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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학술 발표회(1)
마법 학술 발표회와는 다르게 연 금술과 마공학의 발표회는 그 규모 가 살짝 작은 편이다·
이 세계의 문명을 발전시킨 대부분 의 과학 기술이 연금술과 마공학이 란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지만 그런 과학 기술보다도
전투계 마법의 발표회가 주목을 받 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은 언제나 흑마인이라는 악의 세력과 대치 관계에 놓여 있었으니 까·
게다가 연금술이나 마공학에 비해 ‘전투 마법’의 난이도가 훨씬 더 극 악으로 어려운 이유도 있다·
마법의 복잡함을 간단하게 설명하 자면 한자와 수학의 조합과 비슷하 다고 보면 되겠다· 안 그래도 더럽 게 복잡한 한자에 수학을 더한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굳이 예시하자면 (4+5×7)라는 공
식을 해석하고 그려내야 발휘되는 마법이 있다·
그러면 마법사는 (四加五倍七)라는 마법어를 마나의 배열에 맞춰서 적 은 뒤 그것을 마나의 선으로 통합・ 연결하기 위해 원괄호진(圓括弧陳) 을 새기고 속성(屬性)을 더한 해석 식 (解析式)을 획의 순서를 맞춰서 그려냄으로써 일종의 방정식을 완성 해야만 한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다· 마나의 주입량에 따라 위력을 조절하거나 궤적 좌표 범위 등을 즉석으로 계 산하여 발현해야만 했다·
무슨 소리냐고?
쉽고 빠르게 설명하자면 마법은 엿 같다· 그것도 아주 엿 같다·
저걸 그냥 하기도 힘든데 전투 도 중에 해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 마법 전사를 괜히 아무나 못 하는 게 아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마법학 학술 발표회는 학생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은 데에 비해 연금술 or 마공학 은 참여하는 학생의 비중이 상당히 적었다·
나 또한 학술회 따위에는 별로 가고 싶지는 않다만 이번에는 참석한다·
지금까지 내가 알테리샤 조수를 얼
마나 열심히 키웠는데(?) 그 결과는 직접 봐야 하지 않겠는가?
“거의 도착한 것 같네요·”
“응· 그러게· 후우 긴장된다·”
학술 발표회가 열리는 장소는 매년 다르다· 작년은 연금성의 신설립 랩 에서 했고 재작년은 드워프들의 만 물철광 연구소에서 진행했다·
올해는 드워프 왕국에 위치한 최고 의 연금술 학교 ‘금학광 학당^서 진행된다·
아무래도 물질 마법의 원조들이 드 워프인 만큼 올해의 학술회는 그 규 모가 평소와는 남다를 것이라 예상
되는바· 알테리샤가 잔뜩 긴장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이번 역은 금학광 학당 입구 금 학광 학당 입구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열차가 드높은 화산의 정중앙을 관 통하여 진입하니 어느 거대한 동굴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드워프 왕국 ‘흑철제국’의 수도·
금광만철 주·
넓고 높고 삭막하다·
동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 로 드높은 천장은 시야의 끝에 닿지 도 않았다· 마치 별빛처럼 반짝이는 희미한 불빛만이 자욱하게 낀 안개 를 뚫고 비치고 있을 뿐·
건물들은 드높게 뻗어있어 마치 사이버펑크의 빌딩숲을 연상케했다· 어둡고 축 가라앉은 분위기에 불길 한 느낌마저 들었지만 정작 이곳에 서 살아가는 드워프들은 생기발랄하 기만 하다·
허공에는 강철재(鋼鐵材)의 선로가 무수히 이어져 있어 수많은 열차가 왕래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거미줄 같아서 ‘거미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와우···
십이신월 ‘금강칠월(金剛七月)’으로 부터 고대 문명이 시작되어 현대에 이르러 기계문화의 정점을 찍은 도 시다운 모습이었다·
마법 전사의 숫자가 가장 적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흑마인의 침략이 가장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쩐지 가슴이 들떴다·
도시 금광만철의 정가운데에 위치 한 드높은 고성에는 드워프의 제왕 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저곳의 지하
에 바로 그 ‘금강칠월’이 잠들어 있 기 때문·
그 무엇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육체를 가진 그 능력은 육체파인 내가 필수적으로 얻어야만 하는 가호였다·
‘아직은 아냐· 때를 기다려야 해·’
어차피 가만히 기다리면 금강칠월 과 조우할 수 있는 이벤트는 자동으 로 발생한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지이잉! 열차의 문이 열리자 알테 리샤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내렸 다· 이름은 ‘금학광 학당 입구 역’인 주제에 정작 금학광 학당까지 가려
면 10분은 더 걸어야 했다·
그리고 금학광 학당에 도착했을 때·
나와 알테리샤는 주눅 들 수밖에 없었다·
학당의 정문에는 붉은색의 카펫으 로 덮여 있는 대리석의 계단이 있었 는데 그 앞에는 초고급 외제마차가 즐비해 있었다· 휘황찬란한 정장을 차려입은 연구원 교수들이 카메라 셔터를 받으며 계단을 오르고 있는 데 어찌 주눅이 들지 않으랴·
아마도 메이젠 티렌 교수 또한 저 계단을 올랐으리라·
”으음···· 유 유설아···
알테리샤가 도움을 바라는 문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마침 좋은 방도가 있기는 했다· 상류층들을 위한 계단 이 부담스러운 가난한 연금술사를 배려하기 위함인ス 1 자그마한 뒷문 이 하나 더 나 있긴 했으니까·
“저희는 뒷문으로 갑시다····”
“그 그래! 좋은 생각이야·”
* * *
판타지 장르라고 하면 엘프에 더
불어 드워프가 빠질 수는 없는 법이 었다·
이 세상의 드워프는 약간 고정된 틀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망치로 강철을 두드려대고 싸울 땐 도끼나 워해머를 휘둘러대는 무식한 종족이 아니라 안경 쓰고 고지식하게 물질 의 근원을 탐구하는 연금술사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적 감각이 아주 독특하 다·
“뭐야! 못생긴 인간 놈들이 또 들 어왔군!”
사람의 허리춤까지 오는 갈색 피부
의 땅딸막한 난쟁이들은 인간들을 보며 항상 ‘못생겼다’라는 말을 달 고 살았다·
대강당에 모인 연금술사의 절반은 드워프였는데 멀리 타지로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그들이었지만 고향에 서 발표회가 열린다니 우후죽순으로 참여한 듯 보인다·
”활석코든 님! 못생겼다는 말은 인 간 사회에서는 초면에 예의가 아니 라고 했잖아요! 대체 언어를 사용하 도록 하세요!”
“아 그랬나? 인간들은 특이하군·”
드워프 사회에서 ‘못생겼다’는 말
은 일견 칭찬 증에서도 최고의 칭찬 이었다· 나름대로 활석코든이라는 이름의 드워프는 인간들과 친해져 보려고 했으나 종족 간 문화의 차이 로 인해 쉽지는 않은 듯싶었다·
“거 참· 인간들은 까탈스럽단 말이 지·”
그는 조수의 말에 깊이 깨우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뜸 근처에 있 던 다른 인간에게 말했다·
“자네 이목구비가 굉장히 아수라 장이로군·”
···나름대로 ‘순화’를 열심히 하 긴 한 듯싶다·
“제 이목구비를 평가해주셔서 영광 입니다!”
“음! 얼굴이 반죽 되었어도 자신의 추함을 받아들일 줄 아는 모습 보 기 좋군! 요즘 인간들은 되는대로 생긴 주제에 불평불만이 참으로 많 단 말이지!”
“활석코든 님! 그건 종족차별 발언 입니다!”
“뭐 어때!”
활석코든이 사람들을 흉보고 다님 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받 아들이고서 헐레벌떡 고개를 끄덕이 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황금 의 연금술사’라는 등급에 오른 최고 의 네임드 연금술사였으니까·
과거 모든 연금술사의 꿈이나 다 름없던 황금이라는 등급을 지닌 존 재인 만큼 이 업계에서는 최고나 다 름없었다· 어차피 얼굴은 기억도 못 하겠지만 그래도 좋은 모습 보여서 나쁠 건 없다·
이후로도 활석코든은 인간 연금술 사들을 찾아다니며 대뜸 ‘얼굴이 아 파 보이는군!’이라거나 ‘얼굴이 오늘 내일하는구먼!’이라는 등 흉을 보고 다녔는데 드워프와 인간을 포함해 서 대부분의 연금술사들은 고개를
꾸벅꾸벅 숙여가며 감사를 표했다·
그는 어느덧 강당을 한 바퀴 돌았 고 나를 힐끗 보고서 스쳐 지나가 둣 말했다·
“이 인간은 남자인고 여자인고?”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자 조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녀는 인간이었기에 활석코든의 저 런 망언을 자주 듣는 듯싶었다·
“활석코든 님· 평균적으로 남자는 짧은 머리를 여자는 긴 머리를 하 고 있습니다·”
“그래? 넬리人卜 자네는 인간 여자 라고 하지 않았나? 근데 짧은 머리
를 하는군·”
“요즘은 여자도 짧은 머리를 하고 남자도 긴 머리를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 편협하고 고정관념에 틀어박힌 시선을 버리세요·”
“···자네 해고당하고 싶나?”
“부당해고로 노동청에 신고하겠습 니다·”
떼잉 쯧쯔 이래서 인간 놈들이란· 활석코든은 혀를 차면서 나를 바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튼 이놈은 더럽게 헷갈리게 도 생겼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아주 많이·
그런 활석코든은 어느덧 알테리샤 를 스쳐 지나가게 되었는데 신기하 게도 그녀에게는 함부로 못생겼다고 말하지 않았다·
“자네는··· 흐음· 뭐 그럭저럭 봐줄 만하게 생겼군·”
“아앗 네에에?! 가 감사합니다!”
실제로 세계관 내에서 ‘미적 감각’ 하나로는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디자이너로도 유명한 활석코든이었 기에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라는 말은 그야말로 극찬 중의 극찬·
그녀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고
머리는 떡이 진 데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있어서 그 외모가 빛을 발하지 못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활석코든의 두 눈은 화장했든 더럽게 꾸몄든 그 모 든 조건을 꿰뚫고 본질을 바라보는 심미안을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손에 꼽을 정도의 미인이라는 말이 되겠다·
···물론 드워프 사회에서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라는 꽤 심한 욕이다·
”아차 초면에 실례했군·”
그래서 활석코든은 답지도 않게 사 과를 했다· 방금의 그 말이 인간 사
회에서 얼마나 최고의 극찬인 줄도 모르고·
“저 활석코든 님· 슬슬 착석해주시 겠습니까?”
활석코든이 신나게 ‘드워프식 안부 인사,를 전하며 돌아다니는 와중 사회자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다 가와 말을 꺼냈다·
“음? 시간이 벌써· 그러지·”
슬슬 연금술사들이 하나둘 자리에 착석했다· 메이젠은 저 멀리에 따로 교수들과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 는데 이쪽은 전혀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상관은 없다· 그녀는 알테리샤를 발표회에 들여보낸 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다 했으니까·
준비가 끝나자 단상에 사회자로 추 정되는 사내가 올라왔다· 예상외로 그는 엘프였다·
“연금학회의 박사님들 교수님들 연구원분들 모두 반갑습니다· 제87 회 골든섹션 학술회를 진행하게 된 연금성 포성공단 책임연구원 잎타렌 이라고 합니다·”
짝짝짝! 가벼운 박수갈채·
“첫 번째 세션으로는 포션학이 건 강 및 회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주제로서 포션 학자 여러분의 새로 운 포션을 발표하고 또 분석하는 시 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スト 가 장 먼저 스텔라 아카데미의 메이젠 티렌 연금술 교수님께서 발표하시겠 습니다·”
”후우···
슬슬 시작되었다·
알테리샤는 긴장한 듯 손을 파르르 떨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참관자의 신분으로 들어왔기에 알테리샤의 곁 에 있을 수 없어서 그녀를 다독여줄 수 없었다· 그저 멀리서 주먹을 쥐 어서 힘내라는 수신호를 보낼 뿐·
“안녕하십니까· 오늘 ‘레드 포션’의 알파 타입 발표를 맡게 된 스텔라 아카데미의 메이젠 티렌입니다·”
“오오···!”
레드 포션은 그 종류도 많고 파생 된 약도 많은 회복 포션이다·
아무래도 회복계 포션은 대중적이 지만 이 이상 더 개량하기도 까다롭 고 성능을 높이기가 힘들었기에 초 반부터 반응은 꽤 괜찮았다·
그리고 그건 전부 알테리샤의 연 구 결과물이었다·
너I 우선 이쪽을 봐주시면····”
그럼에도 메이젠 티렌은 알테리샤 라는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린 듯 저 논문이 자신의 것인 양 행세하며 꽤 능수능란하게 발표를 진행하였 다·
“대단하군 메이젠 티렌 교수!”
“레드 포션을 개량해 올 줄은 몰랐 어· 아이디어가 좋구만·”
이 찬사는 본래의 ‘에피소드’대로 진행되었다면 알테리샤가 받았을 것 들
여기서 엿을 먹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알테리샤만이 이해할 수 있 는 그 특유의 배합법을 어째서 어떻
게 어떤 공식과 어떤 물질로 연성하 였는가·
세세하게 질문을 던지기만 해도 그녀는 당황하여 어버버 헛소리를 지껄이고 말겠지·
그러나 나는 참았다·
알테리샤 또한 참고 기다렸다·
마치 먹잇감의 빈틈을 노리는 맹수 처럼·
오늘의 학술 발표회는 그 어떤 학 술 발표회와도 다를 것이다·
짝짝짝짝!
메이젠 티렌의 발표는 성황리에 마
무리되었고 이후로도 교수 연구원 및 연금술사들이 발표하였다·
오늘의 발표회는 평균보다 훨씬 수 준이 높았기에 참관인 자격으로 참 석한 몇몇 상인 및 기업인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스텔라 아카데미 메 이젠 티렌 교수님의 조수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그 와중 알테리샤의 차례가 돌아왔 으나 그녀는 이름조차 호명되지 않 았다·
“자네 이번 포션 말인데 이전번에 소개했던 그 제약 회사에서····”
“발표 잘 봤습니다· 교수님께서 설 명하신 그 자연재생 세포 추출에 대 해서 말인데···
“하하 이번에 개발하신다던 그 물 약 코팅 보호 스틱 말씀이시죠? 제 가 이번 건에 더불어 힘 좀 써보겠 습니다·”
일개 조수의 발표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흐읍!”
알테리샤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 나 단상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는 긴장한 듯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인
사말을 전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스텔라 아카데 미 소속의 연금술사 알테리샤입니 다· 오늘 제가 발표할 주제는···
여전한 무시·
그러나 예상했던바·
그래서 그녀는 모두의 시선을 모 으는 마법보다도 더 마법 같은 주문 을 내뱉었다·
“···’연공난수 교차 술식’의 완벽 한 정리와 이해입니다·”
순간·
강당의 모든 소음이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