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7· [LAST STAGE] 영계대결전 (2)
외신들이 이 세계를 멸망유희의 장으로 선택한 뒤·
그들은 생과 사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강제로 벌리고 그 틈새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 인위적인 공간이 바로 이곳 영계·
그리고 외신들은 영계를 통해 우리 세계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선택한 종족의 나무- 수호수를 심어 해당 종족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렇게 점차 세계 전체에 영향력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외신들이 이 세계에 간섭하는 통로가 바로 이곳 영계· 다시 말해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설명했다·
“영계를 ‘닫아버리면’ 외신들은 더 이상 이 세계를 가지고 놀 수 없게 됩니다·”
외신들을 추방하려면 필연적으로 이곳 영계를 닫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계를 완전히 닫기 위해서는 영계와 이승 사이에 뿌리내린 각 종족의 나무- ‘수호수’를 없애야 하는 것이고·”
수호수는 영계에 뿌리를 이승에 줄기를 내리고 있다· 영계에서 퍼올린 이계의 힘을 이승으로 길어 올리는 구조이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 뿌리를 내려 생과 사의 사이에 틈을 벌리고 그 이격(離隔)을 유지하는 ‘쐐기’ 역할 또한 수행하고 있기에·
이 수호수들을 우선적으로 없애야만 영계와 이승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고 영계를 완전히 닫아버릴 수 있다·
‘말이 길었는데 정리하자면!’
외신들을 쫓아내려면 우선 이 나무들을 모조리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때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수호수를 불사르고 뽑아내면 우리의 세상에서 모든 마법 모든 신비 모든 권능이 사라질 것이다·”
이미 세계수호전선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건만·
황제는 굳이 내게 한 번 더 물었다· 내 결심이 확고한 것인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지난 천 년간 우리 세계를 지탱해 온 모든 법칙이 무너져 내리겠지· 문명은 쇠퇴하고 마법으로 다스리던 모든 나라의 왕권이 약해질 것이다· 너 또한 예외는 아니다·”
“····”
“너를 특별하게 해주는 모든 것을··· 진정으로 너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말이냐?”
“저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어떤 힘을 지녔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평범한 제가 만약 특별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할 때겠죠· 바로 지금처럼·”
인간의 가치는 그 자신이 선택한 도전을 얼마나 피하지 않느냐로 결정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특별하거나 위대한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직면한 도전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려 한다·
황제는 어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좋을 대로 해보거라·”
한번 고개를 숙여 보인 나는 결사대를 향해 설명을 이었다·
“말했듯이 수호수의 뿌리는 영계를 유지하는 쐐기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없애는 일을 외신들이 내버려 둘 리가 없습니다·”
나는 흘긋 위쪽을 보았다·
“그래서 인세의 ‘괴수대침공’ 쪽이··· 괴수와 맞서는 세계수호전선이 가능한 시선을 끌어줘야 합니다·”
현재 외신들의 시선은 인세를 침공 중인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 쪽으로 쏠려 있다· 그녀가 가져오는 이 세상의 멸망 가장 큰 비극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는 이 틈에 영계에서 수호수 파괴 공작을 한다·
“인세가 버티는 동안 우리는 준비를 끝내고 일시에 모든 나무를 불태웁니다·”
수호수가 사라지면 즉시 영계로부터 인세로의 마력 공급이 중단될 것이다·
그러면 현재 전선에서 싸우는 나의 영웅들은 즉각적으로 마력 수급에 난항을 겪을 것이다· 더 이상의 공급 없이 남은 마력만을 쥐어짜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괴수 또한 마찬가지다·
괴수는 악몽을 정제하여 되살아난 존재· 근원 자체가 마법에서 비롯되었다· 놈들은 존재 자체에 타격을 입을 것이다·
게다가 외신들의 연결은 즉각적으로 방해받을 테니·
외신들로부터 직접 조종 받고 있는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 또한 약해질 것이다·
《그 뒤에는?》
마왕이 차갑게 물었다·
《외신들은 너의 반역 시도를 즉시 눈치챌 것이다· 그리고 수호수를 모두 없앤다 해도 영계가 완전히 닫히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
《외신들은 이곳에 직접 힘을 뻗어 강제로 영계를 열어젖히려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또한 참살하려 들 테고·》
마왕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젖혔다·
《물론 외신들은 직접 이 세계에 힘을 뻗치려 하면 여러 제약에 걸린다· 힘을 쓴다 해도 상당히 약화된 상태일 거야·》
“그래· 그래서 너처럼 직접 뛰어내린 성좌- 중개자를 통해 이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한 거잖아·”
존재의 층위가 다르다고 할까· 다르게 표현하자면 주파수가 서로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하려나·
외신들은 강력하지만 먼 존재다· 까마득한 외계(外界)에 있다 보니 우리 세계에 온전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동안 굳이 마왕이나 백야 같은 중개자를 거쳐서 개입한 것이다·
이런 중개자를 거치지 않아도 힘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 여파는 이 세계에 제대로 닿지 않는다· 감소하고 깎여나간다·
다시 말해서 충분히 버틸 만하다·
《반면 너는 여러 방법으로 존재의 격을 끌어올린 듯하니 잠시간은 외신들이 직접 공격해 온다 해도 맞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는 힘들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중개자가 없으면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고 해도 감소하고 깎여나간다 해도 애초에 힘의 격이 다르다· 저들 외신은 거대하고 무한하다·
반면 나는 작고 유한한 존재·
잠시는 버틸 수 있겠지만 결국은 으스러지고 말 터·
“여기서 에이더가 준비한 ‘한 방’이 있다·”
이 멸망유희의 본래 플레이어· 에이더·
나에게 대행을 맡긴 선대 용사의 이름이 나오자 마왕의 눈빛이 가늘게 뜨였다·
“그 멍청한 바보 디렉터 녀석이 자신의 긴 삶을 걸고 만든···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카드가· 인세에서 준비 중이다·”
《····》
“이 카드를 사용하면 외신들에게 틀림없이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다시 인세가 바통을 넘겨받고 한 방 날려주면
“그렇게 외신들이 타격을 입고 물러난 틈에 영계를 완전히 폐쇄한다·”
한 번 더 영계에서 바통을 넘겨받고 마무리한다·
나는 마왕을 똑바로 보았다·
“이 최종 폐쇄는 마왕 네가 해줘야 한다·”
잠깐의 침묵 뒤·
《최초에 중개자로서 내가 이 세계를 유희의 장으로 선별하고 영계의 문을 열었으니·》
마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닫는 것 또한 할 수 있다·》
그리고 영계가 완전히 닫히면 외신들의 개입 또한 완전히 끊기고····
세상에서 모든 마법과 신비 권능이 사라진다·
악몽의 동력을 잃은 괴수 또한 소멸하고 그렇게·
우리의 전쟁은 끝난다·
“자 ‘영계대결전’의 대략적인 개요는 이러합니다·”
나는 결사대를 둘러보며 정리했다·
상세한 작전은 또 따로 지시하겠지만 큰 틀은 이렇게 전개될 것이다·
인세와 영계 두 곳의 최종결전이 서로를 돕고 보완하며 한데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말로는 뭔들 못하겠느냐마는·》
마왕이 나지막이 한숨을 토해냈다·
《일단 이론적으로 가능한 작전이기는 하군·》
“그러니까 너도 여기까지 따라온 거잖아?”
히죽 웃으며 보자 마왕은 잠시 침묵하더니·
《시작하기 전에· 확인하고 싶다·》
그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떨렸다·
《그녀가 정말 이곳에 있는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와·”
작전이 시작되었다·
4대 이신은 모두 각자의 수호수가 심어진 곳으로 이동했고 황제와 글로리 나이츠는 라 만차를 타고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동안 나와 마왕은 에버블랙의 뿌리 아래 공간으로 향했다·
《····》
백사장을 밟고 에버블랙의 뿌리 아래로 향하며·
어째서인지 마왕은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뿌리 아래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섰다·
“애쉬!”
그곳에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가시나무에 온몸이 묶인 채 불타는 여인이 있었다·
“무슨 일이니? 바깥이 조금 소란스럽던데·”
자상하게 묻던 여신은 내 뒤의 존재를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당신은···?!”
《····》
마왕은 침묵을 유지한 채 나를 따라 이 뿌리 아래의 공간에 들어왔다·
“어때 마왕·”
묵묵히 주위를 둘러보는 그에게 물었다·
“그녀가 보이나?”
《····》
여신이 있는 공간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마왕은 이윽고 천천히 대답했다·
《···아니·》
그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보이지 않는군·》
여신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왕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 마주하는 완전한 공허가 이곳에 있다· 이토록 완전한 부재(不在)가 이곳에 있다·》
“····”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 공허는 따스하군· 이 나무를 이 세계를 데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마왕은 천천히 그의 눈에는 텅 빈 허공일 공간을·
여신이 있는 그 장소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그렇기에 알 수 있다· 이곳에 있구나·》
“····”
《자신의 존재마저 모조리 불사르고 이곳에 홀로 있구나·》
역설적으로 완전한 부재(不在)가 그곳에 있기에·
고통 공허 상실이야말로- 그곳에 무언가 존재했다는 틀림없는 증거이기에·
《정말로 이곳에 있어····》
마왕은 그 자신의 눈에는 그저 텅 비었을 뿐인 공간을····
불타는 여신의 뺨 옆 허공을 손끝으로 쓸었다·
《어리석은 사람아·》
“····”
《자신이 아닌 타인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아·》
깊게 숨을 들이켠 마왕의 목소리에서 더 이상의 미혹이 사라졌다·
《무한히 반복된 천 년이면 이미 충분하다·》
그는 뒤돌아서 뿌리 아래 공간을 나섰다·
《이제 끝내자·》
마왕이 바깥으로 사라진 뒤·
힘겹게 숨을 몰아쉬던 여신이 나를 보았다·
“애쉬· 대체··· 뭘 하려는 거니?”
나는 그녀에게 미소해 보였다·
“아 이거 참 죄송한데요· 여신님····”
일부러 평소보다 조금 더·
악동같이·
히죽 하고·
“타락해 주셔야겠어요·”
“···응?”
“아주 끝까지· 완전히· 남김없이요·”
영문을 모르고 눈만 깜빡이던 여신이 뜨악하게 중얼거렸다·
“뭐라고?!”
나는 한 번 더 씩 웃어 보인 뒤 뒤돌아서서 마왕을 따라 나섰다·
‘이 세상은 처음부터 잘못 쌓여 있었다·’
아래에서부터 흔들리는 빈틈투성이 젠가 퍼즐처럼·
토대부터 그릇된 세상이었다·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힘이 없으면 노예로 살아야 했고 그런 세상에서 자신의 사람들을 구하고자 한 존재가 억겁의 세월 동안 희생을 자처했다·
외부에서부터 주입된 세상의 법칙도·
누군가의 희생으로 담보되는 구원도·
모두 처음부터 잘못됐어·
그러니까-
‘부순다·’
산산조각 내버릴 테다·
모조리 없애고 무너뜨리고 박살을 내겠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어·’
더 이상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하게 같은 눈높이로 서로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세계를·
나는 만들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도전하겠다·’
내 앞을 막아선 이 거대한 벽을 향해서·
지금부터 도전한다·
밖으로 나서자 백사장 위에 선 마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이미 더 이상 우리 사이에는 대화가 필요 없었다· 시선만으로 우리는 서로의 의중을 알아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정말이지 지겹도록 서로 수를 나누어 온 숙적이었으니까·
“이곳에서····”
나는 오른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거대한 빛의 기둥이 내 오른손으로 떨어졌고 나는 그것을 낚아챘다·
빛의 기둥은 이윽고 거대한 빛의 깃발로 형태가 바뀌었다·
“전 우주에 대한- 반역을 선포한다!”
있는 힘껏 나의 깃발을 백사장에 박았다·
그러자
번쩍-!
눈부신 빛무리와 함께 환히 빛나는 잿빛 요새가 해변 아래에서부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