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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흑마전쟁(7)
세상 한편에서 혹색의 이단자들이 서로 피를 흘리며 칼을 겨누는 와중 에도 겨울은 스치듯 지나쳤고 대지 는 새하얀 색으로 뒤덮인다·
제아무리 세상을 혼돈으로 물들이 겠다며 흑마인이 저울추를 흔들어 도 어김없이 봄은 온다·
햇볕의 포옹으로 꽃이 피어오르는 계절· 꽃잎 휘날리는 봄바람이 선선 히 불어올 때면 스텔라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살인적인 시험공부와 과제 의 양을 버티지 못하고 책상에 머리 를 찧고는 했다·
쿵! 쿵!
누군가가 말없이 벽에 머리를 틀어 박으며 소음을 내고 있었으나 스텔 라 도서관은 일상이라는 듯 그 학생 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어느 교수님께서 ‘자네 졸업한 뒤 할 일은 있는가?’라며 은근슬쩍 대 학원을 요구했는데 2학년 때 공부를
너무 대충하여 성적미달이 위험했기 에 어쩔 수 없이 교수의 노예가 되 기를 택했다는 그런 가엾고 딱한 사정은 별로 중요치 않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실전을 나가서 성적과 실적을 쌓는 게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은 마법 전사 생도들이나 할 수 있는 태평한 소리다·
연금학도 마법연구학과 신수학과 전문의학과 생물학과 등등····
스텔라 아카데미 3000여 명의 마 법전사 생도가 아닌 이론 위주로 공부를 하는 이들에게는 오로지 성 적과 논문 그리고 결과물만이 자신 을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스텔라의 마법전사들 은 3학년이 되면 도서관에서 코빼기 도 찾아볼 수 없게 되는데 그 자리 를 이론학과의 학생들로 가득 차게 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한 자리에·
3학년의 마법전사 생도 수석 마유 성이 앉아서 골똘히 책을 보며 고민 하는 풍경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이미 1학년 때부터 실전에 투입되 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증명받은 그였기에 당장 어딘가 오 지에 가서 흑마인을 토벌하고 있어 야만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실전 공적을 세우면 더욱 높은 평 가를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이론학과 학생들은 마유성을 신기 하다는 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도 딱히 터치하지는 않았다·
이곳은 본디 마법전사 생도들이 더 많이 사용하던 곳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마유성을 본래 알고 있던 3학년 마법전사 생도들은 그를 정말 로 특이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쟤가 공부를?’
‘그러게· 왜 공부하는 걸 처음 보 는 기분이지?’
‘학상 성적 1등을 유지했는데···
마유성은 딱히 공부하지 않아도 1 등을 유지했고 학생들은 그런 그를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했다·
그에게는 재능과 두뇌가 있었으니 까·
그런데 새삼 지금 와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상당히 어색하 다 못해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는 느낌마저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마유성은 꽤 진심 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스텔라의 학생들 대부분이 10대에 배우는 과정을 진작에 깨우치고 성
인 마법사들이 배우는 과목을 공부 한다지만 마유성은 그보다 몇 단계 위쪽에 있는··· 교수님들이나 공부 할 법한 학문을 파헤치고 있는 것·
개학식 후 일과가 끝나면 매일같이 도서관에 찾아와 밤이 새도록 공부 하던 마유성은 도서관이 닫히면 해 원량의 기숙사에 찾아가 마법에 대 해 새벽이 깊도록 토론하기도 했다·
“글쎄 나선으로 선을 긋는다고 해 서 양 끝점의 값을 낼 수 있다고 보 지는 않는다· 나는 이 마법진이 예전 부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얼간 이들이 마법학회의 윗대가리로 앉아 있으니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거지·”
“흐음~ 나는 다르게 생각하는데· 배우기 쉽다는 장점이 있잖아?”
“배우기 쉬운 마법따위 중요치 않 아· 결국 효율이 부족하잖아· 이 마 법진으로는 3차원 공간에서 마력을 함수로 나타내는 것도 불가능해·”
“옛 시조 마법사가 마도시대를 열 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접근성이 야· 그런 관점에서 이 마도기하학은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이건 그 진입 장벽을 상당히 해소했다고 보거든· 그렇게 해서 발전한 게 지금의 마법 이고·”
해원량과 마유성은 관점이 상당히
달랐다·
해원량은 마법을 복잡하게 만들더 라도 조금이라도 적은 마력으로 조 금이라도 더 대단한 결과를 뽑아내 야만 대단한 마법이라고 생각했다·
절대적인 마나량이 부족한 해원량 이었기에 당연한 특징일지도 모르 겠다·
반면에 마유성은 마법을 조금이라 도 더 쉽게 받아들이는 것을 좋아했 다·
빠른 시일 내에 많은 지식을 습득 할 수 있어야만 인간의 짧은 수명 으로 마법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
각하는 것이다·
마유성은 자신과 성격이 완전히 다 른 해원량과의 토론을 아주 좋아했 다·
해원량이 임무를 떠났을 때면 백유 설 다음으로 친한 에이젤과 함께 카 페에서 열띤 토론을 했는데 그녀는 마유성과 아주 유사한 성격이었다·
“파괴력와 출력이 중요해요· 접근 성이 높은 마법은 입문자용으로 걷 어내고 최대한 강력한 마법을 올려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에이젤은 그 누구보다도 힘에 대한 집착이 강렬했다· 지금도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를 하는 와중에도 끊임 없이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마력 연 공법을 진행하고 있었으니까·
일반인이었다면 지쳐 쓰러지거나 마나 탈진 증세가 심각하게 와서 마 나를 다루지 못하는 폐인이 되어버 릴 정도로 고강도 훈련을 하고 있었 는데 슬슬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 꼈기 때문이다·
‘홍비연 공주가 왕위에 즉위하는 그 날이 내 복수가 완성되는 날이 야·’
그녀는 잦은 외출을 감행했지만 임 무는 거의 수행하지 않고 있었다·
에이젤의 외출이란 곧 아돌레비트 의 귀족을 숙청하고 배신을 유도하 여 증거를 확보하는 일이었으니까·
심지어 위의 일을 홍비연 공주가 적극 지원해 주는 것으로 왕국 내에 상당한 정보통이 연결되었고 이제 는 아돌레비트의 수도 전역에 에이 젤의 눈이 깔려 있다고 봐도 무방했 다·
이 일을 지원한 홍비연조차도 알지 못하는 그림자들이 에이젤을 위해 아돌레비트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아마 그 어떤 귀족이라도 알지 못할 것이다·
잦은 외출 덕분에 성적이 위태로울 지도 모르겠으나 항상 내신과 성적 을 날카롭게 관리해서 여전히 5등 이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점이 특 히나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론 면에서는 마유성과 풀 레임을 제치고 백유설을 거의 따라 잡았다고 알려져 있으니 그녀가 얼 마나 공부에 열중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 시간이 됐네요· 이만 가봐야겠 어요·”
“벌써?”
저녁 노을이 질 무렵 에이젤은 급
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유성은 영 아쉽다는 표정이었으나 에이젤은 마 법 공부만큼이나 자신의 사념을 충 실히 이행하는 게 중요했다·
“···볼일이 있거든요·”
그리 말한 뒤 유유히 사라지는 에 이젤을 보며 마유성은 어쩐지 그녀 가 백유설을 닮아간다는 느낌이 들 었다·
방과 후 항상 어디론가 사라졌다 가 조용히 나타나서 다시금 일상에 뒤섞이는 소년과 소녀·
에이젤이 떠나가고 홀로 카페에 남
게 된 마유성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 보았다· 노을이 지는 저 풍경을 좋 아했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피곤하네·’
하루에 3시간도 잠을 자지 않고서 마법에 열중하고 있으니 제아무리 괴물 체력인 마유성이라도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마유성·”
창밖을 바라보던 마유성은 뒤쪽에 서 백유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환 히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백유설의 표정은 심각한 상 태였기에 이내 마유성도 얼굴을 굳
힐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 있어?”
“···없지는 않지·”
마유성은 방금 전까지 에이젤과 함 께 앉아 있던 자신의 자리에 착석했 다·
백유설은 그러지 않았다·
“할 말이라도 있는 표정이네·”
마유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백유 설은 머리를 쓸어올리고서 운을 떼 었다·
“내가 너에게 무언가를 포기하라 고 하면 너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갑자기 무슨 말인지 모르겠 네·”
헛소리라고 생각하여 웃음으로 의 문을 넘기려고 했으나 백유설은 진 지하게 묻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너의 모든 흑마력을 포 기하라고 한다면··· 너는 할 수 있 겠어?”
이쯤되자 마유성도 백유설이 장난 으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 다· 그는 잠시간 고민하더니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포기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걸· 이건 내 몸의 일부가 되었거든·”
“만약 가능하다면··· 포기해도 괜 찮다는 의미일까?”
고개를 끄덕인다·
“예전부터 바라 마지않았던 염원 이었어·”
마유성의 확고한 말에 백유설은 용 기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말은 제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쉬이 받아들일 수 없 을 테니까·
‘마유성이 흑마인의 힘을 포기하고
완전한 빛의 대마법사로 거듭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
게임 내에서도 단 한 가지밖에 없 는 방법이었다·
오로지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풀 레임’을 선택했을 때만 진행이 가능 하며 마유성의 호감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을 때 발생하는 이벤트였 다·
[Special Episode]
[마유성의 죽음]
마유성이 흑마력을 잃어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그에게 죽음의 위기가 찾아오는 것도 어려웠다·
마유성은 언제나 강력했고 죽음의 위기에는 항상 흑마력을 사용해서 위기를 헤쳐나갔으니까·
하지만 단 한 번 그러지 않는 경 우가 있다·
마유성이 풀레임을 진심으로 사랑 하여 더 이상 흑마력을 사용하지 않겠노라 맹세했을 때·
심장이 꿰뚫려서 죽음의 위기에 처 했음에도 불구하고 흑마력을 온전 히 포기했을 때·
그때 비로소 마유성은 각성의 기회 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심장 이 꿰뚫린 자가 살아남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게임 속에서는 풀레임이 천사의 날 개를 각성하여 신성한 힘으로 그의 심장을 채워넣었고 흑마인의 심장 을 완전히 벗어 던지고 인간의 심장 을 갖게 된 그는 완전한 백마법사로 거듭나게 된다·
‘조건은 완전히 충족되었어·’
비록 풀레임과 마유성이 서로 사랑 하지 않는 사이였지만 풀레임은 날
개를 이미 각성해서 지금도 하늘로 훤히 날아가버릴까 걱정이 되는 상 황이었으며 마유성도 이른 나이에 7 클래스를 넘보는 수준이었다·
게임 속 상황과 거의 똑같았으니 남은 것은 단 하나·
“너는··· 흑마력을 잃게 되는 대 신 그만큼의 백마력을 얻게 될 거 야· 맹세해· 백마력을 얻은 미래의 너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세계 최강의 대마법사가 될 거야·”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아무 도 믿지 않았겠지만 다름이 아니라 백유설이었다·
“대신 내가 너의 심장을 찔러야만 해·”
하지만 그런 미친 소리를 하는 사 람이 다름아니라 백유설이었기에·
마유성은 그 미친 소리를 끝까지 듣고서도 태연자약하게 그런 대답 을 할 수 있었다·
“만약 그렇게 하면··· 너보다도 강해질 수 있어?”
그 물음에는 망설일 것도 없었다·
백유설은 게임 내에서 PVP를 즐겨 했지만 ‘캐릭터 마유성’만큼은 상대
로 만나면 승률이 지극히 낮아졌으 니까
“당연하지··· 라고 대답하고 싶겠 지만 그건 겨뤄봐야 알겠지?”
그에 마유성은 만족했다는 듯이 씨 익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강함이라는 것은 끝없는 공허함밖에 남지 않을 거라고 생각 했거든·”
마유성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 며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런 거라면··· 백유설
너를 믿어볼게·”
그 시원스러운 대답에 놀란 것은 오히려 백유설이었다·
“심장을 찌른다는데도 정말 괜찮 겠어? 자칫하면 흑마력을 잃는 정도 가 아니라 정말 죽을 수도 있는데? 나를 왜 그렇게까지 믿는····”
“친구니까·”
마유성은 그리 대답하며 웃었다·
노을 진 저녁의 주홍색 빛무리가 그의 얼굴을 비추며 그 미소가 더욱 은은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 일방적인 맹신에 백유설은 아 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죄책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