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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별구름 상회(2)
세계 최고의 상회 별구름·
분명 별구름과의 독점 계약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를 등에 업고서 아이 템을 제작한다면 평생 써도 부족할 정도의 떼돈을 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아이템의 독점 사업·’
멜리안의 사업 수완은 뛰어나지만 죽어도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 려는 성향이 강했다·
다른 기업과 계약하지 않고 자신들 에게만 기술을 넘긴다는 조건으로 황금 수천 톤을 즉석으로 가져다줄 수도 있는 사내가 바로 멜리안이다·
기술이 그에게 묶이면 어떻게 되느 냐?
우선 잘 팔리는 것들만 양산하느 라 아이템의 전체적인 다양성과 개 성 성능이 제한된다·
또한 과다한 독점으로 인해 막상
장비가 필요한 수많은 마법사들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기술 의 발전이 사업 쪽으로 치우치게 되 어 흑마인들에게 기술력으로 따라잡 히게 된다·
실제로 이러한 분기를 진행했다가 돈은 돈대로 벌어놓고서 [배드엔딩] 이 뜨는 바람에 쫄딱 망해버린 플레 이어를 몇몇 보았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멜리안은 갑작스러운 거절에도 전 혀 당황하지 않고서 물어왔다· 나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마주하였다·
새삼 잘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
다· 그는 5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고 잘생긴 외모였는 데 엘프의 특성 때문이었다·
심지어 거기에 돈까지 많은 탓에 멜리안은 딸이 한 명 있다는 설정이 었음에도 인기가 상당히 많았던 공 략 대상이었다·
그런데 사실··· 멜리안이 공략 대 상으로서 인기가 있던 비결은 잘생 겨서도 아니고 세계관 제일의 부자 여서도 아니었다·
솔직히 30살이 넘어가는 그 무식 한 나이 차이는 순수한 ‘연애’의 관 점으로 보자면 조금··· 솔직히 좀 그렇잖아·
차라리 확 300살에서 3000살 정 도 차이가 나면 ‘초월자와 인간의 연애’라며 좋아했을지도 모르는데·
결론적으로 플레이어들이 멜리안 루트에 열광했던 이유는 그의 딸 ‘하이엘프 젤리엘’이 악녀였기 때문 이다·
악녀 젤리엘·
그녀는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내내 사사건건 주인공을 괴롭히거나 눈살 이 찌푸려질 정도로 과격하고 잔인 한 행각을 벌였는데 그에 분노한 플레이어들은 젤리엘을 최대한 엿 먹일 수 있는 방법을 발굴해 내고야
말았다·
그 최종적인 방법이 바로 아버지 멜리안을 공략해 결혼하여 집안을 파탄 내는 것·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진짜다·
이게 무슨 사랑과 전쟁도 아니고 개막장 전개인가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 세계 플레이어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이 막장 전개에 열광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가 없지만····
아무튼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한참이나 고민하는 시늉을 하였고 멜리안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속
으로는 굉장히 조바심이 들 텐데 인 내심 하나는 끝내주는 양반이다·
“당연히 이유는 있습니다·”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즉시 써넣어 드리겠습니다·”
“아뇨· 조건은 상관없습니다· 그저 ‘독점 계약’을 원치 않을 뿐입니다·”
그 말에 멜리안의 표정이 살짝 굳 어졌다· 그는 이 기술을 무조건 독 점으로 소유하고 싶을 테니까·
그렇다고 이대로 계약을 파기하기 에는 별구름이라는 어마무시한 상회 의 후원이 또 아쉽기도 했다· 나는
최대한 그와 타협해 볼 생각이다·
“사실 마공학과 연금술을 합친 이 기술은 우리의 실생활에도 유용하겠 지만 마법사들의 장비를 제작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겁니 다· 실제로 이 술식을 풀어나가면서 조수님과 저는 꽤 다양한 설계도를 만들기도 했구요·”
“그렇군요 그런데 그게 독점 계약 을 맺지 않겠다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저희는 이 신기술 ‘아이템’이라는 것을 더 많은 마법사들이 사용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흑마인들이 들끓 는 이 세상을 더욱 평화롭게 만들기
위한 아주 자그마한 일조라고 생각 해 주십시오·”
“꿈과 야망이 높고 넓군요· 포부가 크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선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 시 돈이 필요합니다·”
“예· 그렇죠· 안 그래도 지금 수많 은 투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온 참입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멜리 안 회장님이시죠·”
“···그래서 그 모든 사람들과 계 약을 맺으면서 동시에 저와도 계약 을 맺겠다는 겁니까? 그렇게 되면 제가 제시한 수많은 조건들의 대부 분을 쳐내셔야 할 겁니다·”
“그렇죠· 하지만 솔직히 저 조건이 탐나기도 합니다·”
멜리안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 다· 그럼 대체 어쩌겠느냐는 듯한 표정이다· 그는 아마 결코 쉬운 방 법으로 회유되지 않으리라·
그에 나는 간단명료한 해답을 내놓 았다·
“모두가 아이템을 사용한다고 해 서 모두가 같은 아이템을 사용할 수는 없겠지요· 아이템의 ‘명품화’· 그것이 제가 내거는 제시입니다·”
“아···!”
그맘때쯤 불안한 듯 쳐다보던 알
테리샤도 무언가를 깨달은 듯 탄성 을 내뱉었다· 멜리안 또한 자세를 바로 하고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 었다· 그 표정은 더 이상 나를 어 린애로 바라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명품이라····”
“예· 이 세상에는 정말 무수히 많 은 희귀한 재료가 있습니다· 별구름 상회에서 독점하고 있는 ‘벽뢰철’ 또한 그중 하나겠지요· 만약 저희가 그 광석을 ‘연금마공학’의 기술로 제련한다면요?”
“···꽤 좋은 물건이 탄생하겠군요·”
“그렇죠· 아이템의 보급화를 최대
한 추진하되 그중에서도 제작하기 힘든 명품 아이템은 오로지 별구름 상회와 독점 계약을 맺겠습니다· 이 른바 브랜드라는 거겠죠·”
멜리안은 살짝 입가를 끌어 올리고 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 명품이 라는 게 과연 당신의 헛된 망상인지 아닌スI 제가 어떻게 확신하고 움직 이지요? 제 좌우명은 ‘손해 보는 일 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입니다· 특 히 그것이 거래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말은 그렇게 하고 있으나 부정적 인 반웅은 결코 아니었다· 그의 말
뜻은 ‘명품이라 불릴 만한 아이템 을 자신에게 보이라는 것이었으니·
“예· 그래서 지금 당장 계약해 달 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반년· 그 안에 멜리안 회장님만을 위한 투자 자 설명회를 열도록 하죠·”
“오호···
미리 생각해 둔 것들은 몇 가지 있다· 내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어차피 알테리샤가 알아서 생각해 낼 테지만·
“그때 제시한 상품이 마음에 드신 다면 저희와 브랜드 독점 계약을 해 주십시오·”
“그거 참으로···
잠시 고민하던 멜리안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쿨하군요·”
쿨하다· 그건 멜리안이라는 인물이 정말로 마음에 드는 무언가에게만 내뱉는 감탄사였다·
“좋습니다· 여기 ‘메신저 페이퍼’ 를 드리겠습니다·”
메신저 페이퍼란 전서구에서 조금 더 발전한 연락수단으로서 메시지를 종이에 적어서 날리면 대상에게 반 드시 날아가 도착하는 물건이다·
물론 지금이야 전화기가 발달해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아 직 전화기가 현대처럼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았다지만 주요 기관(왕국 마탑 귀족 기업 등)은 이미 전화 망이 충분히 연결되어 있었기에 굳 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것을 주는 것 자체에 의 미가 있었다·
메신저 페이퍼는 정말 수많은 보안 마법이 걸려 있어 가격도 비싸고 그 어디에서도 연락할 수 있다는 부 분에서 의미가 컸다·
즉 신뢰하는 이에게만 주는 물건
이 되겠다·
그런 의미를 알기에 알테리샤는 눈 을 휘둥그레 뜨고서 허겁지겁 그것 을 받아들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 전화번호도 있습니 다· 저는 개인 전화기가 있지만 아 마 그쪽에도··· 조만간 생기겠지요· 여차하면 스텔라의 공용 전화기를 사용해서 연락 주시면 되겠습니다·”
용무가 끝난 멜리안은 자리에서 일 어나 중절모를 쓰며 말했다·
“그럼 이만 물러가도록 하죠· 즐거 운 시간 보내시길·”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람처럼 빠 르게 사라지는 멜리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휴 긴장돼서 죽는 줄 알았네요·”
알테리샤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게 긴장한 사람의 행동이야?”
“완전 긴장했는데요·”
“···대단하네· 긴장했으면서도 그 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게·”
“네?”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면서 환히 웃는 알테리샤를 보 며 창문에 머리를 기대었다· 긴장이
턱 풀려버린 탓일까 어쩐지 피곤하 다·
‘잠이나 좀 자야지···
* * ♦
대륙 남부 하월평원·
누군가는 이 땅을 두고 ‘젖과 꿀 이 흐르는 땅’이라 칭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하월평원에 는 대륙을 관통하는 하천이 일곱 줄 기나 존재하였으며 온갖 진귀한 신 수와 식물 광맥이 자리하고 있었으
니까
그러나 이곳을 여행하던 어느 여행 자는 우수에 젖어 그런 말을 하기도 했다·
‘드넓게 펼쳐진 울퉁불퉁한 초원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자유를 갈 망할 것이다· 설령 이미 자유롭다 할지라도·’
자유의 땅 하월평원·
평원의 중심부에는 초록색의 줄기 가 기이할 정도로 드높게 자라있었 는데 그 꼭대기에 연분홍색의 거대 한 연꽃이 하나 피어 있었다·
그 연꽃 위에는 ‘연꽃 객잔’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객잔이 한 채 있었 는데 그곳에는 오늘 아주 특별한 손님이 한 명 찾아와 있었다·
별구름 회장 멜리안의 외동딸 하 이엘프 젤리엘·
아버지인 멜리안은 평범한 엘프였 음에도 세계수의 기운을 잔뜩 물려 받아 어린 나이에 ‘하이엘프의 자 격을 손에 거머쥔 소녀·
그럼에도 아버지와 함께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며 세계수를 뿌리치고 세상으로 뛰쳐나온 그녀는 현재 무 료한 표정으로 저세상 끝까지 펼쳐 진 것만 같은 푸른 초원을 바라보았 다·
누군가는 이 광경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하였고 누군가는 너무나 도 아름다운 풍경에 반하여 이곳을 영영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으 며 어떤 화가는 눈이 멀 때까지 저 풍경을 그리다가 생을 마감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젤리엘의 눈에는 그런 아름 다움 따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세상 속에서 만물은,가치, 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물의 가치]
젤리엘이 가진 이 특별한 특성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물질이든 모든
존재가 숫자로 보인다·
가장 가치가 없는 것은 0·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100·
‘땅값이 오르고 있네···
하월평원의 아름다움 이 아니라 가치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살짝 좋 아져 미소를 지었다· 저곳에 잔뜩 투자를 해두었으니 곧 돈다발이 자 라는 기름진 땅이 될 것이다·
“제 젤리엘 아가씨····”
그녀가 멍하니 하월평원을 감상하 고 있자 뒤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사내가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걸 었다·
“누가 제 이름을 함부로 부르라고 했나요?”
뻐억! 그녀가 일축하자 보디가드가 사내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짓밟았 다·
“커흑···!”
젤리엘은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 앉 았다· 눈물 콧물 코피가 뒤섞인 사 내의 초라한 꼬라지는 참으로 볼품 없었고 그 머리 위에 떠 있는 3이 라는 숫자는 더더욱 볼품없었다·
길거리의 돌멩이와 비슷한 수준의 가치·
“제 제발··· 한 번만 자비를····”
“그러게 왜 파산을 하고 그러세요? 얌전히 하던 일만 계속했으면 그럴 일도 없었잖아요· 쓸데없는 사업은 늘리지 말라고 그렇게 경고했었거
사내는 입술을 꽉 깨물고서 고개를 처박았다·
그녀의 말은 틀렸다· 이 사업은 분 명히 ‘성공할 사업이었다· 실제로 거의 성공하기 직전이었고·
그런데 저 여자가 망쳐놓았다·
이유는? 뻔했다·
이렇게 하는 게 더 돈이 되니까·
사내의 사업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부숨으로써 떨어지는 부산물의 가치 가 젤리엘의 눈에는 더 높은 ‘가치’ 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 젤리엘이 간 섭했다는 증거가· 누가 봐도 그녀가 벌인 짓이라는 게 뻔했는데 저 용 의주도한 여자는 절대로 흔적을 남 기지 않는다·
그래서 사내는 목숨을 구걸할 수밖 에 없었다· 저 여자는 이 세상의 무 엇이든 말하는 대로 이룰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살고 싶으세요?”
끄덕끄덕끄덕! 사내가 격렬하게 고 개를 위아래로 흔들자 젤리엘이 웃 었다·
살려줄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무료한 이 시간을 떼우 고 싶었던 그녀는 킬링타임에 좋은 콘텐츠를 떠올렸다·
“아 그래 아저씨 소울 체스 둘 줄 안다고 하셨던가요?”
갑자기 그건 왜? 그런 표정의 사 내는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저랑 소울 체스’ 한 판 두실래요? 만약 이기시면··· 원하는 건 뭐든 해드릴게요·”
소울 체스·
마법사의 두뇌 스포츠라 불리는 이 것은 200종류가 넘어가는 수많은 체스 말 중에서 20개를 골라 체스 판에 배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각각의 말은 ‘3칸 전방에 불꽃 발 사 후 5턴 휴식’이라든가 ‘아군 말 2턴 보호’라든지의 능력을 지니고 있 었는데 이것을 잘 조합하여 적의 키’을 따내면 승리한다·
복잡하게 보인다고? 제대로 이해했 다· 실제로 이 소울 체스는 보통의 체스보다 수십 배는 더 어려운 난이
도를 자랑하여 입문하는 것조차 어 려웠으니까·
그리고 젤리엘은 ‘그랜드 마스터’ 등급의 소울 체스 프로 선수였다·
‘아·’
즉 살려줄 생각이 없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였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 기에 사내는 억지로 일어나 젤리엘 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시작된 소울 체스···는 너무나도 빠르게 결판이 나버렸다·
애초에 상대가 되질 않았다·
···역시 지루해·’
소울 체스에서조차 가치가 없는 사 내라니·
“묻으세요·”
“알겠습니다·”
젤리엘의 보디가드 성태원은 고개 를 살짝 끄덕이고서 사내의 입을 틀 어막은 채 방을 나갔다· 마지막 발 악이라도 하겠답시며 소리를 고래고 래 질러대는 것을 아가씨가 싫어하 기 때문이다·
“으은I 요I 으으요11”
역시나 사내는 발버둥을 쳐댔지만
성태원의 힘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하아 차라리 혼자 두는 게 재미 있겠어·’
더 이상 소울 체스에서 그녀의 적 수가 될 만한 사람은 없었다·
대마법사 ‘도아론 카르체스트’에게 서는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 하였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이기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확신하 였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젤리엘이 소울 체스를 배운 목적은 단 하나 ‘고대 카르멘세트의 유적 ス]’였으니까·
‘카르멘세트의 영혼과 소울 체스를 두어 승리하는 スト 영원한 빛을 선 물하겠노라·’
사람들에게는 그저 전설이라고만 여겨지는 그 고대 신화가 ‘진실’이 라는 정보를 아는 자는 세계에서 몇 명 되지 않는다·
이제는 실력도 충분하겠다 소울 체스로 카르멘세트에게서 승리하기 만 하면 되는데·
‘대체 유적지는 어디에 있는 건 지····’
속이 타들어 가고 있으나 재촉한 다고 해서 발견되는 것도 아니었기 에 그녀는 애써 꾹 참았다·
“아가씨· 처리하고 왔습니다·”
“응· 잘했어·”
그 사내와 관련된 서류 뭉치를 툭 툭 털어서 불태운 뒤 쓰레기통에 버 리자 때마침 노크가 울렸다·
“누군가요?”
– 아빠다·
“아···:
그녀의 얼굴에서 보기 드문 미소가 피어올랐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スト 숫자가 아닌 ‘?’가 가 장 먼저 보였다· 그것이 멜리안의 가치·
세상 만물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 는 젤리엘이었지만 단 두 가지 경 우에는 가치를 측정하는 게 불가능 했다·
대상이 사랑하는 존재이거나·
대상이 자신의 분석력으로는 측정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지의 가치를 지니고 있거나·
하지만 이 세상에 미지의 가치를 지닌 존재는 없다· 또한 젤리엘이
사랑하는 존재는 아버지 단 한 사람 뿐이었으므로 가치를 측정하지 못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잘 다녀오셨나요·”
“귀여운 우리 딸 나 없는 동안 고 생 많이 했겠구나· 집으로 돌아가겠 니?”
”네· 이곳도 이제 질렸어요·”
“하하 나는 매일 봐도 안 질리는 데 말이다·”
그건··· 아버지에게 ‘감정’이라는 게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다· 하월 평원은 그만큼 아름다운 장소였으니 까·
젤리엘은 서둘러 말했다·
“저도 저도 사실 질리지 않았어 요·”
자신의 심장이 메말랐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하여· 멜 리안은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젤리 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참 이번 거래는 잘 성사하고 오셨나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네?”
멜리안은 코트 안자락에서 종이를 꺼냈다· 저건 틀림없이 ‘알테리人ド
라는 연금술사에게 통하는 메신저 페이퍼 였다·
’57:
알테리샤라는 여인에게 통하는 페 이퍼 따위가 저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본인은 얼마나 가치 가 높을까·
‘역시 아버지의 안목은 제대로야·’
젤리엘이 페이퍼를 만지작대자 멜 리안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소년에게 페 이퍼를 하나 더 줄 걸 그랬군·”
“그 소년이요?”
“그래· 꽤 재미있는 친구였지· 연공 난수의 공동저자라는더1 스텔라의 학생이었지·”
“···그런가요?”
연공난수에 공동저자가 있다는 사 실은 알았지만 아직 학생이었을 줄 이야
“우리 딸보다 한 살 어리다고 했었 지 아마· 세상엔 참 대단한 아이들 이 많아· 지켜봐야 알겠지만 장사 수완도 그 나이치고는 꽤 쓸 만했 다·”
“이름이 뭔가요?”
“백유설이라고 하더구나·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다·”
아버지가 기억해 두라고 한 이름 중에서 지금껏 중요하지 않은 이름 은 없었기에 젤리엘은 그 석 자의 이름을 일단 기억해 두었다·
‘열일곱의 나이에 300년 미해결 문 제를 풀었다····’
분명 대단하기는 했으나 크게 관심 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그 소년에게서 뭘 봤는진 모르겠지만 그래 봐야 다 장기 말에 불과할 뿐·
‘이용해서 돈이나 벌어먹을 수 있 으면 좋겠네·’
그녀는 그리 생각하고서 백유설이
라는 이름을 기억 속 한쪽 구석에 잠시 치워두었다· 그런 속내를 아는 지 모르는지 멜리안은 여전히 백유 설에게 짙은 흥미를 두었다·
“스텔라의 학생이라던데 젤리엘 너라면 나중에 만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젤리엘은 엘프들의 마법 학교 ‘별 꽃나무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었다·
각국의 마법 학교는 교환학생과 학 교 대항전을 비롯하여 서로 교류하 는 이벤트를 자주 하는 편이었으니 어쩌면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을지 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에게 백유설이라는 이 름 석 자는 잠시 기억의 저편에 치 워진 지 오래였다· 지금은 그저 아 버지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아버 ス1· 돌아가기 전에 소울 체스 나 한 판 두실래요?”
오늘도 내일도·
아버지와 함께라면 그녀는 뭐든 할 자신이 있었다·
그것이 설령 지옥으로 떨어지는 일 이라고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