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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흑마타락(7)
떠도는 연녹탑의 가장 높은 곳·
연녹탑주 토아 레그론은 지평선 너 머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역시 이 정도로는 스승님을 가둘 수 없는가·’
그 스승님이 심지어 삭월탑주 루드
릭과 백유설과 손을 잡고서 동행하 고 있으니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소 용없을 것이라고 짐작하고는 있었다·
“크흐흐 그러니 조금 더 과격한 방법을 쓰시지 그랬습니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흑색의 사제복을 뒤집어쓴 누군가가 음침한 웃음을 홀리고 있 었다· 그가 직접 들어오라 허락했지 만 역시 상당히 꺼림칙한 사내다·
‘흑마도왕의 아들에 이어 이번에 는 흑마신교인가·’
흑마도왕과 흑마신교 양측 파벌 모 두 토아 레그론의 힘을 원한다·
9클래스의 흑마법사인 만큼 전쟁에 서 그가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전투 양상이 크게 바뀔 것이기 때문·
흑마도왕의 사자로 찾아왔던 자는 그를 꺼림칙하다고 여겨 거부했음 에도 미련 없이 떠나갔으나 흑마신 교는 다를 것이다·
‘어떻게든 나를 붙잡으려고 수단을 가리지 않겠지·’
하지만 넘어갈 생각은 없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고작 그런 말을 하려고 찾아왔는가?”
“글쎄요··· 당신이 고분고분할 거 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분고분? 감히 내게 사용하기에 는 지나치게 가벼운 언동이군· 단어 선택을 신중히 하도록·”
“알고 있습니다· 크흐흐··· 당신 이 여전히 스승님을 사모하는 것을· 그러니 그런 나약한 방법을 사용하 였겠지요·”
“···뭐라고?”
사제복을 입은 사내는 토아 레그론 의 근처를 천천히 거닐기 시작했다·
“그렇잖습니까? 지금의 당신이라면 이면 세계에서 무수히 많은 괴물을 데려와서 그들을 덮치도록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직 완벽하
게 터득하지도 못한 마법으로 붙잡 으려고 시도하다니· 너무 평화적인 시도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스승님이니까· 나는 그녀를 죽일 생각이 없다· 이번 사 건이 끝날 때까지만 조용히 이면 세 계에 가둬둘 생각이었다·”
“그게 바로 무르다는 겁니다!!”
갑자기 사제복의 로브를 찢어서 벗 어 던진 사내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 으로 토아 레그론에게 성큼성큼 다 가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큭! 무슨 힘이···!)
당장에라도 마법을 분출하여 놈의
목을 베어내고 싶었으나 저 사내의 이름은 트와일리스·
흑마신교주의 총애를 받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기에 함부로 죽였 다가는 앞으로의 일이 귀찮아진다·
“···내가 아직 이성을 잡고 있을 때 놓는 게 좋을 거다 트와일리스·”
“아 이런· 죄송합니다· 후후후 크 흠흠 흐卜하· 흥분했군요· 조금·”
토아 레그론의 어깨에서 손을 떼어 놓은 트와일리스는 빙글 몸을 돌려 서 몇 발자국 걸어가더니 목을 기 형적이리만치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 어서 토아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쓸데없는 소리를 하려는 것이면 조용히 돌아가라·”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주 매력적 인 제안이 될 것입니다!”
트와일리스는 검지손가락을 펼치더 니 구멍이 휑하니 뚫린 앞니를 드 러내며 씨익 웃었다·
”스승님의 목숨과 당신의 노동력을 교환하는 겁니다· 어때요 어떻습니 까? 아주 좋지요?”
“···헛소리를 하는군·”
토아 레그론의 스승 스칼렛은 모
든 마녀의 왕이다·
트와일리스가 제아무리 강력한 흑 마인이라도 스칼렛을 공격한다는 발 상은 불가능하다· 애당초 인질로 잡 는다는 전제가 말이 안 된다·
‘지금의 스승님은 약해진 상태지만 놈이 그걸 알 수 있을 리는 없다·’
얼마 전 스칼렛은 봉인에서 풀려났 으나 아직 본연의 힘을 되찾지 못 한 상태이다· 그 상태에서 다른 흑 마인에게 노려진다면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을 터·
다행스럽게도 스칼렛이 약해졌다는 사실은 토아 레그론과 백유설을 포
함하여 아주 극히 소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그렇기에 토아 레그론은 조금 세게 나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너 따위가 스승님을 건들 수나 있 을 거라고 생각하나?”
“글쎄요· 흐흐흣 그렇게 생각했지 요 저도·”
트와일리스는 한 발자국 더 토아 레그론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당신의 사념을 읽기 전까지는 말 이죠!”
그제야 자신의 어깨를 부여잡은 이 유를 알아낸 토아 레그론이 눈빛을 착 가라앉혔다·
“언뜻 저 너머로 보였습니다! 그 래요· 당신의 스승이! 약해지고 한 없이 약해져서 이제는 먼지만도 못 한 상태가 된! 그녀의 모습이!”
두근!
위험하다· 토아 레그론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사념을···!
9클래스 마도사의 사념을 재빠르게 읽어내린 그 능력도 두려웠으나 그 것보다도 더욱 그를 무섭게 만드는
것은 스칼렛의 비밀이 하필이면 흑 마신교의 최측근에게 들켰다는 것이 다·
“이제 알겠습니까? 어때요 거래를 할 마음이 생겼냐고 묻고 있습니 다!”
거래? 지금은 그딴 것을 할 때가 아니다·
‘죽여야 한다·’
스칼렛의 비밀이 들켜 버린 이상 저들은 그녀를 인질 삼아 토아 레그 론을 부려먹다가 힘을 회복하기 전 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릴 가 능성이 높았다·
힘을 되찾은 마녀왕은 흑마신교주 의 입장에서 아주 골칫덩이일 테니 까·
‘놈을 보내서는 안 된다·’
토아 레그론이 마력을 끌어올리자 눈빛이 초록색으로 발광하기 시작하 였다· 공기가 무거워지고 연녹탑의 하늘에 천둥벼락을 동반한 먹구름이 요동친다·
번쩍!
그 천둥의 한가운데에서 트와일리 스는 여유롭게 웃었다·
“오오 이런! 정말로 저를 적대하 려는 생각이시군요·”
그는 뮤지컬 배우처럼 과장된 몸짓 으로 양손으로 볼을 감싸쥐고서 소 녀처럼 비명을 질렀다·
그러고서는 눈을 번뜩 뜨고서 토아 레그론을 부라렸다·
“그런데! 제가! 아〜무런 준비도 없 이 왔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 겠지요!!”
그렇다· 저런 판단을 이 자리에서 혼자서 내릴 것 같지는 않다·
쿠르릉-!!
토아 레그론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
다· 뇌운 사이로 언뜻 모습을 드러 내는 흑색의 거대한 그림자가 세상 을 불길함으로 뒤덮었다·
“죽음을 먹는 새···
“핫핫하! 그렇습니다!”
마침내 뇌운을 걷어내며 모습을 드 러낸 그것은 마치 뼛조각만으로 이 루어진 용을 연상케 한다고 하여 옛 선조들은 그것을 ‘골의 용(體龍)’이 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용이 아니다·
용이라고 부르기에 그것은 뇌가 없 으므로 지성이 없었으며 눈이 없으 므로 스스로 볼 수 없었고 소화기
관이 없으므로 스스로 영양분을 섭 취할 수 없었으며 팔과 다리가 없 으니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도 없었 다·
그저 거대한 날개 하나에 그 육중 한 몸을 지탱하여 자신에게 마력을 부여하여 생명을 되살려낸 마법사의 명령에 의존하여 죽음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법사의 지배를 받 는다고 해서 결코 간단한 생명체가 아니다·
100명의 순수한 인간을 희생하여 12인의 8클래스 마도사가 온 마력 을 쏟아부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
이었으니 그 고삐를 쥐고 있는 존 재가 바로 눈앞의 트와일리스였다·
“들었습니다 알았습니다! 토아 레 그론! 흑마도왕의 아들 중 한 명이 이곳에 다녀갔더군요! 사념을 읽을 필요도 없이 놈들의 역겨운 냄새가 제 코를 찌르고 있습니다!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아요!”
“···그게 어쨌다는 것이지?”
“몰라서 묻습니까? 흐흐흐 저는 다 알고 있습니다! 놈들에게 붙을 생각인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그 오해를 풀 필요는 없어 보였다· 어차피 놈은 죽음의 새를 소환해가며 자신을 진심으로 죽일 기세였으니까·
여기서 놈을 막아내지 못하면 다 음은 스승님의 목숨이다·
토아 레그론이 끌어올린 마력의 회 오리를 마침내 폭풍처럼 터뜨려 버 리자 트와일리스는 휘날리는 머리 카락을 부여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 은 채 양팔을 크게 벌렸다·
“하하하! 바로 그 자셉니다! 저희 는 서로 죽고 죽이는 수밖에 없던 것이에요! 당신의 능력은 상당히 귀
찮으니까요!!”
토아 레그론의 진가는 9클래스의 마법뿐만 아니라 전쟁 중에 발휘되 는 다양한 마도구의 활용도였다·
그가 만들어낸 기술은 일반적인 기 술보다 10년 이상 발전했다고 알려 져 있었으니 그런 것들이 전쟁에 동 원되어 흑마도왕 세력의 힘을 키운 다면 흑마신교의 입장에서는 상당 히 골치가 아프다·
그러니 그를 데려올 수 없다면 지 금 이 자리에서 기회를 잡아 죽이는 것이 낫다·
그것이 바로 흑마신교주의 판단·
“교주님께서 당신에게 거룩한 시련 을 내리셨으니 죄를 묻겠노라! 회 개하라 마법사여! 기도하라 당신의 죽어버린 신에게!”
트와일리스가 검지손가락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가 아래로 내려치 자 검붉은색의 벼락이 연녹탑의 꼭 대기에 내리쳤다·
번쩍-!
순간 세상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 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 * *
번쩍-!
“···천둥이 치네·”
아돌레비트의 수도 테할란·
서리절벽 궁전·
홍비연은 자신의 궁에서도 들릴 만 큼 우렁차게 들리는 천둥번개 소리 에 고개를 창밖으로 내밀었다·
바깥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는 데 온통 축제의 향연으로 가득하여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나와 놀고 먹 고 마시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마치 ‘우리는 행복하다’라고 말하
는 듯 보였다· 누군가에게 행복이라 는 단어를 꼭 억지로 전달하는 것처 럼만 보였기에 홍비연은 축제라는 것 자체를 즐기지 못했다·
축제 속에서 피어난 인위적인 행복 과 평화를 과연 진실이라고 생각해 도 좋을지 몰랐으니까·
‘뭐 어때? 당장 재밌으면 그만 아 니야?’
그때 귓가에 백유설의 목소리가 기 억 저편으로 스쳐 지나갔으나 홍비 연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런 말로 설득해도 소용없어····”
애당초 홍비연의 성격이 누군가와
어울리며 춤을 추고 친해지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일전에 백유설이 그녀에게 ‘너는 왕족만 아니었어도 아싸였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말뜻을 제대로 이해는 못했어도 그게 좋지 않은 평 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친화력이 또래 아이들에 비 해 부족하다는 의미였으나 고칠 생 각은 추호도 없었다·
남들이 저렇게 태평하게 시간을 버 리는 동안 자신은 공부와 수행을 통해 더욱 증진하여 앞서나가면 그 것이 한 발자국 더 행복에 가까워지 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똑똑!
노크가 울리자 홍비연이 손가락을 튕겼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바깥 에 서 있던 시녀의 당황한 표정이 드러났다· 설마 문이 혼자서 열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무슨 일이야·”
“아 ス七 그게· 이것을···
“돌아가·”
,,앗!,,
홍비연이 손을 휘적이자 시녀의 손 에 들려있던 봉투가 방으로 날아오 며 문이 닫혔다·
뜯어서 내용을 확인해 보니 장로회 의의 다음 일정을 수정한다는 그런 쓸데없는 내용이었다·
장로회의로 홍시화에게 큰 엿을 먹 여줬던 것을 떠올리니 그녀의 입가 에 미소가 맺혔다·
똑똑똑-!
그러다가 또다시 노크가 울리자 흥 비연은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또 뭐야?”
그녀가 대답하자 바깥에서 문이 벌 컥 열리며 예테린이 들어왔다·
“예테린? 갑자기 왜···
“공주님· 잠시 대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심상치 않은 마력 재해의 기운이 수도 근처에서 감지되었다고 합니다·”
“···뭐라고?”
마력 재해는 세계에서도 거의 발생 하지 않는 아주 드문 현상이다· 그 러나 마력 재해에 대해 모르는 사람 은 없다·
역사 속에서 마력 재해가 발생했을 때마다 수많은 인명피해를 빚어냈 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축제가 진행 중일
텐데···r
“어쩔 수 없이 취소가 결정되었습 니다· 반나절 이내에 시민들에게 대 피 명령이 떨어질 거예요· 여왕님의 명령입니다·”
“대체 무슨 마력 재해가 발생했길 래 그러는 거야?”
“정체는 알 수 없습니다만··· 하 늘에 기괴한 뇌운이 끼면서 탁한 색 의 천둥벼락이 수백 다발이 떨어지 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그 뇌운이 이동하며 테할란으로 다가오 고 있다고 하는데 정확한 경로는 조 금 더 확인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런 게 수도로 오고 있다고···T
그건 단순히 대피를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아돌레비트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테할란 전체 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는 뜻 아 니던가?
“폐하께서는?”
“현재 원정대를 꾸려서 마력 재해 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파악하 고 대처하기 위해 재난특수대응팀을 만들었다고····”
“가자·”
,,예?,,
“이건 기회야·”
“자 잠깐만요! 공주님 이건 재해 입니다·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 에요!”
“홍시화는 대피했겠지?”
“당연히 대피했습니다· 그러니 공 주님도 어서 대피하셔야 해요·”
“그러니까 가는 거야·”
홍비연은 이게 기회라고 생각했다·
마력 재해를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 는다· 하지만 그녀가 직접 나서서
재해에 뛰어드는 것만으로도 사람들 의 환심을 크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재해가 정말로 이곳에 도달했 다가는 축제가 물거품이 되고 마니 까·’
축제를 실컷 비웃었으나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축제가 한 번 벌어지기 위해 얼마 나 수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려 노력 하는지를· 그리고 매일매일을 고생 하며 살아온 이들이 축제 하나만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는지를·
어떻게 막아볼 생각은 아니다· 애
당초 목숨을 걸고 무리하고 싶은 마 음도 없었다·
‘그래도···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홍비연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