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5· [LAST STAGE] Titan Fall (3)
콰아아아!
거대한 악어 괴수와 문어 괴수- 레비아탄과 크라켄이 격돌하자 주위 지면이 산산이 터져나가며 아래에서 뚫린 수맥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양의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레비아탄은 그러한 수류(水流)를 다루는 권능을 지녔기에 물로 이뤄진 토네이도를 몇 개나 솟구쳐 올려 크라켄을 공격했다·
크라켄은 해양 괴수였으나 물을 다루는 능력은 없었다· 대신
“흐으읍-!”
크라켄 위에 탑승한 킹 포세이돈에게 그러한 힘이 있었다·
인어왕으로서 지닌 파도의 권능으로 킹 포세이돈은 마주 물줄기를 조종해 레비아탄의 물줄기를 상쇄해 냈다·
그리고 크라켄은 이러한 물폭탄과 장맛비의 장막 아래로 기다란 촉수를 뻗으며 레비아탄에게 바짝 접근하고 있었다·
레비아탄은 뾰족한 이빨이 끝없이 돋아난 긴 입을 벌려 단숨에 크라켄을 집어삼키려 했지만-
철썩!
크라켄이 무수한 촉수를 내뻗어 레비아탄의 입이 벌어지기 전에 칭칭 감아버렸다· 악어 괴수의 기다란 입이 강제로 닫혔다·
그 상태로 뒤엉킨 두 괴수가 늪지대 위로 거세게 뒹굴었다· 서로가 위쪽 포지션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몸을 굴렸고 그때마다 지면이 폭발하고 물보라가 치솟았다·
범위에 휩쓸린 소형 중형 괴수들은 물론이고 대형 괴수들마저 온몸이 곤죽이 되어 죽어 나갔다·
‘당장은 비등하게 싸우고 있지만 크라켄이 밀린다!’
크라켄을 보조하며 킹 포세이돈은 이를 악물었다·
물에서 사는 괴수라는 점은 같아도 이런 늪지대 지형은 레비아탄에게 좀 더 유리했다·
크라켄은 어디까지나 해양괴수·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싸워야 그 전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반면 레비아탄은 늪이든 강이든 행동에 구애받지 않았다·
애초에 레비아탄 자신이 홍수 일으키는 자 어느 장소든 물 가득한 곳으로 바꾸는 능력을 지녔기에··· 역설적으로 전장이 사막이든 설산이든 그 어느 곳이든 온전히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점점 전황은 레비아탄에게 유리해졌다·
포세이돈 또한 종족신의 권능을 이미 넘겨준 상태인지라 레비아탄이 쏘아내는 물줄기를 대신 받아내는 일이 버거워졌다·
‘이대로는···!’
패배를 직감한 킹 포세이돈이 이를 악문 순간·
부오오오···!
혈투를 벌이는 레비아탄과 크라켄의 머리 위로 느닷없이 그림자가 드리웠다·
순간 전투를 멈춘 두 괴수가 그쪽을 보자····
《···?!》
넘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코끼리- 베헤모스가·
두 수중 괴수가 혈투를 벌이는 장소 바로 위로!
“뭣···!”
기겁하는 포세이돈의 눈에 저 멀리 베헤모스의 머리 위쪽에서 비명을 지르는 바이올렛의 모습이 보였다·
바이올렛이 궁극기 [백일몽]을 사용했고 자그마치 베헤모스의 의식에 침투해 균형을 잃게 만드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레비아탄도 크라켄도 통상적인 대형괴수의 규격을 아득히 뛰어넘는 초거대괴수지만· 베헤모스는 초거대괴수들 중에서도 특출한 덩치를 가진 존재였다·
그야말로 산맥 하나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형국이었다·
‘이건 피할 수가 없-’
킹 포세이돈이 충격에 대비하는 그때였다·
“···?!”
무시무시한 사기(邪氣)가 퍼져나가는 감각과 함께 오싹 하고 모든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당혹한 킹 포세이돈이 다급하게 옆을 돌아보자····
그곳에 있었다·
초거대괴수들의 전투에 휩쓸린 다른 괴수들의 시체산 위에·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베헤모스를 무감정하게 올려다보는···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가·
《····》
여인의 손에 막대한 어둠이 몰려들더니 기다란 장검의 형상으로 빚어졌다· 장검 안으로 어둠은 한없이 응축되고 또 응축되었다·
그리고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는 가볍게 그 검을 위로 내질렀다·
····
일순 킹 포세이돈은 세상에서 소리가 잘린 듯한 착각을 느꼈다·
하지만 잘린 것은 소리가 아니었다·
세계였다·
쩌어어어어어억!
급격히 소리가 되돌아오며 동시에 세계가 찢어졌다·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가 사뿐하게 휘두른 일검(一劍)은 아래로 쏟아지던 베헤모스의 거체를 좌우로 갈라버렸다·
아니 베헤모스뿐만이 아니었다·
그 검로(劍路)가 그려진 하늘과 땅이- 그대로 쪼개졌다·
지표가 갈라지며 시뻘건 용암이 분출했고 하늘에 남아 있던 구름이 모조리 증발했다·
그것은 초월적인 폭력이었다·
그리고 쪼개진 하늘 사이로 새카만 이계의 어둠이 스며들더니····
“···?!”
무언가 하얀 것들이 우글거리며 그 틈을 채웠다·
하얀 것들은 서로를 발작적으로 밀어내며 몸싸움했고 뒤이어 하얀 몸 위로 동그란 무언가가 빙그르르 돌며 초점을 맞추더니····
탁·
아래를 ‘보았다’·
그제야 킹 포세이돈은 알아챘다·
그것은 눈이었다·
하얀 것은 흰자· 둥근 것은 눈동자·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하고 동시에 사악한 의도를 품은 무수한 눈들이····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만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뭐야 저게····”
떨떠름하게 중얼거리던 킹 포세이돈은 직후 정신을 차렸다·
《부오오오오···!》
반으로 갈라진 베헤모스가 처참한 비명을 터뜨리며 완전히 지상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미 어둠의 검에 의해 쪼개져 있던 대지가 어마어마한 충격과 함께 모조리 조각났고 레비아탄과 크라켄도 그 여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콰과과과광!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
쉬륵· 쉬륵·
가까이에서 들리는 혓소리에 바이올렛은 눈썹을 꿈틀했다·
“으음····”
쉬륵· 쉬륵·
그러자 혓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할짝·
축축한 무언가가 바이올렛의 뺨을 핥았다·
“우끼야아아앗!”
흉한 비명을 내지르며 바이올렛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 뭐야! 방금 뭐··· 아 요르문간드· 너구나·”
바이올렛의 바로 옆에는 구렁이 정도 크기로 줄어든 요르문간드가 혀를 쉭쉭거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바이올렛이 주위를 살피자 온통 흉하게 무너진 지반의 틈 어딘가였다· 지표가 갈라지며 생긴 골짜기 틈 아래로 굴러떨어진 모양이었다·
“이 일대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거야···? 산 게 기적이다·”
추락하는 바이올렛을 요르문간드가 몸으로 안전하게 받아내 준 것이었으나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바이올렛이 혀를 찼다·
눈을 가늘게 뜬 요르문간드도 따라서 혀를 찼다· 쉭쉭·
“일단 좀 주위를 살펴보자··· 이리 와 요르문간드!”
요르문간드를 목에 휘감고 바이올렛은 [용비늘 망토]의 특수기능을 발동해 장갑과 신발에 발톱을 생성 가뿐하게 골짜기를 타고 올랐다·
그리고 지상으로 기어 올라온 바이올렛의 눈에 먼저 보인 풍경은····
“···?!”
반으로 갈라져 죽은 베헤모스 거대한 시체·
그리고 그 위에 선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였다·
거대한 산맥 같은 초거대괴수가 동강 나 죽자 그 단면에서 쏟아진 피 때문에 일대에 자욱한 붉은 안개가 낀 상태였다·
이 붉은 안개 속에 초연하게 선 악몽의 화신은 허공으로 손을 뻗은 상태였고 그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크륵 크르르르륵!》
레비아탄과 크라켄이 마치 멱살이라도 잡힌 것처럼 숨을 쉬지 못한 채 허공에 둥둥 떠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베헤모스만큼은 아니어도 레비아탄과 크라켄 또한 단일 생물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크기의 초거대괴수였다·
그러나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는 무형의 힘으로 솜털 들듯 가볍게 두 괴수를 잡아 들어 올린 상태였다·
《····》
그리고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가 가볍게 손을 한번 말아 쥐자·
콰드드드득!
허공에 떠 있던 레비아탄의 거대한 몸이 삽시간에 압착 되더니 사방으로 핏물을 뿌리며 찢기고 터져버렸다·
“말도··· 안 돼····”
바이올렛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나이트브링어와도 전장에서 맞붙어 본 바이올렛이었으나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저 여인은 아예 궤가 달랐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적이 아니다·
승산이라는 것이 존재하지가 않는다···!
《····》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가 말아쥔 손을 옆으로 가볍게 털자 한때 홍수와 장마의 주인이었던 초거대괴수 레비아탄은 한낱 압착된 고깃덩어리로 변한 채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뒤이어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의 시선이 옆에 붙잡힌 또 다른 초거대괴수- 크라켄을 향했다·
크라켄의 머리 위에는 킹 포세이돈이 함께 잡힌 채 발버둥 치고 있었다·
“···!”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용비늘 망토]에 부여된 투명 마법을 활성화하고 바이올렛은 앞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아니 뭐해?!’
망설임 없이 내달리는 몸과는 달리 그녀의 머릿속은 순간 온갖 번뇌로 가득 들어찼다·
‘왜 또 나는 안 어울리게 정의의 영웅 놀이를 하고 있는 건데···?!’
아니 아니다·
이제 반대다· 이게 자신이 맞다·
위험에 처한 아군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이상 바이올렛이 아닌 것이다·
이미 자신은 그런 사람이니까···!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서····’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키며 바이올렛은 전력으로 환술영역을 전개했다·
‘아주 성인군자 납셨어 아오!’
예전에 ‘여의주’를 사용한 뒤 바이올렛은 자신의 한계를 부수고 인간으로서는 최고 경지의 환술 마법 사용자가 되었다·
그런 그녀가 사용한 주위를 감싸는 환술영역에 [용비늘 망토]가 제공하는 최상위 투명 마법까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은신 상태로 바이올렛은 킹 포세이돈을 구하기 위해 내달렸고····
슥-
다음 순간 어느새 이쪽을 돌아본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와 눈이 마주쳤다·
‘어?’
온몸에서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는 듯한 당혹감을 느끼며 바이올렛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숨을 삼켰다·
‘말도 안 돼 이 정도 수준의 은신이면 그 흑룡도 몇 초는 속일 수 있는····’
챙그랑-!
다음 순간· 바이올렛이 눈을 한번 깜빡였을 때·
환술영역도 투명 마법도 모조리 산산이 조각나며 마력 입자만 남기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달리던 동작 그대로 멈춘 바이올렛을 향해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가 검지 끝을 향했다· 바이올렛은 직감했다·
이건
죽는다·
‘아으 진짜· 그러니까 괜히 설쳐서는····’
죽음을 각오한 바이올렛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주제 모르고 설쳤으니 콱 뒈지는 것도 별수 없지· 에라이· 잘 있어라 세상아! 썩 괜찮은 인생이었다!’
····
하지만 바이올렛은 죽지 않았다·
‘응?’
의아해하며 바이올렛이 눈을 슬쩍 떴을 때·
그녀는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머리 위로 향해 있음을 깨달았다·
쐐애애애액!
거대한 독수리 형태의 초거대괴수· 지즈·
그 몸을 빼앗은 듀라한 군단장과 밴시 군단장이 거침없이 포효하며 지상으로 강하하고 있었다·
《네 상대는 우리다 왕녀!》
《귀를 꽉 막는 게 좋을 거야-!》
듀라한 군단장은 지즈의 몸에 깃든 태양광과 태양열을 능숙하게 한데 모았고
번쩍-!
그렇게 모인 힘을 밴시 군단장은 날카로운 파형으로 변환해 쏟아냈다·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는 앞으로 뻗은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녀의 앞에 막대한 어둠이 몰려들더니 정사각형 형태의 방패를 형성했다·
투학···!
지즈의 몸에 남은 모든 힘을 일시에 쏟아낸 공격이었으나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의 방어에 흠집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쿠오오오오!
이 찰나의 순간 자신을 묶은 힘이 옅어진 것을 놓치지 않고 크라켄은 어둠의 속박을 풀어헤친 뒤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에게 달려들었다·
바이올렛이 공포를 이겨내고 앞으로 나섰기에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로부터 몇 초의 시간을 빼앗을 수 있었고·
그 몇 초 차이로 지즈가 지상에 강하하며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에게 태양의 힘이 서린 공격을 쏟아낼 수 있었다·
속성상 상극인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어둠을 한데 모아야 했으며·
바로 그 틈에 킹 포세이돈과 크라켄이 자유롭게 풀려나 최후의 반격을 도모했다·
모두가 각자의 목숨을 걸고 최선의 협동을 시도했기에 드러난 기적 같은 일순의 빈틈이었다·
그리고 크라켄이 찔러낸 촉수의 끝이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에게 닿은 순간·
왕녀의 몸을 감싼 끝없는 이계의 어둠 안쪽을 찌른 그 순간
《쿠오 오···?!》
그 즉시 크라켄은 온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쩌저저저적-
푸화아아악!
바늘 끝에 닿은 풍선처럼 사방으로 터져나가고 말았다·
“뭣····”
비처럼 쏟아지는 괴수의 체액과 살점 속에서 킹 포세이돈은 황망한 눈으로 자신의 손가락에 차인 반지를 보았다·
[크라켄의 반지]는 금이 쩍쩍 벌어지더니 다음 순간 완전히 가루로 변하며 파괴되었다·
《뭐?!》
《이게 무슨-》
이 광경 앞에서 지즈의 몸을 빼앗은 듀라한 군단장과 밴시 군단장이 당혹한 신음을 토해냈고·
휙-
푹·
다음 순간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가 방패에서 검으로 변환시킨 어둠이 지즈의 가슴팍에 꽂혔다·
《어?》
《잠 깐····》
두 괴수 군단장의 단말마 직후·
쩌억-!
지즈는 그대로 검이 꽂힌 부위에서부터 전신이 터져나갔다·
내부를 가득 채운 어둠이 바깥으로 범람하듯 쏟아져 나오며 괴수의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
귀가 찢어질 듯한 폭음 후 찾아온 가라앉은 적막 속에서·
바이올렛은 멍하니 눈을 들어 앞의 존재를 올려다보았다·
괴수의 쏟아진 살점 위 잘린 촉수와 체액 터져나온 깃털이 비처럼 쏟아지는 지옥도 속에서·
인세에 강림한 모든 초거대괴수를 모조리 참살하고 홀로 고고히 서서····
갈라진 하늘을 통해 무수히 많은 외신들의 시선과 연결된 채로·
악몽의 화신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는 마리오네트처럼 삐걱거리며 느릿하게 어둠의 검을 고쳐 잡았다·
이 세상의 멸망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