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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떠오르는 달 지는 달(6)
이것은 백유설이 꿈꾸던 이상향이 었다· 정확히는 이상향에 가까운 결 말이었다·
등장인물로서 [악역]이라는 타이틀 을 달고 있는 이들을 갱생하고자 했 으며 선한 역할로 알려진 등장인물 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
실패한 적은 없었다·
마치 여태 셀 수 없이 많은 도전 을 해왔고 셀 수 없이 많은 실패를 겪은 사람처럼 백유설은 자신이 하 고자 했던 모든 일들을 성공했다·
더 이상 이들을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으며 자신을 이 세계의 일원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사아아···! 빛무리가 백유설의 곁 에 내려앉았다·
그의 발밑으로는 백색의 색채를 띤 거대한 드래곤 한 마리가 흑색룡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차원에서 마침내 아버지의 영혼 을 구출해 낸 에이젤 모르프· 본디 자신의 소망을 영영 이루지 못한 채 이야기를 끝맺을 운명이었던 그녀 는 백유설이 아는 한 처음으로 소 원을 이루게 되었다·
꽁꽁 얼어붙어 있다가 이제야 막 봉인에서 해동되어 돌아와 멍한 눈 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홍비연·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죽는다’라 는 결말을 가진 그녀는 한 명의 여 왕으로서 떳떳하게 왕관을 쓰고 있 었다·
자신이 세운 마탑의 마법사들을 향
해 달려가서 무어라 소리치고 있는 풀레임· 세상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녀의 본래 운명은 이 대륙을 멸망 으로 이끌고 갈 운명이었으나 그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 다는 사실을·
악역으로서 풀레임에 의해 매장당 할 운명이었던 젤리엘은 현재까지도 선한 마음을 품고 살아남아 세상의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었으며·
스스로의 저주에 좀먹혀 숲속 깊숙 한 오두막에서 조용히 숨이 끊어질 운명이었던 꽃서린은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고 세상에 맞서고 있었다·
결국에는 흑마도의 길을 걷지 않게
되어 회공시월에게 대적하게 된 마 유성과 흑마타락을 하지 않고 정도 의 길을 걸으며 차기 거탑주의 자리 를 완전히 약속받은 해원량·
본래 세상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도 않은 채 멸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엘트먼과 루드릭 스 칼렛은 물론 무수히 많은 마법사들 이 한자리에 모여서 단 하나의 존재 에게 맞서고 있었다·
-···기어이 네가 시조 마법사를 계승했다는 거냐·
“계숭이라· 글쎄·”
-시조 마법사의 마지막 잔해는 저
백색의 용 ‘백주십삼월’이 되어 흩 어졌다· 하지만 너는 백주십삼월의 모든 힘을 받아들이는 ‘그릇’이 되 었음에도 그렇게 이성을 유지하고 살아 있지 않느냐· 너는 마법을 사 용할 수 없기에 불완전하나 동시에 마법을 사용할 수 없기에 완전하다·
줄곧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백유설 자신이 이 세계로 건너오기 전 게임 속에서 등장했던 흑야십삼 월은 대체 누가 감당했던 것일까·
굳이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회공시월이 십이신월을 모두 모았
으며 풀레임이 강제로 그릇이 되었 고 그 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힘 이었기에 파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백유설은 달랐다·
그는 십이신월을 모두 모았음에도 완전했다· 회공시월의 흑룡은 백유 설의 백룡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마법 무효화? 절대무적의 힘? 세상 의 마나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능력?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모두 백주십삼월의 앞에서 바스러질 뿐·
-축하한다 백유설· 너는 이제 이 세계의 유일한 ‘신’이다·
회공시월은 허탈하다는 듯이 그러
나 기쁘다는 듯 말했다·
“···신은 무슨· 할 수 있는 게 네 면상을 쪼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아 이거면 충분하긴 하네·”
회공시월이 ‘신’이라고 칭하는 데 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인류로서 십 이신월로서 정해진 그 능력치의 한 계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것이 바로 지금의 백유설이었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비록 3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이었지만 참 바쁘게도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참 많은 사건도 있었 고 많은 인연도 만났다·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으며 사랑 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 고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감정은 서 서히 옅어져만 갔다·
모두가 좋았다·
그냥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사랑하 게 되었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무료하게 살아 가던 지구인 시절의 백유설은 이제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질 정도였다·
파슥···!
회공시월의 신체 일부가 흩어졌다·
일전에 마유성에게 당한 상처를 아
직까지도 수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본래였다면 그 상처를 수복하기 위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디에서든 기운을 수급해 왔겠지만 그는 그러 지 않았다·
회공시월은 마지막 순간을 지켜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세상이 모두 네 발아래에 있다· 백유설· 이 광경은 네가 만들어냈다· 모든 인간의 단합··· 결코 쉽지 않 은 광경이 ス】· 과연 세상이 멸망한다 고 해서 저들이 모두 모였을까? 단 언컨대 단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 다· 모든 인류가 모여서 흑야십삼월 에게 맞서 싸우는 것은 이번 차원이
최초란 말이다 백유설!
그는 살짝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백유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점점 더 연기가 되어 홑어지기 시 작하는 회공시월· 그의 마지막 힘은 파편이 되어 백유설의 ‘백주십삼월’ 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른바 초월자·
회공시월의 말대로 백유설은 진정 한 ‘신’이 되는 것이다·
쿠웅-!!
더 이상 부유의 힘조차 유지하지 못한 회공시월의 흑룡은 바닥에 추
락하고 말았다· 백유설은 그를 따라 천천히 허공을 디뎌서 바닥으로 내 려 섰다·
우연의 일치일까·
의도한 것일까·
회공시월이 내려선 이 땅의 명칭은 ‘창조의 나락’이었다·
먼 옛날 처음으로 땅이 만들어졌 다고 하여 ‘창조’라는 이명이 붙었 으나 그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다 는 판정이 내려진 이후로 ‘나락’의 지명을 갖게 된 장소·
“백유설!!”
그 둘이 바닥에 내려서자 마법사들
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하나둘 머 리 위로 다가오는 수십 척의 비행정 과 전함· 공증을 부유하는 수천 명 의 마법사들과 허겁지겁 달려오는 수만 명의 마법사들·
그 가운데에서 백유설에게 소중하 지 않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좋냐?”
회공시월은 웃고 있었다·
끝내 자신이 패배했음에도·
그래서 결국에는 소멸될 위기에 처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웃었다·
백유설은 여전히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좋다? 이건 그런 감정이 아니다·
회공시월은 말을 골라야만 했다· 그에게 이런 감정이란 퍽 낯설었으 니까· 감정을 느끼고 그에 어울리는 단어를 고르는 데에만 몇 초의 시간 이 필요했다·
-···그래 이건 통쾌함이다· 이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온 네게 세상은 등을 돌렸지· 참으로 매정하 지 않나? 시조 마법사도 얻지 못하 였던 ‘완전함’을 손에 넣은 대가로 너 는 이 세상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서 백유설을 가리켰다·
-그러나 너는 완벽해진 대가로 이 세계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 참으 로 좋은 꼴이다 백유설· 네가 사랑 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만 하는데 그럼에도 이 세계를 정녕 구하고 싶 으냐? 너는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기껏 남의 세계를 구해 놓고 모든 우주와 차원으로부터 버 려지는 꼴이 되었단 말이다!! 하하 하하!!!
마침내·
회공시월은 참지 못하고 폭소했다·
수천 번의 세상·
수천 번의 회공시월·
그 기억을 모조리 이어받은 회공시 월은 과연 얼마나 오랜 세월 ‘감정’ 이라는 것을 꾹꾹 억누르고 살아왔 을까· 자신의 사명과 굴레가 모조리 사라진 지금 회공시월은 더 이상 감 정이라는 것을 참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 이게 기쁨이구나· 네 꼬라 지를 보고 있자니 나는 기쁨을 느낀 다 백유설이여· 내게 마침내 감정을 가르쳐 주었구나· 너라는 존재는 참 으로 위대해· 그래 신이니까 당연하 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백유설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지도 모르는 채로·
뒤에는 이제 막 달려오고 있던 풀 레임이 서 있었다· 어찌나 급하게 달렸는지 머리카락이 다 헤집어지고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뒤로는 이제 막 이 세계로 돌 아와 제대로 된 의복도 갖추지 못한 에이젤과 병사들에게 부축을 받은 홍비연이 다가오다 말고 멍한 표정 으로 백유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또한 똑똑히 들은 것이다·
그럴 수밖에· 회공시월이 일부러 그 들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으니까·
파스스···
회공시월의 신체가 서서히 흩어져 간다· 흑룡은 이미 형체를 잃고 거 의 바스러졌다·
그것은·
백유설도 마찬가지였다·
회공시월과 함께 그의 몸이 서서 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뭐 뭐야···? 잠깐 기다려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풀레임·
“잠시만요 거짓말이죠···? 어 어
떻게 돌아왔는데· 어떻게 다시 만났 는데 그게 대체 무슨·
오랜만에 대화라는 것을 해서 그런 걸까 제대로 말을 꺼내지도 못한 채 혀가 꼬이고 마는 에이젤·
홍비연은 병사들의 부축을 뿌리치 고서 비척비척 힘겹게 걸어서 백유 설에게 다가오더니 말없이 그의 눈 동자를 바라보았다·
“···사실이야?”
그러고선 내뱉는 한마디·
백유설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 어· 정말이야·”
“약속 기억은 나?”
약속이라· 그래 그런 약속을 했었 지· 모든 일이 다 잘 해결되면 아돌 레비트의 기사가 되어 여생을 살아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불완전하고 조각난 세계를 어떻게 든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온전하 게 짜 맞추기 위해서는 한명의
‘신’이 필요했다· 이 세계에는 신이 라는 존재가 없었기에 불완전했으 며 그렇기에 존속될 수 없었으니까·
이것이 세계의 멸망을 예상한 시 조 마법사의 마지막 부탁·
‘백유설 이방인이여· 그대에게 무 례한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는가?’
태초의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그러니 까 회귀를 전혀 하지 않은 백유설과 시조 마법사의 만남·
‘만약 세계가 완전해진다면 그대 는 그 세계에서 말하는 신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있을 걸세· 하지만 자 네 세계에도 신은 허상으로만 존재 할 뿐 볼 수도 없으며 만날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잖는가· 신이라는 존재는 그렇다· 존재하되 세계에 섞 여서는 아니 된다· 세계가 완전해지 는 순간 세계에서 유일한 불순물은 오로지 スト네 단 한 명뿐일 걸세·’
그러니 떠나라·
당시의 백유설에게는 아무래도 상
관없는 이야기였다·
신이 된다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의 힘을 얻을 수도 있 을 것이고 지구도 아닌 다른 세계에 미련을 갖지도 않을 것 같았으니까·
실제로 수만 번의 회귀를 거듭하 며 백유설은 이 세계에 대해 애정이 라는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는 자아를 서서히 잃어 갔고 무수히 많은 실패를 한 끝에 자신의 자아를 살리기 위해 하나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아이테르 월드 온라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기억을 모두 게임 속 경험으로 치 환해 버리자 놀랍게도 백유설은 단 한 번만의 회귀로 세상을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치명적인 문제점이 하나 발 생했으니·
그가 이 세계를 너무나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너와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마도 같을 것이다· 미련이 남나? 떠나고 싶지 않은가?
백유설은 그저 웃었다·
풀레임이 달려와 멱살을 쥐고 흔들 어도 홍비연이 약속을 지키라며 악 을 쓰고 화를 내도 에이젤이 횡설 수설하며 중얼거려도 말이다·
“자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를···!”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마법사 가 백유설이 떠난다는 사실을 도저 히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백유설은 그들의 울부짖음 에 일일이 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떠나는 와중 굳이 미련을 더 남길 필요가 있겠는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는 없겠지·’
아마도 차원의 공허를 떠돌다 보 면 언젠가 지구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평범한 인간으 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마 컴퓨터의 전원을 켠다면 여 전히 ‘온라인 게임’의 형식으로 아 이테르 월드를 지켜볼 수는 있을 것 이다·
게임 ‘아이테르 월드 온라인’의 서 버 관리자·
그것이 백유설에게 내려진 유일한 신으로서의 권능이자 사명이었다·
‘···이거】 죽음이라는 건가·’
백유설은 서서히 자신의 존재가 옅 어지는 것을 느꼈다· 세상이 새하얗 게 색칠되기 시작하였다·
누군가 절규하는 소리가 들려왔지 만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구분하기 가 어려웠다· 이제는 모든 세상이 너 무나도 멀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Last Episode]
[영원한 이별]
그래 이별이다·
모든 인연과의 이별·
그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담담하게 눈을 감았으나·
’···백유설·’
어떤 엘프의 목소리였다·
돈을 좋아하며 감정이 없는 것처 럼 보였으나 그럼에도 감정을 배우 려고 노력했던 어느 엘프·
‘돈으로 해결 안 되는 일은 없어 백유설···
백유설은 눈을 번뜩 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보 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 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처럼
그의 귓가에 마지막으로 목소리가 맴돌았다·
‘내 마음을 가져간 빚을 제대로 돌려받을 거야· 나는 상인이니까 결 코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아·’
어떻게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소녀 는 마지막까지 백유설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네가 어디에 있든 반드시 찾아낼 거야· 되돌려 놓을 거야·’
그것으로 백유설의 이야기는 끝을 맺었으며·
‘영원히·’
‘세상을·’
‘떠돌게·’
‘되더라도·’
어떤 소녀·
혹은 어떤 소녀들의 이야기가 새로 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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