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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흑마타락(6)
연녹탑주를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 다 녹록지 않았다· 계속해서 마탑의 위치가 바뀌는 것은 둘째 치고 항상 위험지역을 떠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스칼렛과 백유설에게는 연녹 탑주가 마탑의 위치를 공유해 줘서 근처에 찾아가는 게 가능하기라도 하
지 여타의 평범한 마법사들은 그곳에 찾아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의뢰를 해결하는 것까지는 쉬웠는 데 정작 의뢰인 찾아가는 게 어렵다 니····”
사실 의뢰 해결도 그리 쉽지는 않 았으나 연녹탑주를 찾아가는 여정 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그런 한탄이 나온 것이다·
달리는 열차 속 무료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백유설은 문득 생 각난 부분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스칼렛은 연녹탑주 를 만날 때 평상시에도 이렇게 힘들
게 찾아가?”
—ロ •
스칼렛은 차내식을 한가득 주문하 여 침대에 몸을 반쯤 뉘인 채 입안 한가득 음식을 물고 있었는데 뜬금 없는 백유설의 질문에 눈동자가 동 그래 졌다·
“내가 직접 찾아간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럼 어떻게 만나?”
,,내가 외출할 때면 토아가 환영 분 신으로 찾아왔지·”
환영 분신은 스칼렛의 아바타와는 다르게 물리적인 영향력을 전혀 끼
칠 수 없으나 원하는 곳에 생성할 수 있는 고등급 마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스칼렛이 어디에 있든 즉시 찾아가고는 했는데 문제는 그녀가 먼저 토아를 호출한 적이 없다는 것·
“딱히 그 아이를 부를 일은 없잖 아? 가끔가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는 알아서 찾아왔거든· 나를 아주 잘 아는 아이였지!”
“그런 사람이 이번에는 이렇게 오 랜 시간 동안 안 찾아오는 거야?”
“···으응 그러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스칼
렛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스승님이 자기 찾겠다고 이렇 게 고생하는데 왜 한 번도 연락을 안 하는 거지···r
“답은 사실상 정해져 있지 않겠는 가·”
루드릭은 다리를 꼰 채로 무언가 고뇌하는 듯 말했다·
“자신의 스승과 싸우게 될 수도 있 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 는 것이지·”
“···과연 그렇군요·”
루드릭이 백유설에게 붙었고 거기 에 스칼렛까지 합류했다·
토아 레그론에게는 호의적이지 않 은 조합·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 이라도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다·
달그락-!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정신없이 숟 가락을 움직이던 스칼렛의 손이 우 뚝 멈췄다·
’···토아가 나를 적대하는 건가·’
인지는 하고 있었으나 막상 이렇 게 현실로 직시하게 되니 가슴 한편 어딘가가 답답해졌다·
“흐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조금 곤란하겠군·”
“그러네요·”
“곤란하다고?”
백유설과 루드릭이 그리 말하자 스 칼렛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곤란해?”
“우리가 본인 잡으러 찾아가는 걸 알았으니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 잖아·”
“그래 공격해 올 가능성이 있겠군·”
“아아·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말라·
토아 레그론은 무고한 사람이 휘말 리는 것을 싫어해서 이런 열차에
탑승하고 있으면 안전하다·
그리 말하려던 스칼렛이었으나·
덜커덩! 끼이이이이-!!
“ O 으ワ ド
····
갑작스레 열차가 급정거하며 기분 나쁜 마찰음을 내기 시작했다·
열차에 탑승해 있던 사람들이 어지 러이 넘어지며 비명 소리가 터져 나 오는 가운데 백유설 일행만은 아무 렇지도 않게 복도로 걸어 나왔다·
루드릭은 이리저리 어지럽게 흔들 리는 열차를 거닐며 아무렇지도 않
게 양손을 모아서 마나를 힘껏 끌 어모은 뒤 펼쳤다·
그러자 열차 내부의 공간이 축구 경기장만큼이나 넓어지면서 이리저 리 흔들리며 굴러다니던 사람들이 열차의 한가운데에 모이게 되었다·
그들을 스칼렛이 마력으로 잡아서 묶는 것으로 인명피해 없이 일반인 들은 모두 구출 완료·
열차 내부를 가만히 지켜보던 백유 설은 문득 궁금한 점을 물었다·
“이거 바깥에서 보이는 것보다 안 쪽이 더 넓은 그런 마법인가요?”
“그런 셈이지·”
“오오···
어렸을 적 보았던 SF 드라마가 떠 오른 백유설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열차를 바라보다가 창문이 있는 곳 으로 걸어갔다·
“자네가 확인해 주겠는가? 나는 열 차 내부에 있는 다른 피해자들을 찾 아보겠네·”
“제가 제일 막내니까 몸 쓰는 일 은 알아서 도맡겠습니다·”
그 말에 루드릭은 살짝 미소를 지 으며 주머니에서 곰방대를 하나 꺼 내서 불을 붙였다·
“그래도 조심하게나· 9클래스의 마
법사가 둘이나 있는 우리를 견제하 기 위해 토아 레그론이 무슨 수를 썼다면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힘들 지도 모르니까·”
“안전제일은 항상 염두에 두고 있 죠·”
그리 말한 백유설은 창문을 열고서 열차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열차 외부는 그리 크지 않은데 축 구 경기장만 한 안쪽을 보니 확실히 이상한 느낌이었다·
열차의 외벽을 타고서 천장으로 올 라선 백유설은 저 멀리 앞쪽에 검은 색으로 뒤덮인 우중충한 공간을 확
인했다·
‘괴물은··· 아닌 것 같고· 마법인 가? 잘 안 보이는데·’
초점을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드 는 듯한 기묘한 무언가· 백유설이 열차의 천장을 타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데 아래쪽에서 묘한 소리 가 울렸다·
차르륵!!
“··저건?”
검은 액체 같은 것들이 열차의 바 닥을 타고 멀리까지 퍼지고 있었는 데 그것들이 외벽을 타고 올라오면 서 스멀스멀 잠식되고 있었다·
직박구리 안경을 즉시 꺼내서 착용 하자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一[이면의 ??? ??]-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무언가·
이면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설명은 심플했고 정체를 알아내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더욱 짧았다·
“설마 이거··· 이면 세계로 그대 로 잠식해 버리려는 거야?”
페르소나 게이트와는 다르다·
애당초 ‘게이트’라는 것은 아무것 도 없는 허공에 생성되는 구 형태의 문이다· 그런데 저건 이면 세계로 통하는 게이트나 다름없으면서 마 치 액체처럼 유동적인 움직임을 보 인다·
‘미친 이런 게 세상에 존재한다 고?’
열차 전체를 통째로 잡아먹으려는 액체의 움직임을 확인한 백유설은 즉시 루드릭에게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검은 액체 가 솟구쳐서 열차를 반으로 갈라버
렸다·
“윽!”
황급히 뒤쪽으로 물러나서 피하기 는 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스칼렛과 루드릭이 있는 뒷칸과 떨 어져 버린 것·
하필이면 터널 내부에서 열차가 터 진 바람에 액체가 공간을 틀어막고 있으니 갈 방법이 없····
···없는 건 아니지·’
판단은 빠르고 신속했다·
터널 위쪽을 향해 검을 연달아 휘 두르자 백유설이 통과할 만큼의 구
멍이 생성되며 뻥 뚫렸다· 구멍은 구조물이 무너지며 이내 메워졌지 만 백유설이 점멸을 사용하여 터널 위쪽으로 통과하는 데에 걸린 시간 은 0·2초가 채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터널을 빠져나온 백유설 은 아래쪽으로 다시 칼질을 하려다 말고 이 근방 전체에 벌어진 모습 을 보고서 잠시 몸을 멈칫했다·
‘어마어마하군·’
지금 보니 이 열차뿐만이 아니라 반경 수십 미터 전체가 검은색 액체 에 뒤덮여 있었다·
결코 평범한 마법사가 할 만한 짓
은 아니다·
‘토아 레그론· 잔머리 좀 굴러가는 모양인데·’
루드릭과 스칼렛은 자신들의 힘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거리라도 뛰어넘을 수 있는 공간 마법사의 정점이자 마법 하나 로 세상의 꼭대기에 올랐던 마녀왕 까지·
그런 그들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적을 만나더라도 자만심을 가 지고서 느긋하게 움직이라고 생각하 고 있었을 것이다·
‘루드릭과 스칼렛의 자만심 넘치는
그 성향과 태도까지 이미 계산해 뒀 겠지·’
그래서 토아 레그론은 이들에게 어 중간하게 대응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예 이면 세계로 삼켜 버릴 생각 이라니· 꽤 똑똑하긴 한데···
백유설은 눈을 감고서 집중력을 최 대로 끌어올렸다· ’또 다른 백유설’ 이 하지 말라며 당부했으나 그는 공간을 베어 가를 수 있다·
그것은 이면 세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홉!”
백유설의 손끝에 펼쳐진 청풍명월
의 푸른빛이 은색으로 변질되며 길 게 쭉 늘어지더니 삽시간에 터널과 열차를 뒤덮은 이면 세계의 검은 물 질을 베어냈다·
서걱!
고작 한순간·
시간으로 따지면 0·5초도 되지 않 는 찰나의 순간·
그러나 확실하게 백유설은 공간을 베어내서 틈새를 만들어냈고·
번쩍!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루드릭이 열차 내부에 있던 모든 인간들을 데 리고서 터널 바깥으로 공간이동하여
빠져나왔다·
“휘유 신기한 것을 만들어냈군·”
터널 바깥으로 빠져나온 루드릭은 여유롭게 휘파람을 부르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아마 백유설이 돕지 않았더라도 그 는 어떻게든 빠져나올 방법이 있었 을 것이다· 그 과정이 굉장히 귀찮 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문제겠지 만·
“자네 덕분에 수고를 덜었어· 설마 하니 열차를 이면 세계로 뒤덮어버 리는 미친 짓을 벌일 줄은 몰랐군·”
“곧바로 나오실 줄 알았습니다·”
여유로운 루드릭과 백유설과는 다 르게 스칼렛은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아직도 열차에서 꿈틀거리는 이면 세계의 검은색 물질을 바라보았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 거 지?”
스칼렛은 검은색 물질에 손을 가져 다 대었다·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그 것은 액체처럼 보였으나 무엇인지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이건··· 공간 그 자체야·”
검은색 액체는 이면 세계에서 홀러 나온 독특한 물질이 아니다·
애당초 이면 세계에서 흘러나왔다
는 표현도 잘못되었다·
그저 이 세계에 이면 세계가 조금 묻었을 뿐인 그런 현상·
“공간이라· 확실히 그렇군·”
루드릭도 스칼렛의 말을 듣고서 표 정이 조금 심각해졌는더1 그 이유라 고 하면 간단했다·
“나도 이 정도까지 공간을 다룰 수 는 없다· 공간을 마치 액체처럼 흘 러내리게 한다니··· 믿을 수 없는 수준이군·”
“···아무래도 토아의 힘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 어·”
공간 마법계의 최고정점조차 불가 능한 행위
스칼렛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면 토아는 이미 전성기의 나 를 뛰어넘었을지도 몰라·”
“뭐? 그게 가능해? 스칼렛 너는 인류의 한계에 도달했었잖아·”
“···응· 그랬다고 생각했지·”
생각했다 라는 것은 확실하지는 않다는 이야기·
“그래· 마녀왕이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했던 것 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정말 모
든 인류의 한계라고 정해진 법은 없 으니까·”
이를테면 ‘시조 마법사’처럼 인과 를 초월한 어떠한 경지에 도달하는 자가 또 나타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 었다·
“그럼 연녹탑주가 스칼렛을 뛰어 넘고 시조 마법사와 비슷한 경지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는 얘기야···?”
백유설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 으나 루드릭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겠지· 시조 마법사의 힘이 있었다면 우리쯤은 가뿐하게 찢어버릴 수 있었을 테니
까·”
그런데 토아 레그론은 굳이 백유설 일행의 발목을 잡는 행위를 했다·
“즉 어떤 부분에서는 인류의 한계 를 초월한 힘을 갖췄지만 아직 그 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런 괴물을 상대하러 가야만 하는 것이군요·”
새삼 상대방이 어떤 경지에 도달해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자 백유설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차라리 잘됐군·
“처 청동십이월님?”
-그래 나다·
그러나 갑작스레 불쑥 등장한 청동 십이월은 조금 다른 생각인 모양이었 는•지 상당히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놈은 절대 시조 마법사님의 수준 에 도달하지 못했다· 고작 저 정도 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소리지·
“그렇군요·”
-그래서 차라리 다행이다· 한계를 초월한 저놈에게 네가 영향을 받게 된다면 틀림없이 어떤 변화가 생길 지도 모르겠군·
“저런 사람과 맞서 싸울 생각은 없 습니다만····”
-맞서 싸우지 않아도 좋다· 그저 곁에서 영향을 받는 것으로도 충분 해· 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 마 나를 어떻게 홀러내는スI· 그것만 볼 수 있어도··· 너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백유설은 자신만만한 표정의 청동 십이월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 다·
“어떻게 그걸 확신하시죠···T
그 질문에 청동십이월은 도리어 무 슨 질문이 그따구냐는 듯한 얼굴이 되어 대답했다·
-어떻게 확신하긴· 너는 이미 처음
부터 인류의 한계를 초월해 있지 않았느냐?
,,예?,,
-마나가 없는 네 신체· 너는 태어 날 때부터 이미 이 세계가 정해둔 어떠한 틀 한계 벽을 모두 깨부순 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니 또 다른 초월자를 만나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청동십이월은 그렇게 추가적으로 설 명했으나 거기까지는 귀에 들어오지 도 않았다·
‘이미 한계를 넘어서 있었다고···? 어째서일까 오로지 그 말만이 귓
가에 맴도는 것은·
백유설은 오늘따라 유독 자신의 심 장 소리가 더욱 커다랗게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