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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부조리(3)
스텔라 학생회장 미로윤·
2학년 19위이자 S반의 학생이었으 며 마법명가 알렉테란 백작가의 막 내이기도 한 그는 그야말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이 자리 까지 올라온 학생이었다·
단 그 모든 게 본인이 원해서 이
루어진 게 아니라는 점·
“아··· 또 뭐야···
미로윤은 귀찮다는 티를 팍팍 내며 자신을 찾아온 반디연을 바라보았 다·
“지저분하네· 딱 너 같은 공간이 야·”
반디연은 큰 소파에 앉아 학생회실 의 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난로를 가 만히 구경하였다· 굴뚝도 없는 이런 고층 탑에 난로라니· 참으로 취향 독특하다·
“지저분하다니··· 학생회의 다른 친구들한테 실례잖아·”
“그나마 다른 학생들 있어서 순화 해서 말한 거야· 고맙게 생각해·”
“욕을 고맙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품을 쩍쩍 내뱉으며 미로윤은 반 디연의 앞에 앉았다·
“처리할 일 많으니까 빨리 용건이 나 말해·”
“후배 양성 특별 교육대·”
“···음?”
커피를 흘짝이던 미로윤은 낯선 단 어를 들은 사람처럼 눈을 살짝 떴 다· 그래 봐야 워낙 졸린 눈이었기 에 별로 큰 차이는 없었다·
“신청 허가를 내려줘· 대상은 1학 년 S반의 백유설·”
“흐음···· 너는 부조리 같은 거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았나? 아니 ス1 오히려 엄청 혐오했던 거 같은데·”
“맞아· 선배고 뭐고 죄다 죽여 버 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 으니까·”
“그럼 왜 이런 걸 하는데?”
“부조리가 싫어서·”
미로윤은 그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반디연은 사실을 말했
을 뿐이다·
후배 양성 특별 교육대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부조리 중에서도 가장 최 악의 쓰레기 같은 부조리다·
후배를 교육한다는 명목하에 동급 생을 비롯하여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철저하게 자존감을 짓밟아버리면 다 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 으니까
1학년은 그 어떤 경우에도 2학년 을 이길 수 없다·
설령 2학년이 2클래스이고 1학년 이 3클래스라도 마찬가지다·
경험의 차이에서 나오는 격차는 절
대 단순 능력치로 극복하는 게 불가 능했다·
하지만····
‘그 아이라면 다를지도 몰라·’
백유설은 어린 나이치고 이상하리 만치 경험이 풍부했다·
심지어 1학년 S반의 후배들조차 백유설의 전략과 경험을 인정해 줬 을 정도이니 그녀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
게다가 그 실력·
그는 클래스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마법검은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호 신용 무기일 뿐이다· 싸구려 마법검 은 1클래스 수준의 실드조차 뚫지 못하며 성능이 좋아 봐야 간신히 2 클래스를 뚫거나 3클래스의 실드에 흠집을 내는 정도이다·
그러나 백유설은 무려 5클래스의 네크로맨서를 혼자 마법검으로 찔러 죽였다·
무슨 수로?
그런 의문은 집어 던진 지 오래다·
애초에 제어 불가 마법 중 하나인 점멸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마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기사도의 길을
걷는 것 자체만으로도 유별났으니 까·
이해하기보단 받아들이는 게 맞다·
그래서 반디연은 백유설을 이용하 기로 했다·
그에게도 썩 나쁘지는 않을 것이 다· 백유설 또한 부조리를 없애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것처럼 보였으 니 이왕 이렇게 된 거 판을 더 크 게 벌려서 진짜 부조리를 즐기는 악 질 놈들을 골탕 먹이는 게 나을 테 니까
‘후배 교육대에서 1학년이 2학년 을 이긴다·’
비록 부조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 시작으로는 꽤 괜 찮은 시나리오가 될 것 같다·
“알았다· 허락해 줄게· 무슨 생각인 지는 모르겠지만 잘해보라고·”
“고맙다· 이건 보답·”
미로윤은 반디연에 건네준 쿠폰을 받았다·
[뒈져라 초고열 돈까스 전문점]
[오징어덮밥 쿠폰]
뒈져라 돈까스 집은 대체 어디이 며 하필이면 왜 오징어덮밥 쿠폰이 란 말인가· 반디연은 그것을 건넨 뒤 쿨하게 사라졌고 미로윤은 한숨 을 길게 내뱉었다·
아직 할 일이 태산인데 시간을 너 무 많이 날려 먹었다·
슬슬 밀린 일이나 처리하자는 생각 에 일어서려는데 마침 또 누군가가 들어섰다·
1학년 시험 감독관을 맡게 된 제 릴드 교수였다·
“오 미로윤 학생· 지금 바쁜가?”
,,예·,,
“그럼 잘됐군· 이것 좀 받아주게·”
바쁘다는 말은 그대로 흘려버린 모 양이다·
“후우 뭡니까·”
“학생 논문 제출 보고서다·”
“이번 시험에도 학회에 제출할 만 한 논문이 나왔습니까?”
스텔라의 시험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았고 그것을 풀기 위해 생도들은 거의 논문 수준으로 풀이와 해답을 쓰고는 한다·
그러다 아주 간혹 아예 새로운 원 리원칙을 찾아내거나 술식을 개발하
는 등 아예 논문을 써재끼는 생도가 있었는데 아마 이번 학기에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백유설이라고 알지?”
알다마다· 방금까지 그에 대해 이 야기를 나눴으니까·
“또 백유설입니까· 이번에는 뭔가 요·”
“이걸세·”
미로윤은 제릴드 교수가 정리한 논 문 서류를 받았다·
[프로키텍스의 중첩회로 설계]
1학년 시험으로 자주 출제되는 마 법 회로· 매년 학생들은 저것들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는 했 는데 그렇다고 해서 논문씩이나 될 정도로 뛰어난 건 거의 나오지 않았 다·
“흐음····”
그는 백유설이 작성한 해답지를 천 천히 훑어보았고·
이내 그 피곤한 눈을 동그랗게 뜨 고 말았다·
“이건···
“대단하지? 역설계 연쇄 고리의 방 정식을 무려 절반으로 단축했다· 그 것도 아주 단순한 공식으로!”
열변을 토하는 제릴드의 말은 들리 지 않았다· 미로윤의 뇌리에는 그저 어떤 단어 하나가 떠돌고 있을 뿐이 었다·
천재·
그런 말 외에는 전혀 설명되지 않 았다·
중첩회로는 이미 수많은 학자들이 달라붙어서 수정에 보안을 거친 단 계였고 비록 마법에 ‘완벽’이란 없
다지만 그래도 가장 효율적인 공식 으로서 완성된 상태였다·
그런데 그 공식을 또다시 한 단계 더 이끌어내다니
그런 게··· 학생 혼자의 힘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이 정도라면 ‘아슬란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허 참····”
아슬란 세미나라니· 교수의 말에 미로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거 참 생각보다 더 난놈이었네·’
백유설이라는 이름 분명히 들어본
적은 있다· 1학년이면서도 유난히 사건 사고에 많이 끼어들고 독보적 인 행보를 보여서 자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이야·
‘흐음··· 후배 양성 특별 교육대라·’
원래 저런 귀찮은 이벤트에는 끼어 들지 않는 편이다만 거기에 백유설 이 엮여있다면 가서 구경 정도는 해 도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 다·
* * *
2차 시험이 종료되었다·
다른 학생들 다 개고생한 만큼 나 도 고생하긴 했다· 열심히 운동을 했으니까·
그런데 정작 운동은 성적에 반영되 질 않아서 참 뭐랄까 의욕이 팍 꺾 였다·
2차 시험이 종료되면 순위가 변동 된다·
물론 순위가 마냥 전투력 순서대 로 나열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 산이다·
그간 있었던 실습 결과와 성적에 더불어 과제 출석 태도 등등 수많
은 점수 요인이 적용되어 합산되기 에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마유 성이라도 언제든 순위가 하락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마도 풀레임 혹은 에이젤에게 1위의 자리를 상당히 위 협 받겠지·
[419위 – S반 백유설]
나도 참 대단하다· 여러 의미로·
필기 만점에 실기 점수 최상위인 데도 불구하고 419위다·
허구한 날 지각하고 과제는 단 하 나도 해오지 않았으며 출석을 빼먹
는 일은 부지기수에다가 수업 도중 에도 맨날 꾸벅꾸벅 졸아서 벌점을 아주 폭탄으로 맞았다·
학사 경고를 맞기 직전까지 되어서 야 간신히 몇몇 과제를 간신히 제출 하고 수업 일수를 채워서 망정이スI 하마터면 퇴학당할 뻔했다·
아니 근데 솔직히 좀 그렇잖아·
뭔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계어로 심지어 잠이 솔솔 오게 만드는 나긋 한 목소리로 한두 시간 내내 떠들고 있는데 어떻게 안 졸겠냐고·
심지어 수업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평상시에는 잠자는 시간조차 아껴가
며 수련한다· 그러니까 수업 시간이 곧 나의 수면 시간이라는 말이 되겠 다·
···뭐 아무튼·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내 순위가 이 이상으로 올라갈 일은 없지 않을 까· 과제를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또 모르겠는데 솔직히 순위를 올려봐야 장학금 조금 더 받는 게 고작이라서 별로 의미도 없다·
사실 목표 순위가 600위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도 이미 충분하 다 못해 과하다·
“야야 너는 몇 위야?”
“난 이번에 아슬아슬하게 800위대 유지했어·”
“후우 부럽다· 난 뒤로 밀려났어· 젠장 좀 더 열심히 할걸·”
“아〜 진짜 죽고 싶어!”
학급 게시판·
각자의 순위를 확인한 학생들이 비 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익숙한 풍경 이다· 2학년 3학년의 학급 게시판 도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나는 가장 위쪽을 확인해 보았다·
[1 위 – S반 마유성]
[2 위 – S반 풀레임]
[3 위 – S반 에이젤]
[4위 – S반 해원량]
[5위 – S반 홍비연]
온통 S반으로 도배된 최상위권·
크게 이상할 게 없어 보이는 그 순위에서 나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발견했다·
이전 학기에서 2위를 했던 해원량 이 4위로 떨어졌다·
,흐음····’
원래 순위가 떨어질 예정이었던 에 이젤이 원작과는 달리 평탄한 환경 에서 탄탄대로의 길을 걷게 된 덕분 일까? 이유를 잘 알 수 없었다· 하 지만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 이다·
제키 흑마화 루트를 탄 이상 해원 량과 아르슈앙의 혹마화 루트는 완 전히 사라졌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홍비연이었다·
사사삭!
학생들이 부지불식간에 양옆으로 비켜섰다· 모세의 기적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까· 성격 더럽기 로 유명한 아돌레비트 공주의 앞을 가로막을 배짱을 가진 학생은 없었 다·
그녀는 순위표를 한참이나 찾아보 았다· 어차피 맨 위에서 다섯 번째 에 자신의 순위가 있을 텐데도·
그러다가 한참이나 눈동자를 굴려 서야 무언가를 발견한 듯 내 쪽을 흘겨보았다·
“···순위를 적당히 조절하는 건가? 그러기엔 이미 눈에 띈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뭔 소리야·
“과연···· 그래도 600위 안에 일부 러 들어놓은 걸 보면 ‘학교 대항전 에 참여할 생각은 있나 보네·”
대항전이라· 몇몇 학생을 뽑아서 다른 명문 마법 학교와 대결을 하는 이벤트였던가·
그 말을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 그녀는 내 옆에 서서 한참을 침묵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듯 머뭇머뭇거리는 게 퍽 귀여 웠으나 슬슬 답답했기에 먼저 입을 열었다·
“뭔데· 할 말 있냐?”
홈칫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자 홍비연이 눈썹을 떨었다· 그러더니 눈을 질끈 감고서 한숨을 푹 내쉬 더니 입을 열었다·
“···요즘 고생이 많다고 들었는데·”
“내가 고생 좀 하긴 했지·”
어제 어깨 근육을 조졌는데 알이 제대로 배겼다·
마사지나 받을까 싶다·
“···왜 그랬어?”
“어?”
“왜 애드먼 아탈렉 선배에게··· 그 랬냐고·”
아 뭐야· 그 얘기였나·
어쩐지 홍비연의 표정이 어두웠다· 쟤가 저럴 애가 아닌데· 요즘 심경 이 많이 복잡할 때였나?
“애드먼 선배는 3학년 중에서도 가 장 영향력이 강해· 2학년의 학생들 을 쥐고 흔들 수 있을 정도로· 너는 아마··· 졸업할 때까지 계속해서 선배들에게 시달릴 거야· 그걸 감당 할 자신이 있어?”
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글쎄· 감당 못 할 것 같은데·”
나보다 10년은 덜먹은 새파란 애 새끼들한테 갈굼당하느니 죄다 쥐어
패버리고 퇴학당하고 말겠다·
“그럼 대체··· 왜 그런 건데?”
그녀는 루비를 닮은 눈동자를 떨면 서 내게 물어왔다· 뭐라고 대답할까· 솔직하게 말하기도 조금 그렇고 해 서 나는 은근히 대답을 빙빙 돌렸 다·
“너도 알잖아·”
내 대답에 그녀는 눈을 크게 뜨더 니 이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게서 네가 얻을 건 아무것도 없어· 평민 너는 돈도 권력도 아무 것도 추구하지 않잖아·”
아닌데·
저는 이 세상에서 돈이랑 권력이 제일 좋은데요····
“뭐··· 너에게서 얻을 게 꼭 돈과 권력밖에 없는 건 아니ス 1· 너는 아 돌레비트의 공주이기 이전에 홍비 연이니까·”
“뭐···r
“네 말대로야· 나는 공짜로 널 돕 는 게 아니야· 너한테서 뭔가 원하 는 게 있어서 이러고 있는 거야· 그 러니까 이 일이 끝나고 너는 나랑 아이템을 계약하면 돼·”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듯 머리를 황급 히 굴리고 있는 듯싶지만 결론을 도출해 내지 못한 것 같다·
자신이 가진 건 돈과 권력밖에 없 는데 다른 걸 원한다니· 그게 무엇 인지 찾기란 힘들 것이다·
“···그 대가는?”
“조건은 계약서에 따로 명시-”
“그거 말고! 나한테서 원하는 게 있다고 했잖아· 그게 대체 뭐냐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 다·
사실 이유야 참 많고 많다·
정치적인 이유로 알테리샤 학파에 도 이득이며 이 일을 계기로 홍비 연의 사망 플래그가 하나라도 지워 진다면 그 또한 이득이고 거기에 활석코든을 비롯하여 높으신 분들에 게 내 영향력을 알릴 수 있는 계기 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이유를 전부 대 기는 껄끄러웠다· 그렇다고 내가 너 살리고 해피엔딩 좀 보려 했다고 말 할 수도 없는 노릇·
“그건 뭐 나중에 말해줄게·”
대충 둘러대니 홍비연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후배 교육대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러고 보니 그게 또 문제긴 하 다· 어쩌다 후배 교육대까지 받게 됐는지···· 이건 진짜로 계획에 없던 일이라서 나도 살짝 당황스럽다·
“···정 뭐 하면 참지 않아도 좋아·”
“뭐?,,
뭘 참지 말라는 거ス】· 처맞다가 아 프면 비명 지르라는 건가?
“네 원래 실력으로 선배를 적당히
다져놓아도 괜찮아· 뒷감당은 내가 최대한 해줄 테니까·”
“어 그래···
근데 뭔가 배려를 해주는 건 참 고마운데 말이다·
···왜 내가 선배를 이긴다는 걸 전제에 두고 말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