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2· [LAST STAGE] The Greatest Show
“너희 외신들에게 이 우주 전체에게··· 반역할 셈이다·”
하나의 세계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비극으로 뒤덮고 멸망이라는 이름의 유희로 조롱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를 꼭두각시 취급하는 너희 외신들에게·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다·
우리가 단순히 무대 위에서 춤추는 마리오네트가 아님을·
실이 끊어져도 각본이 없어도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설마 무대의 바깥에서 지켜보는 외신들에게 반역하겠다는 스케일의 이야기는 짐작하지 못했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당황한 마왕은 작게 말을 더듬기까지 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할 셈이냐?》
빙긋 웃은 나는 천천히 그리고 상세하게 나의 계획을 알려주었다·
내가 계획을 말하는 동안 마왕의 하얀 균열 같은 입이 점점 벌어지더니 종래에는 거의 떡 벌어졌다·
《···정말로 그런 얼토당토않은 계획이 성공하리라고 믿는 거냐?》
내 계획을 끝까지 들은 뒤 마왕이 소리쳤다·
《너의 계획 모든 부분에서 외신들이 방해해 올 거다! 그리고 외신들은 강대해! 너는 지금 정말로 그들과의 전면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네 말대로 가능성은 희박하지·”
마왕의 지적대로 이것은 결코 안전한 도박이 아니다·
“하지만 걸어볼 만하지 않나?”
그러나 아주 불가능한 도전도 아니다·
나는 언제나 나보다 압도적으로 강대한 적을 작고 하찮은 공략으로 물리쳐 왔으니까·
이번에도 같은 일을 할 뿐이다·
“이 계획이 모두 성공한다면 이 세상에서 멸망유희는 사라진다· 더 이상 거대한 존재에 의해 이 세상 사람들이 번롱당하는 일이 사라진다·”
《····》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찾던 여인 또한· 억겁의 책무에서 풀려나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
천천히·
나는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우리의 길은 겹쳐 있다 마왕·”
《····》
“너와 나는 동격(同格)이니까·”
셀 수 없는 시간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매달린·
그런 어리석은 바보가 바로 우리다·
비록 그 점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면에서 서로 반발하고 지금껏 억겁의 세월 동안 서로 싸워 죽이기 위해 애썼다 해도·
그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는 실낱만큼이라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같은 방향을 보고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설 수 있다·
“나는 너를 구하러 왔다· 그러니 너도 나를 구해다오·”
《····》
“이 계획의 실현을 위해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그러니 부디 나의 반역에 동참해다오·”
오래 침묵하던 마왕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미명(美名)으로 포장하지 마라·》
그는 나를 노려보며 억눌린 목소리를 토해냈다·
《너의 계획은 실현 가능성도 낮지만 너무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당장 너의 세상부터 너의 세상을 쌓아 올린 기반 대부분을 잃게 될 거다!》
“상관없다·”
나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사람들의 동의를 얻고 왔거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든 괜찮다고·”
실에 묶여 춤추던 피노키오가 진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를 위해서 자신의 몸에 묶인 실에 불을 놓아야 한다면····
손과 목에 화상이 조금 새겨지는 정도는 참아낼 수 있어야겠지·
“무엇보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담보되는 구원 따위는 필요 없다·”
여신을 떠올리며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누군가의 존재를 불태워야 유지되는 세상이라면 차라리 한번 무너지는 것이 낫겠지·”
《···!》
내가 진정으로 내 세상의 모든 것을 걸 각오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마왕은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나는 외신들이 내세운 중개자다· 이 세상의 비극을 외신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무대 위에 떨어진 본질적으로 저들과 같은 존재란 말이다· 이런 나더러 동족을 배신하라고 종용하는 것이냐?》
“····”
《네 계획을 따르게 되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내가 나의 존재를 불태워 가면서까지 이 반역에 찬동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
나는 즉답했다·
“네가 구하고자 했던 그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서 자신의 목적을 성취했다·”
《···!》
“자신의 영혼이 부서지는 것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용기가 있었기에 그녀는 너조차도 타락시키지 못한 영혼으로 남았다· 너를 패배시킨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내 입가에 히죽 미소가 걸렸다·
“반면에 마왕 너는 어떠냐? 네게는 어느 정도의 각오가 있지?”
《뭐···?》
“진정으로 그 사람을 타락시키고 싶다면 너 또한 너의 모든 것을 불태울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마왕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가늘게 떨렸다·
나는 여전히 앞으로 내밀어져 있는 손을 거두지 않은 채 앞으로 한 걸음 성큼 다가섰다·
“그녀를 구할 수 있는 그녀를 타락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
“그리고 무엇보다 마왕이여·”
나는 그에게 눈짓했다·
“너는 스스로 무대 위로 뛰어내렸다고 말했지· 하지만 말이다··· 단 한 번도 주연을 맡아본 적은 없지 않으냐?”
《···뭐?》
“언제나 무대의 커튼 뒤편에 서서 배우들이 울고 웃고 괴로워하고 기뻐하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을 뿐· 시선을 가까이 붙이기는 했으나 결국 너도 저 외신들처럼 관조자에 머무르지 않았나·”
당황해서 굳어 있는 그에게·
한 걸음 더·
“관조자를 벗어나라· 중개자 따위도 집어치워라· 이 최후의 극 최후의 장면에 이르러 마침내 무대의 중앙으로··· 네 삶을 걸고 네 삶에 뛰어드는 네 삶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
손을 내민 채로·
계속해서 한 걸음 더·
“최고의 무대는 내가 마련해주마· 너는 그곳에서 너 자신을 위해 줄곧 꿈꿔왔던 최후의 유희를 펼쳐 보이면 된다·”
이제 옥좌는 바로 앞·
멍하니 나를 응시하는 나의 적수에게·
마지막으로 한 걸음 더·
“가장 고결한 영혼을 타락시키는··· 최고의 쇼를 말이지!”
《····》
헛웃음을 흘린 마왕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래서야 누가 유혹하는 마왕이고 누가 유혹당하는 희생양인지 모르겠군····》
“마왕이여· 한 번 더 말하지·”
앞으로 내민 나의 손은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너를 구하러 왔다· 너의 목적 없이 반복되기만 할 뿐인 삶에 한 줄기 불꽃을 놓으러 왔다·”
《····》
“이번이 라스트 게임· 라스트 스테이지· 라스트 씬· 라스트 찬스· 이런 무대는 네 삶의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뛰어들려면 불태우려면 지금뿐이다·”
마왕의 얼굴에서 몸에서 떨림이 사라졌다·
휘몰아치는 그림자 속 시선이 물끄러미 나를 향했다·
그의 앞으로 여전히 손을 내민 채 나는 씩 웃었다·
“나와 함께 모든 것을 걸고 최고의 게임을- 우주에 반역하는 마지막 한판 승부를 해보지 않겠나?”
***
인세·
검은 호수로부터 크로스로드까지의 길·
중앙 지점·
쿠과과광-!
길의 위로 겹겹이 쌓여 있던 바리케이드가 폭발하듯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댐 위로 범람하는 홍수처럼 무너진 바리케이드를 넘어 무수한 괴수들이 꿈틀거리며 솟구쳐 올랐다·
석벽과 목제 울타리를 짓밟은 괴수들이 서로를 타고 오르며 지면 위를 검게 물들였다·
그런 지상의 괴수들 위로 비행형 괴수들이 느리게 날며 하늘을 새카맣게 메우고 있었다·
“괴수 무리 진격 중-!”
상황을 살피던 척후병들이 연이어 소리쳤다·
“3차 방어선 붕괴했습니다!”
“앞서 설치되어 있던 모든 함정 지뢰 아티팩트 무효화를 확인!”
검은 호수로부터 크로스로드까지·
곳곳에 이렇게 방어선을 형성했고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파견한 병력으로 미리 설치해 둔 각종 함정과 함께 괴수를 요격했으나·
적을 멈추는 것은 잠시일 뿐 바리케이드는 금세 무너졌고 멀리서 요격을 퍼부은 병력은 그대로 다시 텔레포트 게이트로 이탈해야 했다·
“3차 방어선 이남(以南)에는 이제 괴수뿐입니다! 지표조차 관측되지 않습니다! 모든 땅과 모든 하늘이 괴수로 뒤덮였습니다···!”
괴수의 선두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후퇴 중인 비공함 블루 펄·
그 내부 함교·
쏟아지는 보고를 듣던 루카스는 옆의 병사에게 물었다·
“마력핵 미사일은 몇 발이나 남았지?”
“앞으로 세 발이 전부입니다!”
“····”
“발사 시퀀스에 돌입할까요 루카스 경?”
루카스는 고민했다·
적들의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중요한 타이밍마다 미사일을 쏘았으나 어느새 잔탄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적은 여전히 무한·
그렇다면 남은 미사일은 더욱 신중하게 최고의 타이밍에 쏘아야 한다·
“···미사일은 대기·”
루카스는 크게 숨을 들이켜며 남쪽을 보았다·
“주군이 말씀하신 대로라면 곧 ‘그놈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놈들을 이용한다·”
“예? 그놈들이라면····”
다음 순간이었다·
부오오오오오오···!
고래의 울부짖음 같은 괴성이 울렸다·
대기가 폭풍을 맞은 수면처럼 떨렸다· 비공함 역시 거세게 진동했고 함내의 모든 병사들은 귀를 막고 괴로워했다·
“이 이것은···?!”
울림이 지나간 뒤 후방을 망원경으로 살피던 척후병들이 하나둘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보고드립니다! 적 괴수 무리에 변화가 발생!”
“무리를 뒤덮은 소형 괴수 사이로 무언가가 나옵니다! 저 저건···!”
먹구름이 일렁이듯 하늘과 지상을 가득 메운 괴수 무리가 꿈틀거리며 물결치더니····
콰아아아아-!
이윽고 괴수 무리를 헤치고 압도적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앞으로 솟구쳤다·
그것의 정체를 알아챈 베테랑 척후병이 가장 먼저 고함을 내질렀다·
“초거대괴수입니다-!”
부오오오오오-!
거대한 고래의 울음소리와 함께 세 기의 거대한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날개를 펴는 것만으로도 하늘을 뒤덮는 태양으로부터 편애받는 자·
독수리와 흡사한 생김새의 초거대괴수·
지즈(Ziz)·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지각을 뒤흔드는 움직이는 산맥·
코끼리와 흡사한 생김새의 초거대괴수·
베헤모스(Behemoth)·
검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지상에서 헤엄치는 홍수와 폭우의 화신·
악어와 흡사한 생김새의 초거대괴수·
레비아탄(Leviathan)·
웅혼한 울음을 토해내며 인간의 눈으로는 한 번에 담아내기도 힘들 만큼 거대한 존재 셋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
병사들은 물론이고 루카스마저도 이 압도적인 광경 앞에 일순 기가 질렸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더 나오고 있었다·
세 기의 초거대괴수를 선두로 또 다른 거대괴수들이 제각각 흉포한 울음을 터뜨리며 자욱한 사기를 흩뿌리며 등장했다·
길을 막는 소형 괴수들을 먹어 치우고 또 짓뭉개고 으스러뜨리며····
저들끼리 끝없이 엉키고 꼬이며 인세로 기어 나왔다·
쿠구구구궁···!
이들의 등장만으로도 하늘이 일그러지고 지표가 무너졌다· 세계가 버티지 못하고 붕괴를 시작했다·
“초 초거대괴수들이 끝도 없이···!”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크 크윽 크으으!”
병사들은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썼다·
이 세기말적인 광경 앞에서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서·
앞선 방어전에서 그동안 막아낸 괴수들 또한 끔찍한 존재였지만 이번 최후의 전투에 이르러 쏟아져 나온 괴수의 무리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이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악몽의 세계 그 자체가 퍼부어져 쳐들어오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
너무도 거대한 괴수들의 행진 사이에 괴수 무리의 정중앙에서 걸어오던 ‘잠들지 못하는 호수왕녀’의 모습이 가리어 사라졌다·
하지만 루카스는 여전히 적장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
괴수들로 가득 차 검게 꿈틀거리는 남쪽 세계를 노려보며 루카스는 허리춤의 검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 자신도 모르게 배어 나온 식은땀이 손잡이를 적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