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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흑마인들(3)
비행정에서 십이신월의 기운을 다 루고 있는 백유설을 뒤로한 채 모습 을 감춘 은세십일월·
그는 본체로 돌아와 직접 발을 움 직여 대륙의 서쪽 끝으로 향하기 시 작하였다·
‘신월의 신전···
세상에는 신월의 신전이 아홉 개 존재하였고 그곳은 각각 다른 국가 에서 관리하였다·
말이 신전이지 사실상 폐허나 다름 없는 장소였는데 신월들이 모습을 감춘 이후로 더 이상 존재 의미가 없어진 탓이었다·
여태 발견된 신전이 아홉 개밖에 없는 탓에 인간들은 아홉 개가 전부 라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니다·
신전은 세 개가 더 있었고 그중 두 개는 파괴되어서 영영 자취를 감 추었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하나는····
서쪽의 마지막 낙원 도로시·
이제는 오염되어 더 이상 인간들이 출입하는 게 불가능해졌으나 한때는 세상의 모든 행복을 확인할 수 있었 다는 지상낙원 도로시에 마지막 신 전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곳도 여전하군·”
이제는 인적을 거의 찾아보기도 힘 든 수준의 도로시에 도착한 은세십 일월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고서 땅에 발을 디뎠다·
도로시는 저층 건축물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 중 하나였는데 마치 막 대기처럼 얇고 긴 건축물이 기둥처
럼 수백 개가 넘도록 꽂혀 있었다·
지금은 죄다 잘려 나가고 부서져서 수백 개의 기둥이 보여주었던 그 찬 란한 위세를 볼 수는 없었지만 은세 십일월의 기억 속에서 이곳은 여전 히 낙원이자 유토피아였다·
한때·
이곳에서 살던 인간들은 십이신월 을 신으로서 모시고 추앙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신월의 신적인 힘을 강하게 물려받아 원소를 다루 는 유일무이한 종족이 되었다·
덕분에 그들은 마법 사회와는 다른 신비로운 문명을 세울 수 있었지만
인간 사회에서 ‘다름’이라는 것은 곧 ‘옳지 않다’라는 뜻과도 같았다·
그들은 배척당했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주제에 원 소를 다룬다는 이유로·
그래서····
흑마인의 습격을 받는 와중에도 인 간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은세십일월은 그들이 괴로움에 비 명을 지르며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간섭할 수 없었으니까·
···벌써 수백 년도 더 지난 일이 지만 쓸데없이 뛰어난 기억력은 그 날의 기억을 단 한 순간도 잊지 못 하도록 만들었다·
도로시의 거리를 한참이나 천천히 거닐던 은세십일월은 마침내 신월의 신전에 도착하였다·
다른 신전들과는 달리 관리를 받지 못하여 무너지고 폐허가 되었어야 정상이거늘 어째서인지 수백 년 전 그때와 마찬가지로 멀쩡해 보였다·
“···위대한 십이신월이시여·”
“감히 위대한 존재 앞에 무릎꿇습 니다·”
그야 당연하다·
수백 년 전 그날 이후로도 줄곧 이 신전을 강탈한 이들이 신전을 지 키고 있었으니까·
혹마인·
그들은 이곳을 아무 이유도 없이 습격한 게 아니었다·
신월의 힘을 다루는 그들이 부러웠 고 또한 그 뜻을 배우고자 하였음 에도 저들이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흑마인은 짐승이다·
이성이 없는 존재가 이성을 갖기
위하여 가르침을 청했음에도 거절하 였으니 그에 마땅한 대가를 치른 것 이다·
흑마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 보는 아이들이로군·”
은세십일월이 기분 나쁘다는 듯 표 정을 찡그리자 흑마인들을 한 발자 국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푹 숙였 다·
“아직도 이곳을 지키고 있더냐·”
“그러합니다· 이 대륙에서 태어난 존재가 십이신월을 모시는 것은 의 무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누군가에게 떠받들어질 이 유는 없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있습니다· 당 신들을 믿고 따르면··· 신비로운 힘과 지성이 깃들지 않습니까·”
그렇다·
힘과 지성·
그것은 흑마인들이 평생 추구하는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강력한 자가 곧 왕이 되었고 지성 을 잃는 대신 힘을 얻는 흑마인이 지성마저도 되찾게 된다면 그야말로
최강의 존재가 될 테니까·
수백 년이 지난 현대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흑마인들이 지성을 잃지 않 고서 이성을 유지하는 법을 깨달았 다지만 힘을 향한 갈망과 더 깊은 지성을 향한 욕망은 여전하다·
“비켜라· 갈 데가 있으니·”
그러나 은세십일월이 그들의 말을 들어줄 리가 없다·
흑마인들은 순순히 양옆으로 비켜 서며 말했다·
“저희의 왕께서는 언제나 당신들을 바라고 계십니다·”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친다·
도로시를 습격한 역겨운 것들의 말 따위를 들어줄 필요는 없으니까·
신전의 지하로 향한 은세십일월은 자신의 기운을 흘려보내서 굳게 잠 겨 있던 거대한 석문을 열었다·
마법과 힘으로 열어보려던 것인지 문에는 상처가 가득했지만 시조 마 법사의 마법이 쉽게 깨질 리는 만무 했다·
드그그그그극···
문이 열리スト 은세십일월은 성큼성 큼 걸어서 석실 내부로 들어섰다·
수많은 마법사들과 흑마인들이 이 곳에 무언가 대단한 신물이라도 있
을 것이라 기대하여 문을 열어보려 고 했는지는 몰라도 사실 대단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석실에는··· 그저 그림밖에 없 었다· 사방의 벽면과 천장에 한가득 그려져 있는 그림들·
천 년 전 그러니까 시조 마법사께 서는 자신의 뜻을 먼 후대까지도 전 하고자 하였으나 당시에는 마땅한 언어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
언어를 가진 종족이 멸망하고 새 로운 언어를 가진 종족이 탄생하며 언어가 마구잡이로 뒤섞이던 시대였 기에 당장 백 년 뒤에 현재 사용하 던 언어를 쓸지 안 쓸지도 의문이었
던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그래서 시조 마법사는 그림을 택하 였다· 마법의 힘이 담긴 그림을 남 겨서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국가가 관리하는 아홉 개 의 신전에도 역시 그림은 남겨져 있 으나 그것들은 아직까지도 해석되 지 않은 채였다·
전혀 의미 불명의 문양과 그림들이 한가득이었기 때문이다·
태양과 거대한 용·
불타오르는 인간과 빙산에서 잠을 청하는 거인·
창으로 대지를 뒤집는 엘프와 눈을
감고서 잠을 청하는 거대한 산·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림들의 나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십이신월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세십일월도 지금까지 시조 마법 사가 어떤 의미로 저런 그림들을 남 겼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이 신전의 그림들은 더욱 특이하고 특별했다·
신월이 남긴 마지막 신전의 천장·
그곳에 시조 마법사가 모습을 감추 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이 그 려져 있었다·
“···지금 보니 뜻을 알 것 같기 도 하구나·”
다른 신전들의 천장에는 수많은 그 림이 빼곡히 그려져 있으나 이 신전 만큼은 달랐다·
단 하나의 거대한 그림만이 천장을 장식하고 있었다·
손을 뻗고 있는 인간 하나·
흰색과 검은색의 용 두 마리·
오색찬란한 12개의 무지갯빛이 뒤 섞이며 소용돌이치고 있었으며 그 끝에는 혹색과 흰색의 태극무늬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렇군 과연····”
왜 여태껏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까·
십이신월의 모든 색이 뒤섞였을 때 벌어지는 ‘어떠한 일어] 대해서·
색은 섞이면 섞일수록 색이 탁해지 고 점점 더 검게 물들어가게 마련이 다· 그것은 곧··· 멸망을 의미한다·
하지만 과연 ‘빛도 그럴까?
빛의 색은 섞이면 섞일수록 탁해지 기는커녕 오히려 더 밝고 찬란한 색 을 내뿜고는 했다·
그것이 바로 관건이었다·
‘모든 색이 뒤섞였을 때 검은색이 되느냐 혹은 흰색이 되느냐·’
은세십일월은 몸을 띄워서 천장의 태극무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마도 회공시월은 그 사실을 진작 에 알고 있었겠지·
그래서 급하지 않은 것이다·
십이신월이 누구에게 모이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에 억지로 빼 앗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은 모든 색이 모였을 때의 결 과가 모든 것을 결정지었기 때문에·
은세십일월은 주먹을 꽉 쥐고서 표
정을 찡그렸다·
“백유설··· 그 아이가 부디 흰색 이었으면 좋겠군·”
* * *
하월평원 연꽃 객잔·
이른 새벽부터 출장을 나가기 위해 깨어나 심플한 드레스를 입고서 비 행정에 탑승하려던 젤리엘은 영 좋 지 못한 소식을 접했다·
“평야에 흑마인들의 흔적이 다수 감지되고 있다구요?”
“예· 부족민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서 회사 측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리 보고하는 사원은 영 어처구니 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우리가 마탑도 아니고 지원 병력 요청이라니····”
“하세요·”
,,예?,,
“지원하라구요· 마탑에 돈을 때려 박아서 마법사들을 매수하고 용병 들을 모조리 끌고 오라고 하세요·”
“그 정말이십니까?”
젤리엘은 냉랭한 표정으로 사원을 홱! 돌아보았다· 그러자 사원은 귀 신이라도 만난 사람처럼 ‘히익!’ 새 된 비명을 지르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잘 들어요· 하월평야가 죽으면 별 구름도 죽어요· 하월평야가 살면 별 구름도 살아요·”
그렇다·
지금껏 그 누구도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지만 사실상 별구름은 하월 평야를 통치하는 왕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수백 년 동안이나 전쟁으로 불타오
르던 하월 평야의 모든 종족을 돈으 로 매수하여 처음으로 평화를 가져 왔고 외부의 침입을 완전히 막아주 고 지켜주며 금융 시장 체계를 설립 하였는데 왕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 가?
단지 상회라는 이유로 감히 왕정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 을 뿐이다·
즉 젤리엘은 하월평야라는 이 거대 한 땅덩어리를 다스리는 왕의 딸이 나 마찬가지였기에 백성들을 보살 필 의무가 있었다·
“흑마인들이 또 왜 설쳐대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두고 있으면 기
세등등하게 여기까지 기어오겠죠·”
그 꼴은 절대 볼 수 없다·
“모조리 잡아다 죽이라고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말했으면 제대로 알아들 었을 것이다·
젤리엘은 그리 생각하며 잠시 의자 에 등을 기대었다· 비행정이 출발하 기까지는 아직 10분 정도 남았다·
*···요즘 혹마인들이 뭐를 잘못 먹은 걸까·’
공장을 습격했을 때부터 꺼림칙함 을 느꼈지만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녀가 잡아다 족쳤던 흑마인들은 죄다 계급도 낮은 하위 계층이라 아 는 게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 목표가 있다·
흑마인이 저렇게 조직적으로 활동 한다는 건 누군가 명령하는 더 거대 한 세력이 있다는 것이고 그들은 인간 대마법사 못지않은 지능을 가 지고 있어서 결코 무시할 만한 존재 가 아니라고 배웠다·
‘그렇다면 평야에서 설치는 것도 필히 목표가 있다는 것인데···
저렇게 설쳐대 봐야 많은 흑마인이 죽어 나갈 뿐이다·
그걸 감안할 만한 이해득실이 있는 가? 저렇게 수많은 목숨을 버려가면 서까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목표는 무엇인가?
눈을 감고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더1 아까 돌아갔던 사원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바람에 눈을 뜰 수밖 에 없었다·
“아 아가씨!”
“···또 무슨 일이죠?”
저렇게 급히 올 정도면 평범한 일 은 아닐 터다· 젤리엘이 표정을 딱 딱하게 굳히고서 묻자 사원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펴 평야에··· 평야 전역에 동시 다발적으로 페 페르소나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뭐라구요?”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현상에 젤 리엘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건 그녀의 지식으로도 도저히 대 응할 수 없는 대규모의 사건이었다·