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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시조 마법사의 파편(4)
회공시월의 예상대로 백유설은 길 로틴 요새로 찾아오지 않았다· 덕분 에 그는 아틀락스의 갑주를 둘러싼 시조 마법사의 결계를 사실상 독점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인간들이 그를 가만히 내버 려 두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틀락스의 갑주에서 정확히 5km 떨어진 지점에 마법의 요새를 지어 둔 인간 마법사 협회 진영의 병력들 이 회공시월을 주시하고 있는 것·
물론 그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 했다· 최근 3년 사이에 십이신월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여러 언 론 매체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지 만 그럼에도 십이신월은 여전히 두 려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인간 이상의 권능과 힘을 지닌 신 에 필적하는 존재들·
그들은 모를 것이다·
저들이 ‘신에 필적하는 힘’이라고
생각하는 이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 에 오히려 신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이러한 경지의 힘을 갖고 있기에 신의 힘이 얼마나 까마득하게 멀게 만 느껴지는지·
저들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해석이 불가능하지는 않겠군·’
며칠간 시조 마법사의 결계를 천천 히 살펴보던 회공시월은 확신을 갖 게 되었다·
콘스텔라티오 프로젝트 즉 ‘별의 서고’를 본 경험이 있던 회공시월에 게조차 시조 마법사의 흔적이 남은
결계는 상당히 복잡한 문제였으나 약간의 시간만 들인다면 충분히 풀 수 있는 정도였다·
방해꾼도 없다·
백유설은 이곳에 찾아올 수 없으 며 찾아온다 해도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마음 놓고 안심한 회공시월 이었으나 가슴 한편이 자꾸만 불안 해지고 있었다·
과연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좋은 것인가?
상황은 분명히 회공시월에게 유리 하게 돌아가고 있다·
백유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 아틀락스의 갑주는 온전 히 자신의 것이 되는 게 확실할 터 인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그의 육감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우웅!
그때 회색빛 공간이 열리며 이공 간에서 대기하고 있던 천청해오월이 공간 저편에서 상반신을 드러냈다·
마치 화상 통화라도 하는 듯한 모 양새가 되었으나 누구도 서로가 있 는 곳으로 건너갈 생각은 없어 보였 다·
“천청해오월· 백유설의 동태는 살
펴보고 있나?”
백유설을 견제하며 다급히 자신을 찾는 모습에 천청해오월은 웃음을 홀렸다·
거의 비웃음에 가까운 모습이었으 나 회공시월에게는 이제 여유가 거 의 사라져서 지적할 시간이 없었다·
“···마유성은 어떻게 됐나·”
일전에 회공시월은 마녀왕 스칼렛 에게 마유성을 죽이라고 거래를 제 안했다·
그녀는 백유설을 제외한 다른 인간 따위야 어떻게 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냉혈한이자 마음만 먹으면 싸 이코패스 살인귀가 될 수도 있는 존 재였으니 그의 말을 굳이 거스를 이유도 없었다·
백유설에게 반드시 이득이 되는 일 을 굳이 스칼렛이 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녀에게 있어서 마유성의 죽음 따 위는 백유설의 성장을 위한 모기 한 마리의 죽음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 었다·
또 마음만 먹으면 누가 죽였는지 조차 완벽히 은폐하는 것도 가능할 테니 백유설에게 들킬 염려도 없다·
“멀쩡하던데?”
천청해오월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 며 말했다· 마치 회공시월의 계획이 틀어진 게 즐겁다는 얼굴이었다·
“멀쩡하다니··· 마유성이 아직도 살아있나?”
“그래· 마녀왕은 마유성을 죽이지 않았다·”
회공시월은 표정을 살짝 굳혔다·
그 마녀왕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했 다고?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순수 한 이기심으로 살아왔던 그녀다·
자신의 사소한 이익과 자그마한 즐 거움을 위해서라면 왕국 하나쯤 손 쉽게 불태울 수도 있는 그녀가 자신 의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뻔하지· 마녀왕은 백유설에게 자 신의 의도를 털어놓았을 거다·”
“그건 상관없다· 제아무리 백유설 이라고 해도 ‘시조 마법사의 권능’ 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니 그건 네 관점의 생각일 뿐 이ス】· 너는··· 그 권능이 주어진다 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붙잡 아야 하겠지만 백유설은 그렇지 않
았던 거야· 그에게는 더 많은 방법 과 계획이 준비되어 있을 테니까·”
“헛소리하지 마라 천청해오월· 너 는 아무것도 모른다·”
시조 마법사의 권능이 없으면 그 수많은 십이신월의 가호가 모두 무 용지물이 된다·
여태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도 있는데 백유설은 대체 무슨 생 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마유성을 그릇으로 삼겠다는 것 은··· 아니 그건 절대로 아니야· 불가능한 일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던 백유설이 이제는 종잡을 수 없이 멀리 떠나버렸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것 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그보다 흑마인 측이 난리더군·”
“그 버러지들은 이제 신경 쓸 것도 없····”
“글쎄? 새로운 흑마도왕이 되기 위 해 벌써 ‘블랙 트라이앵글’이라 불 리는 세 명의 흑마인이 혈투 구도를 펼치고 있더군· 곧 새로운 왕이 추 대될 거다· 그렇게 되면 너도 알겠 지?”
새로운 흑마도왕의 탄생·
그것은 곧 시조 마법사의 권능이자 옛 혹마도왕이 가졌던 ‘마도흡공(魔 道吸空)’이 잡스러운 흑마인 따위에 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그게 누구든 간에 흑마도왕 이 되는 순간 ‘세계에 영향력을 끼 치는 인물’로 간주되어 제아무리 회공시월이라고 할지라도 손쉽게 건 드릴 수가 없게 된다·
권능을 빼앗겠다며 손을 쓰는 순간 시조 마법사가 걸어둔 제약에 의한 반동이 찾아올 것이다·
*’방법은 하나뿐인 것 같은데 회공
시월·”
그들 중 누군가가 흑마도왕이 되어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되 기 전에 미리 방해하여 견제한다·
“참고로 나는 갈 생각이 없다· 네 명령에만 따라서 움직이는 건 질렸 거든· 뭐 죽이겠다고 협박이라도 할 생각인가? 그러면 죽이든지·”
천청해오월이 자조적으로 말하자 회공시월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힘과 권능이 없으면 회공시 월의 계획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결국 십이신월의 가호를 모두 모
아야만 하는 회공시월의 입장이 을 이 되어버린 것이다·
회색 공간이 닫히며 천청해오월이 사라지자 회공시월은 눈을 감고서 평정심을 되찾았다·
흑마신교주 회련이 없는 지금 장 기말은 거의 다 소모해 버린 상태·
병력을 움직여서 흑마인을 방해하 라고 하지도 못하는 상황·
다홍추구월은 백유설에게 붙여두었 고 천청해오월은 독단적으로 행동 하겠다고 하니 결국은····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겠군·’
어차피 잠깐이다·
그사이에 백유설이 이곳에 와서 무 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설령 회공시월이 자리를 비운 것을 알고 잠시 들렀다고 해도 회공시월 이 빠르게 일을 끝마치고 돌아오면 약조를 사용하여 그를 내쫓을 수도 있으니 문제는 없을 것이다·
‘결국 내가 직접 손을 쓰게 만드 는군···
* * *
한편 9리스크의 흑마인 셋·
통칭 ‘블랙 트라이앵글이라 불리 는 최강의 흑마인들이 차기 흑마도 왕이 되기 위하여 혈투를 준비하고 있을 때 그 판을 깔아놓기 시작한 이는 다름 아닌 인간 마법사 백유설 이었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전 혀 없었으나 스칼렛의 마녀 군단이 생각보다도 훨씬 더 행동반경이 넓 고 유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버려서 유용하게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괜찮은 방법이네· 옛 시절 마녀들 에게 왕이 없던 시대에는 이런 방법 이 자주 사용되고는 했지·”
스칼렛은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수십 개가 넘는 수정 태블릿 속에서 세계 곳곳의 소 식이 실시간으로 영상화되어 전달되 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백유설도 이제는 조 금 여유가 생겼다는 표정이었다·
“마녀를 전부 흑마인 진영에 스파 이로 넣어버릴 줄이야·”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마녀를 반기는 건 마법사가 아니라 흑마인들이니까·”
“뭐어··· 사실 어느 쪽이든 막 환 영받지는 못하기는 해· 이번에는 흑
마인들의 병력이 너무 약해져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는 느낌이지만·”
스칼렛은 씁쓸하다는 듯이 말했다·
마녀의 이미지가 대외적으로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 렇게 실감하게 되니 가슴이 아픈 것 이다·
‘여태까지는 딱히 신경도 안 쓰고 살았는데···
마녀의 이미지가 좋든 나쁘든 결 국에는 내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살 아왔던 스칼렛이었으나 왜인지 모 르게 최근에는 유난히 그런 이미지 가 계속해서 신경 쓰였다·
아무래도 백마법사이자 영웅으로 추앙받는 백유설의 곁에 있어서 그 렇게 된 게 아닐까·
“하핫 걱정하지 마· 스칼렛·”
“응? 무슨 소리야?”
“네가 걱정하는 마녀에 대한 이미 지는··· 네가 내 곁에 있음으로써 차후 몇 년 이내에 사라질 거니까·”
“··
스칼렛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는 게 들켜버린 것 도 신기한데 차후 몇 년 이내에 해 결된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녀의 이미지는 벌써 천 년도 더 넘게 쌓여왔는데 대체 어떻게 해결 된단 말인가?
하지만 백유설은 확신을 가진 표정 이었기에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았 다·
그가 그렇다고 말하면 정말로 그 런 일이 벌어지고는 했으니 희망을 살짝이나마 품게 된 것이다·
“앗 백유설· 슬슬 움직일 준비를 해야겠어·”
“벌써···T
백유설은 시간을 확인했다·
화요일 오후 2시·
원래였다면 한창 수업을 듣고 있을 시간이었으나 백유설은 자습 신청 서를 넣고 혼자 빠져나와 스칼렛과 함께 화면을 보고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인데···
“생각보다도 흑마인들이 급한 모양 이야· 흑마도왕이 누가 되든 간에 그들을 이끌고 나갈 왕이 필요하다 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겠지·”
“자의적으로 전투에 임하게 된 게 아니라 수많은 흑마인들에게 떠밀 려서 결국 전쟁이 터지게 되었다는 뜻인가····”
각각 다른 장소에서 세 명의 흑마 인이 흑마력을 불태우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습이 비춰진다·
아직까지 서로 위치는 다르나 조 만간 저 셋은 그 어떤 도움과 병력 의 지원도 없이 순수 무력만으로 혈 투를 벌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긴 자가 흑마도 왕이 되겠지·
그런 자리에 백유설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자· 네가 흑마도왕의 권능을 가 져오기 위해서는 마지막 승리자가 죽어야 해·”
“···아니 잠깐만·”
백유설은 화면 중 어딘가를 뚫어져 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스칼렛은 무 슨 일인가 싶어서 마찬가지로 화면 을 쳐다보았다·
“어··· 저건?”
세 흑마인은 아직까지 서로 다른 위치에 있었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공통된 마력이 마녀의 레이더에 감 지되 었다·
원거리에서 화면을 전달받는 것이 라 그 마력량은 극히 희미하게만 느 껴졌으나 이 세상 모든 마나를 느 끼는 백유설과 9클래스의 마녀왕 스
칼렛이 그것을 구별해 내지 못할 리 는 없었다·
“회색의 마력이 어렴풋이 느껴지고 있어··· 어째서?”
스칼렛은 혹시나 회공시월의 간섭 으로 인해 일이 꼬일까 봐 걱정스러 운 표정이었으나 백유설은 손가락 을 튕기며 오히려 좋아하는 표정이 었다·
그는 식은땀을 살짝 훔치며 입꼬리 를 슬며시 올렸다·
“이거 설마설마했는데··· 이렇게 까지 내 생각대로 될 줄이야·”
“으으응? 뭐 뭔데?”
“가면서 설명해 줄게· 어서 준비해·”
백유설이 서둘러 교복 외투를 걸치 고서 밖으로 달려 나가자 스칼렛도 서둘러 드레스 위에 새하얀 코트를 걸쳤다·
“대체 뭐가 생각대로 되고 있다는 거지···r
천 년이나 살아왔는데도 백유설의 생각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