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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가면무도회(2)
“드레스와 구두를 준비해 드리겠습 니다·”
자신을 향한 노집사의 말에 홍비 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뭐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전개였다·
페르소나 게이트로 입장했더니 대 뜸 무도회장이 나타날 줄이야·
워낙 각각의 세계가 수만 가지의 개성을 갖추고 있다고는 하지만 무 도회장이 페르소나 게이트에 등장했 다는 사례는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홍비연은 아주 능숙하게 룬어를 허 공에 배열하여 이 세계를 분석하였 다·
페르소나 게이트는 그 자체로 하나 의 거대한 ‘수수께끼’였다· 마치 도 전자에게 이 세계의 미스테리를 풀
어보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마법사들이 이 세계의 현상 을 완벽히 분석하면 수수께끼를 풀 자격이 있다고 인식하고서 ‘가이드 라인 메시ス 1’를 출력해서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저렇게 도전하라· 그 러면 너는 이 세계를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흐〒 !
그녀에게만 보이는 마법진이 허공 에 어그러지며 키워드가 쏙쏙 나타 났다·
[아이하렌 공작부인··· 무도회장 의 주인공 유혹의 춤····]
3리스크 수준의 페르소나 게이트는 보통의 1학년에게 해석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하지만 홍비연은 이미 3클래스를 마스터한 지 오래였기에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다·
···그랬어야만 했다·
‘뭐야 이건? 뭔가 이상한데?’
분명 이곳은 가상으로 창조된 페르 소나 게이트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 지 탁하고 짙은 마나의 향기가 느껴 진단 말인가?
게다가 아무리 실습이라고는 해도 1학년 학생들이 쉽게 적응하여 난관 을 돌파할 수 있도록 해석하기 쉬운
페르소나 게이트를 배치해 놓는 게 당연하다·
어째서인지 이곳은 홍비연의 수준 으로도 해석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 하고 난해했다·
그녀의 머리가 무언가에 콱 틀어 막힌 것처럼 멈춰 버렸다·
허공에서 홍비연의 룬어가 산산조 각 부서져서 흩어졌고 가이드 라인 메시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홍비연은 손을 떨궜다·
‘이건···· 배우지 않은 공식이야·’
배우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홍비연의 멘 탈이 와장창 무너지기에는 충분했 다· 아직까지도 그녀는 배우지 않은 무언가에 대한 대처능력이 현저히 부족했기 때문·
그렇기에 더더욱 이상하다·
고작해야 1학년의 실습에 배우지 않은 부분이 나타난다니? 심지어 대 학 과정까지 예습을 끝낸 자신조차 헤매고 있는데 다른 학생들은 어떻 겠는가?
‘이건 마치····’
조용히 고민하고 있는데·
“아가씨· 곧 저녁 식사 연회 시간
입니다· 디너 드레스는 어떻게 하시 겠습니까?”
“···뭐?”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 는 거야? 그것도 지정된 말이야?”
“허허· 제가 주제넘은 참견을 했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생각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지요·”
“아니 그게 아니라····”
홍비연은 입을 살짝 벌리고서 뒷걸 음질을 쳤다·
이곳은 마법사들이 임의로 페르소
나 게이트와 아주 흡사하게 만든 ‘가짜’다·
진짜 페르소나 게이트의 ‘NPC’들 은 진짜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 다지만 마법사들이 만든 페르소나 게이트의 존재들은 사람과 유사하게 만들었을 뿐 저런 행동이 전혀 불가 능하단 말이다·
그런데 눈앞의 저 노집사는 마치 진짜 사람인 것처럼 표정을 짓고 미 소를 지으며 생각을 하고 다양한 대 사를 내뱉었다·
,설마····)
믿을 수 없는 가능성 하나가 떠올
랐다·
현재 입장한 이곳이 진짜라는 가 능성·
아니· 아니야·’
이곳은 스텔라 아카데미· 진짜 페 르소나 게이트가 개입할 수 있을 리 가 없지 않은가· 스텔라의 기술력이 조금 더 진보했을 뿐이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신경 쓸 것 없다· 드레스는 베르체스틱 비단으로 짠 랩어라운드 드레스였으면 좋겠군· 소매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 치맛단은 무릎 위로
올라오도록 파도 무늬로· 가슴에는 자수정 브로치를 달아놓고 구두는 붉은색· 액세서리는 당연히 있겠 지?”
“물론입니다·”
“무늬가 없는 실버 브레이슬릿에 루비 고딕 체인을 준비하도록 해·”
탈의실에서 네 명의 시녀들에게 도 움을 받아 홍비연은 빠르게 드레스 로 갈아입었다· 그러면서 이곳에 대 해 분석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 다·
물론 드레스에 대한 품평도 마찬 가지·
짜악!
시녀의 뺨에 손바닥을 날린 홍비연 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쓰레기가 쓰레기를 주워왔군· 이 딴 걸 입으라고 가져왔나? 다시 내 오도록·”
“죄 죄송합니다!”
“이건 너무 짧다· 사이즈를 제대로 준비한 것 맞나?”
“부 분명히 이 정도면··· 죄송합 니다!”
그녀의 까탈스러운 취향에 맞는 드 레스는 무려 12번이나 퇴짜를 맞은
뒤에야 간신히 맞출 수 있었다· 그 마저도 저녁 연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간신히 승낙한 것이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봐줄 만하 네·”
새하얀 우윳빛으로 시작하여 허리 춤으로 내려갈수록 서서히 붉어지는 투톤 계열의 드레스는 은색 머리칼 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흥비연에게 정말로 잘 어울렸다·
“이 드레스는 분명 아가씨를 위해 존재하는 게 틀림없어요····”
홍비연에게 뺨을 몇 번이나 맞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던 시녀들조차 눈
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아름다움·
“구두나 가져와·”
붉은색 구두에 루비 목걸이를 착용 한 홍비연은 우아한 프린세스 워킹 으로 연회장에 나갔다·
웅성웅성·
기다란 일자 형태의 테이블· 그 양 옆에 스텔라의 학생들이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채 서로를 어색한 눈으 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백유설을 찾았 다· 그는 평범한 흑색의 턱시도를 입은 채였는데 아직은 어린 외모에 키가 덜 자랐음에도 비율이 좋아서
그런지 상당히 잘 어울렸다·
···옷매는 꽤 받는 편이네·’
그를 바라보고 있자 어젯밤에 읽 었던 그의 ‘과거 이야기’가 떠올랐 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과 함 께 시작된 그의 개인사· 그것을 몰 래 훔쳐봤다는 데에 죄책감이 들었 으나 이미 봐버린 이상 자꾸만 신 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쩐지 조금 그가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그런 과거를 딛고 일어나 스 텔라에서 기사도의 길을 걷고 있다 니····
끼익-!
홍비연을 마지막으로 열여섯 명의 학생이 모두 모이スト 정면의 문이 열리며 어떤 여인이 걸어 들어왔다· 그런데 그 여인은 드레스를 입지 않은 채 가면을 쓰고 있었다·
“모두 모였군· 아이하렌 저택으로 잠입할 준비는 되었나?”
«··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 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페르소나 게이트 내부에서는 어떤 ‘컨셉’이 정해지고 그에 따른 스토 리에 편승하여 공략이 진행된다·
그리고 그 컨셉과 스토리는 모두
‘가이드 라인 메시지’에 적혀 있게 마련이거늘····
이 자리에 있는 학생들 모두가 페 르소나 게이트를 해석하지 못하는 바람에 어떤 컨셉인ス】 무슨 스토리 인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잘 들어· 너희는 지금부터 아이하 렌 공작부인이 개최한 가면무도회에 참석해야 해· 틀림없이 그곳에서 무 슨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집중하여 여인의 말을 경 청하였다·
“저 4개의 통로 중 하나로 나가면 저택의 지하로 통한다· 하지만 지하
는 미로와 함정으로 가득하고 길을 헤매는 순간 저택의 기사들이 움직 일 거야· 그러니 너희 스스로의 통 찰력과 감을 믿는 수밖에 없어· 할 수 있겠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와중 백 유설 혼자 대답했다·
“예·”
그는 자신 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서 살짝 뻘쭘했는지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연한 일이다· 눈앞의 저 존재는 매뉴얼대로 말하는 NPC일 뿐이니 까·
진짜 페르소나 게이트도 아니고 가 짜 페르소나 게이트의 NPC에게 대 답하는 바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래 너· 자신감 넘치는 모습 아 주 보기 좋아·”
“···뭐 뭐야?”
“반응한 거야···?”
NPC가 백유설의 말에 반응하자 학생들의 눈빛에 혼란이 깃들었다· 안 그래도 학생들 또한 뭔가 이상한 기색을 느끼고 있던 참인데 더더욱 수상해진 것이다·
“잠입하기에 앞서 모두 이 가면을 착용하도록·”
여인은 얼굴 전체를 덮는 흰색의 가면을 나눠주었다·
“꼭 명심해야 한다· 그것을 착용하 고 저 통로로 나가는 순간부터 결 코 가면을 벗어서는 안 된다· 알겠 나? 절대로 잊지 말도록·”
거기까지 말한 뒤 여인은 사라져 버렸다· 학생들은 가면을 들고서 서 로 눈치를 살폈다·
-Iコ »
“가 가야겠지···r
페르소나 게이트 실습도 수행평가 에 속하는지라 교수님들이 지켜보면 서 점수를 매기고 있을 터·
안타깝게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페르소나 게이트의 해석에 실패한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서 대놓고 ‘나 해석 제대로 못 했는데 누가 좀 알려줄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 지 않겠는가·
만약 그들이 조금만 더 똑똑했다면 이곳의 난이도가 비상식적으로 높다 고 생각했겠으나 안타깝게도 거기까 지 사고가 도달한 이는 거의 없었고 자신의 무지(無智)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누군가 먼저 움직여주기를 기
다릴 뿐이었다·
‘흐음····’
그런 학생들 사이에서 풀레임은 슬슬 입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이 페르소나 게이트가 진 짜라는 사실을 아는 학생은 없을 것 이다·
‘원작에서는 서로 알아낸 극히 일 부의 정보조차 공유하지 않아서 엄 청 위험했다고 그랬지····
그래서 풀레임은 슬슬 입을 열었 다· 이 페르소나 게이트는 위험하다 고 진짜라고· 그렇게 알리기 위하 여·
“얘들아· 이번 실습 조금 이상하지 않아? 해석하기도 힘들고 NPC가 움직이는 것도 뭔가 진짜 같잖아·”
“그건 그래·”
자신의 말에 학생들이 동조하자 풀레임은 그 기세를 타서 폭탄선언 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페르소나 게이트 전혀 해석을 못 하겠어·”
“어 어···?”
“갑자기 왜···
교수님이 보고 계실 텐데 갑자기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학생들이 적잖 게 당황하자 풀레임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내가 봤을 때 나만 그런 게 아니 야· 너희도 아무도 해석 못 했을 거 야· 그렇지?”
“그건····”
“나는 확신하고 있어· 이건 절대 의도된 상황이 아니야· 상식적으로 1학년의 실습에 이렇게 어려운 난이 도의 페르소나 게이트가 말이 되기 나 해?”
“맞아· 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 어·”
“응· 사실··· 나도 해석을 거의 못 했거든·”
“아까 NPC도 진짜 같았고···
학생들이 동조하기 시작하자 풀레 임의 표정이 밝아졌다· 마지막으로 이곳이 ‘진짜’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순간·
“풀레임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난데없이 제키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 리고서 비꼬는 것처럼 말했다·
“설마 이곳이 ‘진짜’일지도 모른다
는 헛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에이 농담을 좋아하는 풀레임이라 지만 설마·”
“···뭐?”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 풀레임이 당황하여 입을 뻥긋거리자 제키는 더욱 짓궂은 아이처럼 웃었다·
“아하핫 진짜 그러려고 했구나? 와 세상에· 내가 막아준 걸 고맙게 생각해· 정말 재미없는 농담이었거 든· 분위기가 싸늘해졌을 거야·”
“아니 내 말은····”
풀레임이 다급히 덧붙이려고 흐卜자 제키가 그녀의 말을 자르고서 치고
나갔다·
“얘들아· 내가 봤을 때 이건 교수 님들이 의도한 상황이야·”
제키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학 생들을 돌아보았다·
“뻔하잖아? 실전에서도 항상 페르 소나 게이트를 완벽하게 해석할 수 는 없어· 즉 해석할 수 없는 이 난 해한 상황조차 교수님이 의도했다는 뜻이지·”
“···아!”
학생들은 뭔가를 깨달은 듯 눈을 번쩍 떴다·
확실히 그럴듯한 말이었다·
만약 페르소나 게이트를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행동할 것 인가?
그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며 점 수를 매기기 위해 이런 상황을 교수 님들이 조작했다면?
“그렇구나···
“으음 그래서····”
그녀의 말에 다른 학생들이 납득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풀레임은 입술 을 깨물었다·
‘좋지 않아····’
제키의 논리는 완벽했다· 그래서 상황이 더욱 꼬여 버렸다·
자신이 아무리 이곳을 ‘진짜’라고 주장해도 마땅한 근거가 없는 것이 다·
NPC가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것 도 도저히 게이트를 해석할 수 없 는 이유도·
모두 교수님들의 의도라고 말하면 단번에 납득이 되니까·
그런데 스텔라 돔 한복판에 ‘진짜’ 페르소나 게이트가 나타났다고 주장 하는 미친 소리를 과연 누가 믿어주 기나 할까?
“제키··· 대체 무슨 의도야?”
“무슨 의도냐니? 다 같이 좋게좋게 가자는 거지· 너 설마 이상한 논리 로 다른 아이들을 속여 넘긴 뒤··· 혼자서 점수를 받을 생각은 아니겠 지?”
“말도 안 되는 헛소리하지 마! 나 는 그저 조심해야 한다고····”
“너야말로 헛소리하지 마· 여기는 스텔라야· 최고의 마법 전사를 육성 하는 학교이スト 최고의 마법기사단 스텔라라고· 페르소나 게이트를 감 지하는 기술도 세계에서 제일가는 수준인데 학교 내에서 발생한 게이
트를 과연 모를까?”
그래· 그 말은 틀림없이 맞다· 하 지만 자신의 말이 정말 사실인 걸 어떡하란 말인가·
“나는 정말로····”
아연실색하여 풀레임은 저도 모르 게 백유설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 다· 혹여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하지만 그는 벌써 가면까지 착용한 채로 저 멀리 떨어져서 사태를 그저 관망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 끼어들 지 않겠다는 것처럼·
[EP006 제키 흑마화 루트]
백유설은 가면을 만지작대며 생각 했다·
‘결국 이쪽 분기로 가는 건가·’
풀레임의 입장에서야 굉장히 당황 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원작 로판에 는 제키라는 캐릭터가 없었으니 일 이 이렇게 꼬여 버릴 줄은 전혀 예 상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풀레임을 제키가 막아서는 이 상황은 ‘원작 게임어】 있던 수많 은 분기 중 하나였다·
어쨌든 학생 세 명 중 한 명이 흑 마화에 희생되어야만 하는 상황· 그 누구도 침식되지 않기를 바랐건만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은 바꿀 수 없 는 모양이었다·
아마 여기서 풀레임을 돕겠다고 무슨 말을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 겠지·
그러니 한 발자국 물러서 있는 게 정답이었다·
어차피 이러든 저러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해야만 하는 일은 정해져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