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8· [LAST STAGE] 괴수대침공
인세·
인류 최초의 관문이자 최후의 요새 크로스로드·
그 바로 앞에 펼쳐진 남쪽 벌판·
무수한 목책 울타리로 둘러쳐진 방벽지대- 킬존·
“적 괴수 군단 선두가!”
이곳을 살피던 척후병이 바쁘게 소리쳤다·
“킬존에 진입합니다-!”
“···!”
두두두두두····
흐릿하게 땅이 울리고·
우수수····
벌판 남쪽에 펼쳐진 겨울 숲이 몸을 떤다 싶더니 다음 순간·
투학-!
벌판 입구로 괴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범람한 탁류처럼 휘몰아치며 시커먼 괴수들이 끝없이 넘쳐 남쪽 벌판을 메워왔다·
비공함 블루 펄에 탑승한 채 이 광경을 내려다보던 루카스가 작게 숨을 들이켰다·
“여기까지 왔군·”
앞서 초거대괴수들을 거꾸러뜨리는 작전- ‘타이탄 폴’을 성공시켰고·
지상과 공중 전체를 초토화할 수 있었다· 특히 지상은 아예 지표가 쪼개지고 부서진 터라 후발 괴수들의 진격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엄청난 숫자의 괴수들이 죽어 쓰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격한다·
무너진 땅과 하늘을 짚고서 끝없는 괴수의 무리는 며칠에 걸쳐 기어코 북상했다· 그리고 크로스로드가 훤히 보이는 이곳 남쪽 벌판에까지 진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지연 작전을 펼쳤지만 문자 그대로 지연(遲延)일 뿐· 완전한 봉쇄는 처음부터 불가능했고·
꾸역꾸역 전진한 괴수 무리의 선봉은 끝끝내 이곳까지 당도하고야 말았다·
‘결국 본성에서 방어를 해야 하는가·’
‘벼락과 해일’ 작전에서 벼락은 결국 뚫렸다·
하지만 최후의 방벽인 해일이- 크로스로드 본성이 남아 있다·
‘막아 보이겠다·’
루카스는 숨을 들이켜며 전의(戰意)를 가다듬었다·
‘주군께서 시키신 일이니까 그리고····’
그의 새파란 눈이 쏟아져 들어오는 괴수들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나 또한 이 세계를 지키고 싶으니까···!’
펑! 퍼버버벙···!
크로스로드 본성에서 아득한 포성이 울리더니 다음 순간·
콰과과과광-!
킬존에 포격이 내리꽂혔다·
비공함 블루 펄과 그곳에 탑승한 유격 부대 지휘를 루카스가 맡았고·
크로스로드 본성 방어선의 지휘는 에반젤린이 맡은 상황·
에반젤린 또한 백병부대 대장으로서 잔뼈가 굵을 대로 굵어졌고 크로스로드의 정당한 계승자이기도 했다· 차기 영주의 수성전 지휘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완벽했다·
“본성의 방어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루카스는 함교의 전원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합시다·”
유격부대로 편성된 영웅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벼락과 해일’ 작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이 함선의 영웅들이 바로 최후의 벼락이다·
***
남쪽 벌판의 방어전은 기존 방어전과 같은 양상으로 시작되었다·
북상한 괴수들이 남쪽 벌판의 입구- 킬존에 군세를 들이받았고 장애물에 걸려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동안 크로스로드의 십자포화가 날아들어 놈들을 갈아버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알아챘다·
다르다·
이번 전투는 이전과 다르다·
부글부글부글····
서로 엉키고 뭉친 괴수들이 안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늪처럼 뒤섞인 채 계속해서 쏟아졌다·
끝없이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남쪽으로부터 기어나와 벌판을 메웠다·
일전의 좀비대행진 때에도 끔찍하게 많은 괴수를 상대했지만 이번은 차원이 달랐다·
문자 그대로 무한(無限)·
그야말로 괴수 최후의 대공세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끝이 없네 진짜····”
망원경을 들고 포병을 지휘하던 에반젤린이 질렸다는 듯 신음을 흘렸다·
어느새 벌판 이남(以南) 지역은 모조리 괴수로 뒤덮여 검지 않은 공간이 없을 지경이었다·
거대한 검은 파도 검은 쓰나미 아니····
검은 세계 자체가 크로스로드를 향해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했거든···!”
애초에 이런 상황을 상정했다·
적이 무한할 것임을 알고 전투에 임했다· 일주일 내내 쏘아도 남을 만큼 탄환을 비축했고 넓고 높은 포대를 넉넉히 증축한 데다 예비대까지 포함한 인력을 갖추었다·
“포병대! 계속해서-”
손에 들린 기병창을 치켜세우고 그 끝에 묶인 흑기를 휘두르며- 에반젤린은 힘껏 소리쳤다·
“발사아아아-!”
펑! 퍼버버버벙-!
그 외침에 답하듯 정연하게 쏘아진 화망이 하늘을 가르고 떨어져 남쪽 벌판 입구에 착탄·
콰과과과광-!
폭발했다·
현재 크로스로드의 포병대는 3개 부대가 번갈아 쏘는 구조를 확립한 상태였다· 쏘고 장전하고 조준하고 또 쏘는 이들 포병대의 화망은 일시도 비지 않고 타격지점을 초토화할 수 있었다·
심지어 3개 부대가 끝이 아니라 예비대 3개 부대 또한 대기 중이었다·
총 6개 부대가 화망 생성과 휴식을 번갈아 취하며 이론상 무한하게 탄막을 쏟아낼 수 있는 구조였다·
게다가 평소에는 안전을 위해 피난을 보냈던 생산조합 사람들도 모조리 도시에 남아 전쟁물자를 생산하고 수리하는 일을 돕는 중이었다·
‘적이 무한해?’
에반젤린은 사납게 웃었다·
‘그럼 우리도 무한하게 퍼부으면 그만이잖아···!’
괴수들은 끝없이 나타나 남쪽 벌판 입구로 침입해 들어왔지만·
펑! 펑! 퍼버버버벙···!
머리 위로 끝없이 퍼부어지는 십자포화에 두들겨 맞고 모조리 녹아서 쓰러졌다·
전투 개시 후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단 한 마리의 괴수도 남쪽 벌판을 절반조차 지나지 못했다·
‘좀비 때의 경험이 좋은 연습이 됐네!’
당시 물경 10만에 달한 좀비 괴수들을 막아 낸 뒤 여러 보완책과 아이디어가 크로스로드 내부에서 제시되었다·
애쉬는 그중 몇 가지를 채택해서 이 최후의 전투에 적용하도록 했다· 포병대를 증설하고 무한 교대 발사가 가능하도록 갖춘 이러한 시스템도 그중 하나였다·
‘이대로라면 잡졸들은 얼마든지 계속해서 막아 낼 수 있겠어···!’
그리고 에반젤린이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두두두두두-!
일련의 괴수 무리가 십자포화를 꿰뚫고 뛰쳐나왔다·
화망에 휩쓸리지 않고 내달릴 수 있는 높은 스피드의 소형괴수들·
두터운 장갑으로 십자포화를 받아내며 전진하는 대형괴수들·
그리고 자욱한 폭연을 꿰뚫고 하늘에 등장한 비행괴수들·
‘아이고!’
에반젤린은 다급하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하여간에 이놈의 입이 웬수지! 어떻게 말을 하자마자 바로····
‘아니 말 안 했는데?! 그냥 생각만 했는데?!’
아무튼 생각도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남쪽 벌판 입구에 생성된 킬존을 무사히 빠져나온 재빠른 소형괴수 무리와 떡장갑으로 무장한 대형괴수 무리 그리고 상공을 가로질러 접근하는 비행괴수 무리·
이들을 노려보며 자신의 이마를 탁탁 치던 에반젤린의 입술이 이윽고 슬며시 말려 올려갔다·
방심은 좋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괜히 움츠려 있을 필요도 없다·
“이 정도 상황에 대한 대처는··· 다 준비가 끝나 있다고!”
에반젤린은 깃발이 묶인 기병창의 끝을 홱홱 흔들며 명령했다·
“저격수 부대 접근하는 소형 괴수를 저격! 마법사 부대 포격에 타격을 입지 않는 대형 괴수를 처리! 그리고 아티팩트 팀 대공(對空) 아티팩트를 준비!”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철컥! 철컥! 철컥!
데미안이 이끄는 저격수 부대가 각자의 총이며 활을 조준한 뒤 사격을 개시했다·
탕! 탕! 타앙···!
느릿한 총성이 울릴 때마다 헐레벌떡 성벽을 향해 질주해 오던 스피드 타입의 괴수들이 픽픽 쓰러졌다·
세계제일의 저격수 데미안과 그가 이끄는 최정예 저격수들의 사격 실력은 이미 초월적이었다·
천리안을 지닌 데미안이 지나치게 규격외일 뿐 현재 그 휘하로 들어온 저격수들도 모두 세계 곳곳에서 내로라하던 궁수와 사냥꾼들·
한 명 한 명이 호크아이 샤프슈터 바바야가 스모킹건 등의 이명(異名)으로 명성을 떨친 현시대 최고의 저격수들이었다·
여기에 데미안이 처음부터 함께 육성하고 훈련시킨 기존 저격수들까지·
총원 서른 명으로 이뤄진 저격수 부대가 한번 불을 뿜자 까마득한 거리에서도 괴수들의 머리가 모조리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 와중에도 데미안은 독보적이었다·
타앙-!
한 발의 장총 저격으로 네 마리의 괴수를 동시에 관통시켜 즉사시킨 뒤 데미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다음 저격을 준비했다·
그런 데미안 주위의 저격수들이 일제히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졌다 졌어····”
다른 저격수들이 구시렁거리며 저격을 이어갔다·
여기에 쥬니어가 이끄는 마법사 부대·
“가능한 마력 소모값이 적고 효율이 높은 마법 위주로 사용합니다!”
진을 이루어 선 마법사들을 쥬니어가 세심하게 조율했다·
인류가 보유한 최강의 전술병기· 마법사·
이들은 아직 전력(全力)을 내지 않았다· 장기전에 대비해 가능한 마력을 아끼고자 작은 마법 행사 하나조차도 서로 진을 이룬 뒤 공명하여 쏘아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미 합동 마법에 완전히 숙련된 마법사들이 한데 어우러져 쏘아낸 기초 속성 마법이 대형괴수를 요격하자 대형괴수들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절명해 쓰러진 것이다·
불꽃의 화살과 얼음의 비 바람의 칼날이 번갈아 날아들었고 화망을 뚫고 들어온 대형괴수들은 모조리 비명을 토하며 바닥으로 무너졌다·
여기에····
“대공 아티팩트 발동합니다!”
릴리와 연금술사 팀이 준비해 둔 아티팩트를 일제히 발동했다·
그러자 크로스로드 공역(空域) 전체에 아티팩트가 효력을 발휘했다· 하늘을 검게 메우며 쏟아지던 비행괴수들이 일제히 몸을 움찔 떨었다·
속도 저하 방어력 저하 방향감각 교란····
자잘한 효과지만 그 대신 압도적 범위로· 비행괴수들에게 일제히 해로운 효과가 걸렸다·
그리고 이 비행괴수들을 향해 인류가 보유한 최강의 비행전력이 쇄도했다·
“가자!”
미하일이 이끄는 창공기사단이 비공함 ‘블루 펄’에서 출진해 쏟아지는 비행괴수의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하늘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괴수들이 범하지 못하게 해라-!”
미하일의 뒤에는 치유사제 제니스가 함께 탑승한 채였다· 현장에서 기사와 그리폰을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창공기사단 전원이 몸에는 신성력 갑옷을 부여받고 무기에는 각종 정령 인챈트를 받은 상황·
안 그래도 일반 비행괴수와는 격을 달리하는 전투력을 지닌 그리폰 라이더에게 이로운 효과를 퍼부었고·
반대로 비행괴수들에게는 해로운 효과를 퍼부었으니·
그 전투력 차이는 압도적으로 벌어졌다·
콰광-!
양 떼 사이에 뛰어든 사자처럼 창공기사단은 비행괴수들을 찢어발기며 파고들었다·
‘강하다·’
에반젤린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는··· 강해!’
6교대 십자포화를 퍼부어 킬존 통과를 원천 봉쇄하고·
뚫고 들어오는 적은 저격수 마법사 아티팩트와 공중병력으로 분쇄한다·
한데 맞물려 돌아가는 일군(一軍)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지경이었다· 기사로서 장교로서 에반젤린은 잠시 눈물을 찔끔일 만큼 감동했다·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괴수전선에서 다져진 인류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이렇게 정연하게 만개했다·
그때였다·
“보고드립니다-!”
그 감동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척후병의 고함이 에반젤린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가 출몰했습니다-!”
“···!”
에반젤린은 다급하게 망원경을 들었다·
사아아아····
저 멀리 남쪽 끝에서·
자욱한 어둠을 흩뿌리며 끝이 불에 탄 하얀 드레스 자락을 나풀거리며··· 악몽의 화신이 등장했다·
불탄 면사포가 바람에 펄럭이며 그 뒤의 얼굴을 드러냈다·
창백한 얼굴은 무표정하다·
한때 함께 동고동락하던 여인의 그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
마침내·
최악의 적장이 크로스로드에까지 당도했다·
완전히 적이 되어버린 무명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에반젤린은 천천히 망원경을 위로 들었다·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의 몸과 연결된 어둠의 끈이 세상을 세로로 가로질러··· 저 멀리 갈라진 하늘 끝에 닿아 있었다·
흉하게 찢어진 하늘 너머에는 번들거리는 무수한 눈동자·
이 땅에서 벌어지는 최후의 전투를 지켜보는 탐욕스러운 외신들의 시선·
‘선배님·’
에반젤린은 결연한 표정으로 망원경을 내린 뒤·
‘저들의 시선은 저희가 잘 끌고 있을 테니까····’
있는 힘껏 웃었다·
“저질러 버려요 마음껏···!”
애쉬가 일으킨 반역 영계대결전의 개막과 함께·
이곳 인세에서도 괴수대침공이 최후의 단계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