤이어 엄지를 치켜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갚은’ 거야·”
소년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남자는 오락실 문을 열고 그대로 바깥으로 사라졌다·
“····”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소년은 남자가 떠난 오락실의 입구를 한참 응시했다·
그러다 이윽고··· 천천히 뒤돌아섰다·
– CONTINUE?
여전히 그 문구가 떠올라 있는 지긋지긋한 게임기의 앞으로 다가가서·
자리에 털썩 앉은 뒤·
손에 들린 동전을 말없이 들여다보다가·
“···다시 한번·”
동전과 함께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 Insert A Coin
소년은 손에 쥐고 있던 동전을 게임기의 투입구에 밀어 넣었다·
짤그랑····
동전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 직후·
0에 한없이 가까웠던 숫자가 단숨에 치솟는다· 지직거리던 화면에 선명한 새 문구가 떠오른다·
– Here Comes A New Challenger!
– Get Ready For The Next STAGE
새로운 도전자가 등장했습니다·
다음 무대를 준비하세요·
“···후우·”
깊게 숨을 들이켜고·
꾹 감았던 눈을 똑바로 뜬 뒤·
소년의 작고 메마른 손이 천천히 게임기의 스틱을 쥐고····
– PRESS START
힘껏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