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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이공간(1)
백유설의 고민은 원초적이었다·
이번에 운 좋게 얻게 된 이면 세 계의 파편을 대체 어디다 쓰는가·
사실 회공시월에게 삥뜯기는 게 싫어서 억지로 뺏어오기는 했지만 백유설은 이것을 어떻거】 또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전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애당초 백유설은 마법 연구원이 아닐뿐더러 이런 이면 세계는 연구 원이라고 할지라도 쉽사리 정체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 게 가능한 마법사는 애당초 진작 흑마법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백유설은 이것을 조금 아 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분석할 필요 가 있었다·
흑마법사들처럼 이면 세계의 힘을 빌려오는 연구가 아닌 이것을 그 자체의 순수 에너지로 만드는 것·
-그건 너무··· 무식한 방식이 아
니더냐?
은세십일월은 염려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또 다른 세계의 파편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
“무궁무진한 에너지도 지니고 있 죠· 이른바 예비 배터리라고 할까 요·”
-··?
백유설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 지만 은세십일월이 원했던 방식으 로 사용하지 않으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네가 그것으로 다른 세계
의 진실을 깨우쳤으면 했다·
“다른 세계에 별 관심은 없어요· 당장 우리 세계가 멸망하려는 마당 에 그걸 막기 위한 힘을 얻어야죠·”
-그건··· 모르는 일이다· 토아 레 그론을 보지 않았더냐· 그는 이 세 계에서 정해둔 ‘한계’를 아주 조금 이지만 초월했다· 이면 세계를 이해 한 덕분이지·
“그렇죠·”
-하지만 네가 하려는 것은 지름길 로 빠르게 힘을 얻을 수 있는 대신 결국에는 마녀왕과 삭월탑주처럼 한 계에 부딪힐 수도 있다· 그래도 괜
찮겠느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청동십이월이 말하기를 백유설의 신체는 이미 이 세계가 정해둔 한계 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조 마법 사만큼 강해질 수 있는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9클래스라는 한계가 이 세계에 정 해져 있으나 세상 모두가 9클래스 에 도달하지는 못하지 않던가?
고작해야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 에 꼽힐 정도로 적다·
백유설에게는 그저 ‘가능성이 열 려있을 뿐이다·
시조 마법사와 마찬가지로 그곳에 도달할 수도 있는 가능성·
그러나 그런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해서 정말로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 지 없을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
만약 백유설에게 가능성은 열려 있 지만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 재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 제안이 바로 그 부분이다· 후 천적으로 한계를 뚫을 능력을 얻는 것· 네가 단순히 이면 세계의 힘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이해
하고 받아들인다면··· 훨씬 더 다 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〇 으“ -【コ«
은세십일월이 저렇게까지 말하니 아무리 백유설이라도 설득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해하고 받아들여라····’
턱을 쓰다듬으며 봉인구 안에 갇혀 있는 이면 세계의 파편을 멍하니 바 라보는 와중 갑작스레 머릿속을 쩌 렁쩌렁 울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 려왔다·
-백유서어어얼! 백유설!! 도와줘!
으극!”
두통이 올 정도로 성량이 높은 목 소리· 이런 목소리의 주인은 단 한 명밖에 없다·
“천황정팔월···T
-맞아! 나야! 급히 할 말이 있어서 그러는데···!
“그러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백 유설과 함께 이야기하던 다른 십이 신월들도 대체 뭔 얘기를 하려는 것 인지 궁금해서 귀를 기울였다·
-···잠깐만 나와줄 수 있어? 나 는 거기 직접 못들어가서····
다른 십이신월들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육신을 반쯤 영체화 하여 다닐 수 있는 그들과는 달리 천황정팔월은 그런 능력이 아예 없 다시피 해서 직접 이 대륙을 뛰어 다녀야만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려 십이 신월씩이나 돼서 고작 아카데미 정 문을 못 뚫어서 학생에게 부탁하는 처지라니·
“기다리세요· 나갈 테니까·”
-뭐 뭐얏! 그 한심하다는 목소리 느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했습니다만·”
-으흐흑··· 그치만 엘트먼은 조 금 무섭단 말야····
“···지금 어딘데요?”
-웅? 학교 정문·
백유설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 어내 렸다·
학교 정문이면 진작 엘트먼을 포함 해서 학교의 이사회와 위원회의 귀 에 ‘십이신월이 찾아왔다!!’라며 긴급 속보가 들어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학교 내부적으로 비 상 사태가 걸려 있을 터·
본인은 그걸 전혀 모르고서 어떻게 든 몰래 들여보내달라고 정문에 멀뚱 멀뚱 서 있는 모습을 생각하니····
···생각보다 귀여운데?’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다·
그냥 천황정팔월의 저 엉뚱한 행동 하나하나가 웃기고 재미있었다· 지 루하고 고된 삶에 낙이 되는 느낌이 라고 해야 할까·
-아 그런데 말이야····
,,예,,
‘”사실 한 명 더 데리고 왔거든·
“···뭐를요?”
백유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다른 십이신월들은 뭔가를 알아차린 듯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뭐를이 아니라 사람인데····
“···설마·”
뒤늦게 무언가를 눈치챈 백유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천황정팔 월이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자력일월을 데려왔어· 너랑 만나면 도움이 될 것 같····
“거기서 가만히 기다리세요! 잠시 할 일이 있으니까!”
-어? 응·
백유설은 후다닥 기숙사에서 뛰쳐 나가 제1본탑의 교무실로 향했다·
십이신월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찾아왔으니 학교는 지금 비상 사태 가 걸린 것뿐만 아니라 아예 기사단 전체를 움직이고 있을 터·
지금쯤 아레인 기사단장이 식은땀 을 흘리며 병력을 배치하고 있을 모 습을 떠올리니 머리가 뜨거워졌다·
그런 쓸데없는 인력 낭비는 당장이 라도 멈춰야만 한다!
* * *
결국 제1본탑으로 찾아가 기사단 장과 엘트먼 엘트윈을 직접 만난 백 유설이 30분 동안 상황 설명을 끝 낸 뒤에야 기사단의 운용을 멈출 수 있었다·
물론 이사회를 완전히 설득시킨 것 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엘트먼이 한 다고 하니 백유설은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다음부터는 조심 좀 해줬으면 좋겠어 아무리 나라도 그런 존재가 둘이나 찾아오면 전쟁을 준비할 수 밖에 없거든· 특히나 지금 시기에는
말이지·’
연신 사과하는 백유설에게 엘트먼 이 남긴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더욱더 미안해져서 할 말이 없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 다·
“후우우····”
장소는 아르카니움 외부 위성 도 시 레조이카의 한적한 어느 카페·
아르카니움 아래에 위치해 있는 드 넓은 호수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서 여인들이 특히나 자주 찾아오 기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평일 오후 라는 시간대의 특성상 학생들이 전혀
찾아오지 않아서 손님은 없었다·
그런 카페를 독차지하게 된 백유설 과 천황정팔월 그리고 보랏빛 여자 아이의 외모를 가진 자력일월·
물론 자력일월의 모습은 카페 종 업원에게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 는 사람은 천황정팔월과 백유설뿐·
‘어머머 완전 미인이다·’
‘데이트인가?’
‘저 남자쪽 묘하게 익숙한데···· ‘나도나도· 신문에서 본 것 같아·’ 종업원들의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으 며 천황정팔월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녀들은 눈을 멀뚱멀뚱 뜨고서 아 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백유설의 눈 치만 조용히 보고 있었다·
현재 백유설은 눈앞에 십이신월을 두고서도 별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 었는데 저 둘의 실수 덕분에 요란 한 사태가 터진 것에 대해 여러모로 작성할 서류가 많았던 것이다·
백유설이 자신들 때문에 정신없이 펜을 굴리고 있으니 미안해서라도 말을 걸지 못했다·
“후우 그래서 할 이야기가 뭐죠?”
대충 마무리를 지은 백유설이 펜을
내려놓으며 말하자 천황정팔월이 자 력일월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언 가 우울한 표정이었는데 십이신월 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싶 은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게····
“회공시월과 관련된 이야깁니까?”
자력일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 맞아·
“그에게 협력하고 있지 않았습니 까? 새삼 저를 찾아온 이유가 궁금 하네요·”
-···협력하고 싶어서 하던 건 절 대로 아니었어· 애당초 나는 조용히
숲에서 장난치고 사는 게 좋았다구·
그 말에 백유설은 자력일월의 사정 을 어느 정도 짐작하는 게 가능해졌 다· 어째서 천황정팔월과 함께 자신 을 몰래 찾아왔는지도·
“뭔가··· 약점이 붙잡혀 있군요·”
자력일월은 아예 울먹거리는 표정 이 되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약점이라·’
십이신월은 애당초 세상에 연을 두 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혈연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들에게 유의미한 인질이라고 하면 기껏해 야 기르는 동식물 정도라고 생각했 으니·
“그래서 저를 찾아온 이유는 회공 시월로부터 그 무언가를 구해달라는 겁니까?”
자력일월은 말하는 게 부끄러운지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여동생이··· 한 명 있거든·
“여동생?”
-그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숲에서
우연히 만나서 여동생으로 삼았거
백유설은 자력일월이 키우는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를 상상했다·
– 그게 벌써 200년 전이던가····
상상을 바로 철회했다·
“200년이나 됐다구요?”
– 으응· 근데 그 애가 좀 희귀한··· 뭐랄까 저주 같은 게 걸려 있거든·
“저주?”
– 맞아· 계속 깨어나지 못하고 숲 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어· 자는 동안에는 성장도 거의 멈춰서 아직
도 어린애 모습이야·
“그래요?”
백유설은 다시 작고 귀여운 여자아 이를 상상했다· 겉으로 보기엔 자력 일월도 꼬맹이라서 작은 여자아이 를 키우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 다·
“저주라···「
-그 저주· 숲속에서 계속 잠을 자 야만 하는 그 저주를 회공시월이 풀어준다고 했어· 풀지 않으면 곧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어버려서 나도 급해질 수밖에 없었지····
백유설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
다· 무슨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아니 고 계속 잠을 자야 하는 저주라니·
‘아 그러고 보니 비슷한 퀘스트가 있던 것 같은데?’
즉시 직박구리 안경을 쓰고서 검색 하니 옛날 글에 [잠자는 숲속의 엘 프] 퀘스트가 눈에 띄었다·
“혹시··· 그 저주에 걸린 여자아 이가 엘프입니까?”
-어? 어떻게 알았어?
깜짝 놀란 자력일월을 뒤로 한 채 로 퀘스트를 읽던 백유설은 입꼬리 를 슬며시 올렸다·
이거 잘만 하면 자력일월까지 데
려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다·
다만 퀘스트 난이도에 준비물이 살 짝 필요하다는 게 문제였는데····
‘이건 도움을 좀 받아야겠는걸·’
이제는 인맥도 상당하겠다 도움을 요청하면 곧바로 손을 내밀어줄 사 람이 많다는 것도 안다·
연금술의 신과 아돌레비트의 공주 엘프왕과 마녀왕 그리고 세계 제일 의 부자까지·
···하나같이 여자만 떠오르는 것 은 틀림없는 기분 탓일 거다·
“좋습니다· 해결 못 할 일은 아닌
것 같으니 도와드리죠·”
‘저 정말?!
“대신 약속하세요· 제가 도와드리 고 나면 회공시월로부터 나와서 저 에게 가호를 내려주겠다고·”
-물론이ス1! 애당초 여동생만 아니 었으면 그런 싸가지한테 붙들려 있 을 이유도 없어!
충분한 대답이었다· 십이신월의 약 속은 무겁기 때문에 함부로 어길 수 없었으니까·
“그럼 바로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