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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시조 마법사의 유물(7)
해 질 무렵·
백유설은 자신의 앞에 늘어선 수인족 들을 보고 살짝 벙찐 표정을 지었다·
늑대 수인 전사 3명 켄타우로스 2 명과 사자 호랑이 수인 각각 3명·
그 앞으로는 늑대족 푸르랑카의 족
장이자 전 종족을 대표하는 타리앙 카를 바라보았다·
“그 이분들은···
“악령 퇴치에 동참하고자 하는 수 인이 참으로 많았다· 하지만 모든 병력이 움직였다가 경계 태세에 구 멍이 뚫리면 안 되는 법· 최고의 정 예 전사를 소집해서 데려왔으니 기 꺼이 이끌도록 하라·”
수인족들은 연약하고 마법도 잘 못 쓰는 인간 따위를 따라야 한다는 점 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타리앙카 의 명령이기도 했고 악령을 꼭 퇴 치하고 싶었기에 어쩔 수 없이 지팡 이를 움켜쥐었다·
“자네는 지상에서 활동하는 주술사 인가? 악령을 퇴치한다니··· 주술 은 마법에 비해 미개하고 하잘것없 지만 말똥도 약에 쓰인다고 가끔은 쓸모가 있군·”
이곳에서는 개똥이 아니라 말똥이 ‘쓸모없음’의 대명사였다·
늑대족이 갯과라서 함부로 무시 못 하는 것도 있었고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켄타우로스가 말족이었기 때문·
푸르릉!
늑대족 전사의 말에 켄타우로스 전 사들이 대놓고 불쾌함을 표시했으나 마땅히 사과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주술이 미개하다니··· 모르는 소 리를·’
스칼렛이 들었다면 헛웃음을 쳤을 것이다· 마법이나 주술이나 결국 그 기원은 비슷하다· 다만 마법은 물질 적인 힘을 다루는 것이고 주술은 영적인 힘을 다룰 뿐이다·
“그럼 어디 주술이나 다루는 사냥 꾼의 실력이 어떨지 궁금하니 어서 출발해 보자고·”
수인들의 재촉에 백유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리구릉의 중심에서 출 발했을 때 가장 먼저 들러야 할 포 인트는 총 세 군데·
그중에서도 거리는 제일 멀지만 타리앙카에게 실력을 확실히 납득시 킬 만한 필드 던전이 하나 있었다·
[버려진 여우의 공동묘지]
플레이어 사이에서 한때 미스테리 로 남겨진 서리구릉 5대 던전 중 하나였다· 필드 던전은 완전한 클리 어를 위해 필드에 존재하는 보스나 특정 코어를 파괴해야만 [퍼펙트 클 리에가 되고는 했는데 이곳은 그 런 게 전혀 없었기 때문·
그러다 언젠가 그 진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공동묘지의 최종 보스가 알 고 보니 ‘여우령’이었던 것·
오래전 서리구릉에는 여우수인 또 한 살고 있었으나 잦은 전쟁으로 인해 멸족되었고 그들의 시신은 모 두 서리구릉의 어느 한 편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모두 매장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어째서인지 근처를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지병이 들고 오한을 겪으며 공포에 질려 도망치 는 듯 괴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이제는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 장소 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 이곳은 버려진 공동묘지잖 아?”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이 가지 말라
고 신신당부했던 바로 그 공동묘지 에 오게 된 수인족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안 그래도 늦은 저녁 시간대인 데 다가 달밤도 구름에 가려져 온 세상 이 거뭇거뭇해서 분위기도 스산하 다·
그나마 수인족들은 인간보다 시력 이 좋아서 앞은 잘 보이겠지만 분 위기라는 것은 쉽사리 극복할 수 있 는 부분이 아니었다·
“어째서 이곳에···r
“서리구릉에는 묘하게 한기가 서려 있는 장소가 몇 군데 있더군요· 저
는 그 장소들을 모두 돌아보며 체크 하고 정화할 생각입니다·”
“모든 장소를?”
“예· 서리구릉에는 이런 장소가 너 무 많은 탓에 떠도는 악령을 감지 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장소를 모두 정화한다면 남은 것은 악령 단 하나밖에 없겠지요·”
“음··· 그래 타당하다· 거기에 더 해 이 공동묘지는 벌써 200년 전부 터 서리구릉의 주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장소· 인간 사냥꾼이 여 자네가 정화할 수 있다면 큰 포 상을 내리겠다·”
“포상이라니요· 이것은 저희 아버 지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이자 신념· 그에 대해 보상을 받는다면 아버지 에 대한 모욕입니다·”
“실수했군· 부디 자네의 아버지가 나의 무례를 용서해 주길 바란다·”
“아버지는 관대하시기에 충분히 용 서하실 겁니다·”
늑대족장 타리앙카와 아주 주거니 받거니를 하는 백유설을 보며 젤리 엘과 풀레임은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저런 연기가 즉흥적으로 나 오는 걸까?
백유설이 매번 즉석으로 만들어내 는 저런 ‘캐릭터성’은 항상 그 상황 에 맞춰서 배경과 설정까지 전부 탄 탄하게 짜여 있다·
지금 저 ‘아버지에게 제령술을 물 려받은 떠돌이 악령 사냥꾼’이라는 컨셉도 그 자리에서 만들어낸 주제 에 이제는 설정까지 세세하게 준비 되어 있어서 타리앙카의 어떤 말과 행동에도 그에 맞춰서 반응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즉흥적으로 만들
어낸 캐릭터에 적응하지 못하고 티 가 나게 마련일 텐데 말이다·
숲이 끝나며 공동묘지가 모습을 드러내자 스산한 바람이 스쳐 지나 갔다· 안 그래도 항상 기후가 싸늘 한 서리구릉은 저녁 시간대에 특히 나 더 추워지고는 했는데 말이 ‘싸 늘한 바람’이ス1 실상 지상에서 이런 바람이 불었으면 영하의 날씨라며 사람이 얼어 죽을 정도였다·
“여기부터는 조심하십시오· 좋지 못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바스락!
백유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묘지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쫓아라!”
투웅-!
수인족들은 본능적으로 발바닥에 마법진을 그려 슈퍼 점프 마법을 발 동하였다·
숙련된 인간 마법사도 이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0·5초 이상 의 준비 동작이 필요했으며 가속도 도 이렇게까지는 빠르지 않다·
쐐액!!
정말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소리가
들린 부분에 도착한 수인족들은 즉 시 지팡이를 겨누었으나·
“그냥 날짐승입니다·”
“···뭣!”
그 자리에는 이미 백유설이 도착하 여 털이 수북한 ‘서리사슴’의 머리 에 지팡이를 겨누고 있었다·
서리사슴은 살기를 감지한 듯 도망 치지도 못한 채 벌벌 떨기만 하고 있었는데 백유설이 지팡이를 거두자 그 즉시 달아났다·
“이런 곳에 날짐승이 있을 줄이 야··· 제가 알기로 서리사슴은 맹수 과에 속하여 산 사람을 뿔로 치어
잡아먹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눈 을 보아하니 벌써 사람을 몇 번이나 잡아먹은 놈 같은데 저런 맹수가 돌아다니는 것은 영령학에서는 별로 좋지 못한 징조로 보고 있습니다·”
백유설이 무어라 설명하며 지팡이 를 품에 집어넣었으나 수인족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의 뒷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대체 어느 틈에···?
수인족들의 파워 점프 계열 마법의 발동 시간은 거의 본능에 가깝다·
짐승 특유의 튼튼한 발바닥과 다리 근육에 피가 나도록 훈련을 하여 압
도적인 가속도를 챙기고 인간보다 월등히 빠른 반응속도로 인해 만들 어지는 마법진의 발동속도는 감히 타종족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빠 르다·
그런데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 미 저 인간이 도착해서 심지어 서리 사슴을 지팡이로 겨누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즉 저 인간 주술사가 자신들보다 반응속도가 빠르며 심지 어 파워 점프의 캐스팅 속도 또한 월등히 우월하다는 의미였다····
‘말도 안 돼!’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
한 그들은 백유설이 무언가 주술을 사용해서 속임수를 쓴 거라고 애써 부정하려고 했으나 이미 마음 한쪽 이 기울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었 다·
“오호···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타리앙카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 다·
“악령을 사냥한다더니 예사롭지 않은 실력이로군·”
수인족들은 점멸 마법을 아예 배우 지 않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기 때문 에 백유설의 기동은 완전히 처음 보
는 종류였다·
“저것도 주술인가?”
타리앙카가 살짝 웃음기를 띠고서 풀레임과 젤리엘에게 묻자 그녀들은 당황하여 대답했다·
“그 글쎄요· 마법과 주술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배웠거든요···
“마법과 주술은 다르지 않다? 흐 음 그래· 그것도 재미있는 의견이로 군· 기대가 되는구나·”
그래도 납득하는 듯한 모습이었기 에 풀레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백 유설과 함께 다니다 보면 왜 이런 일이 항상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백유설은 가장 앞장선 채로 공동묘 지를 종횡무진 들어섰고 그 뒤로 수인족 전사들이 뒤따랐으며 가장 뒤쪽으로는 타리앙카가 백유설의 두 여인을 지키고 있었다·
“구 굳이 이렇게 지켜주실 필요는 없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가· 훌륭한 사냥 꾼의 각시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 이다· 그대들의 남편이 아무 보답도 받지 않고 서리구릉을 위해 애쓰고 있으니 은혜를 못 갚을지언정 최소 한의 도리는 하는 게 옳다·”
훌륭한 사냥꾼·
어느새 백유설의 호칭이 가장 밑바 닥에서 가장 위쪽으로 상승했다·
그도 그럴 게 숲을 전진하며 나타 나는 야수와 괴물 따위는 수인족 전 사들이 지팡이를 들기도 전에 모두 백유설이 처리했기 때문·
심지어 이 시대에는 드물게도 합금 으로 만든 롱소드를 사용하여 괴물 들을 베어 넘기고 있으니 어찌 사 냥꾼으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 까?
“날붙이를 쓰는 전사라···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줄로만 알았
거든· 그대들의 남편은 참으로 대단 한 존재야· 자부심이 있겠어·”
“아하핫····”
풀레임은 그저 멋쩍은 듯 웃었고 젤리엘은 웃음을 참는 건지 무엇을 참는 건지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쓰 는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왜 롱소드를 쓰는 거 지?’
그냥 롱소드가 아니라 연금술로 만 든 합금검인 것은 확실하나 굳이 왜 완드로 마법검을 소환하지 않는지는 의문이었다·
‘혹시 저것도 일종의 설계인가? 강
한 면모를 보이기 위한? 그렇다고 해도 효율이 안 나올 텐데···
백유설의 경지는 이제 완드 없이도 맨손에서 어렴풋이 마법검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수준·
그런 백유설이었으니 합금검으로도 마력으로 신체를 보호하는 괴수의 질긴 피부를 갈라낼 수 있겠으나 체 력적으로 상당히 무리가 갈 터였다·
’···어쩔 수 없지·’
백유설도 이런 합금검을 쓰는 게 비효율적이란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음절맥·’
가만히 있어도 차디찬 한기의 마력 에 견디기 힘든 신체다·
마법검을 사용하지 않고 점멸을 최 소한으로 제어하는 와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손과 다리가 서서히 얼어 붙는 감각이 느껴졌다·
-힘들어 보이는군· 조금은 자중하 지 그러나?
‘안 됩니다· 지금 확실하게 제 이 미지를 각인시켜둬야 합니다· 꽤 강 한 사냥꾼이라는 인식을 박아둬야 나중에 저들을 부려먹을 수 있습니 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괴수들을 베어 넘기며 공동묘지를 한참이나 배회하면서도 백유설은 특 이한 행동을 했다·
나무에 걸려있는 붉은 종이 부적을 모조리 떼서 불태운다든지 아니면 반대로 종이에 글자를 써서 붙인다 든지 파헤쳐진 무덤을 메우고 비석 을 치우거나 부수고 혹은 비어있는 자리에 다시 비석을 세우는 등 의미 를 알 수 없는 백유설의 행동에 수 인족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주술이로군· 옛적에 본 적이 있다· 주변에 놓인 사물에 영이 씌워져서 특별한 힘이 모인다고 했지·”
타리앙카의 말에 그제야 수인족들 은 납득했다·
실상은 반대였다·
‘그냥 여우령 소환에 필요한 조건 을 갖추고 있을 뿐인데····’
뭐 어떻게 착각하든 비슷하긴 했 으니까 달리 반박하지는 않았다·
휘오오오···
마침내 여우령 소환의 조건이 완 전히 충족되자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하더니 으스스하게 자라난 나무 의 사이로 흰색의 무언가가 일렁이 기 시작하였다·
한쪽 눈이 떨어져 있고 귀가 찢어 졌으며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형태였 으나 모두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것은 한때 여우 수인이었으며·
지금은 혼령이 되어 성불하지 못 한 채 공동묘지를 떠돌고 있다·
“저게 여태껏 공동묘지를 어지럽히 던 혼령의 정체로군····”
타리앙카의 말에 백유설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풀레임에게 말했다·
“내 검에 빛을 둘러줘·”
“어? 응 알았어·”
풀레임이 양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 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자 하늘 높 이서 동그란 문이 열리더니 빛이 쏟 아져 나와 백유설의 검에 깃들었다·
그 신성스러운 광경에 수인족들이 감탄하는 찰나 백유설은 빛살보다 도 빠르게 쏘아져 여우령의 목을 베 어 냈다·
서걱-!
순식간에 성불(?)되어 사라지는 여 우령·
“조 족장님· 원래 성불이라는 게 저런 겁니까?”
본래는 혼령의 원한을 풀어주고 살 풀이를 하여 저승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성불이었으나 백유설의 성불 은 아주 조금 다른 모양이다·
하지만 주술과 성불에 대해 자세히 알 턱이 없는 타리앙카는 억지로 근 엄한 표정을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 이는 수밖에 없었다·
,,맞다,,
···아마도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