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4· [LAST STAGE] Titan Fall (2)
독수리형 초거대괴수 지즈·
이 괴수는 상공을 가리어 태양의 빛과 열을 독점하고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바꾸는 능력을 지녔다·
고오오오오···!
괴수의 등을 뒤덮은 붉고 노란 깃털들이 일제히 빳빳이 섰다·
그동안 모은 태양열과 태양광의 힘으로 괴조는 자신의 몸을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화르르륵!
거대한 새의 온몸에 열기와 빛이 일렁이며 번졌다·
마치 거대한 불꽃의 새 같았다·
괴수의 거체로부터 쏟아지는 압도적인 열기와 빛에 마치 눈앞에 태양이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거대한 불새의 앞으로 미하일과 루카스는 여전히 망설이지 않고 돌진 중이었다·
그 모습은 흡사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는 이카로스처럼 어리석어 보였다·
“태양에 닿을 용기가 없다면····”
하지만 그리폰의 날개는 밀랍이 아닌 단단한 근육으로 이어졌고 미하일의 목적지는 만용이 아니라 확신으로 설정되었기에·
“하늘을 날 수 있을쏘냐-!”
이것은 우자(愚者)의 투신이 아니라 용자(勇者)의 도전이었다·
번쩍!
지즈의 불꽃에 뒤덮인 온몸에서 빛이 산란하더니 다음 순간 응축된 빛과 열이 광선의 형태로 쏟아졌다·
그리고 미하일의 그리폰은 그 모든 빛줄기를 모조리 피해냈다·
투학-!
애쉬에게 새로 받은 안장 [지재천리]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급가속·
평소보다 더욱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횡으로 종으로 날개를 접고 빙글 돌다가 날개를 펴고 급상승하고 급하강하기를 반복·
기기묘묘한 동작과 비행으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신화시대 괴수의 요격을 단 한 대도 허용하지 않고 회피했다·
아찔한 곡예비행의 끝에 그리폰 라이더는 거대한 독수리의 머리에 바짝 접근하는 데에 성공했다·
“나는 버밀리온 왕국의 국왕 미하일 버밀리온이다!”
양손에 하나씩 들린 마창에서 눈부신 주홍빛을 뿜어내며 미하일이 선언했다·
“이 시대 창공의 지배자는 바로 나다!”
《···!》
“본래 네가 잠들었던 곳으로 돌아가라 과거의 날개여-!”
급속도로 접근한 미하일이 괴수의 목에 마창을 찔러넣으려는 순간 거대한 독수리의 부리가 쩍 벌어지더니·
캬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포효가 터져나왔다·
열기가 깃든 음파에 미하일은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그리폰을 몰아 다급히 물러서야 했다·
하지만 긴급 회피기동으로 몸을 물리면서도 미하일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늦었다 괴수···!”
미하일의 두 손에는 어느새 창이 없었다·
쐐애애애액!
괴수에게 가능한 가까이 접근한 상태에서 그대로 투창한 것이다·
궤적을 따라 주홍빛 마력을 흩뿌리며 하늘을 가르고 날아든 두 마창은 그야말로 미사일처럼 쏘아져서-
푹!
푸욱-!
거대한 독수리의 목에 틀어박혔다·
박히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스스로 창대 끝으로 마력을 분사하며 창대의 끝까지 창 전체를 밀어 넣었다·
푸확···!
미하일의 주홍빛 마력과 함께 괴수의 핏물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흠집은 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미하일이 소리쳤다·
“솜씨를 보여다오 제국제일검-!”
《···?!》
목에 박힌 이물이 주는 고통에 당혹스러워하던 지즈의 두 눈이 다급하게 위로 향했다·
머리 위로 또 다른 무언가가 정확하게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아아악!
그것은 양손에 빛의 검을 하나씩 움켜쥐고 황금빛 오오라로 제 몸을 감싼 기사였다·
루카스는 진작 그리폰의 안장을 차고 하늘로 솟구쳐 미하일과 따로 움직이는 상태였다·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는 기사의 몸이 정직하게 괴조의 머리 위로 낙하했다·
《캬아아아아···!》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지즈는 몸의 방향을 틀었다·
초거대괴수 특유의 맷집과 타고난 오만함으로 앞에서 무엇이 공격해 오든 방향을 틀지 않고 있었으나····
지금 눈앞으로 쇄도해 오는 조그마한 인간 검사에게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섬뜩한 예감을 읽어냈기 때문에·
지즈는 그 거대한 몸을 뒤틀어 방향을 바꾸려 했다· 거대한 새의 날개가 격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일대에 돌풍이 일고 멀리 있던 구름이 산산이 흩어졌다·
“애쓰지 마라·”
하지만 루카스는 터럭만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내 간격 안이다·”
[전신강림] 효과로 루카스의 몸에서 일렁이던 황금빛 기류가 등 뒤로 뭉쳐지더니 금빛 헤일로를 형성했고-
다음 순간 하얗게 백열하며 앞으로 추진력을 내뿜었다·
투학-!
어떻게든 그 거체를 틀어 피해내려는 괴수의 목을 향해 루카스는 가뿐하게 따라붙었다·
《캬아아아아아!》
마지막으로 지즈는 최후의 발악처럼 온몸에서 빛줄기를 뿜어내 루카스를 공격했으나
루카스는 가볍게 두 자루 검을 앞으로 내밀어 도리어 쏟아진 빛줄기를 칼날을 통해 흡수해 버렸다·
“잘 쓰마·”
괴수의 목 위에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기사의 두 자루 장검이 먼저 박혀 있던 두 마창을 쐐기추처럼 내리찍었다·
두 마창이 완전히 괴수의 목 안으로 파고들며 거대한 괴조의 목에 파멸적인 흠집을 새겼고 뒤이어 두 자루 장검이 그 흠집을 따라 안으로 파고들었다·
서걱···!
루카스의 동작을 따라 두 자루 장검이 가볍게 괴수의 목을 베고 다시 밖으로 빠져나왔다·
루카스의 장검은 괴수의 거대한 목에 비하면 너무도 짧아 보였다· 아주 작은 상처만 새긴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카스는 할 임무를 다했다는 듯이 옆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바로 옆으로 날아든 미하일이 그런 루카스를 솜씨 좋게 받아 내 자신의 뒤에 태웠다· 미하일은 아직 건재한 지즈의 상태를 보며 물었다·
“부족했나?”
“아니요·”
루카스는 태연하게 두 자루 장검을 칼집에 채웠다·
“벴습니다·”
다음 순간·
거대한 독수리의 목에 길게 금이 새겨진다 싶더니 그 틈을 따라 핏물이 배어 나왔고····
쩌어억-!
거대한 머리가 깔끔하게 베어져 떨어졌다·
두 자루 검이 괴수의 목에 파고든 순간 루카스는 빛과 마력의 참격을 칼날에 휘감았고 일순 거대해진 칼날로 괴수의 목을 절단한 것이다·
참수된 독수리의 머리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졌다· 경악한 괴수의 두 눈이 마지막까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미하일과 루카스를 보고 있었다·
“하핫!”
하늘을 날아 돌아온 두 자루 마창이 미하일의 손으로 회수되었다·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린 미하일이 가까워진 블루 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미 다른 그리폰 라이더가 듀라한 군단장과 밴시 군단장을 데리고 나르고 있었다·
터억-!
지즈의 거대한 몸이 균형을 잃기 전 듀라한 군단장의 머리가 지즈의 잘린 목에 붙었다·
《으음 이번에도 괴악한 몰골이군····》
삽시간에 지즈의 몸 제어권을 빼앗은 듀라한 군단장이 중얼거렸다·
듀라한 군단장은 지즈의 거대한 다리를 움직여 막 떨어지는 참수된 목을 받아챘다·
어느새 지즈의 다리를 타고 그 참수된 목 옆으로 이동한 밴시 군단장이 거대한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생명의 빛이 꺼져가던 괴조의 두 눈이 부릅뜨이고 부리 사이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튀어나왔다·
《우리가 하는 일이 늘 그렇지 뭐어~》
이 기괴한 모습을 보며 미하일은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지만 루카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군단장 두 분 남은 작전도 잘 부탁드립니다·”
《맡겨주게·》
《하늘을 무대로 실컷 울부짖을 수 있다니 후후····》
지즈의 거대한 몸이 천천히 선회하더니 이윽고 완전히 뒤돌아섰다·
《이런 기회 두 번은 없겠지!》
그리고 뒤따라오던 다른 비행형 괴수들을 향해 힘차게 날갯짓했다·
괴조의 거대한 날개에서 무수한 빛줄기가 쏘아졌고 그 발에 들린 머리가 쉴 새 없이 음파를 토해냈다·
하늘을 통해 크로스로드로 진격해 오던 나머지 비행괴수들이 그 공격에 휩쓸려 삽시간에 추락하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간 지상·
쿠과과과과과광!
지축을 뒤흔들고 쪼개며 베헤모스와 요르문간드가 격돌하고 있었다·
부오오오오-!
코끼리처럼 포효하며 베헤모스는 연신 그 거대한 몸으로 요르문간드를 짓밟으려 했다·
다른 특수능력은 일절 없었으나 어떤 괴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 압도적인 덩치와 질량만으로도 베헤모스는 재해(災害) 그 자체였다·
한번 발을 구를 때마다 지형이 바뀌었다· 산이 무너지고 강이 치솟았다·
조금이라도 가까운 지면에 있던 소형괴수들은 형태조차 남기지 못했고 중대형 괴수들도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그러나 요르문간드 또한 세계종단자· 지진 일으키는 자·
그 육체는 가장 단단한 암석도 부수고 가장 튼튼한 지맥도 뒤틀 만큼 단단하다·
적어도 지상에서 물리력으로 부딪히는 것이라면 상대가 누구라 해도 밀리지 않는다·
요르문간드는 베헤모스의 발 구름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고 그 충격파는 몸으로 받아 내며 베헤모스의 몸을 타고 오르며 그 몸을 깨어 부수려 했다·
두 초거대괴수의 충돌에 일대에 극심한 지진과 함께 흙먼지가 파도처럼 치솟았다·
“꺄아아아아! 우와아아아!”
이 과정에서 죽을 맛인 것은 바이올렛이었다·
“고래 싸움에 개미 등 터진다아아아!”
연신 쏟아지는 흙더미 폭탄과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충격파로 바이올렛은 지금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이것도 다 애쉬 황자의 계산 아래였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번 전투 전에 지급받은 [용비늘 망토]가 있었기에 날뛰는 괴수의 몸 위에서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장비 특수효과로 신발이며 장갑에서 발톱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벽에 매달릴 수 있게 그리고 벽을 달릴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비늘 망토]의 높은 방호력으로 몸도 온전했다·
아직까지는 그랬다·
‘곧 시간제한이 끝날 텐데?!’
요르문간드가 ‘세계의 뱀’으로 현신할 수 있는 것은 고작 10분여·
특수장비 [옛 신의 허물] 효과다· 지속시간이 끝나면 구렁이 정도 크기로 줄어버린다· 싸울 수 있는 시간이 10분뿐인 것이다·
대신 베헤모스는 타고난 약점이 있다·
단 한 번이라도 넘어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워낙 몸이 크고 무겁기에 가진 약점이었다·
실제 고대 역사서에서도 베헤모스는 실수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옆으로 넘어졌고 그대로 굶어 죽어 대륙 서부의 산맥이 되었다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전투 지속 시간이 10분뿐인 요르문간드는 이 시간 동안 전력을 쥐어짜내서 10분 안에 베헤모스를 한 번이라도 넘어뜨리는 것이 목표였는데····
‘지금 시간이 얼마 남았지?!’
정신없이 무언가를 잡고 매달리며 바이올렛은 꽥꽥 흉한 비명을 질렀다·
남은 시간은커녕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혼미했다· 사람 살려····
“응?”
그때였다·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졌다·
바이올렛은 입에 들어간 흙먼지를 퉤퉤 뱉어내며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겨우 알아챌 수 있었다·
“···!”
깔려 있었다·
요르문간드가·
베헤모스의 거대한 열 개의 다리 중 하나가 기어코 요르문간드의 날렵한 꼬리 끝을 밟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부오오오오···!》
베헤모스가 거세게 포효하며 발에 힘을 주었고
《치르륵?!》
요르문간드는 고통스러워하며 베헤모스의 목을 휘감고 오르던 것을 포기하고 바닥으로 떨어져야 했다·
쩌적 쩌저적···!
베헤모스에게 밟힌 곳부터 요르문간드의 비늘들이 산산이 깨어져 가기 시작했다·
요르문간드는 버티려 했지만 베헤모스의 나머지 다리 또한 하나씩 요르문간드의 몸을 짓밟는 데에 성공했다·
《샤아아악···!》
요르문간드가 괴로워하며 몸을 뒤틀었다· 세계의 뱀이 연신 거칠게 피를 토해냈다·
《부오오오오-!》
베헤모스가 포효를 내질렀다· 승리를 예감한 듯 당당하고 커다란 울음이었다·
그리고·
“엑···?”
이 모든 광경을 바이올렛은 지켜보고 있었다·
“어라 어라라···?”
베헤모스의 머리 위에서·
“나··· 어째서 여기에···?”
아마도 격전 중에 조금 전에 요르문간드가 베헤모스의 목을 휘감았을 때·
가장 전투가 격렬해졌고 겁에 질린 바이올렛은 눈 꽉 감고 이리저리 기어오르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린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황망하게 깜박이던 바이올렛의 눈이 문득 저 아래의 요르문간드와 마주쳤다·
요르문간드의 싯누런 눈은 분명하게 바이올렛을 보고 있었다·
그제야 바이올렛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에이잇 나도 몰라!”
지금 이 상황이 요르문간드가 의도한 것이든 자신의 천운이든 아무렴 어떠랴·
적 괴수의 약점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바이올렛은 베헤모스의 거대한 머리 위에 두 손을 올리고 자신의 궁극기를 사용했다·
“[백일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